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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목숨을 바칠 만한 일 | 2016-10-16 |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1902년 12월 16일- 1920년 9월 28일)의 유언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게 된 그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주 영명학교 에 재학중이던 유관순은 1916년 엘리스 샤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교 보통과에 입학하였고, 1919년 고등과 1학년 재학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진천, 청주, 천안, 안성, 병천 등지의 유지들과 교인들에게 알려 4월1일 아우네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동하였습니다. 고향 아우네 장날 만세운동을 주동한 그는 공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1심 재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자 불복하고 항소하여 6월 30일 서울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유관순은 감옥에 수감된 후에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구타를 당하는 일이 많았고 1920년 9월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화학교 의 프라이(Lulu E. Frey)와 월터(Jeanette A. Walter) 선교사는 형무소에 찾아가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이화학교 선교사들이 유관순의 옥중사망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본 당국은 시체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1920년 10월 14일 정동감리교회에서 김종우 목사님이 장례식을 집례하여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후 1936년 일제의 이태원 택지 조성 때 묘지를 무연고 묘지로 처리하여 지금은 무덤을 찾을 수 없습니다.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항일투쟁인 독립만세운동을 외치다 감옥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매우 위대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내 목숨을 바칠 만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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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포기할 수 없는 인생길 | 2016-10-09 |
미국의 <로렌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주관지 <글로브>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는 1985년 건설현장에서 전기 감전 사고로 죽을 뻔하다 살아났습니다. 그 후에도 두 번 더 감전 사고를 겪게 됩니다. 화가 난 로렌스는 건설 회사를 상대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승리를 확신하게 되는데 갑자기 변호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진행하는데 별로 실력이 없어 변호사 비용만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 변호사를 만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던 중 변호사가 로렌스의 아내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갑니다. 너무나 괴로워하던 로렌스는 더 큰 불행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건강검진을 한 의사로부터 암 통보를 받게 됩니다. 병명은 간암 말기라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신약을 복용하기로 하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 집에 와서 약을 복용합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한지 1주일이 지난 후 부작용으로 의식을 잃게 됩니다.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하던 중 밝혀진 것인데 의식을 잃게 된 것은 약의 부작용인데 그는 암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간염을 오진한 것이었습니다. 로렌스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또 다시 강도를 만나 250달러를 빼앗기는 불행의 사건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행의 연속이 그에게 닥쳤지만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나는 그래도 행복 합니다. 왜야하면 세상에는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보다 행복합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갑작스러운 불행이 우리 앞에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어떻게 마음에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불행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불행이 닥치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있다고 인생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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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올바른 만남 | 2016-10-02 |
20세기의 위대한 종교 철학자 중 한 사람 중에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마틴 부버는 유명한 랍비 문헌학자인 솔로몬 부버의 손자로 1878년 비엔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찌기 비엔나. 라이프치히. 베르린. 취리히 지역의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고 공부를 마친 후 그는 독일의 <Die Welt>지의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Die Welt>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유대인들의 권익을 위하여 많은 글을 실었고 유대주의 운동인 시온이즘(Sionism)운동에도 적극 동참했습니다. 독일에서 유대주의 운동을 하던 그는 결국 쫓겨나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 종교사회학 교수로 가게 됩니다. 히브리 대학에서 종교사회학을 강의하면서 부버는 저 유명한 <Ich und Du 나와 너>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가 발표한 <나와 너>(Ich und Du)의 관계철학 사상은 근세 종교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신학자 칼 발트(K.Barth), 폴 틸리히 (P.Tillich), 라인홀드 니버(R.Niebuhr), 에밀 부르너(E.Brunner)등의 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틴 부버의 관계철학<Ich und Du>의 중심사상은 만남과 관계입니다. 부버는 인간의 만남에 있어서 <나>외에 타자(他者)의 만남은 두 가지 만남이 있는데 (1)첫째는 <나와 너 >의 만남이고, (2)다른 하나는 <나와 그것 Es>의 만남입니다. 여기서 <나 와 너 >의 만남은 2인칭의 인격(人格)의 만남이고, <나와 그것 >의 만남은 3인칭의 물격(物格) 즉 사물의 만남으로 봅니다. <나와 너>의 2인칭의 인격적 만남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며 인간의 실존을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3인칭의 <그것 Es>으로 만남은 전혀 다른 의미의 만남입니다. 특히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3인칭의 물격(物格)으로 만난다면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이용하는 만남 됩니다. 즉 하나님을 자기 위안(慰安)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또는 사람과의 만남이 물건처럼 3인칭의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을 물건처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부버가 말하는 3인칭의 물격(物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의 만남의 바람직 관계는 서로 이용하려는 흑심을 버리고 상호 존중하며 배려하는 만남으로 2인칭의 인격적(人格的) 만남이 되어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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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 희 망 > | 2016-09-25 |
