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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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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020년 부활주일 아침에 2020-04-12

전 세계가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1만 명 이상 사망자가 나온 국가들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페인, 미국 등입니다. 미국은 사망자가 1만6천명으로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이탈리아는 사망률이 12.9%나 됩니다. 우리나라는 4월10일 기준으로 208명이 사망했고 사망률은 2%입니다. 누적 확진자는 1만450명이고 완치된 사람들이 7천117명입니다. 전 세계가 팬데믹 상태가 되었습니다. 각국이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금지 명령을 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필요한 외출과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가능하면 대인과의 거리를 2M이상으로 하고 외출 시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집단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집회를 하지 못하고 예배를 온라인 방송으로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처음 드리던 3.1주일에는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혼란했습니다. 그래도 몇 주만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7주째가 되었고 부활주일입니다. 이단과 분별없는 사람들은 말세의 대재앙이 시작되었다고 소리치며 듣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합니다. 특히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희망의 복음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또한 잠언 14:32에는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이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백창우 시인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라는 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2020년 부활주일 아침, 우리 모두가 절망하는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일지라도---또한 모두가 인생길 끝이라고 할 때 그곳이 끝이 아니고,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다시 시작된다는 희망으로 2020년 희망의 부활주일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55미래의 관심보다 오늘을 열심히 삽시다 2020-04-05
<옛날 어느 조그만 나라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작은 나라이기에 종종 침략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이웃 나라의 침략 받았습니다. 왕은 전쟁을 앞두고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미래를 볼 수 있다면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텐데...........' 불안한 왕은 전국을 샅샅이 뒤져 제일 유명한 예언자를 찾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며칠 만에 신하들이 한 예언자를 찾아 왕 앞에 세웠습니다. 왕은 예언자에게 이번 전쟁의 승패에 대하여 말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왕에게 미래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이시여! 만약 내가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면 왕은 방심할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서 진다고 하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싸우지도 않고 전쟁에서 질 것입니다. 왕이시여! 내가 알려드릴 수 있는 미래는 앞으로 분명 전쟁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나가면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왕은 전쟁에서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켰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렘1:5),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언자는 구약성경에서 “나비(????)”라고 하는데 그 뜻은“말하도록 부름 받은 자”입니다. 즉,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는 사람의 앞날의 길흉(吉凶)을 말해주고 복채를 받는 세속의 점쟁이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죄를 짓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여 회개를 촉구하며, 죄의 결과 미래사회는 멸망하니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왕이 예언자를 찾아와 앞날을 말해 달라는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앞날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앞날을 미리 안다면 운명론에 빠져 자신의 삶에 열심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이 있을 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의 관심보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254그 때가 오면 2020-03-29
경기도 유형 문화제 1호로 지정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후기 목조건물로 1624년(인조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수어장대는 1층 누각이었던 서장대(西將臺)를 영조 27년 1751년 2층으로 증축하고 이름을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바꾸어 부른 것입니다. 장대(將臺)란 조선시대 장군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하던 높은 곳을 말합니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는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마지막까지 싸운 곳입니다. 당시 인조는 청나라 13만 대군과 싸우다 45일 만에 잠실의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을 합니다. 청나라는 인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왕자들을 볼모로 잡아갑니다. 이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잡혀갔던 왕자 봉림대군은 8년 후 돌아와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됩니다. 1649년 왕위에 오른 효종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고 군사 강화 정책을 펼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남산산성에 있던 서장대(西將臺)를 증축하고 이름을 바꾸어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부르고 수어장대 안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었던 수모와 그의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벌 정책을 계획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조가 붙인 이름입니다. 영조의 무망(無忘)의 정신은 비극의 상황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3월1일부터 집단 감염의 위험이 있기에 예배 모임을 하지 못하고 방송으로 드립니다. 예배는 모임에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예배는 성도의 교제와 권면 그리고 성찬을 할 수 없는 예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19는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교회에 모여 예배할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예배를 간절히 사모했던 오늘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리 모두 모이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53잡초(雜草) 2020-03-22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온실의 환경에 익숙해 있기에 온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름철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운겨울 보온을 해주는 온실의 보호막이 있기에 화초는 살 수 있습니다. 화초는 온실의 보호막이 없어지면 시들해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하지만 잡초(雜草)는 자라가는 환경을 누가 마련해주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잡초입니다.
