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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유토피아를 꿈꾸며 | 2016-12-11 |
12월9일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彈劾)되었습니다. 탄핵은 일반 법원에 의해서는 소추(訴追)가 어려운 대통령, 국무 위원, 법관 등의 공무원의 비행, 위법에 대하여 국회에서 소추하여 헌법 재판소의 재판으로 처벌하는 제도입니다. 탄핵이라는 말은 죄를 “캐물어 자리에서 튕겨낸다”는 뜻이며, 소추는 “소송하여 추적한다”는 뜻입니다. 왜 탄핵이 일어났습니까? 이유는 나라를 잘 다스려 달라고 투표로 권력을 위임해 주었는데 대통령이 나라를 잘못 다스렸기에 탄핵소추한 것입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재판이 남아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사는 사회를 행복한 사회로 만들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까지 하는 어려운 결정을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은 역사가 말해 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보다 밝은 사회,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탄핵결정을 잘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1516년 영국의 토머스 모어( Thomas More 1478년 -1535년)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 국가를 <유토피아(u-topia)>라는 말로 소개합니다. 유토피아의 본래 제목은 ”가장 좋은 국가 통치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한 진실이 담긴 황금 같은 책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의 유토피아는 ou(없다)+ topos(장소)라는 단어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 의미는 “실현 불가능한 사회”라는 뜻이며 한편으로는 “더 좋은 사회, 행복한 나라”에 대한 꿈과 이상을 기대하며 동경하는 희망의 나라입니다. 토머스 모어가 소개하는 유토피아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마음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서로 미워하며 싸우는 마음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들지 못합니다. 다만 노력할 뿐입니다. 성경은 말하길 가장 행복한 나라는 예수님이 오시어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오면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입니다.(사11장) 모두가 행복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대통령을 탄핵한다 해서 오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그 나라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이루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소망하며 지금 믿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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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하나님이 사용한 사람 “이수정” | 2016-12-04 |
1885.4.5. 부활절 아침, 언더우드, 아펜젤라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 항구에 들어온 날은 한국기독교의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들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올 때 일본에서 한국인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이수정은 1842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농부로 위장하여 명성왕후를 충주로 피신시킨 공로로, 일본에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신사유람단) 일행으로 가게 됩니다. 일본에 간 이수정은 일본의 농업학자 츠다센(津田仙)을 만나 성경을 선물로 받아 읽으면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가지게 된 이수정은 1883년 4월 29일 로케츠쵸(露月町) 일본 교회에서 미국 장로교 선교사 낙스(G.W.Knox)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이수정은 미국 성서공회 선교사 총무 루미스(H. Loomis)와 존 녹스(John Knox) 선교사를 만나 성경번역의 도움을 요청하여 1884년 미국성서공회의 지원 아래 “현토한한신약전서(懸吐韓漢新約全書)”와 “마가복음”을 출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국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 나는 지금이 조선에 복음을 전하는 황금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다른 국가들이 선교사들을 먼저 보낼 것을 우려합니다.”1883년 12월 13일자 미셔너리 리뷰(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잡지에 장문의 이수정의 편지가 실리자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수정의 글을 읽고 한국 선교사로 결단하고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수정을 임오군란을 통하여 고종에게 신임을 받게 하셨고, 일본에 보내는 조사시찰단의 일원이 되게 하시고, 츠다센 농업학자를 만나게 하시며, 낙스 선교사를 만나게 하시며, 미국으로 선교사 파송요청 편지를 보내어 그 편지를 읽고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언더우드 선교사가 가지고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수정의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과 섭리를 보게 됩니다. 오늘의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편안을 누리어야 합니다.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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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별 헤는 밤 | 2016-11-27 |
우리에게 <서시(序詩)>, <별 헤는 밤>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은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윤영석 장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세운 북간도 용정의 명동(明洞)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명동소학교, 은진 중학, 평양 숭실 중학 과정에서 공부한 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마치고 일본의 동지사(同志社) 대학(기독교 사립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시절 1943년 7월 방학을 맞이하여 귀국하려다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28살의 1945년 2월 사망했습니다. 재판 판결문에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아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분명 조선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그가 지은 시 <별 헤는 밤>의 끝 부분을 보면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은 가을 밤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와 어린 시절 추억들을 그리워하며 별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보면서 자신의 이름까지 붙여봅니다. 그러나 이내 부끄러워 자신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이유는 잃어버린 조국의 현실 속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의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매일의 뉴스가 부끄럽습니다. 귀가 있어 듣고 눈이 있어 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듣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끄럽다하여 우리의 삶의 시간을 멈출 수 없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무덤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는 희망을 본 것처럼, 우리도 부끄러운 뉴스로 얼룩진 오늘이 지나면 희망의 파란 잔디가 피어날 내일의 봄날이 올 것을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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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개인의 성공보다 섬김의 그리스도인 | 2016-11-20 |
