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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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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윤동주 시인의 팔복(八福) 2023-09-24
윤동주(1917-1945) 시인은 일제 강점기 은진중학교 시절부터 시(詩)를 썼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에 저항 시를 쓰며 독립운동을 한 것은 스승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명동학교에서 자라며 민족정신을 가지게 되었고, 은진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신 명희조(明羲朝) 선생님의 영향으로 일본에 항거하는 저항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명희조 선생은 동경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하신 분인데 유학 시절 일본인에게 돈을 낼 수 없다 하여 전철을 타지 않았을 정도로 일본을 싫어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 20세의 나이로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공부하면서 최현배, 손진태, 리양하 등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민족정신을 배웠습니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하였습니다. 유학 시절 독립운동을 했고, 한글로 시를 쓴 것 때문에 체포되었습니다. 1944년 3월 31일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죄’로 징역 2년을 판결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못 견디어 1945년 2월 해방을 앞두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27살의 짧은 인생의 삶을 살았어도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시(序詩)>, <자화상>, <별 헤는 밤>, <십자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지은 <정다운 고향> 등이 있습니다. 특히 마5:3-12절을 제목에 붙인 <팔복(八福)>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팔복(八福) -마5:3-1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寧遠)히 슬플 것이요 - 윤 동 주 -
마태복음 5장의 본문의 팔복을 몰라서 윤동주 시인이 ‘슬퍼하는 자 복이 있나니’라고 여덟 번을 강조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민족적으로 슬퍼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하며 풍자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민족의 아픔을 산상수훈의 팔복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얼마나 절망적이며 슬픔의 현실이면 영원한 슬픔이라고 표현했을까? 팔복을 강론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당시 절망하는 민족적 슬픔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431분열을 넘어 일치하는 교회 2023-09-17
1907년 9월 17일 제1회 평양신학교 졸업생 7명은 졸업과 동시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장로교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으려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소속 교단의 노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청빙하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이들 7명이 속한 교단은 ‘대한예수교 장로회’이며 노회는 ‘독노회’였습니다. 이들을 가르친 평양신학교 교수들은 미국의 북장로교, 남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호주 장로교 등 4개 장로교 선교사였습니다. 4개 장로교 선교사들은 각기 자기들의 선교 업적으로 한국에 신학교를 세워 목사안수를 주어 소속 교단에 속하게 하고, 본부에 보고하는 것은 당시 선교사들의 큰 업적이며 자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4개국 선교사들은 7명의 목사를 각기 자신들의 나라에 속한 목사로 하지 않고 <대한 예수교 장로회>라는 하나의 교단을 만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한국교회는 하나로 하자는 큰 명제 아래 기도하며 화합했고 결국 하나의 한국 장로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이 문제로 선교사들은 분열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San Francesco1181-1226)의 평화를 위한 기도문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여! /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 오늘 강조하고 싶은 기도문의 내용은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입니다. 분열(分裂)은 찢어져 나뉘는 것, 갈라져 나뉘는 것, 서로 뜻을 내세워 미워하고 갈등하면서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갈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의 44대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입니다. 그는 재임 기간 ‘갈등과 불화를 넘어 만인은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희망의 땅 미국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으로 분열된 모습,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빈부의 갈등 등 분열의 모습이 있습니다. 교회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분열이 있습니다. 이제는 화해와 일치, 사랑과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참된교회는 분열의 다툼을 넘어 화해와 일치가 있기를 바랍니다.
