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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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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명령에 순종하는 삶 2017-04-30

임진왜란은 1592년 음력 413일에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는 왜군의 침략에 대비를 하지 못했으므로 전쟁이 시작 된지 20여일 만에 선조는 한양 성을 버리고 개성을 거처 평양과 의주로 피난을 갑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20만 명의 훈련된 군사와 조총을 앞세워 침략을 했기에 승승장구 할 수 있었습니다. 왜군은 이미 자신들의 국내 사정으로 많은 전쟁의 경험이 있었지만 조선은 오랜 기간 평화의 시대였기에 군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실전 경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 남해를 지키는 이순신 장군은 옥포 해전을 시작으로 2323승의 승리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이순신 장군이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함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많은 병사들이 탈영하는 사태도 빈번하였습니다. 일례로 왜군이 침략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의 부하 포졸인 황옥현이 탈영을 감행하다가 이순신 장군에게 잡혀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그를 참수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군령을 중요시한 한 것은 전쟁에 임한 함대는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 하게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함대가 전투에 임할 때 깃발과 북소리의 신호에 따라 진격도하고 후퇴도 하며 또한 신호에 따라 포를 쏘았습니다. 만약 명령이 있지 않은 때 포를 쏘면 포탄이 아군의 배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에 장군의 명령에 따라 전투를 해야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전진도 후퇴도 포를 쏘는 것도 깃발의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펼친 학익진도 장군의 명령인 깃발에 따라 하나 같이 움직였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115지금은 기도할 때 2017-04-23

미국은 1963년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법으로 금한 후 학교에서 공식적인 기도모임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미국사회는 범죄가 늘어났고 폭력과 성적 타락의 모습으로 사회가 변해갔습니다. 이러한 미국사회에 새로운 각성운동은 여러 차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 가운데 1990년부터 시작된 베니 프러핏(Benny Proffitt)의 국기 계양대 기도회(flag-poles prayer)입니다. 이는 각 학교의 국기 계양대에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모여 나라를 위한 기도회입니다. 처음에는 3-4명씩 모이던 모임이 300명이상 모이는 기도회로 발전했습니다. 이들은 손목밴드에 WWJD(What would Jesus do?-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새겨 착용했고 티셔츠에 (Upon this rock I will buid my church) "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문구를 새겨 입고 다녔습니다. 베니 프러핏은 "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미국이 변화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학교의 교육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때 새로운 변화의 미국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곳에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방과후 기도모임>은 분명 부흥운동의 한 방법으로 미국사회에 새로운 영적 각성 운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2000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중요한 시대별로 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부흥운동의 주체세력을 보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선교현장에서 애타게 원하는 것은 물질의 도움보다 기도의 후원을 더욱 원합니다. 선교사들의 최근의 보고를 보면 한국 교회가 옛날처럼 선교현장을 위한 기도가 적다는 것입니다. 기도후원은 곳 영적인 전투를 하는 선교사들에게 큰 힘을 줍니다. 기도는 시대적 부흥운동의 모체가 되며 선교현장의 기적을 가져오는 큰 역사의 원동력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도 할 때입니다. 나라의 안보문제, 지도자 대통령을 뽑는 선거,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우리 참된 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지역사회의 복음증거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7-8) 

114위그노(Huguenot) 2017-04-16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루이 14(Louis XIV, 1638.-1715.)에 대하여 들어 봤을 것입니다. 루이14세는  " 짐이 곧 국가다 (L’tat, c’est moi) "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왕입니다. 그는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하여 자신을 지상에서의 신의 대행자라 하여 왕권신수설을 강력하게 믿던 왕입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신교와 구교로 나누어져 있던 프랑스 교회를 하나로 통합하려했습니다. 결국<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종교>라고 정책을 폅으로 프랑스에서 개신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의 치열한 위그노전쟁으로 얻어낸 화해의 낭뜨칙령을 하루 아침에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인 위그노들은 고국에서의 핍박을 피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의 각 지역으로 망명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개신교 망명자들을 위그노라고합니다.
본래 <위그노 Huguenot>라는 말은 <동맹 공동체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신앙 공동체의 프랑스 사람들 부르는 말입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당시 제철,염료,화학의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유럽으로 망명을 시작하자 영국의 찰스 2세는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특별 이민법을 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그들의 산업기술을 발전시켜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모체가 됩니다. 또한 독일은 3만명 위그노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술 대국을 이루게됩니다. 영국과 독일뿐 아니라. 18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화약과 총포의 기술을 보급시켜 미국의 서부개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미국을 1620년 청교도들이 건너가 개척한 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580년대에 이미 미국에 정착한 산업기술의 위그노들이 있었습니다.
위그노는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유럽의 각 나라로 흩어진 유랑자이며 신대륙으로 건너간 개척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세계 어느 곳엘 가도 그들은 최고의 실력으로 시대를 새롭게 개척한 개척자들입니다.
참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위그노의 신앙을 이어받은 칼빈주의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최고의 신앙과 최고의 실력으로 이 시대를 새롭게 개척하는 위그노가 됩시다

