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 No제목 | 등록일 |
|---|---|
| 166아버지, 어머니 | 2018-05-13 |
| 매년 어버이 주일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일까? 고민을 해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입니다. 2018년 어버이 주일에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자 고영민 시인의 <산등성이>를 소개합니다. - 산등성이 -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 집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듯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는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 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
|
| 165어린이날 | 2018-05-06 |
|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된 것은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날을 제정했습니다. 기록에 보면 어린이날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꿈을 가지고 자라나게 하자는 취지로 소파 방정환 선생과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동이 되어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가진 것이 첫 어린이날의 기념 행사였습니다. 그 후 1927년에 5월 첫 주일날을 어린이 날로 정했다가 1939년 일제의 압력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1946년에 5월5일에 어린이날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그리고 1957년에 어린이 작가협회가 주관이 되어 어린이 헌장을 선포했고 1970년 대통령령으로 5월5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하였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어른들은 어린이를 바르고 씩씩하게 키워야함을 강조하고, 어린이에게 많은 선물 안겨 주고 재미있는 놀이로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날만 어린이를 기쁘게 해줄 것이 아니라. 항상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어린이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988년에 수정 공포된 어린이 헌장(憲章) 전문을 보면 “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로 되어있습니다. 어린이 헌장의 정신은 (1) 평등정신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어린이는 누구나 어떠한 환경이든지 차별 없이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꿈을 이루어 가는 성장과 성숙의 정신입니다. 어린이는 지금의 모습으로 정지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씩씩하게 성장하며 성숙해 가는 존재입니다. 꿈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날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며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아끼지 맙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22:6) |
|
| 164 무제(無題) | 2018-04-29 |
| 이어령 교수를 말할 때, 문학 평론가, 언론인, 베스트셀러 작가, 장관, 한국의 지성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릅니다. 반 기독교인으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딸의 암투병과 실명위기, 손녀의 ADHD 증후군의 연속된 고난 속에서 예수를 믿어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시 가운데 자신의 고백과 같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4월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을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이어령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 기척도 없이 다가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 하소서 /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
|
| 163잔인한 4월 | 2018-04-22 |
|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Eliot)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 ,1922년 작품)의 첫머리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4월’(April is the cruelest month)로 표현되면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 T.S 엘리엇(Eliot)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逆說)적인 표현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1922년)를 쓸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이 없는 황무지 같은데 눈치 없는 봄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대지에 비를 뿌리어 꽃을 피우고 희망을 속삭이니 잔인한 4월이라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봄의 계절 4월은 대지에 꽃을 피우고 새들은 봄을 노래하며 지저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 없는 황무지이기에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움트는 봄, 파릇파릇 새싹이 무거운 흙덩이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희망의 봄. 진달래, 개나라 꽃소식을 들으며 나물 캐러 동구 밖 들로 나가는 아름다운 봄. 종달새 울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얼었던 마음까지 녹이는 따스한 봄. 하지만 2018년 우리의 봄은 매일 반복되는 재난문자로 잔인한 4월이 되었습니다. “(긴급재난문자) 16시 미세먼지 경보발령, 어린이. 노약자 실외활동 금지, 마스크 사용하세요.” 2018년 4월은 미세먼지로 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1922년의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은 희망이 없는 사회에 대한 표현이라면 2018년 4월은 미세먼지로 꽃을 보지 못하는 잔인한 4월입니다. 하지만 죽은 땅에 라일락을 키워내고, 엄동설한(嚴冬雪寒) 꽁꽁 얼었던 대지를 실낱같은 생명력 하나로 뚫고 나오는 새싹의 생명력을 보면서 우리는 미세먼지로 잔인한 4월에도 희망을 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욥14:7) |
|
| 162열정(passion) | 2018-04-15 |
