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 menu line

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412스키너 (Amy Skinner) 선교사 2023-04-30
주간에 노회 교육부 행사가 있어 통영(統營)에 다녀왔습니다. 통영은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을 합치면서 통영시가 되었습니다. 통영에 갈 때마다 찾아보는 곳이 있습니다. 세병관(洗兵館), 충무교회, 음악가 윤이상 기념관입니다. 통영의 세병관은 임진왜란 이후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어 있던 곳입니다. 삼도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삼도에 있는 해군을 총지휘 하는 곳으로 지금의 해군 사령부 같은 곳입니다.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여서 <통영>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세병관이란 무기를 잘 씻어 보관한다는 뜻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관아의 객사입니다. 세병(洗兵)관을 들어설 때 망일루를 지나 지과문(止戈門)을 통과합니다. 지과문은 전쟁을 상징하는 “창(戈과)을 내려놓았다(止지)”는 뜻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문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의 갈등과 불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과문을 통과하면서 모든 갈등을 내려놓고 잠시 마음의 평화를 가져보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입니다.
세병관을 내려오면 바로 앞에 충무교회가 있습니다. 충무교회는 1905년 호주 선교사 아담슨(孫安路 A.Adamson) 선교사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통영은 1894년 호주 선교부 무어 선교사가 순회 방문함으로 복음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아담슨을 비롯하여 24명의 선교사들이 교육과 의료, 항일민족운동, 사회사업 등을 했으며 무엇보다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특히 충무교회를 중심으로 세워진 진명유치원-진명야학교-진명 강습소를 통하여 일제 강점기 때 충무지역의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스키너(Amy Skinner) 여자 선교사님은 진명유치원, 진명학교에서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윤이상 선생은 독일 유학 전 충무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했습니다. 토지의 박경리, 김춘수, 청마 유치환 시인 등이 어린 시절 진명유치원을 다녔습니다. 우리는 지방 여행을 할 때 조금만 생각하면 조상들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역사 현장과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면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특히 선교 현장에는 선교사님들의 열정과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게 됩니다. 지방을 다녀올 때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역사적 선교 현장의 교회들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411외로움 2023-04-23
주간에 헌당, 임직, 은퇴를 준비하다 보니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마음이 분주하니 조용히 앉아 칼럼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20년 동안 주보에 목회 칼럼을 매주 쓰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느 주간에는 할 수 없이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반복해 올립니다. 이런 주간에는 목회자로 분주한 마음을 여러분에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금주에도 할 수 없이 다시 한번 <외롭고 우울할 때>라는 글을 반복해서 올립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1950년에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미국 시민의식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외부지향형으로 분류합니다. 그 가운데 외부지향적 인간은 친구와 직장동료들과 기타 주변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사귀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리스먼은 아무리 많은 사람과 사귀며 사는 외부지향적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홀로 외로워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대중 속에 고독>이라고 표현합니다. 한국교회에 잘 알려진 라르쉬 공동체(L'Arche Community)의 헨리 나우웬 역시 <영적 발돋움 The Three Movements of the Spiritual Life>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그러기에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격려해주고 함께 나누어 주려고 해도 궁극적 외로움을 탈출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가슴을 후비는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없으므로 더욱 외로워합니다. 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 하며 한바탕 왁자지껄 놀다가도 돌아갈 때는 혼자입니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현실의 우울감이 우리를 고민스럽게 한다면 목회자로 권면합니다. 차라리 그러면 “외로움을 수용하십시오”. 고요한 고독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고요한 고독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성도 여러분 어쩔 수 없이 혼자 걷는 인생길이라면 차라리 수용하고 힘을 내십시오. 고독한 인생길 주님은 우리와 동행(同行)하십니다. 우리를 결단코 혼자 외롭게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410예배당 봉헌 감사예배 2023-04-16
유럽에는 도시마다 웅장하고 유명한 건축양식의 대성당들이 있습니다. 로마의 바티칸에 성 베드로 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성당, 프랑스 파리에 노트르담 성당 등입니다. 이들 성당은 오래된 건축물의 역사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특징과 시대적 건축양식을 나타내며 건물의 웅장함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탄성을 자아냅니다. 본래 초기 성당 건축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미사(Mass)가 제일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가들의 예술성이 성당의 건축에 작용하면서 인간의 교만과 경쟁심으로 건축비용이 많아지고 기간도 몇 백년 씩 걸리게 되었습니다. 성당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지으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인 예배보다 건축물을 자랑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떠나 비본질적인 요소가 강조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솔로몬 왕이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7년 동안 건축을 하여 안팎으로 금을 입혔습니다. 내부 장식의 금만 600 달란트 오늘날 무게로 20톤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다는 것입니다. 열왕기 8장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인으로 하늘과 하늘 위에 계신데 어찌 내가 지은 작은 성전에 오시어 머물러 계실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성전에 오시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특히 성전 건축을 다 한 후 봉헌식에 14일간 온 나라 백성들이 모여 제물을 드렸고 함께 기뻐하는 축제의 시간을 가지었습니다.