113믿음으로 헌신하는 일꾼 2017-04-09

교회에서 일꾼을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良心)에 믿음의 비밀(秘密)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딤전3:8-13)" 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에 처음 집사를 뽑을 때 집사의 자격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으로 사도들이 정했습니다. 교회에서의 일꾼을 선출할 때 세상조건 보다는 믿음으로 헌신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속한 장로교단에서 총회장을 3번이나 지내신 이자익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남해가 고향이었는데 12살 때 혼자 고향을 떠나 전북 금산에 들어와 조덕삼 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옛날 머슴은 주인집에 속한 종과 같은 천민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인집에 속해서 자유가 없는 머슴살이를 하던중 19051011일 주인 조덕삼 씨와 함께 예수를 믿고 같은 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 후 1909년 공교롭게도 주인 조덕삼 씨와 함께 장로 후보가 되어 투표를 했는데 주인은 떨어지고 머슴이 장로로 선출되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부자이며 지역 유지인 조덕삼 씨가 장로로 피택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부자 조덕삼이 아니라 그 집 머슴인 이자익을 장로로 피택했습니다. 세상 조건은 조덕삼 씨가 더 나았으나 금산교회는 믿음으로 주를 위하여 헌신하는 이자익을 장로로 선출한 것입니다. 이자익 장로는 훗날 평양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안수를 받습니다. 장로 피택에 떨어졌던 조덕삼씨 또한 후에 장로가 됩니다. 그런데 조덕삼 장로는 자기집 머슴이었던 이자익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함께 교회를 부흥시켰고 교단 총회장을 3번씩이나 할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부자 조덕삼 보다는 주를 위하여 헌신하는 머슴 이자익을 선출한 금산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자기 집 머슴을 교회의 장로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섬긴 조덕삼 장로의 신앙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믿음으로 헌신하는 분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뽑아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2누구를 일꾼으로 세울 것인가? 2017-04-02

514일에는 우리교회의 새로운 일꾼으로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선출하려합니다. 어떤 분을 일꾼으로 선출해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장로의 직분을 보면 성경에서 가르치기를(딤전3:1-7)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 ”라고 나와 있습니다. 장로를 세우는 일은 교단 헌법에 보면 만35세 이상된 남자중 입교인으로 흠없이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으며 딤전3:1-7절에 해당하는 자로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맡은 직무는 1)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한다. 2. 도리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한다(성도들의 신앙을 살펴 이단이나 도덕적으로 죄악을 범하는 자를 권면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당회에 보고한다 3. 교우를 심방하되 위로,교훈,간호한다(병든자. 상을 당한자, 어린이를 가르치고 간호하는 일에 평신도보다 의무와 직무상 책임이 중하다) 4.교인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한다 5. 특별히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한다. 이러한 직무를 이행하기 위한 직분이 장로의 직분입니다.

우리교회의 일꾼인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세울 때 몇가지 원칙을 정한다면 1)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성경읽기와 기도생활 2)주일성수와 교회집회참석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예배하는 삶) 3)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자녀의 신앙교육) 4.온전한 십일조 생활(감사하는 삶) 5.교회를 사랑하며 성도를 위로 하는 사람(부흥 꿈꾸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세우고 싶습니다. 물론 근본의 자격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긴 민주적 투표방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514일까지 기도하시는 마음으로 준비하시고 선출해주시기 바랍니다.

111기도의 위대함 2017-03-26

한국기독교출판문화 최우상을 받았고, 10만 독자가 눈물로 읽었으며, 1000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위대함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간증한 <하나님의 산 역사 - 갈대상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한동대학 총장 김영길 박사의 부인인 김영애 권사님이 한동대학을 기도로 일구어 낸 과정을 진솔하게 간증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김영애 권사님은 3500년 전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모세의 부모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어린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운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한동대학을 세상에 띄웠고, 모세의 갈대상자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한동대학을 인도해왔음을 눈물로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의 위대한 승리를 보게됩니다. 오늘의 한동대학이 있기까지는 교수와 학생들의 기도가 있었고 또한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심과 중보 기도의 결실임을 김영애 권사는 <갈대상자>의 책 속에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주변에 기도로 이루어 가는 대학이 어디 한동대학 뿐이겠습니까? 지금도 대학과 교회 그리고 기업과 병원들을 기도로 이루어 가고 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어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기었던 모세의 갈대상자처럼 우리의 삶을 맡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일강에 띄웠던 갈대상자처럼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을 믿고 거친 세상에 띄워 봅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한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합니까?” “실망하기는 아직 때가 이릅니다. 왜야하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이런 문구를 묵상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도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 중에 마음에 절망을 하고 있다면 그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라 고 당부합니다. 2017년 새 봄, 우리 모두 기도로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0포기할 수 없는 전도자의 삶 2017-03-19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에 세운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남부의 항구도시로 해상 교통의 요충지(要衝地)에 자리 잡은 부요한 상업도시입니다. 무역항이 있는 항구도시이기에 많은 외국인들이 왕래했고 그들을 상대로 매춘과 향락의 있는 타락의 도시였습니다. 헬라어 코린티아조마이(Κορινθι?ζομαι)고린도인처럼 행동한다는 말인데 뜻은 음란한 행동을 한다” “매춘을 한다는 뜻으로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신전이 있었으며 1천명이 넘는 무녀(거룩한 창녀-성창聖娼)들이 신에게 돈을 바치기 위하여 몸을 파는 매춘을 일삼았습니다. 고대로부터 연극에 등장하는 고린도 사람들은 매춘과 술주정뱅이로 묘사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 고린도입니다.