| 분당에 있는 새에덴교회는 성도수가 2만5천명이나 되는 초대형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는 맨손, 맨몸, 맨땅의 ‘3M’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쓴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하라>는 책 2장에 ‘개고기와 소주 사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척초기 남전도회가 야유회를 가서 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남전도회 회원들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다 병에 몰래 소주를 담아 와서 사이다인척하면서 목사님 앞에서 소주를 먹었습니다. 이때 어느 집사님이 실수로 목사님께 사이다를 따라 준다는 것이 소주를 따라주게 된 것입니다. 사이다인줄 알고 마시던 목사님이 소주를 마시게 되자 갑자기 밥상을 발로 차면서 ‘어떤 X같은 놈’이 목사에게 소주를 먹이냐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너희들 이 자리에서 집사 다 잘라버린다’고 소리치고는 야유회 중간에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 집사가 술에 취하여 교회로 찾아와 ‘술 한 잔 먹었다고 집사를 자르는 목사가 어디 있느냐’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참다못한 목사님은 그를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죽기 직전(?)까지 때렸습니다. 분이 나서 ‘너 같은 놈이 집사이기에 한국교회가 요 모양이지’하면서 ‘그래 내가 나 복 받으려고 너희에게 술 먹지 말라고 했느냐? 네 놈들 복 받으라고 하는 것이지’ 그런데 목사에게 죽도록 맞은 집사가 목사의 폭력을 문제 삼을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난 후 오히려 집사가 목사에게 무릎을 꿇고 ‘목사님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 제일주의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소강석 목사의 목회에 대한 열정을 단편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누구나 인생길은 한 번 주어진 여정입니다. 어떻게 살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희망의 4월, 우리 모두 후회 없는 불꽃같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내 가슴에 뜨겁게 흐르는 피의 열정으로 오늘을 살겠다. 한바탕 춤사위로 솟구쳤다 몰아쳐오는 바람처럼 거센 폭풍우처럼 한 동안만이라도 뜨거운 열정으로 살고 싶다. 용혜원 시인의 <거센 파도로 살고 싶다> 중에서 |
|
| 161 복종과 저항 | 2018-04-08 |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1945)는 독일 루터교단의 목사로 반 나치운동가로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1945년 4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모두 다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히틀러의 나치운동에 대하여 반대하며 항거하는 저항정신과 고난에 동참하는 실천적 신앙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독일에서 박해가 심할 때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 라인홀드 리버가 교수자리를 마련하고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 독일국민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고 하면서 망명을 거절하고 독일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에 대하여 <값싼 은혜>라는 용어로 비판합니다.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을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 되었고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이 되었음을 본회퍼 목사는 지적합니다. 그의 신앙을 2단어로 요약한다면 “복종”과 “저항”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감옥에 <옥중서신>을 썼고 많은 기도문을 남기었습니다. 여러 기도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태연하게, 명랑하게, 확고하게, 영주가 자기 성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방에서 내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하지만,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유롭게, 다정하게, 맑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처럼, 간수들과 대화한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한다. -중략-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누구이건, 아!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잔인한 4월, 우리도 불의에 저항하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삶을 삽시다. |
|
| 160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2018-04-01 |
| 주간에 어느 목사님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회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저에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으로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 마음 너무나 잘 알기에 긴 통화를 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함께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주일을 앞에 두고 있으니 소망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언제가 읽었던 시 구절이 생각나 소개했습니다. 백창우 시인의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라는 시입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부활절 아침에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다시 한 번 소망을 가지고 도전해봅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 우리의 소망입니다. 2018년 새봄에 새로운 소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
|
| 159 새 봄, 새로운 도전 | 2018-03-25 |