430예배를 회복하자 2023-09-10
최근 매스컴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경제회복(經濟回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경제회복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경제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경제발전, 성장, 부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경제회복, 경기회복이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경제회복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보면 옛날에 좋았던 경제 시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좋지 않으니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주 경제회복, 경기회복, 건강회복, 관계회복, 원상회복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쓰는 회복(回復)이라는 단어는 ‘물길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다’는 회(回)와 ‘다시 거듭되다’는 뜻인 복(腹)의 합성어입니다. 2022년 제23회 세계지식포럼(WKF 2022 - The World Knowledge Forum)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주제가 ‘초과회복(Supercompensation)’이었습니다. 이 말은 운동선수가 체력강화를 위하여 고강도 트레이닝 한 후 휴식하면 체력이 회복되는데 처음 훈련 시작 때보다 체력이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회복>이라는 말을 신앙에 적용시킨다면 지금의 잘못된 신앙의 상태에서 옛날의 바른 신앙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건 회복, 예배 회복, 기도 회복, 은혜로운 마음 회복 하나님과 관계 회복, 성도와 바른 관계 회복, 등 여러 가지 단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으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 가운데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너진 예배를 바로 세우는 예배 회복이 필요합니다. 예배 회복은 우리에게 코로나 이전보다 더 회복되는 초과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2023년 9월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는 시의 표현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때에 무엇보다 우리는 이 가을에 우리의 경건에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기도가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고, 사랑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나은 회복인 <초과회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2)
429동행(同行) 2023-09-03
지난 22일 세계적인 가수 셀린 디온(Celine Dion)의 남편 르네 앙젤릴(Rene Angelil)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캐나다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캐나다 국민장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습니다. 르네 앙젤릴(Rene Angelil)은 세계적인 가수 셀린 디온을 길러내 매니저이며 그녀의 남편입니다. 그가 처음 그녀를 만나 것은 셀린 디온이 12살 때입니다. 처음 그녀의 테이프를 듣고 앨범을 제작하는데 비용이 없어 자신의 집을 저당 잡혀 비용을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후 셀린 디온은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창력의 휘트니 휴스턴, 음색의 머라이어 캐리, 기교의 셀린 디온을 '3대 디바'로 부릅니다. 셀린 디온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내 심장은 계속 뛸 것이다”(My heart will go on)는 주인공들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콜로세움 공연장에서 5년 동안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기었고 라스베가스 공연 수입만 720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습니다. 2017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녀의 음반 판매량은 2억장이 넘고 여러 가지 수상경력은 170회가 넘습니다.
셀린 디온은 1994년 그녀를 길러준 매니저 르네 앙젤릴과 결혼을 합니다. 당시 르네 앙젤릴은 그녀보다 26살의 연상인 52살이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그녀의 남편인 르네 앙젤리이 후두암이 걸리게 됩니다. 그 후 투병생활을 하다가 금년에 죽게 되었습니다. 셀린 디온은 남편의 병상을 지키기 위하여 1914년 8월부터 공연을 중단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중단합니다. 전 세계 공연 일정을 취소합니다. 공연일정을 취소하면서 “ 나의 모든 힘을 남편의 치료에 바치고 싶다. 내게는 지금 이 시간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쏟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후두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입니다. 이제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제가 갚을 차례입니다." 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모든 인기와 돈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남편이 아플 때 곁에서 함께하는 아내의 모습은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133:1)
428침묵의 시간 2023-08-27
몇 년 전 실었던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 속의 글을 인용하여 <침묵>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오늘 다시 침묵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침묵(沈默)이라는 단어는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침(沈)은 ‘가라앉을 몰’의 뜻을 가진 한자어입니다. 묵(?)은 ‘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상태를 침묵이라 말합니다. 즉 침묵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마음에 가라앉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몰라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sil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은 조용히 말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것보다도 침묵하는 것이 더 좋다는 뜻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침묵은 말보다 웅변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 잠언에도 침묵하지 않고 떠들며 한담(閑談)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며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침묵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의 덕목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 는 ‘조용한 침묵’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일이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세미하기 때문에 조용한 침묵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오직 주님만 위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번쯤 분주한 세상일을 멈추고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조용한 침묵으로 두 손 모아 주님께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14)
427광복절(光復節)을 맞이하여 2023-08-20
지난 8월 15일은 제78주년 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지난해에 광복절 기념 주일 글을 수정하여 다시 한번 씁니다. 광복(光復)은 1910. 8. 29. 일본의 강압적 조약인 한일병탄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지 35년 만에 1945. 8. 15 나라의 주권을 회복한 날입니다. 일제강점기 35년 시간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분에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핍박과 순교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35년 강점기에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주체가 되어 나라의 독립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오점도 남겼습니다. 신사참배(神社參拜)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으로 강요한 것으로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Shintoism)의 사원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을 지어 기독교인을 참배시키므로 우리나라의 국민정신을 일본화하려는 잔인한 정책입니다. 신사참배 가결 당시 장로교 총회는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조선예수교장로교 27회 총회로 목사 86명, 선교사 22명, 장로 85명 총대 합이 193명 모여 개회를 했습니다. 일제의 감시 속에 첫날부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둘째 날, 총회장은 홍택기 목사는 신사참배 결의안을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당일 총대들은 평양에 있는 신사를 찾아 참배했습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역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사님이 다 신사참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등 많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경남노회>는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당시 노회장 <최상림 목사님>은 1938년부터 일제의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어지자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목사님은 49회의 반복되는 수감생활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시고 1945년 5월 순교하셨습니다. 78주년 광복 기념 주일에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어떻게 나라 사랑을 실천했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나라 사랑의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 갈등이 많은 시대입니다. 남북이 분열되었고 세대간 갈등, 지역, 이념,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통일된 마음으로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 사랑을 실천합시다.
