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 No제목 | 등록일 |
|---|---|
| 216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 2019-06-23 |
| 매년 1월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세계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립니다. 일명 다보스 포럼이라고 부릅니다. 이 모임에는 세계의 정치인, 기업인,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등이 모여 세계 경제에 대해 토론하며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국제민간회의입니다. 2019년은 제49회로 1월 22-25일에 <세계화 4.0 :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지배구조 구축>이란 주제로 열렸습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세계 정치 지도자들, 40여개 국제기구 대표, 빌 게이츠 등 경제인 3000여 명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과 당면한 국제 경제 지배구조에 대하여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다보스 포럼은 세계의 미래 경제는 비관적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보스 포럼의 결론이 아니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 현실은 어렵습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목회자로 묵상하면서 느헤미야 시대를 생각해봅니다. 느헤미야 시대는 바벨론 포로에서 B.C 444년 제3차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을 증축할 때입니다. 당시 상황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열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방해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52일 만에 성벽 증축을 완공합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하는 영적 부흥운동을 전개합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다보스포럼 보고서와 같이 비관적이며, 경제는 무너졌고, 영적으로 타락한 상황입니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느헤미야 시대처럼 하나님께 돌아오는 영적 부흥운동이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요엘2:12)하셨기에 우리는 7월1일부터 일천일 부흥운동을 시작합니다. (1) 새벽기도회, (2) 매일 말씀 묵상(Q.T), (3) 모든 집회에 참석하는 예배회복 운동을 전개하려합니다. 우리 모두 일천일 영성회복을 위한 부흥운동에 함께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하나님! 우리는 기적을 기대합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의 찬양되기를 소망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
|
| 215작은 헌신이 기적을 가져옵니다 | 2019-06-16 |
| 주간에 필리핀에서 선교하는 황태연 선교사와 연락을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기도하며 건축한 필리핀 장로교회 북부노회 선교센터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어준 선교센터가 완공되어 북부노회 목회자들이 모여 신학공부를 하며 목회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된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며 선교센터가 계속 잘 활용되도록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진행하는 <북부노회 인재양성 프로젝트>는 7명의 대학생들에게 학비와 활동비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지역 교회의 학생 중 7명을 선발하여 1년 100만원씩 대학졸업 때까지 지원합니다. 금년에 3명이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3명을 새로 선발합니다. 제1호 졸업생은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사가 되어 오지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북부노회 목회자 신학교육을 위한 선교센터의 활용을 위해, (2) 북부노회 인재양성프로그램이 계속 지원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문득 초기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었던 평안북도 선천지역의 신성(信聖)학교가 생각이 납니다. 신성학교는 평안북도 선천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휘트모어(N. C. Whittemore) 선교사와 동사목사(同事牧師)였던 양전백(1907년 제1회 목사안수)목사님이 1906년 세운 중등과정의 기독교 학교입니다. 휘트모어 선교사님을 뒤를 이어 매큔(George Shannon McCune) 선교사님이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할 때 미국의 휴 오닐(Hugh O'Neill) 여사가 죽은 아들의 이름으로 1만5천 달러의 장학금을 보내 왔습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 신축 선교비가 1만 달러였으니 1만5천 달러는 큰 장학금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세우고 신앙으로 가르친 신성학교 출신들을 보면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 서울대 총장 장리욱 박사, 경북대 초대총장 고병간 박사, 의사 장기려 박사, 차병원의 차경섭 박사,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 총신의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새문안교회 차재명 목사, 영등포교회 방지일 목사, 인성학원의 이기혁 목사 등 너무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우리의 필리핀 북부노회 인재양성프로젝트는 작게 시작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크게 역사할 줄 믿습니다. 자긍심을 가지고 더욱 열심을 냅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
|
| 214무한 경쟁 사회 | 2019-06-09 |