| 조선시대 문인이며 실학사상의 선비인 연암 박지원( 朴趾源, 1737년-1805년)선생은 당파가 심했던 조선 후기의 학자입니다. 그는 당색으로는 노론이었으나, 노론의 한 분파인 북학파(北學派)를 세워 그 영수가 되었습니다. 연암선생은 양반집 자녀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면서 가정이 가난하여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16살이 되어서 집안에서 소개한 신부와 결혼을 하는데 그의 아내가 글공부를 많이 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연암 선생은 이때까지 글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가 학문적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그는 이때부터 글공부를 시작 합니다. 다행히 주변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어 깊은 학문을 하게 되었으며 그는 학문적으로 실학자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홍대용 등과 만나 교제했으며 이들과 함께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배워야 한다며 상공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상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웃나라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어서 1780년 5월 영조의 사위인 박명원 대감이 이끄는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 황제의 70회생일(만수절) 축하 사절단원으로 자원하여 44세의 나이로 관직 없이 무명의 군사로 청나라를 방문합니다. 오직 배우고자는 일념으로 사절단원에 동행한 것입니다. 축하사절단으로 북경을 방문한 연암선생은 출발부터 돌아올 때까지 모든 상황을 글로 남깁니다. 무려 26권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씁니다. 그가 쓴 <열하일기>는 문체가 해학적이며 기행문 형식의 일기입니다. 연암선생은 청나라의 앞선 기술을 배우고 선진 제도를 본받으려 하였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우리의 가난의 원인은 도로망이 없고 바퀴달린 수레를 사용하지 못하므로 교역이 활발하지 못다는 지적을 할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연안 선생은<열하일기>뿐 아니라 <과농소초>와 <허생전><양반전><호질><우상전>등 많은 소설을 남깁니다. 16세까지 글을 몰랐고 학문에 무식했던 연암선생이 16세에 처음 글을 배웠고, 44세에 배우고자 청나라를 자원하여 방문한 것처럼 배우는 것은 늦었다고 깨닫는 순간 늦은 것이 아닙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2018년 새봄에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
|
| 158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2018-03-18 |
|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는 1379년 독일의 쾰른 부근 켐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토마스 하메르켄이지만 수도생활을 하면서 이름을 아 켐피스 또는 켐펜(Kempen)이라고 불렀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92살까지 살면서 주를 위한 수도사로서 경건과 영성을 위하여 일생 힘쓴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지식적으로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겸손>이라 말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일생 주를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가 라틴어로 쓴 <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라는 작품은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묵상되는 책입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헛된 소망과 교만에 관하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사람이나 피조물을 의지하는 것은 허망하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부끄러워 말라. 자신에 대하여 주제 넘는 일을 생각하지 말며 그대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시31:1)그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대의 선한 의도를 도와주실 것이다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지 말며, 다른 사람이 아는 것에도 의지하려 하지도 말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할지니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도우시며 교만한 자를 천하게 여기신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항상 당신의 뜻에 무엇이 정말로 즐거운 것인가를 묻게 하소서. " 우리는 세상에서 분주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번쯤 분주한 세상 일을 멈추고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지금 나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주한 삶을 잠깐 뒤로하고 손 모아 주님께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
|
| 157행복지수 | 2018-03-11 |
| UN 산하 세계인의 행복지수를 연구하는 지속가능개발연대(SDSN)기관이 있습니다. 매년 3월에 각 나라의 행복지수를 발표합니다. 2017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의 행복지수 1위는 노르웨이, 2위는 덴마크입니다. 한국은 56위 중국 79위이며 155위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입니다. 행복지수를 평가하는 내용은 각 나라의 GNP, 건강과 수명, 직업 선택의 자유, 정부와 기업의 신뢰지수 등 여러 항목을 다양하게 분석하여 수치로 표시합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1위와 2위인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말하면서 덴마크의 훼게(Hygge), 노르웨이의 히타(Hytta)의 문화를 들었습니다. <훼게>는 번역하면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웃고 즐기는 것입니다. 집, 공원, 친목모임, 교회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훼게라 말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모여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히타>는 캠핑을 의미하는 오두막을 말합니다. 한국식으로는 별장의 의미가 있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문명과 동떨어진 곳의 외딴집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휴식의 시간을 가지며 삶을 힐링 하는 것으로 행복해합니다. 물론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지수는 언제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일입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의 최인철 교수는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사람 옆으로 가라> 말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덴마크인들의 <훼게>의 공동체처럼 우리도 만나면 마음껏 즐겁게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동행,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서로 인사하며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10년이 넘은 친구처럼 즐거운 대화가 있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서로 인사합시다. 예수 안에서 동일하게 구원받은 형제요 자매로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대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 (신 33: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