426우상(偶像 idol) 2023-08-13
많은 신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옵니다.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그모스, 몰렉, 밀곰, 다곤, 벨, 마르둑, 쓰스, 허메, 아데미 등 등입니다. 이들 신들은 각각의 능력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전쟁의 신, 폭풍우 신, 태양의 신, 다산과 풍요, 홍수와 강의 신입니다. 그 가운데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알을 보면, 히브리어로 ?????? (바알)로 표기하며 영어로 바알 Baal 이라고 씁니다. 바알의 뜻은 ‘주인’입니다. 남성이며, 가나안 부족의 대표 신(神)입니다. 바알은 풍요와 다산의 신이며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또한 아세라(Asherah), 아스다롯은 바알의 아내이며 여성 신입니다. 아세라는 나무로 만들었기에 아세라 목상(木像)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외에 여러 신들은 한마디로 우상(偶像 idol)이라고 부릅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든 신(神)이기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열왕기 18장에 이스라엘의 아합왕 당시 갈멜산에서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신과 대결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 제사장 400이 함께 제단을 쌓고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왜야하면 바알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115편에 우상은 금, 은을 가지고 인간이 손으로 만들었기에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내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구약 십계명에 하나님의 백성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우상은 바알, 아세라, 몰렉, 다곤, 금송아지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골로새서 5장에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이나, 내적으로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 모두가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길 때 축복이 있습니다. 오직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258월에 기억할 일 2023-08-06
오늘은 8월 첫째 주일입니다. 8월에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한일병탄이 일어난 달이며, 해방을 맞이한 광복절이 있는 달입니다. 1910년 8월 22일에 한일병탄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이완용 내각이 순종을 형식상 배석시켜 놓고 어전회의에서 한일병탄을 의결했습니다. 이후 1주일간 국민적 저항이 두려워 공포하지 않다가 8월 29일에 공포하게 되었고 한일병탄의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주권을 빼앗간 일본은 조선을 일본화하는 작업을 교묘히 진행했습니다. 교육언어를 일본어로 관공서에서 일본어를 쓰게 했고, 창씨개명, 국가 경제 수탈, 그리고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폐간했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기독교를 강하게 핍박했습니다. 내적으로는 이렇게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일본화하면서 겉으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했습니다. 내선일체는 일본을 내지(內地)라 부르고 한국을 외지(外地)하면서 조선(朝鮮)의 선(鮮)를 붙여 내선일체라고 외쳤다. 어찌 들으면 좋은 말인 것 같다. 일본과 조선이 차등 없이 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내선일체라는 말은 강제로 국가의 주권을 빼앗아 간 일본이 조선의 정신과 문화와 민족 말살 정책을 펴는 말이다.
