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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성공보다는 소명의 삶 | 2017-12-24 |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1365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성공요소 1순위>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41%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으로 1위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인맥과 대인관계 능력’ 13.8%, ‘개인의 역량’ 13.7%, ‘학벌 출신학교’ 8.5%, ‘성실성’ 5.1% 순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고 답했습니다. 10년 전 2007년에는 <직장 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한 요건>에 대한 응답자의 27.6%가 ‘일에 대한 열정’이 1순위였습니다. 이어 ‘일에 대한 적성’(23.8%), ‘상사와의 관계’(11.2%), ‘건강’(9.2%), ‘인맥’(7.8%), 등의 순이었습니다. 2011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개인들이 갖춰야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직장인들은 ‘학벌’(23.4%)을 꼽았다. 이어 ‘경제적 뒷받침’(21.6%), ‘외모’(20.3%), ‘인맥 및 대인관계 능력’(12.5%) ‘집안의 배경’(10.2%)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학벌주의, 인맥을 성공의 요소로 꼽았지만 이제는 점점 출신 집안과 부모의 역할이 성공요소의 1순위로 꼽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그래도 10년 전 ‘일에 대한 열정’이 성공요소의 1순위로 꼽을 때가 더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에 대한 깊은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성공에 있기에 성경을 읽으면서도 베드로의 고난과 순교보다 한 번 설교로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숫자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믿음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보다 믿음의 승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그가 쓴 <소명Calling>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성공보다는 소명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무엇이 인생의 목적인지 모르고 돈버는 일에만 전념하며 살다가 어느 날 돈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깨달을 때 마음에 후회하는 허탈감은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인생의 궁극적 존재 이유의 정답은 <소명-calling>에 있습니다. 소명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로부터 부름 받았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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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성경이 기준입니다 | 2017-12-17 |
우리에게 <1만 시간의 법칙><다윗과 골리앗-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로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유명한 전자회사의 헤드폰의 상태를 실험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학생들을 선발하여 3그룹으로 나누어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1) 한 그룹은 노래를 들을 때 고개를 상하로 흔들 라고 했습니다. (2) 그리고 다른 그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라고 했습니다. (3) 남은 한 그룹은 노래를 들으면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들은 후 대학 등록금을 750달러 인상해야 한다는 어느 강사의 논설문을 들려주었습니다. 실험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짤막한 설문지가 주었습니다. 노래와 고개를 흔드는 효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등록금 인상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실험 결과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1) 고개를 상하로 흔든 사람들은 긍정의 효과로 대학 등록금을 인상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2) 고개를 좌우로 흔든 학생들은 부정의 효과로 등록금 인상에 반대를 했습니다. (3) 몸을 흔들지 않은 사람들은 논설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표면상 전혀 다른 이유에서 고개를 상하로 흔들면서 긍정하는 뜻의 몸짓을 한 학생들이 노래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하여 긍정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 사람이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할 때 판단자의 환경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자신의 지식과 신념, 성격과 기질, 자신의 이익과 손해, 그리고 주변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또한 자신의 입장에서 주관적 판단을 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은 객관적이며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의 주장을 꺾고 싶은 이기심과 자존심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판단보다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가 항상 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상황 판단의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논쟁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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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거듭난 사람 | 2017-12-10 |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그런데 거듭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거듭남을 영어로 표현하면 Regenerated (다시 생성되다), Born again(다시 태어나다)입니다.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천국-天國)를 함께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인의 관원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율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천국)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10년 20년 30년을 교회에 출석해도 하나님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5-16)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요한 서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 범죄하지 않는다, (2) 서로 사랑한다, (3)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합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3:9)” “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5:1)”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일5:4)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으로 세상을 승리하며 천국을 누리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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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 2017-11-12 |