이러한 타락의 도시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바울도 이곳에서 전도하다가 너무나 어려워 포기하려고 했던 곳입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바울은 그의 옷에서 먼지를 털고 "여러분이 멸망을 받으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겠습니다." (18:6)까지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하셨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유대인의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고 가정이 세례를 받는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회당 장까지 예수를 믿자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핍박을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 총독에게 끌고 가 고소할 정도로 심하게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계속되는 핍박 속에도 복음 전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큰 사명을 가지고 그곳에서 16개월 동안 전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담대하게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주님이 주시는 확실한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말라 침묵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18:10)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도 반대와 비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의 가는 길을 포기하거나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야하면 우리에게 바울과 함께 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109전도와 기적 2017-03-12

1897년 황해도 안악의 중골 마을에 윤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윤진사 가정에는 고민이 있었는데 15살 되는 그의 딸이 괴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윤진사 집에 언더우드 선교사를 돕고 있던 김채봉이라는 전도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김채봉은 황해도 안악에 선교사들과 전도하러왔다가 윤진사 딸이 중병으로 누워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당시 윤진사의 딸인 윤함애는 어떤 질병인지도 모르고 고통스럽게 3년간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녀의 질병 때문에 사람들은 윤진사 댁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채봉은 복음을 전할 열정으로 그녀에게 병 문환을 오게 된 것입니다.

김채봉은 병석에 누워 있는 윤진사 딸에게 예수님에 대한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병석에 누워있던 그녀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하던 희한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몇 일이 지나면서 그녀는 복음을 들으면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마음에 확신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채봉은 그녀에게 구원의 복음 들려주었고 그리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전도인이 왔다간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밤중에 그녀의 병석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녀는 그날 밤에 예수님을 만났고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년 동안 누워 있던 환자가 일어나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온 집안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윤진사 딸이 기도로 병을 고쳤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황해도 안악에 퍼졌습니다. 그녀는 그 후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괴질을 치료받은 윤진사 댁 딸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안악골을 떠나 평양으로 가서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훗날 안악골의 윤진사댁 딸 윤함애는 25살에 이기풍 목사님과 결혼을 했고 이기풍 목사님과 함께 제주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 기적을 베푸십니다. 2017년 복음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전도자가 되어 기적을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 (14:23) 

108희망의 새 봄, 새로운 도전 2017-03-05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USC)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가 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새내기 직장인이 되어 아마추어 사회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여려가지 마음의 갈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에세이 형태의 글입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새내기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모든 것이 자신이 꿈꾸어 왔던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갈등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주는 글입니다. 내용 중에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자꾸만 엄마를 닮아가” “아빠처럼 되기 싫었는데 그렇게 되기도 쉽지가 않아라는 것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직장인이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불안한 청년들에게 그렇게 천 번을 흔들리며 사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젊은이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매일의 삶이 갈등의 연속이며 고난의 인생길인 것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다보면 흔들리는 일도 있고 가다보면 후회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하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후회의 연속이며 앞을 보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지라도 인생은 앞으로 걸어가야 하며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면 갈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20173월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이 절망의 극한 상황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새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40:31)

107희망 2017-02-26

<희망>의 제목으로 여러 차례 글을 소개했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망>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할 단어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하여 외면한 독일의 몰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과 여러 가지 면에서 입장을 달리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속에서 외친 <희망>이라는 말은 절망하는 상황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한 번 힘을 주는 말입니다. 몰트만은 1926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출생한 사람입니다. 그는 18세에 제2차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3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수용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끝까지 생존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포로생활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한 사람들은 일찍 죽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 몰트만은 독일로 돌아와 괴팅겐 대학의 신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트 베버(Otto Weber), 한스 이반트 (Hans J. Iwand), 에른스트 볼프(Ernst Wolf)등의 유명한 교수들로부터 많은 신학적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결국 그는 1964년에 <희망의 신학 >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신학자가 됩니다.

영국의 윈스톤 처어칠(Winston Churclill 1874-1965)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영국의 정치인입니다. 그는 중학교 때 세 번이나 진급을 하지 못한 낙제생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1940년에 영국의 보수당 당수가 되었고 영국의 수상이 되어 루즈벨트(Roosevelt) 스탈린(Stalin)등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1953< 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 연설중 옥스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포기하지 말라”( Don’t give up !)는 연설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낙제했을 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생의 여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몰트만과 처칠이 외친 희망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2017년 새봄에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