사전에서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설명합니다. 잡초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번식해갑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잡초는 뽑고 뽑아도 계속해서 자라기에 골치를 아파합니다. 최근에는 잡초를 제거하려고 아예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버립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용혜원 시인은 <잡초>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아무도 반기지 않아도 / 서성거리기 보다는 /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하기에 /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 생명의 줄을 이어갑니다. / 이름 모를 꽃이 피어도 / 누구든 사랑해 주면/ 한동안의 행복도 가져보지만 / 떠가는 구름이 / 한줄기 비라도 / 쏟아 놓으면 / 그보다 더한 행복이 / 어디에 있겠습니까? / 버려진 땅에서도 / 진한 목숨만은 / 어찌할 수 없어 / 언제든 오신다면 / 쉬어갈 자리는 /비워 놓겠습니다. >

잡초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꿋꿋함과,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걷어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환경을 탓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80평생 인생 여정 길을 가는 동안 온실처럼 언제나 평안하고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비바람이 부는 사나운 날씨와 같은 시련과 역경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길은 어떠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잡초처럼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욥24:16)
252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2020-03-15
경기도 광명시에 가면 기형도 시인의 문학관이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광명시 소하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광명시에 그이 문학관이 세워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일찍 쓰러지면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려고 애쓰는 어머니의 모습과 공장에서 일을 하던 누나의 죽음이 그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난과 누나의 죽음이 시인으로서 깊이 생각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연세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기자로 활동을 하면서 현대문학지 등에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1989년 28살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작품 중에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입니다. 시의 전체 흐름보다 첫 구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 구름은 나부낀다. /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 담아선 안 된다. /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삶을 사는 나에게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고 늘 마음에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그냥 내 몸에서 머물다 가라고 그렇게 허용하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살겠다고 하는 시인의 노래입니다. 그 불안의 짐짝들에게 외는 마지막 말은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입니다.
251유비무환(有備無患) 2020-03-08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민속마을입니다.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하회마을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다녀간 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하회마을은 류씨의 집성촌으로 하천이 회돌아 가는 곳이라 하여 하회마을이라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곳에 조선 중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선생의 생가 있습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1591년 우의정으로 이조판서를 겸하고 이어 좌의정에 올랐으며, 왜란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을 의주 목사로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습니다. 1592년 4월 일본이 침입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며 임진왜란 중에 왜군과 맞싸웠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전쟁에 대하여 너무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 전역은 전쟁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가까스로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 조정에서는 전쟁의 책임론이 대두되었습니다. 결국 서애 류성룡 선생은 반대파의 탄핵으로 고향으로 낙향하였습니다. 고향 하회마을에 돌아 온 류성룡 선생은 자신이 겪은 임진왜란에 대하여 <징비록>이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징비 懲毖>라는 말은 《시경》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대일 외교 관계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긴 책입니다.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는 국보 제132호의 책입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평양까지 피난 간 것은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을 미리 대비하여 힘을 기르지 못한 까닭입니다. 미리 준비하여 대비했다면 전쟁이 일어나도 어려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나라 전체가 위급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지역사회 감염이 되어 어떻게 방역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의 교훈인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50주일예배 2020-03-01
우리가 지키는 규칙의 <예배 모범>의 “제1장에 주일을 거룩히 지킬 것”이라는 구체적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6개 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니 이날을 거룩히 지키라 (2) 종일 지키며 육체적 쾌락과 세상의 염려에서 벗어나 온 종일 거룩히 지키라 (3) 먹을 것까지 준비하여 온 가족이 예배하라 (4) 서로 기도하며 공동예배를 준비하라 (5) 함께 모여 예배하라 (6) 공식 예배후 남은 시간을 경건하게 보내라 ---- 이처럼 주일예배는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으로 국가가 재난을 선포하고 보건 당국이 대중 집회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에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영상예배로 드리는 엄중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더구나 반사회적 집단인 <신천지>는 지난 16일 대구 집회에 감염자들이 대거 참석하므로 대구, 경북은 감염지역이 되었고 국가는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신천지 이단의 특징인 거짓말과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는 폐쇄적 상황이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합니다. 특히 신분을 속이고 지역 교회에 침투하여 활동하는 <추수꾼>들이 있기에 교회의 주일예배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참된교회 담임목사로 “교회당 출입을 잠정 폐쇄 합니다. 모든 예배는 방송으로 드립니다”라는 결정을 하기까지 너무나 어렵고 괴로웠습니다. 한국 교회는 1885년 공식 선교 이후 일제 강점기의 모진 고문과 핍박, 6.25 전쟁의 위기에도 공식적으로 주일예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결정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의 건강과 지역주민의 건강을 담보하며 집회를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중단이 아닙니다. 1부 9:00 예배는 교역자 중심으로 드립니다. 꼭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결정된 일입니다.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어두운 터널이 지나면 밝고 희망찬 길이 나올 것입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어야 매화꽃이 핍니다. 특히 이번 기회에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 예배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3:6)
