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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인수문고 | 2013-07-27 |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리에 남평 문씨의 문중 도서관으로 유명한 “인수문고 (仁壽文庫)”가 있습니다. 인수문고는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일본이 강탈해 갈 무렵 남평 문씨의 가문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하기 위하여 세워진 문중 도서관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등장하기 전 우리나라의 전통적 도서관은 (1) 정조 때 세워진 규장각과 같은 왕립도서관이 가장 큰 형태의 도서관이고 (2)지방의 향교나 서원에서 교육을 위한 학교도서관이 있습니다. 또한 (3)문중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문중문고와 (4)개인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개인서재 형식의 도서관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수문고는 그 규모나 소장하고 있는 책의 가치와 내용으로 보면 국내 최고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문중 도서관입니다. 소장하고 있는 인수문고의 분량은 영남학파의 본산지로 알려진 안동의 도산서원에 소장하고 있는 책의 분량이 4400책 1만권 정도인데 인수문고는 8500책 2만권 이상 소장되어 있습니다. “인수문고”의 특징은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에 분개하여 가문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남평 문씨 수봉 문영박 선생이 세운 것입니다. 구한 말 나라를 빼앗긴 비극의 상황에 일본과 대항하며 싸우는 방법은 직접 투쟁하며 싸우는 방법과 또 다른 방법으로 훗날을 기약하는 인재양성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수봉 문영박 선생은 제3의 길로 인재양성의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인재양성을 위하여 책을 구입하는데 먼저 책을 선별할 학자가 필요했습니다. 수봉 문영박 선생은 당시 중국으로 건너가 거주하던 문장으로 유명한 유학자 창강 김택영 선생에게 부탁하여 중국에서 책을 구입하여 배편으로 목포를 남원과 함양을 거처 지리산을 넘어 대구로 운반을 하는 대역사를 실행한 것입니다. 남평 문씨 가문의 인수문고를 보고 자란 분들 중에 서울신문사 사장을 지낸 문영갑 씨과 그의 사촌인 대구광역시 시장을 지낸 문희갑 씨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도서관에 꽂혀 있는 장서들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훗날 책을 읽고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고 꿈을 가지고 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책 한 권과 아름다운 글 한 줄이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책을 읽고 꿈을 가지게 하는 일에 부모들이 앞장 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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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어제를 잊고 오늘에 충실하자 | 2013-07-13 |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카네기 행복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일 카네기는 1888년 미국 미주리 주의 매리빌에서 태어났으며 워런스버그 주립 사범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와 세일즈맨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1912년 성인들의 상대로 말하는 기술을 강의하면서부터 큰 인기를 얻어 인간관계의 강사로 크게 성공합니다. 데일 카네기가 말하는 행복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심과 걱정과 고민,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행복론 제1부에서 인간의 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말하는데 걱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라>입니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사람은 일생을 충실히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려면 먼저 지나간 과거에 억매이지 말아야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크나큰 짐이 되면 오늘을 충실히 살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수한 것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후회하는 삶을 산다면 오늘의 행복은 사라집니다. 또한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 역시 오늘을 충실히 살수 없게 합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일찌라도 과거와 미래의 걱정의 짐을 지고 성공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과거의 실수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에 충실할 때 행복은 찾아옵니다. 카네기의 행복론의 제1장의 인간의 걱정을 극복하는 원칙의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버리고 오늘을 충실히 살면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옵니다. 지나치게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충실히 살면 우리에게 행복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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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천국여행길 | 2013-07-06 |
어느 달리던 버스 안에서 앞좌석에 앉아있던 노인이 버스기사에게 시비를 걸어 서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달리던 던 버스는 길가에 멈추어 서게 되었고 함께 타고 가던 많은 승객들이 어리둥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기사에게 시비를 건 노인은 계속해서 큰 소리를 쳤습니다. 참다못한 승객들이 버스기사 편을 들면서 시비를 걸고 큰 소리 치는 노인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이제 그만 출발하자고 이구동성으로 기사에게 재촉을 합니다. 그런데 노인은 막무가내로 기사와 승객들에게 달려듭니다. “가기는 어디로 갑니까? 지금 이 버스는 우리가 가려는 대전으로 향하지 않고 영동고속도로 접어들어 동해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노인은 승객들에게 “우리는 지금 잘못 가고 있습니다” 소리치며 주의를 환기 시켜주었습니다. 그때서야 많은 승객들은 노인이 버스기사와 다투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승객들은 마음을 모아 기사에게 목적지인 대전으로 갈 것을 주장하여 원하던 목적지에 갈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버스에 앉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와 싸우는 노인을 보면서 왜 기사 싸우느냐고 하면서 옳은 주장을 하는 노인에게 핀잔을 주면서 일방적으로 기사 편을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전체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라는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이라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GPS 시스템은 미국에서 개발하여 무기 유도, 항법, 측량, 지도제작, 측지, 시각동기 등의 군사용으로 사용하던 것을 민간용으로 공개함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위치결정시스템을 가지고 지도에 적용시켜 네비게이션(Navigation)을 만들어 운전자에게 정확한 주행을 도와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천국행 버스를 탄 것입니다. GPS 시스템에 의하여 정확하게 천국으로 목적지를 입력해놓았습니다. 