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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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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천국항해(天國航海) 2013-01-13

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한다하여 미군을 베트남에 파견합니다. 그 후 1965년에 미군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베트남전쟁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의료지원단을 보냈지만 1965년 10월에 청룡부대와 맹호부대를 파병하면서 베트남전에 깊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전쟁으로 어려워진 미국이 결국 휴전을 제의하여 1973년 1월에 파리에서 휴전협정을 하고 미군의 전투주력부대를 철수시킵니다. 그러나 북쪽의 공산군이 미군의 전투주력부대가 철수하자 협정을 위반하고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여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어 베트남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전쟁이 끝나자 승리자가 된 공산군은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합니다. 사이공 함락 36시간 만에 26만명을 처형하는 끔찍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처형의 현장에서 살기위하여 사람들은 베트남을 탈출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 경향신문은 배로 탈출하는 보트피플(boat people)이 1975년- 1980년까지 100만 명에 이르렀고 바다에서 구조되지 못해 죽은 숫자가 14만 명이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위해 베트남에서 탈출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이웃 나라들이 이들을 구조해주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외교문제와 이들이 가난하기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베트남난민수용소가 있었으나 1993년 마지막으로 난민160명을 뉴질랜드로 보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보트피플 선상난민(船上難民)은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살기위해 탈출은 했으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보트피플을 인생여정으로 비유한다면 나그네 인생길에 최종목적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트피플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돌아갈 항구가 있으면 희망찬 항해를 합니다. 그러나 보트피플처럼 돌아갈 곳이 없으면 절망의 표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갈 고향인 최종 목적지 천국이 있습니다.

2013년 우리의 최종 목적지 천국을 향해 희망찬 항해를 합시다.

9인생의 전환점 2013-03-31

1902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어느 교회에 부크맨  ( Frank N. D. Buchman) 이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어려운 교회를 담임한지 5년 만에 대형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렸기에 교회는 부흥되었지만 목사님의 영적 상태는 탈진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목사님은 자신의 영성회복을 위하여 교회를 사임하고 영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목사님은 어느날 케스웰이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여행 중이기에  목사님은 주일예배를 의무감으로 시골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13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골목사님이 어찌나 열정으로 설교를 하시었던지 부크맨 목사님에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당시 시골목사님의 설교의 내용은 <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부크맨 목사님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이날처럼 구속의 은총과 부활의 진리가 자신에게 감동으로 다가오지를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이날 케스웰의 시골교회에서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훗날 목사님은 이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날의 영적 은혜는 부크맨 목사님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날이후로 목사님은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영적 경건운동을 전개합니다. 
목사님이 전개한 영적 경건운동은 1938년 6월4일에 세계적인 영적 운동인 도덕재무장 M. R. A ( Moral Re-Armament 절대정직·절대순결·절대무사·절대사랑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도덕 재무장(M. R. A)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을 중심으로 크게 전개되었습니다. 


부크맨 목사님은 여행중 영국의 작은 마을 케스웰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고, 영성운도인 도덕재무장(M.R.A)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영적인 새로운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8잡초(雜草) 2013-03-17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온실의 환경에 익숙해 있기에 온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름철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운겨울 보온을 해주는 온실의 보호막이 있기에 화초는 살 수 있습니다. 화초는 온실의 보호막이 없어지면 시들해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하지만 잡초(雜草)는 자라가는 환경을 누가 마련해주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잡초입니다.