249고난이 주는 유익 2020-02-23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바로크 시대의 네델란드의 기독교 화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하여 부모님이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 밑에서 3년간 그림 공부를 시킵니다. 그 후에도 큰 도시 암스테르담에 가서 그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632년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인〈튈프 박사의 해부〉를 그려 주므로 초상화가로서 유명해집니다. 그러나 야경꾼들이 부탁한 초상화를 <야경>이라 작품으로 그려 주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당시 화가들은 귀족들이 요구하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를 그려 주므로 돈을 벌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에게는 <야경>이후 사람들이 초상화를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렘브란트는 가난하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성경속의 사건을 그리는 신앙의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돌아온 탕자>, <갈릴리 풍랑의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이삭을 드림>, <십자가의 예수>, <야곱의 축복기도>, <삼손>등 명작을 남기데 됩니다. 렘브란트는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평범한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렘브란트는 어쩌면 그렇게 가난하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기에 신앙적인 명작을 남겼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인생의 여정 길에 고난을 당합니다. 아무리 평범한 삶을 살다간 사람일지라도 한 두 번은 고난의 순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 고난은 반드시 나쁜 것만 아닙니다. 어느 때는 고난이 우리에게 큰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가난과 외로움이 명작을 남기듯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우리의 삶의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이 가져다주는 은혜를 깨달아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248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2020-02-16
1952년 6.25 전쟁이 한참이던 겨울 어느 새벽에 서울 거리를 거닐던 미국인 선교사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은 길거리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치우는 인부들의 모습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전쟁의 고아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서울 거리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가운데 그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미국에 돌아간 스완슨 목사님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한국의 어린이들을 돕자고 호소합니다. 그 후 40년 동안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컴패션(Compassion)운동을 전개하여 미국 크리스찬의 후원으로 10만명의 한국의 전쟁고아와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끼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스완슨 목사님의 컴패션 운동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어린이에게 <꿈을 잃은 어린이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희망을> 전하는 구호단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후원국이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프랑스, 뉴질랜드, 이탈리아, 스위스, 한국등 10개국이며 수혜국은 세계 26개 나라의 어린이 110만 명에게 5100개의 지역교회를 통하여 먹을 것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국은 지난 2003년에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되었습니다. 컴패션의 비전은 빈곤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세계의 어린이들을 영적, 정서적, 사회적, 육체적, 그리고 감성적 빈곤으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긍극적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함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운영철학이 분명합니다. 예수님 중심(Christ-centered), 어린이 대상( Child-focused), 지역교회중심(Church-based) 재정의 투명성(Committed to Integrity)을 단체의 원칙으로 합니다.
스완슨 선교사 한 사람의 시작이 이제는 세계 110만명의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컴패션 운동을 보면서 스완슨 선교사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큰 역사를 이루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컴패션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계속적인 기도와 물질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1명 식사+교육비는 월 4만5천원입니다.
247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2020-02-09
몇 번 소개했던 이채 시인의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라는 시를 주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채 시인은 정신여고, 한성대를 졸업하고 시를 써서 2006년 세계문인협회 공로상, 제3회 조지훈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시인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를 감상하며 우리의 좁은 마음을 좀 더 넉넉하게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밉게 보면 /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요즈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우리 모두가 우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고하는 의료진들을 위한 기도와 갑작스러운 감염으로 생활에 불편과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하는 분들을 위한 기도뿐입니다.
모두가 우울해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매일 매일을 희망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염병으로 불안해하는 이웃에게 밝은 내일의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