바다에서 싸우는 해전(海戰)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해전이 있습니다. 살라미스 해전, 칼레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입니다. 이들 3대 해전은 치열한 전투이면서 한편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해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 3대 해전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4대 해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 추가된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싸운 명량 해전입니다. 명량해전 당시 출정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이순신 장군이 “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으며,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난중일기 정유년 9. 15)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싸움에 임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강조한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하여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를 외치며 죽기를 각오하고 도전하여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복음 안에서 은혜를 받았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리디머 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팀 켈러 목사님은 우리의 삶의 변화를 2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는 <도덕주의적 행동변화>입니다. 이는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심판다고 믿기에 심판을 두려워하여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동기가 악행을 하면 다음에 나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 두려워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적 행동 변화>입니다. 이는 은혜로 구원 얻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감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동기가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은혜 받은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변화는 첫 번째의 도덕주의의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복음적 행동의 변화>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 교훈주의로 삶을 산다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일시적이며 즉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 받았기에 우리는 지속적이며 영원한 기쁨의 삶이며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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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무제(無題) | 2017-11-05 |
거리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렸더니 멋진 동네 산다고 댓글이 붙었습니다. 몇 장 더 찍어서 올리려다 참았습니다. 자랑 질하는 것 같고,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 같고, 한가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 같아 참았습니다. 하지만 일산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거리의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설악산, 내장산 단풍을 보고 돌아와 일산의 거리를 보는 것은 마치 부잣집 도련님이 화려한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 잊었던 순박한 옆집 순이가 반기듯이 일산의 가을은 옆집 순이처럼 그렇게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단풍잎, 낙엽, 옆집 순이의 단어가 생각나 언젠가 읽었던 머릿속의 기억을 더듬어 <서시><별헤는 밤>으로 유명한 윤동주의 시를 찾았습니다. 찾고 보니 제목이 <소년>이었습니다. < 소 년 > - 윤동주 -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순이의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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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종교개혁(the Reformation) | 2017-10-29 |
오늘은 500주년 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영어로 the Reformation 라고 씁니다. 종교개혁의 Reformation는 항상 대문자로 씁니다.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유럽 역사에서 워낙 큰 사건이기에 때문에 정관사(the)를 붙인 대문자(Reformation)로 표기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타 종교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기독교만의 전용 용어가 아니라 불교도, 이슬람도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하여 기독교의 종교개혁(the Reformation) 과 구분하기 위하여 소문자로 종교개혁(reformation)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기독교만의 용어가 아니라는 비판이 일어나자 중립적 용어로 <기독교개혁 Protestant Reformation> 또는 <교회개혁 church reformation>이라고도 쓰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단어 Reformation는 다시(Re)+ 형태(form)의 뜻으로 본래의 형태를 부수고 바르게 형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의 <개혁 改革>이라는 말은 “기구나 제도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침”로 해석됩니다. 이 말은 고친다는 “개”(改)와 가죽이라는 “혁”(革)이라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가죽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하는 작업은 가죽을 만드는 과정처럼 어려운 과정입니다. 어떤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개혁한다는 것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죽을 만들려면 동물을 잡아 얻은 생가죽에 기름을 빼는 무두질이 필요합니다. 생가죽을 물과 화공약품에 담그고 때리는 무두질이 없으면 가죽은 뻣뻣하여 쓸 수 없게 됩니다. 무두질은 끈질긴 작업이며 기다리는 작업입니다. 이처럼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가죽에 무두질을 하듯 종교개혁은 생명을 건 투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은 유럽의 역사 속에 위대한 사건이며 타락한 교회를 바르게 고치는 거대한 작업이기에 용어가 고유명사화 되었습니다. 또한 가죽을 만드는 작업처럼 어려운 작업이기에 순교를 각오한 끈질긴 작업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종교개혁을 500년 전의 단회적 사건으로 보지 말고 날마다 계속되는 개혁의 작업으로 우리마음을 가죽 만드는 어려운 작업처럼 날마다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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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위그노(Huguenot) | 2017-10-22 |
종교개혁 500주년 되는 해의 10월입니다. 몇 차례 소개했던 위그노를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에 대하여 들어 봤을 것입니다. 루이14세는 “짐이 곧 국가다 (Ltat, cest moi)”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왕입니다. 그는 자신을 지상에서 신의 대행자라 하여 왕권신수설을 믿던 왕입니다. 그는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종교>라는 정책을 실천하므로 프랑스에서 개신교들을 핍박한 왕입니다. 루이14세는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의 치열한 위그노전쟁으로 얻어낸 화해의 <낭뜨 칙령>을 하루아침에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인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유럽의 각 지역으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당시 영국으로 6만 명, 아일랜드 1만 명, 네덜란드 6만5천명, 독일 3만 명, 스위스 2만2천 명, 노르웨이 덴마크등 북유럽 수천명, 신대륙 미국으로 1만 명이 이민을 갔습니다. 본래 <위그노 Huguenot>라는 말은 <동맹 공동체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신앙 공동체의 프랑스 사람들 부르는 말입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당시 제철, 염료, 화학의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국의 찰스 2세는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특별 이민법을 제정하기까지 합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독일로 들어간 사람들은 독일의 기계 기술력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스위스로 들어간 사람들은 시계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시계의 명품의 상징인 롤렉스, 오메가, 론진, 삐아제 시계는 이들이 발전시킨 것들입니다. 영국, 독일, 스위스 뿐 아니라 18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화약과 총포의 기술을 보급시킵니다. 우리는 미국을 1620년 청교도들이 건너가 개척한 땅으로 흔히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580년대에 이미 미국에 정착한 산업기술의 위그노들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오늘의 우리는 위그노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개혁주의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위그노처럼 바른 신앙과 모든 일에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는 위그노가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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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위기의 시대, 인재양성에서 길을 찾다. | 2017-10-15 |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5월16일에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입니다. 