사전에서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설명합니다. 잡초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번식해갑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잡초는 뽑고 뽑아도 계속해서 자라기에 골치를 아파합니다. 최근에는 잡초를 제거하려고 아예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버립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용혜원 시인은 <잡초>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아무도 반기지 않아도 /서성거리기 보다는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하기에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생명의 줄을 이어갑니다./ 이름 모를 꽃이 피어도 / 누구든 사랑해 주면/ 한동안의 행복도 가져보지만/  떠가는 구름이 / 한줄기 비라도 /쏟아 놓으면/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버려진 땅에서도 / 진한 목숨만은 / 어찌할 수 없어 / 언제든 오신다면 /쉬어갈 자리는 /비워 놓겠습니다. >   

잡초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꿋꿋함과,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걷어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환경을 탓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80평생 인생 여정 길을 가는 동안 온실처럼 언제나 평안하고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비바람이 부는 사나운 날씨와 같은 시련과 역경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길은 어떠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잡초처럼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욥24:16)

7잔인한 4월, 희망의 새싹 2013-04-28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Eliot)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 : 1922년 작품)의 첫머리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4월’(April is the cruelest month)로 표현되면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 T.S 엘리엇(Eliot)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逆說)적인 표현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를 쓸 당시 1차세계대전후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희망이 없는 황무지와 같은데 눈치 없는 봄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대지에 비를 뿌리어 꽃을 피우고 희망을 속삭이니 잔인한 4월이라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계절은 꽃피고 새 우는 4월인데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 없는 황무지이기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은 2013년 4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4월 마지막 주일은 우리에게는 시인 엘리엇이 표현한 황무지 같은 희망 없는 잔인한 4월이 아니라. 죽은 땅에 라일락을 키워내고, 엄동설한 추운 겨울 꽁꽁 얼었던 대지의 딱딱함을 실낱같은 생명력 하나로 뚫고 나오는 새싹 같은 희망의 4월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은 자신의 살아 있음을 대지에 외치며 어두운 땅 속을 비집고 파릇파릇 움트는 모습은 분명 우리에게 희망의 모습입니다. 생명의 새싹이 움트는 4월 우리에게는 잔인한 4월이 아니라 희망이 움트는 새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욥14:7-9)

 

6세브란스 병원 2013-02-10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은 1884년 의료 선교사 였던  알렌 선교사에 의하여 왕립병원인 광혜원이 설립되면서 시작된 병원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은 1886년 광혜원으로 출발하여 제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1904년 서울역 앞 남대문 근처에 미국의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가 5만5천불을 기부하여 현대식 건물을 짓고 병원 이름을 세브란스로 변경하면서부터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 된 것입니다.


제중원 병원에  5만5천불을 기증한 세브란스는 1870년에 미국의 록펠러와 함께 석유사업을 하여 사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록펠러와 친구사이인 세브란스는 어느 날 제중원 의사였던 에비슨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를 읽고 선교헌금 보냅니다.  당시 루이스 세브란스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한 번도 방문한 나라도 아니고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중원(濟衆院)의 3대 교장인 선교사 애비슨(Oliver R. Avison)이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가서 교단에 선교 보고를 하였습니다. 보고서에서 그는 “동양에 조그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우리가 조금만 힘써 고치면 나을 병으로 사람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병원을 지어서 협력하여 진료를 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보고를 읽은 세브란스는 조선에 헌금하기로 결심합니다. 루이스 H.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는 1838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시(Cleveland)에서 출생하였으며 독실한 장로교 신자로 직분은 장로였습니다.
몇 년전 세브란스 병원이 병원 설립 120주년을 기하여 얼굴 없는 기부자들을 추적해 본 결과 루이스 세브란스의 아들인 존 세브란스가 12만 달러를 보내왔고 그리고 70년 동안 80만 달러를 보내온 ‘J. L. Severance 펀드(세브란스 기금)’의 이름으로 기부금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기금은 존 세브란스가 아버지 루이스 세브란스의 뜻을 받들어 유언으로 기금을 마련해 놓고 지금까지 매년 기부금을 보내온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에비슨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를 보고 마음이 감동된 루이스 세브란스의 선교헌금이 오늘날 한국의 제일가는 대학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된 것입니다.

결단하는 헌신이 큰 역사를 이룹니다.