우리도 교회당을 믿음으로 건축했고, 교육관을 완공하여 하나님께 봉헌 감사예배를 23일 드립니다. 교회당은 예배의 처소이며 기도하는 곳입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가르치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공동체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곳에 예배당을 건축한 것입니다. 분명 우리 참된교회 교회당은 예배의 장소이며 교육의 장소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는 기도처입니다. 23일 오후 3시 교회당봉헌 감사예배에 우리 모두 기쁨으로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서원하는 예물의 봉헌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409희망의 부활주일 2023-04-09
<가을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승현 시인은 아버지가 목사님이십니다. 아버지 목회지를 따라 제주와 광주지역과 평양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습니다. 1934년 21살에 숭실학교 재학 당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동아일보에 게재되면서부터 등단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1951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대학에 재직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김현승 교수의 시 가운데 <부활절에>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 부활절에 >
당신의 핏자국에선 / 꽃이 피어 - 사랑 꽃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 온 천하에 계십니다 - 두루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물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태인의 옛 수의를 벗고
모든 4월의 관(棺)에서 나오십니다.

모든 나라가 / 지금 이것을 믿습니다
증거로는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모든 나라의 합창은 우렁차게 울려 납니다.
해마다 삼월과 사월 사이의 /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서 다시 사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 파릇한 새 목숨의 순(筍)으로....
2023년 부활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 성스러운 부활의 아침에 우리의 믿음이 다시 한번 부활하기를 원합니다. 2천 년 전 스승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절대 절망으로 다가올 때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은 그들에게 새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문제로 절망하는 우리에게 부활의 주님이 새 희망으로 함께 하옵소서!
408희망의 4월 2023-04-02
4월 첫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4월을 <잔인한 4월>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목회 칼럼 글에서 몇 번 언급하면서 그 뜻을 밝혔습니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Eliot)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 -1922년 작품)의 첫머리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4월’(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
시인 T.S 엘리엇(Eliot)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逆說)적인 표현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1922년)를 쓸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이 없는 황무지 같은데 눈치 없는 봄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대지에 비를 뿌리어 꽃을 피우고 희망을 속삭이니 잔인한 4월이라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4월은 대지에 꽃을 피우고 새들은 봄을 노래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 없는 황무지이기에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말하게 된 것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움트는 봄, 파릇파릇 새싹이 무거운 흙덩이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희망의 봄. 진달래, 개나리 꽃소식을 들으며 나물 캐러 동구 밖 들로 나가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봄. 종달새 울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얼었던 마음에 희망을 새싹을 가져오는 봄. 하지만 우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재난 문자와 미세먼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잔인한 4월은 여전합니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벗었지만, 아직도 3월 31일 기준 1일 1만 명이 넘는 신규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환경이 어려워도 전염병의 위기가 닥쳐도 전쟁이 일어나도 비바람이 불어도 4월이 되면 대지 위에 꽃은 필 것입니다. 그러기에 4월은 <희망의 4월>입니다. 4월, 부활절, 우리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희망의 4월에 우리 모두 새롭게 결단하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욥14:7)
407사랑의 눈을 뜨라 2023-03-26
몇 주 전부터 교회 안에 약간의 분쟁이 있는 교회에 임시당회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을 만나보니 참 순수하고 착한 분들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말할 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조금 내려놓고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바라보면 포용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복음의 본질 부분은 같은데 비본질적 요소인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가 조금 다를 뿐입니다. 그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자신들이 얼마나 존귀하고 착하고 가능성 있는 교회공동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문득 박목월 선생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믿음의 흙> - 박목월 -
제비는 진흙을 이겨 집을 짓는다. / 진흙이 무엇을 뜻하는 것임을 모르고
알을 까기 위하여 그것을 이겨 / 집을 짓는 맹목적인 슬기,
진흙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누가 알랴 / 그것을 이겨 눈에 바르고,
보냄을 받은 실로암의 연못에서 / 씻음으로 장님은 눈을 뜬다.