하지만 간혹 천국행 버스 안에서 아무렇게나 가면되지 하면서 원리를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천국 여행길에 성경의 원리를 무시한다면 여행의 도착지가 엉뚱한 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참된 교회는 성경의 원리를 따르는 교회로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까지 완전하게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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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마음의 여유로움 | 2013-06-29 |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 12월 영국의 B.B.C 방송은 각계각층의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국의 수상을 선정했는데 제1위가 윈스톤 처칠(Winston Churclill 1874-1965)이 선정되었습니다. 처칠이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선정된 이유는 그의 낙천적 성격이 큰 점수를 얻었습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지도자이지만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지도자였습니다. 처칠은 중학교 때 세 번이나 진급을 하지 못한 낙제생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1940년에 영국의 보수당 당수가 되었고 영국의 수상이 되어 루즈벨트(Roosevelt) 스탈린(Stalin)등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1953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그는 웅변가며 문필가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한 연설중 옥스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 포기하지 말라 - Don’t give up ! ”는 연설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낙제했을 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생의 여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처칠은 1915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해군을 이끌고 작전을 전개하던 중 여러 척의 배를 잃고 2만 명의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처칠은 해군 장관직을 내놓게 되지만 이듬해 다시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갑니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그는 늘 병사들에게 친절했으며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은 웃으며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병사들에게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처칠의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전쟁터의 병사들에게 삶의 여유를 가지게 했습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일등만 살아남는 처절한 삶의 투쟁 속에서 늘 긴장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경쟁에서 지면 어찌하나, 성공하지 못하면 어찌하나, 사업에 실패하면 어찌하나하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를 조급하게 하고 긴장시킵니다. 긴장의 삶의 현장에서 <전쟁은 웃으며 하는 거야>라는 처칠의 여유로움을 새겨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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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청백리(淸白吏) 황희 정승 | 2013-06-09 |
조선시대 청백리(淸白吏)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황희(黃喜, 1363년 - 1452년) 정승이 있습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재상(宰相)이었습니다. 고려 말에 관직에 나갔다가 1392년(공양왕 3년)에 고려 멸망 후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고려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고려 충신 72명이 두문동에 들어가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황희 정승도 72명중 한 명이었지만 이성계와 그 외 사람들이 함께 새 나라를 세우자고 권하여 황희 정승은 출사(出使)를 합니다 그후 그는 형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으로 권력을 누리는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성격이 원만하고 유순하여 주변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고 관료생활 중에 많은 치적을 남겼습니다. 세종대왕 때 영의정으로 농법 개량, 예법 개정, 천민 소생의 부역 면제 등으로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가 생존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청백리로 보았으나 실재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검찰총장의 자리와 같은 대사헌으로 있을 때 금을 받고 청탁된 사건을 해결해주었다고 하여 황금 대사헌이라는 조롱을 받았고, 간통죄로 쫓기는 여인을 숨겨주어 그 여인과 부정한 관계를 했다하여 간통죄를 범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황희정승의 문제는 불륜, 뇌물수수, 재판 불법개입, 국가 전답 부당매입 등 다양한 부정이 조선왕조 기록인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황희 정승의 청백리는 과장되었으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조선의 양반 계층에 의해 의도적으로 미화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어찌되었던 그는 말년에 87세에 파주의 한강하구에 반구정(伴鷗亭)을 지어 갈매기와 벗 삼아 여생을 보내다 90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역사가들은 크고 작은 오점을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황희정승을 청백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7-80년의 짧은 삶을 살면서 언제나 바르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청백리의 대명사인 황희 정승처럼 우리의 삶의 발자취에 오점을 남기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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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역할의 과중과 모호성 | 2013-06-01 |
다원화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stress)를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라는 말은 의학용어로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긴장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위궤양·고혈압 등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노이로제·우울증 등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현대의학자들이 지적하기를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물론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대한 도전과 긴장감이 생기어 자신의 삶을 유익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는 심리적 부작용뿐 아니라 신체적으로 질병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면 좋으련만 하지만 살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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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덤으로 사는 인생 | 2013-05-25 |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년)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백치> <백야> <죽음의 집의 기록>등 너무나 많은 작품을 쓴 작가입니다.