성공한 인생의 7가지 ㄲ의 단어를 몇 차례 강조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꿈, 끈, 꾀, 꼴, 꾼, 끼, 깡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1) 꿈(희망의 좌표)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성공의 좌표이며 (2) 끈(인간관계의 인맥)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하며 (3) 꾀(지혜로운 창의력) 번뜩이는 영감의 창의력, (4) 꼴(자기관리의 모습)은 외형적 용모가 아닌 자기관리를 말하며, (5) 꾼(전문성)은 자기 일에 충실하며 전문적 지식을 말하며, (6) 끼(타고난 재능)는 재능으로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을 말하며, (7) 깡(도전정신-끈기)은 어려워도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성공하려면 꿈(희망좌표) 끈(대인관계) 꾀(창의력) 꼴(자기관리) 꾼(전문성) 끼(재능) 깡(도전정신)의 7가지 ㄲ을 강조합니다. 어느 설문기관에서 CEO(최고경영자) 104명에게 꿈, 끈, 꾀, 꼴, 꾼, 끼, 깡,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설문조사를 하여 발표했습니다. 7가지 성공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꿈 32% , 끈 18% , 꾀 14%, 꼴 13%, 꾼 1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공하기 위하여 7가지 요인이 다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얼마나 빨리 달리며, 얼마나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며, 얼마나 안전하게 항해 하느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일은 어느 항구로 항해하느냐가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꿈은 바로 항해하는 배들의 목표지점의 항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에 일어난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절망의 상황을 볼 때 “꿈, 끈, 꾀, 꼴, 꾼, 끼, 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기본인 정직과 주변의 유혹이 있어도 “꾹” 참고 인내하는 오직 한 길, 즉 바른 길로 가는 인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모습이 필요합니다. 화려한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성공지향의 인생보다 자기희생이 있는 섬기며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의 절망의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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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영조의 무망루(無忘樓) | 2016-11-12 |
경기도 유형문화제 1호로 지정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후기 목조건물로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동장대,서장대,남장대,북장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수어장대는 1층 누각이었던 서장대(西將臺)를 영조 27년 1751년 2층으로 증측 하고 이름을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바꾸어 부른 것입니다. 장대(將臺)란 조선시대 장군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하던 높은 곳을 말합니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는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의 장소입니다. 이 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마지막까지 싸운 곳입니다. 당시 인조는 청나라 13만 대군과 싸우다 45일 만에 잠실의 삼전도에서 항복을 합니다. 청나라는 인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왕자들을 볼모로 잡아갑니다. 이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잡혀갔던 왕자 봉림대군은 8년 후 돌아와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이 됩니다. 1649년 왕위에 오른 효종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고 군사강화 정책을 펼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남산산성에 있던 서장대(西將臺)를 증축하고 이름을 바꾸어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부르고 수어장대 안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었던 수모와 그의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벌 정책을 계획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하여 영조가 붙인 이름입니다. 영조의 무망(無忘)의 정신은 비극의 상황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우매한 행동으로 국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합니다. 더 이상 대통령은 우리의 희망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 앞에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비극인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영조의 무망의 정신을 생각합시다. 오늘의 비극을 절대로 잊지 말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을 되풀이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분노의 현실을 미래의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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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고난 중 위로(시편 23편) | 2016-11-06 |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후렴)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찬송가 570장은 시편 23편을 주제로 음악가 장수철 박사가 작곡한 곡입니다. 장수철 박사는 미국 무디 성서학교 종교음악과, 시카고 아메리칸 음악학교에서 수학했고 킹즈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장수철 박사는 1955년 미국 유학시절 어느 날 그의 아내 최봉춘 집사로부터 슬픈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는 고향에 있던 12살 된 딸 장혜경 양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시편 23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갑작스러운 12살 딸의 죽음 앞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로를 받겠다는 아내 최봉춘 집사의 신앙고백이며 고난 앞에 절망할 수 있는 남편 장수철 박사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난 속에 위로하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붙잡고 1956년 최봉춘 집사의 작사와 장수철 박사의 작곡으로 찬송가 570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후 장수철 박사는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로부터 이화여대의 종교음악과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교수직을 사양하고 전쟁고아 32명으로 구성된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맡습니다.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은 6.25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Bob Pierce) 선교사가 창립한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의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장수철 박사는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창단하여 3년 동안 14개국 104개 도시를 돌며 공연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홀 공연 때는 입장한 3,500명 외에 5,000명이 입장하지 못했고. 필라델피아의 컨벤션 홀에서는 입장한 1만 2,000명 외에 입장하지 못한 5,000 명이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장수철 박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라는 <탄일종>의 어린이 찬송을 만드신 분입니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 앞에 아내가 보낸 시편 23편이 큰 위로가 되어 570장의 찬송을 만들어 낸 것처럼 우리도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는 신앙인이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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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추수감사절 | 2016-10-30 |
구약 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는 유월절(逾越節), 오순절(五旬節), 초막절(草幕節-수장절 收藏節)입니다. 그 가운데 초막절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프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다음 해 1621년 농사를 짓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함께 감사하며 잔치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미국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경일로 제정하여 추수감사절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영국은 8월 1일 라마스 날(Lammas Day)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독일은 성 미카엘 축일(9월 29일)이 지난 후 주일을 감사절로, 스위스 개혁파 교회는 9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우리나라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全國 敎會에셔 一年에 一次式 感謝하난 日을 作定하난 問題에 對하야 徐景祚 長老가 演說하기를 我國敎會가 比前 旺盛한 것이 天父의 恩惠인즉 一 感謝日을 定하고 一年에 一次式 悅樂하며 感謝하난 거시 甚合하다 하고 其後에 梁甸伯·金興京·邦基昌·韓錫晋 諸氏가 繼續 說明하다." (죠선 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제4회 회의록) 1904년 9월 13일 서울 동현예배당에서 회집된 제4회 합동 공의회에서 서경조(1907년 목사 안수 받음)장로가 감사주일 제정에 대한 발언의 기록입니다. 서경조 장로의 이러한 발언으로 한국교회는 1904년 11월 11일 첫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이후 선교사들이 날짜를 1905년 첫째 주 목요일, 1906년 11월 19일(목요일), 1908년에는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여 미국의 추수감사절 절기와 맞추어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지키려했던 감사절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감사절은 1년 농사의 추수를 감사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 된 것에 대한 감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부흥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절 날짜 역시 11월 초에 지켰습니다. 2016년 우리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1월 6일(첫째주일)입니다. 우리는 1년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 땅에 복음이 증거 되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에 감사해야합니다. 2016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범사에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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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 2016-10-23 |