심령의 눈 먼 자여, 영혼의 장님이여 / 안다는 그것으로 눈이 멀고,
보인다는 그것으로 보지 못하는 / 우린 아집 속에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게 하라.
진흙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 제비는 둥우리를 마련하여 알을 까는 믿음.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보냄을 받은 실로암의 / 연못에서 눈을 씻자.
우리는 어리석게도 눈이 멀어 진리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무지의 상태에서 아는 척하는 고집스러운 자기주장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눈먼 사람에게 진흙을 발라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요9:7)하셨습니다. 박목월 선생은 제비가 진흙을 물어다 집을 짓는 것처럼 예수님의 진리의 진흙으로 우리의 무지와 아집의 눈을 뜨라고 합니다. 제가 임시당회장을 맡은 교회나 우리 참된 교회 모든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는 믿음의 눈을 떠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8)
406기도 밖에는 답이 없다 2023-03-19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 목사님은 뉴욕에서 <리디머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신 신학자이며 목회자입니다. 목사님이 저술한 여러 책 중에서 <팀 켈러의 기도>라는 책은 기도에 대하여 바른길로 우리를 안내해 주는 책입니다. 이 책 첫 장 “기도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에서 팀 켈러 목사님이 진정으로 기도하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 책을 집필할 때의 상황은 911테러로 사회적 분위기가 암울하고 집단 정신적 우울증을 알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목사님 아내 캐시(Kathy)는 크론병(소화기관 염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본인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 때였습니다. 이때 어느날 목사님의 아내가 매일 저녁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해봐요, 의사가 약을 주면서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알씩 먹어야 하고 거르면 몇 시간 안에 숨이 끊어진다고 경고하는 거예요. 그런데 깜박할 수 있을까요? 며칠씩 까먹기도 할까요? 아닐 거예요. 목숨이 달린 일이니 잊을 리가 없죠. 빼먹지도 않을 테고요.” 팀 켈러 목사님의 아내가 전해주는 간단한 예화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는 큰 메시지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절박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함성입니다.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기도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절박한 일을 당한 분이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그냥 형식적 권면이 아닙니다. 불치병 환자에게 처방된 매일 밤 약을 복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라는 말처럼 매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즉시 ‘기도하십시오’ 기도밖에 달리 길이 없기에 기도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뿐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적 회복도 기도밖에 길이 없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집무실에 이런 기도문이 걸려 있었습니다. < 오, 하나님의 바다는 너무나 크고, 내 배는 더없이 작습니다 Oh, God The sea is so great and my boat is so small.>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새봄에 새롭게 결단하고 기도하십시오.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희망으로 기도하십시오. 또한 <새 생명 복음 축제> 전도를 위하여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4053월 새봄이 왔습니다(2) 2023-03-12
19세기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와츠(1817~1904)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으며 생전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외롭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최근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망>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구본처럼 생긴 둥근 원이 물 위에 떠 있고, 그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가련하게 보이는 여인이 맨발에 눈을 가린 채 한 줄밖에 없는 작은 현악기를 손에 잡고 연주하려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외줄의 현악기가 쇠사슬에 묶여 있고 또한 외줄은 황금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배경은 청색으로 음산하게 보이며 여인은 파란 실루엣 옷을 몸에 걸쳤으며 웅끄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절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악기를 타려는 여인의 간절함을 희망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은 3사람의 유명한 사람이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인종차별에 맞서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하다 피살된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J. 1926-1968) 목사가 연설에서 와츠의 <희망>이라는 그림을 말하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권운동 운동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가 27년간 감옥에서 와츠의 <희망>의 그림을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자유로운 몸이 되고 억압받는 흑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리라고 다짐했다 하여 왓츠의 <희망>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왓츠의 <희망>을 거론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악기를 연주하려는 열정이 우리에게는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욥기 14:7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처럼 <희망>은 나무가 찍힐지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싹이 나는 것처럼 <희망>은 언제나 우리에게 살아있는 생명의 움직임입니다. 