| 미국과 중국은 각각 전 세계 경제 규모 1위와 2위입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서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무역전쟁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제품이 미국에 들어올 때 관세를 25%까지 물려 중국 상품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도 지지 않고 중국에 들어오는 미국제품에 보복성 관세를 물려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하는 이유는 지난 수 십 년간 미국은 무역적자를, 중국은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므로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자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무역적자를 조금 면해보겠다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트럼프가 서로 피해를 보는 무역전쟁을 할까? 이는 반도체, 항공우주 산업, 에너지 산업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의 기술력이 중국이 미국을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은 중국은 산업생산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중앙정부가 전략적 중요기업에 부당하게 보조금을 지급하여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자국의 기업을 세계 1위로 만들어 경쟁회사들을 파산시킨다는 것입니다. 또한 첨단 산업의 신기술을 몰래 빼가고 준비된 인력을 데려간다고 트럼프가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 사건입니다. 삼성이 1983년에 반도체 메모리 64K D램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미 일본의 NEC와 후지쓰, 미국의 인텔 회사는 256K D램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진 기술력을 선점한 회사들과 경쟁하여 1위를 하지 못하면 반도체 기업은 망하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입니다. 이러한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여 삼성은 40년 만에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력이 세계 1위가 되었고 시장 점유율도 1위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기술력이 떨어져 세계 1위를 하지 못하면 기업은 경쟁에서 뒤처지고 결국은 파산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은 기술로 경쟁하는 산업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1등을 위한 무한 경쟁 시대입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사회에 살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로움이 사라지고 칼날처럼 날카로워 서로에게 비수를 꼽는 전투적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계는 무한경쟁의 전투의 현실이지만 우리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말하는 그리스도인 되어야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4) |
|
| 213제주 이렇게 다녀왔습니다 | 2019-06-02 |
| 지난 주간 금요일에 제2여전도회와 권사회에서 제주도 선교지 탐방을 했습니다. 아침 6시 55분에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제주에 오전 8시 도착하니 거리에는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19명이 예약한 식당에서 성게국과 해물탕으로 아침을 먹고 스타렉스 2대에 나누어 타고 모슬포로 향했습니다. 모슬포에서 오전 11시 배를 타고 마라도로 향했습니다. 저는 마라도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주보 글을 쓰려고 카페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시간에 쫓기면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라도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자장면도 먹지 못하고 일찍 나온다는 것입니다. 글을 다 쓰지 못하고 저녁에 다시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점심으로 자장면 대신으로 갈치조림을 먹고 조남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모슬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조남수 목사님은 제주4.3 사건 때 정부군과 무장대 사이를 오가며 화해를 시도하여 3000여명의 양민을 살린 목사님입니다.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민중이 봉기하게 된 사건입니다. 좌익과 우익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세계인이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에 이처럼 비극의 역사가 있습니다. 마음 한편에 슬픈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봅니다. 좀 더 하나님 앞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려고 다짐해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살려합니다. 더욱 주를 위한 삶을 살려고 제주에서 우리 모두 다짐해봅니다. 오후에는 4.3 사건 때 순교하신 이도종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대정교회와 제주에 유배되었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저녁으로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송병희 목사님이 개척하려는 카페교회 터와 고아들을 위한 국제학교의 터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김경태 목사님을 만나 현장에서 기도했습니다. 내일은 이기풍 목사님의 선교기념관을 방문하려합니다. 남은 내일의 일정이 은혜롭게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참된 교회는 6월에 선교에 집중하며 세계선교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다짐하려합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며 선교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
|
| 212제주 선교지 탐방 | 2019-05-26 |
| 최초로 제주도 선교를 하신 이기풍 목사님은 1865년 평양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웠고 유교 정신과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평양에 들어와 전도하는 마펫 선교사에게 돌팔매로 턱에 상처를 입힐 정도로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스왈렌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후 1903년 평양신학교를 최연소자로 입학하여 1907년 제1회 졸업생으로 7명이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선교사로 제주도에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제주도로 갈 때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44일 만에 제주도에 도착합니다. 당시 제주도에는 이미 육지에서 복음을 받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봉호는 세브란스에서 치료를 받다가 에비슨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믿고 고향인 애월읍 금성리에 와서 가족이 모여 예배드리는 자생적 가정교회로 모였습니다. 당시 제주도 섬사람들의 샤머니즘이 강했고 외지인에게 마음을 열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기도하여 열심히 사람을 만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큰 홍수가 났고, 여기에 한 여인이 휩쓸리게 되었는데 이기풍 목사님은 대동강을 건너던 수영 실력을 발휘하여 여인을 살려냈습니다. 