모기처럼 생긴 곤충 중에 “하루살이” (Wing lasting for a day)가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되어 먹는 기능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유충에서 부화하여 하루가 되면 죽게 됩니다. 보통은 24시간 안에 죽지만 1주일 이상 생존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하루를 살고 죽기 때문에 하루살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하루살이를 등장시킨 우화(寓話-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을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숲속에서 만나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놀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메뚜기에게 내일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메뚜기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고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는 내일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그날 죽었습니다. 메뚜기는 같이 놀던 하루살이가 없어지자 외로웠습니다. 숲속에서 놀던 메뚜기는 개울가로 갔습니다. 하루살이를 떠나보낸 메뚜기는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개구리와 재미있게 놀다가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산에는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이 떨어지고 낙엽 지는 추운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이제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 나는 이제 땅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야 해. 이때 메뚜기가 개구리에게 묻습니다. 내년이 무엇이냐고.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오는데 그때가 내년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메뚜기는 개구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얼마나 작고 작은 것들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매하게 자신이 경험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의 문제들을 자신의 경험 틀 속에 집어넣고 고집스럽게 자기주장만을 합니다. 단풍이 물든 이 가을철, “오늘”, “내일”, “내년”의 우화 속에 등장하는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를 통하여 생각과 생활의 틀을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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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목숨을 바칠 만한 일 | 2016-10-16 |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1902년 12월 16일- 1920년 9월 28일)의 유언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게 된 그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주 영명학교 에 재학중이던 유관순은 1916년 엘리스 샤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교 보통과에 입학하였고, 1919년 고등과 1학년 재학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진천, 청주, 천안, 안성, 병천 등지의 유지들과 교인들에게 알려 4월1일 아우네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동하였습니다. 고향 아우네 장날 만세운동을 주동한 그는 공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1심 재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자 불복하고 항소하여 6월 30일 서울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유관순은 감옥에 수감된 후에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구타를 당하는 일이 많았고 1920년 9월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화학교 의 프라이(Lulu E. Frey)와 월터(Jeanette A. Walter) 선교사는 형무소에 찾아가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이화학교 선교사들이 유관순의 옥중사망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본 당국은 시체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1920년 10월 14일 정동감리교회에서 김종우 목사님이 장례식을 집례하여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후 1936년 일제의 이태원 택지 조성 때 묘지를 무연고 묘지로 처리하여 지금은 무덤을 찾을 수 없습니다.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항일투쟁인 독립만세운동을 외치다 감옥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매우 위대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내 목숨을 바칠 만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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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포기할 수 없는 인생길 | 2016-10-09 |
미국의 <로렌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주관지 <글로브>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는 1985년 건설현장에서 전기 감전 사고로 죽을 뻔하다 살아났습니다. 그 후에도 두 번 더 감전 사고를 겪게 됩니다. 화가 난 로렌스는 건설 회사를 상대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승리를 확신하게 되는데 갑자기 변호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진행하는데 별로 실력이 없어 변호사 비용만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 변호사를 만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던 중 변호사가 로렌스의 아내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갑니다. 너무나 괴로워하던 로렌스는 더 큰 불행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건강검진을 한 의사로부터 암 통보를 받게 됩니다. 병명은 간암 말기라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신약을 복용하기로 하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 집에 와서 약을 복용합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한지 1주일이 지난 후 부작용으로 의식을 잃게 됩니다.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하던 중 밝혀진 것인데 의식을 잃게 된 것은 약의 부작용인데 그는 암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간염을 오진한 것이었습니다. 로렌스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또 다시 강도를 만나 250달러를 빼앗기는 불행의 사건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행의 연속이 그에게 닥쳤지만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나는 그래도 행복 합니다. 왜야하면 세상에는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보다 행복합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갑작스러운 불행이 우리 앞에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어떻게 마음에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불행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불행이 닥치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있다고 인생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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