지난 오후 설교에 언급했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황폐한 땅에 도토리를 심는 일은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에스라10:2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아직 인생의 게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희망으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재 상황이 눈을 가린 채 지구본 위에 앉아 외줄의 악기를 타려고 애쓰는 여인처럼 절망일지라고, 3월 새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 희망의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4043월, 봄이 왔습니다. 2023-03-05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이며 매사추세츠 주 렉싱턴의 그레이스 채플에서 40여 년간 목회했던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 쓴 <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처음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1970년 4월 11일 발사된 달 탐사선 아폴로 13호에 갑자기 산소탱크가 폭발하여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궤도를 수정하여 되돌아와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아폴로 13호에서 보낸 “휴스톤 문제가 생겼다(Houston We've Had A Problem)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많이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당시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휴스톤에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긴급회의 끝에 아폴로 13호의 궤도를 수정하여 지구로 귀환시키기로 합니다. 궤도를 수정한 아폴로 13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고든 맥도널드 목사님은 아폴로 13호가 궤도를 수정하여 지구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 인생도 궤도를 수정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궤도를 수정하려면 “휴스톤 문제가 발생했다”라는 말처럼 지금 내 인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길로 나가려는 자세가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궤도수정의 첫걸음은 내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캄캄한 숲속에 있음을 깨닫고 빛 된 곳으로 궤도를 수정하려는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궤도의 수정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가는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 떠나야 하고, (2) 따라야 하고, (3) 뻗어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3월 첫 주일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Shelley)가 쓴 <서풍에 부치는 노래>에서 마지막 구절의 “겨울이 왔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는 시처럼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입니다.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추운 겨울의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나오는 계절입니다. 아가서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일어나 함께 가자“라는 말씀처럼 새롭게 일어나는 계절입니다. 2023년 3월 새봄에 참된교회 성도 여러분 일어나 새롭게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현실이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며 새롭게 희망으로 떠나는 출발이 있기를 바랍니다. 3월 새봄, 희망의 계절, 새로운 도전! 우리 모두 꿈을 향한 도전의 계절입니다.
403다시 시작하는 오후 찬양 예배 2023-02-26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이며 장로교 목회자인 리차드 스틸(R. Steele 1629-1692) 목사님은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실력 있는 목회자입니다. 영국 국교의 공동기도문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 시간에 낭독하지 않았다고 감옥에 갈 정도로 개혁주의 신학에 투철한 목사님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의 경제 윤리>라는 책에서 목사님은 “세상 부자들의 평안함은 가난한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많은 재산 소유는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자선과 친절을 베풀고 주변의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틸 목사님은 1692년 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바른 예배를 강조합니다. 저서 <흐트러짐-예배를 깨트리는 유혹>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예배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 마음에 평화가 오고,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고,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능력을 알고도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탄의 유혹>으로 마음이 흐트러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배자가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기에 예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배 중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온전한 예배를 드릴까? 첫째, 예배에 방해되는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라! 둘째, 이전의 실패를 슬퍼하라! 셋째,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라! 넷째,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그동안 3년간 하나님께 집중하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부자유스러운 모습과 대면(對面) 예배하지 못하고 방송으로 예배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유롭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함께 모여 감동의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배가 흐트러지는 것은 각자가 결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루빨리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을 위하여 3월5일부터 <주일오후 찬양예배>를 다시 시작합니다. 참된 교회 성도 여러분, 시간의 우선순위를 예배에 맞춰 주시기 바랍니다. 예배자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