2013년 새로운 결단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5성경 읽는 습관 2013-05-05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미국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대통령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캔터키 시골 마을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정규교육은 18개월 정도 밖에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여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늘 읽었고 벤자민 프랭클린의 전기, 워싱턴 대통령의 전기,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등을 읽으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링컨의 일생을 보면 많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23살에 주의원 선거에 실패한 후 24살 사업에 실패, 29살 주의회 의장 선거 낙선, 31세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 34살에 하원의원 낙선, 37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39살에 다시 낙선, 46살에 상원의원 낙선, 47살에 부통령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49살에 다시 상원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후 51살에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여정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다시 일어서 새롭게 도전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의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숱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생활습관이 된 <성경을 읽기>입니다.


“나는 선거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점으로 갔다. 그리고는 배부르게 음식을 먹었다. 그 다음 이발소로 가서 이발을 하고 머리에 기름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배가 부르고 또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내 목소리와 걸음걸이는 다시 힘찰 것이다. 아브라함 다시 시작하자! 힘을 내자!” 이러한 그의 행동은 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는 습관을 길러줍시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처럼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 있는 자가 되도록 어린 시절부터 성경 읽는 습관을 길러줍시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 (잠24:1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4새해에는 새롭게 도전합시다 2013-01-06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가 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새내기 직장인이 되어 아마추어 사회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여려가지 마음의 갈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에세이 형태의 글입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새내기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모든 것이 자신이 꿈꾸어 왔던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갈등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주는 글입니다.

내용 중에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자꾸만 엄마를 닮아가” “아빠처럼 되기 싫었는데 그렇게 되기도 쉽지가 않아”라는 것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직장인이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불안한 청년들에게 그렇게 천 번을 흔들리며 사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젊은이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매일의 삶이 갈등의 연속이며 고난의 인생길인 것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다보면 흔들리는 일도 있고 가다보면 후회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하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후회의 연속이며 앞을 보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지라도 인생은 앞으로 걸어가야 하며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면 갈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2013년 새해 아침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입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절망의 극한 상황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60:1)

3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전 하고 싶은 일) 2013-04-21

몇 년전에 출간된 <살아있는 동안에 꼭해야할 49가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일생 꼭 해야할 49가지는 

(1) 사랑에 송두리째 걸어보기,

(2) 소중한 친구 만들기,

(3) 은사님 찾아뵙기,

(4)부모님 발 닦아드리기,

(5) 영광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6) 고향 찾아가기,

(7)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외쳐보기 등등...

(49) 잊지 못할 쇼 연출해보기입니다.

꼼꼼하게 읽어보면 대부분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쉬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책과 비슷한 유형의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실행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어느 날 시한부인생의 판정을 받은 두 노인이 한 병실에 입원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한 사람(에드워드)은 그 병원의 이사장으로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카터)은 차량 정비사로 오직 가족 위하는 삶을 살아온 평범하지만 성실한 사람입니다.

둘은 자신들이 암환자인 것을 알고 버킷 리스트(죽기전에 하고 싶은 일)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둘은 그 일들을 실천하기로 작정을 하고 병원을 도망처 나옵니다. 스카이다이빙, 몸에 문신하기를 시작으로 이들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실천합니다. 서로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이들은 행복하게 버킷 리스트를 실천합니다. 둘은 마지막 하고 싶은 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는 일을 남겨두고 헤어집니다. 정비사 카터는 고향으로 돌아와 수술을 하지만 죽게 되면서 함께 여행을 했던 에드워드에게 편지를 씁니다. 자기가 죽으면 유골을 화장하여 에베레스트에 묻어 달라는 유언의 편지입니다. 어찌 보면 뻔한 내용이고 다음 전개될 사건이 무엇인지 관객들이 다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꼭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천국에 가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꼭 실천해야합니다. 마치 방학개학을 앞둔 학생이 밀린 숙제하듯 천국가기 전에 이 땅에서 꼭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큰 결심을 하시고 오늘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실천해보세요. 우리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2무소유의 실천 2013-04-07

경북 포항에 종합병원으로 소문이 난 선린(善隣) 병원이 있습니다.