그는 러시아 귀족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작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아 군인학교에 들어가 1841년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육군 소위로 임관을 합니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844년에 제대하고 1846년에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를 발표합니다. 그 후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급진적 젊은 지식인들의 정치적 모임에 가담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따르는 급진적 사조는 공상적 사회주의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모임을 주도하다가 1849년에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게 됩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서유럽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사상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젊은 지식인들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언하고 마지막 사형집행 직전에 사면해주는 정치적 연극을 꾸미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 총살직전에 사면이 된 그는 훗날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을 <백치>라는 작품에서 “사형수들에게 5분을 준다면 2분은 동지들과 이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고 표현합니다. 사형집행 직전 사면이 된 그는 그 후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가 4년 만에 돌아와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형집행 직전 사형대에서 살아난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평생 그의 마음 한편을 지배했습니다. 죽음의 사형대에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후 그의 삶은 적극적이 되었고 작품 활동에 몰입하여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와 같은 명작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대에서 살아난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삶은 은혜에 감동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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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힐 링(healing) | 2013-03-10 |
우리사회에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하더니 이제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T.V프로그램중에도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웰빙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의미의 유행어라면, 힐링은 병든 것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의미의 치유라는 말입니다. 힐링은 병든 몸을 의사들이 진단하여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하는 외부적 행위의 치료가 아닌 사람의 내면의 마음의 치유를 말합니다.
우리사회는 젊은이들의 취업문제, 노인들의 돌봄의 문제, 기업의 비정규직 노동문제, 대학입시중심의 교육문제등 너무나 우리들을 우울하게하며 마음의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불안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며 결국은 세상을 등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대중문화처럼 되어버린 사회는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병든 사회라는 것입니다. 병든 사회이기에 힐링이라는 말이 정겹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교회가 우리사회에 평안을 주지 못하므로 사회가 병들어 힐링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영혼에 관심을 두어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진정한 복음 안에서의 영혼 힐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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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천국항해(天國航海) | 2013-01-13 |
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한다하여 미군을 베트남에 파견합니다. 그 후 1965년에 미군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베트남전쟁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의료지원단을 보냈지만 1965년 10월에 청룡부대와 맹호부대를 파병하면서 베트남전에 깊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전쟁으로 어려워진 미국이 결국 휴전을 제의하여 1973년 1월에 파리에서 휴전협정을 하고 미군의 전투주력부대를 철수시킵니다. 그러나 북쪽의 공산군이 미군의 전투주력부대가 철수하자 협정을 위반하고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여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어 베트남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위해 베트남에서 탈출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이웃 나라들이 이들을 구조해주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외교문제와 이들이 가난하기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베트남난민수용소가 있었으나 1993년 마지막으로 난민160명을 뉴질랜드로 보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보트피플 선상난민(船上難民)은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살기위해 탈출은 했으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갈 고향인 최종 목적지 천국이 있습니다. 2013년 우리의 최종 목적지 천국을 향해 희망찬 항해를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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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생의 전환점 | 2013-03-31 |
1902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어느 교회에 부크맨 ( Frank N. D. Buchman) 이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어려운 교회를 담임한지 5년 만에 대형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렸기에 교회는 부흥되었지만 목사님의 영적 상태는 탈진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목사님은 자신의 영성회복을 위하여 교회를 사임하고 영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영적인 새로운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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