이 사건은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병든자를 고치 일과 귀신들인 사람을 고쳐주는 큰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되었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 선교는 5년 후 1912년에 8개 교회와 4백여 명의 성도로 부흥되었습니다. 제주도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이기풍 목사님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간에 제2여전회와 권사회에서 이기풍 목사님의 제주도 선교현장과 4.3 사건 때 순교하신 이도정 목사님의 대정교회, 4.3 사건 때 목숨을 걸고 토벌대와 무장대 사이에 화해자로 나서 3000여명을 살린 한국의 쉰들러로 불리는 조남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모슬포교회를 방문합니다. 선교지를 탐방하면서 선교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
| 211스승이 위대한 제자를 만든다. | 2019-05-19 |
|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몇 년 전 스승의 주일에 실었던 글을 한 번 강조합니다. 중국의 초나라 때 황제였던 회왕이 항우에게 살해당해 강물에 던져진 것을 추모하는 글인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조선 초기 학자이며 선비였습니다. 조의제문은 중국의 회왕을 추모하는 글이지만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사약을 받아 그의 시신이 영월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을 추모하는 글로 해석되어 연산군 때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김종직은 어린 시절부터 사서오경과 역사서 등을 골고루 배워 학문이 많은 선비였습니다. 김종직의 학문은 절의를 중요시하는 도학사상이 중심사상입니다. 김종직이 이렇게 학문이 많은 사람으로 유명한 학자가 된 것은 그에게 좋은 스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직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친 스승은 그의 아버지 김숙자(金叔滋,1389-1456)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숙자는 고려말기 학자였던 정몽주에게 학문을 배웠습니다. 김종직의 학문의 계보를 요약하면 정몽주 → 김숙자 → 김종직 → 김굉필 → 조광조 → 이퇴계 선생으로 이어져집니다. 김종직은 조선시대의 유림(儒林)이며 사림파(士林派)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조선시대의 사림파의 학자를 논할 때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퇴계 선생을 동방4현이라고 부릅니다. 동방4현으로 알려진 선비들의 학문의 근원을 보면 결국 김종직으로 이어지며 김종직의 학문은 그의 아버지 김숙자로 이어지고 올라가면 정몽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위대한 학자에게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구한 말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올 1902년까지 미국의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이 14명이 들어와 활동을 했습니다. 시카고의 작은 신학교 출신의 선교사들이 이처럼 한국에 많이 온 것은 당시 맥코믹 신학교에 크레이그(Craig)박사가 동양 선교를 부르짖었고 특히 한국을 그들에게 소개함으로 선교에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위대한 스승은 위대한 인물 만들기 때문입니다. |
|
| 210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 2019-05-12 |
|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절대 아프지 않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늦게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 나셔서 처음부터 잠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좋아하시는 음식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짧은 파마머리만 좋아하신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 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 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시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배가 불러와 비싼 음식 앞에서 빨리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양복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안주머니에 늘 돈이 넉넉히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 생활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의 자식이었을 때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랬듯, 나도 이제 당신처럼 내 자식의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제서야 알아차린 당신의 가슴과 그 눈물을 가슴에 담고 당신의 사랑이 무척 그리운 이 시간에 하늘나라에서 지켜보시는 고마운 두 분께 소리쳐 외쳐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 - 정용철의 "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 |
|
| 209보고 배우는 자녀들 | 2019-05-05 |
|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河回)마을은 1999년 4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 간 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하회는 하천이 휘돌아가는 곳이라 하여 하회마을이라고 부릅니다. 하회마을은 600년간 이어오는 풍산 류씨의 집성촌입니다. 특히 조선 중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1542-1607)선생의 생가가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1591년 우의정으로 이조판서를 겸했고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여 권율(權慄)과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선조에게 천거하여 전쟁에 대비했습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 일어났을 때 병조판서로 국방을 총괄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쟁에 대한 책임에 대하여 반대파의 탄핵으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 하회마을로 낙향하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이 겪은 일들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하였습니다. <징비록>은 시경에 나오는 구절<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에서 따왔으며,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상세히 기록하여 후손에게 교훈을 남긴 수기형식의 책입니다. 