언제나 지배계급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강조하면서 일치(一致), 연합(聯合)이라는 말을 할 때, 피지배계급의 약한 대중은 그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고 권력 앞에 아부하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언어마저 버리게 된다. 필리핀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일, 인도가 영국 지배를 받아 영어를 쓰는 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프랑스어를 쓰는 일은 권력자들이 힘없는 국민에게 강압적으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선일체를 강조하면서 일본어 공용어, 교육언어로 사용할 때 교회는 한글로 된 성경을 보급하며 가르쳤다. 어려운 가운데도 교회는 설교를 한국어로 했으며 한글로 된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8월 한일병탄을 기억하고, 해방의 광복절을 기억하면서 고난의 일제강점기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3.1만세, 신사참배 반대, 교회에서 한글로 된 성경을 보급하고 가르친 일을 기억합시다. 또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잊지 말고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24천국을 바라보는 삶 2023-07-30
몇 년 전 주보 칼럼에 소개했던 미국 심리학자 큐블러-로스(Kubler-Ross, 1926-2004)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에 수용하기까지를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사람이 의사로부터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선고를 받으면 다음의 5단계로 수용하게 됩니다. 1. 부정(Denial) : 죽음에 대한 의학적 판명을 받으면 사람들은 일단 부정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부정합니다. 2. 분노(Anger) :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소리치며 떠들며 주변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께 분노를 표출합니다. 3. 타협(Bargaining): 분노 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일부 받아들이며 혼자 타협안을 내놓게 됩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직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협상합니다. 4. 우울(Depression) 결국 하나님과의 협상도 어떤 서원도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삶을 포기하며 우울해합니다. 이쯤 되면 말이 적어지고 사람을 기피하고 웃음을 잃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단계가 우울의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5. 수용(Acceptance)입니다. 모든 감정을 정리하면서 어떤 방법이든 마음에 받아들이며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과 그간의 삶을 말합니다. 수용의 단계가 빠르게 오는 사람들도 있고 분노와 우울한 시간이 길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죽음에 대한 5단계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면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게 됩니다. 죽음뿐 아니라 우리는 크고 작은 고난에 직면해도 일단은 부정하고 분노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소리치며 치받는 기도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죽음 앞에 초연해야 합니다. 왜야하면 이 세상은 잠깐의 나그네 인생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돌아갈 영원한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만약 의사로부터 죽음을 통보받으면 빠르게 수용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영원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423이름(Name) 2023-07-23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Seoul)입니다.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신라의 서울(수도)은 서라벌, 고려의 서울은 개성, 조선의 서울은 한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을 시대적으로 볼 때 백제 시대는 위례성이라 했고 고려 시대는 남경, 조선은 한양이라 불렀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성(城)을 쌓고 이름을 붙일 때는 기억하고자 하는 고유한 뜻이 있습니다. 백제의 위례성(慰禮城)은 예(禮)를 다하는 성, 울타리, 혹은 큰 성이라는 뜻입니다. 고려의 개성(開城)을 동비홀, 두비구루라 했는데 <열린 성>이라는 뜻입니다. 한양은 크다, 많다는 뜻이며 한양에 성을 쌓았다는 뜻으로 한성(漢城)이라 불렀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건설하고 성(城)을 만들고 이름을 붙일 때는 기념하고 오래 기억 하고자 하는 고유한 뜻이 있습니다.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주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기념하여 ‘처녀 여왕’을 상징하는 버진(Virgin)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샌디에고(San Diego)는 스페인어의 성자(San 聖) 야고보를 기억하고 붙인 이름입니다. 로마(Rumon)는 테베레강의 옛 이름으로 '흐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동사에서 왔습니다.
성경에도 고유한 뜻을 가진 이름과 뜻을 기리는 성(城)의 명칭이 나옵니다. 창세기 4장에 타락한 아담의 아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쪽에 <놋> 땅에 거주했다고 나옵니다. 놋이라는 말은 <방랑자, 방황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며 방랑자의 삶을 사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아들의 이름을 높입니다. 그는 성을 쌓고 아들 이름으로 <에녹>이라 했습니다. 에녹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봉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가인은 도시를 건설하고 아들에게 봉헌하는 불신앙의 대표가 됩니다. 그러나 가인의 동생 <셋>은 아들 이름을 <에노스>라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4:26). 가인처럼 여호와를 떠난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 주께 영광 돌리는 이름 붙이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을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