이 병원은 1953년 포항에 주둔하고 있던 미해병대와 선명회(월드비전)의 도움으로 미해병기념 소아진료소로 시작된 병원입니다. 당시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불쌍한 형편의 아이들을 돌보려는 포항의 미해병대 군목의 주선으로 당시 대구 동산병원에 근무하던 김종원장로를 포항으로 모셔오면서 소아진료소가 문을 열게된 것입니다. 선린병원의 선린(善隣)이라는 말은 “선한 이웃”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고아가된 어린이에게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강도만난 사람을 치료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고아들에게 다가가서 치료하며 도와준다는 의미입니다.
 

설립자 김종원 장로님은 1953년부터 선린병원을 운영하시다 2007년 93세로 소천했습니다. 김종원 장로님은 평생 불쌍한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며 인술을 베프신 포항의 슈바이쳐라고 부릅니다. 장로님은 선린병원을 처음부터 개인 소유로 하지 않고 공익병원으로 법인화하여 운영했으며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시던 장로님은 1997년 당시 1000억원 가치의 병원을 한동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선린병원을 한동대학에 기증하는 목적은 선린병원을 중심으로 의대를 개교하고 의료 선교사를 배출하여 세계선교를 했으면 하는 소원에서 한동대학교에 기증한 것입니다.

 

김종원 장로님은 1914년 평안북도 초산출신으로 평양에서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부터 6.25가 일어났던 1950년 9월까지 평양에서 소아과 의사를 지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쪽으로 피난을 와서 대구에서 오갈 곳 없는 노숙자로 지내다 평양의전 졸업장을 가지고 대구 동산병원을 찾아가 자신이 의사임을 말하자 그들 받아주어 동산병원 소아과에 근무하게 됩니다. 하루 아침에 전쟁 노숙자에서 의사가 된 것입니다. 장로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아주셔서 동산병원에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린병원을 운영하면서 “하나님은 치료하고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지금도 선린병원에 가면 정면에 크게 써서 붙여놓았습니다. 노숙자에서 소아과의사, 하나님은 치료 자신은 봉사, 그리고 무소유의 기증, 이 모든 것은 철저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1레갑 족속의 가문의 전통 2013-01-27

구약성경 예레미야 35장에 등장하는 레갑 족속은 오래전부터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가문의 세가지 금기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며(금주-禁酒) 둘째는 집을 짓고 정착하여 살지 않고(금주-禁柱) 셋째는 한 곳에 정착하여 파종하며 포도원을 경작하지 않는다(금경-禁耕)는 것입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말며 파종도 하지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렘 35:6 - 7)


이러한 세가지 금기사항은 예레미야 시대로부터 250년 전 열왕기하10장에 나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의 이야기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예후와 함께 바알신을 섬기는 아합 왕가를 무너뜨리는데 동참합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3가지 금기사항(금주-禁酒/금주-禁柱/금경禁耕)을 지켜왔습니다.
250년이 지난 후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들에게 포도주를 먹여보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성전에서 이들에게 포도주를 줍니다. 그러나 이들은 선조 때부터 지켜오던 일이기에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이처럼 선조들로부터 전해오는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레갑 족속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렘35:14)


출애굽을 할 때에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다짐을 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이들은 바알신을 섬기게 됩니다. 하지만 레갑 족속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출애굽 때처럼 유목생활을 하려고 가나안을 떠나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이들의 광야 생활은 집을 짓고 포도원을 경작하는 정착생활보다는 몹시 어렵고 고달픈 생활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달픈 광야의 유목생활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250년간 가문의 전통으로 지켜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250년간 유목생활을 한 레갑 족속의 신앙처럼 2013년 1월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각오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의 결단은 훗날 우리의 후손에게 가문의 전통이 될 수 있습니다. 큰 결단과 각오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