징비록은 그 가치가 높이 평가 되어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징비록의 교훈은 유비무환(有備無患-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 될 것이 없음)입니다. 생각해보면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평양까지 피난을 간 것은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을 미리 대비하여 힘을 기르지 못한 까닭입니다.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전쟁을 미리 대비 했다면 일본의 침략에도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500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 풍산 류씨편>이라는 책에서 징비록을 기록한 류성룡 선생의 글을 쓰는 선비정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명문가문에게 배운다, 9대째 공직은 이유가 있다, 평생 책 읽는 아이로 만들어라” 풍산 류씨의 가문은 아버지가 자녀들 앞에서 평생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자녀들이 책을 읽게 되었고 9대째 선비로 관직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평상시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자녀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합니다. 징비록을 기록한 류성룡 선생의 책 읽는 모습이 명문 가문을 이룬 것처럼,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부모의 신앙생활을 자녀들이 보고 배우는 것을 깨달아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 208아침에 눈을 뜨면 | 2019-04-28 |
| 얼마 전 소개했던 박목월 선생의 <아침에 눈을 뜨면>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시의 내용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삶 속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하루를 출발합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다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약한 인간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먹은 마음이 사흘 밖에 가지 않는다는 약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새해 아침이 되면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겠다, 금연, 금주를 하겠다,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 새벽기도를 하겠다, 전도를 하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크게 하지만, 3일도 못가 다짐했던 마음이 흐트러지고 실천을 하지 못한 약한 모습을 작심삼일이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 류성룡 선생이 도관찰사로 있을 때 하루는 행정 문서를 전달하는 역리를 불러 관할 고을에 발송할 공문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후 문서의 내용을 고쳐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서전달 역리를 불러 다시 고쳐 공문을 보내려하자 역리는 3일전 공문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왜 아직 발송하지 않았느냐고 담당 역리를 꾸짖으니 역리가 하는 말이 “언제나 다시 고치는 문서, 이번에는 기다렸다가 수정된 공문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 일에 류성룡 선생은 크게 깨달아 공문을 보낼 때 몇 번이고 다시 보고 공문을 검토 한 후 보냈다고 합니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서> 착한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작심삼일 되지 않고 꾸준하게 언제나 한결 같은 실천을 하려고 오늘도 마음에 다짐을 합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 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제게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착한 일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
| 207잔인한 4월, 부활의 희망 | 2019-04-21 |
|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Eliot)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1922년 작품)>의 첫머리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4월’(April is the cruelest month)로 표현되면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 T.S 엘리엇(Eliot)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逆說)적인 표현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1922년)>를 쓸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이 없는 황무지 같은데 눈치 없는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대지에 비를 뿌리어 꽃을 피우고 희망을 속삭이니 잔인한 4월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희망의 계절 4월은 대지에 꽃을 피우고 새들은 봄을 노래하니, 황무지 같은 희망 없는 시대의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움트는 봄, 파릇파릇 새싹이 무거운 흙덩이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봄입니다. 진달래, 개나라 꽃소식이 들리는 희망의 봄입니다. 하지만 2019년 우리의 봄은 매일 반복되는 재난문자로 잔인한 4월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산불, 미세먼지 등 <긴급재난문자>가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산불재난의 쓰레기 처리도 안 되었는데, 아픈 상처도 아물지 않았는데 타다 남은 모퉁이에 소절 없이 푸릇푸릇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죽은 땅에 라일락을 키워내듯 산불로 잿더미가 된 대지에 실낱같은 생명력 하나로 뚫고 나오는 새싹을 보면서 우리는 잔인한 4월에도 희망을 품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사탄의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다시 사신 날입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절망할 때 주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황무지의 대지에 비가 내리고 새싹이 나오는 잔인한 4월에 주님은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잔인한 4월, 희망의 부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