소래교회의 시작은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상륜, 서경조 형제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입니다. 소래교회는 교회부흥 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주일학교를 시작했고 1895년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해서제일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해서제일학교>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브란스 의대 제1회 출신으로 최초의 의사이며 독립 운동가인 김필순 선생, 서상륜의 사위로 세브란스 제1회 출신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홍종은 선생, 서경조의 장남으로 세브란스 제2회 출신 서광호, 중국 남경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운동과 경신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서병호 선생,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박헌식 선생, 평생을 세브란스에서 의대생들을 가르쳤으며 연세대학교부총장 원자력병원장과 유한공전재단이사장을 역임한 의학박사 김명선 선생, 그 밖에도 의사인 조광현, 최창수, 박상근, 박승원, 홍순각, 고명우 선생이 있으며 군인으로 활동한 김경선 장군, 여성으로 동경유학생 2.8독립선언을 주도했고 귀국 후 독립운동을 한 김마리아 선생, 미국 콜롬비아대학 졸업후 수피아 여고와 서울 정신여고 교장을 지낸 김필례 선생, 남궁혁 박사의 부인으로 여성독립운동가인 김함라 선생, 김규식 선생의 부인으로 독립운동을 한 김순애 선생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황해도 소래교회의 <해서제일학교>가 인재양성을 한 것처럼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선천의 <신성학교> 역시 기독교 인재들을 양성한 학교입니다. 오산학교 출신으로 주기철 목사, 한경직 목사, 시인 김소월, 화가 이중섭, 인제대학의 백인제 박사, 함석헌 선생 등이 있습니다. 선천의 <신성학교> 출신들을 보면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 서울대 총장 장리욱 박사, 의사 장기려 박사, 차병원 차경섭 박사,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 신학의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방지일 목사 등이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 인재양성으로 미래를 열어간 <해서제일학교><오산 학교><신성학교>처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오늘의 영적위기에서 우리의 선조들처럼 인재양성에서 길을 찾고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어 인재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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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샬롬 | 2017-10-08 |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샬롬>이라는 말로 인사를 합니다. 샬롬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 언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샬롬(shalom)을 대부분 <평화>라고 번역하는데 간혹 <형통>이라는 말로 번역을 한 곳도 있습니다(시73:3). 구약성경의 샬롬은 동사 샬람(shalam), <평화를 주다>에서 온 말입니다. 샬람은 아카디어 샬라무(shalamu)인데 “건강하다, 완전하다, 평화롭다”는 말로 정치적으로 평안한 상태, 즉 전쟁이 그치고 이웃 국가와 화친의 상태를 <샬라무>라고 표현합니다. 샬람무의 평화는 원시사회에서 이웃과 원한 관계가 없이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샬롬은 전쟁이 없는 평안한 상태를 표현하는 히브리 언어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샬롬(평화, 안식)의 땅을 들어간다고 표현합니다. 레위기 26장 6절에 보면 “내가 그 땅에 평화(샬롬)를 줄 것인즉 -- ” 대적의 칼과 사나운 짐승이 해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보호하신다고 기록합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샬롬을 누리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샬롬의 땅으로 들어가 샬롬을 누리지 못합니다. 총신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는 김지찬 교수는 구약의 사사시대를 말할 때 “ 샬롬(평화, 안식)의 땅에서 엔샬롬(평화 없음)을 경험하는 슬프고 암울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샬롬(평화.안식)의 땅에서 엔살롬(평화.안식없음)을 경험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가나안 종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나안의 부족들과 전쟁을 하는 400년의 사사시대가 온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가 복잡하고 어렵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무력으로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파괴하겠다고 합니다. 평화의 <샬롬>이 깨진 <엔샬롬>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샬롬”을 기다리며 관계개선을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엔샬롬의 전쟁보다는 샬롬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의 소식이 샬롬이 깨지고 엔샬롬이 될 때 우리는 더욱 기도하며 샬롬을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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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용기 있는 결단 | 2017-10-01 |
인생을 살다보면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날이 있습니다. 지금의 나의 삶이 행복한 삶인가? 성공적 인생의 삶인가?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인데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또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에 따른 순종의 삶인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많은 질문을 해봅니다. 어느 때는 현재보다 더 멋진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먹어보지만 용기가 없어 결단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1947년 미국의 석유와 은행의 재벌인 멜런(역대 미국의 부자 5위) 집안의 막내 아들인 래리머 멜런(1910-1989)은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다가 <라이프>지에 실린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나도 이처럼 살고 싶다 생각하고 의학공부를 시작하여 의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남미 아이티(Haiti)의 산속 마을 아티보니티(Artibenitc)로 갑니다. 멜런은 슈바이처 박사의 기사를 읽고 용기 있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 라는 책을 쓴 고든 맥도널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중간 점검>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을 방향으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라고 합니다. “떠나라, 따르라, 뻗어 나가라”는 말로 인생의 궤도 수정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궤도를 수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려면 현재의 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크리소스톰 (John Chrysostom 349년경 ? 407년 초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말처럼, 가장 먼저 현재의 나를 포기 것으로부터 출발하라고 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1)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이 갈대아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발하는 것처럼 인생 궤도를 수정하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하여 떠나는 것은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2017년 가을, 우리 모두 용기 있는 결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는 큰 결단을 하지 못한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 참석, 전도하기, 수요,금요기도회, 목장예배, 매일 성경읽기, 자녀와 함께하기, 아내와 대화하기, 독서하기, 운동하기, 친구 이야기 들어주기, 사랑하기, 칭찬하기, 감사하기, 등등 새로운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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