<가을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승현 교수는 아버지가 평양에서 목회를 하던 신실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시절 믿음 안에서 자랐으며 늘 기도해 주시던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이기에 작품 쓰는 일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일본에 저항하는 항일의 방법으로 일제 말기에는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는 침묵의 길을 택합니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그는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1951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대학에 재직하면서 많은 시를 남깁니다. 오늘은 김현승 교수의 <희망>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희망>을 황금으로, 별로, 수평선의 기적으로, 사랑으로 표현하며 <희망>으로 인해 시인은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고,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 희망 >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같은 손을 기다리고, 너의 희망/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너의 희망/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너의 희망/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 우리에게 한 번 주어 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神)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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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2016-09-18 |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세월이 강건하면 80년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70-80년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명제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말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를 생각하며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설계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 윤 동 주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 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나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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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 | 2016-09-11 |
유럽의 종교개혁시대의 교육학자인 얀 아모스 코메니우스( Jan Amos Komensky 1592년-1670년)는 체코 출신으로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기독교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12살 때 부모를 잃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1616년 그의 나이 24세에 헤르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고향에서 목회합니다. 그러나 1618년 30년 전쟁으로 고향을 등지고 망명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오랜 망명생활을 한 후 1628년 모라비안 형제들과 함께 폴란드에 정착하여 목사로, 교사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활발한 생활을 합니다. 그 후 영국, 스웨덴, 화란 등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교육학자로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저서 중 <대교수학>, <열려진 언어의 문>, <빛의 길>, <세계도회> 등이 유명합니다. 코메니우스는 30년 전쟁으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1622 년 비극의 상황이 그의 가정에 이르게 됩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그는 은둔처에서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 1623>, <슬픔에 슬픔를, 위로에 위로를 1624 >, <안전의 중심 1625>를 집필하게 됩니다. 이 세권의 책은 코메니우스의 영성을 말해주는 3대 위로의 책으로 꼽힙니다. 그 가운데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은 제목이 말하듯이 온갖 혼돈과 거짓과 불의와 무질서로 가득 찬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통하여 천국의 위로를 받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1부는 <세상의 미로>로 시작하여 제1장에서 “세상으로 순례여행을 떠나는 이유”부터 제35장으로 되어 있고, 제2부는 <마음의 천국>시작하여 제53장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접된 순례자 제54장 결론으로 마칩니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은 코메니우스 자신을 순례자로 표현하면서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크게 절망할 때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천국의 안식을 누림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낙망할 때가 많습니다. 갑작스러운 슬픔이 찾아오는 경우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나 나그네의 순례길에 주님이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편안은 궁극적으로 주님이 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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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팡세(Pensees) - 생각 | 2016-09-04 |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프랑스 출신의 물리학자,수학자, 철학자, 신학자입니다. 파스칼은 39세로 짧은 삶을 살았으나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던 신학자였습니다. 그가 쓴 <팡세(Pensees-생각)>는 파스칼이 죽인 뒤 1670년 유족들이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한 책으로 본래의 제목은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 씨의 팡세(생각)”라는 긴 제목이었지만 <팡세>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팡세는 프랑스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 짐 속에 <팡세> 한 권이 들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책입니다. 팡세의 제1부는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자의 비참을 논하고, 제2부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표현하기를 “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 같지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신을 발견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둘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신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 종류의 사람뿐 아니라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인(義人)이 있고, 또 하나는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罪人)이 있다” 파스칼은 인간을 신(神)과의 관계로 표현하면서 인간이 가지는 신앙은 “신을 직감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심정이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에 직감되는 신, 이것이 곧 신앙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강조한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신을 알 수 있다. 이 매개자가 없으면 신과의 교제는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만다.” 또한 “신을 아는 것과 신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가로놓여 있는가?”로 표현하면서 아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말합니다. 요약하면 인간은 연약한 갈대 같지만 생각하는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파스칼의 <팡세>를 통하여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더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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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자존감 회복 | 2016-08-28 |
미국의 심리학자 머슬러(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주장합니다. 제1단계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제2단계 안전 욕구(Safety Needs), 제3단계 소속감과 애정 욕구(Belongingness and Love Needs), 제4단계 존경욕구(Esteem Needs), 제5단계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입니다. 인간의 욕구충족을 머슬러처럼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려고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인정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헐뜯는 일까지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존감(self-esteem)이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 가치 있고, 훌륭하고,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가치와 성품과 능력과 외모와 행위의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부심을 가지는 감정을 말합니다. 자존감은 타인으로 부터 평가 받기보다 먼저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존감(self-esteem)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의성도 높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편하게 해 주기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열등감이 있어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감정이 우울하며 불안하여 무의식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학대 받거나 너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부모로부터 듣고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존감이 낮은 상태가 되어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자존감이 낮은 경우 자존감을 회복해야합니다. 나는 귀한 존재이며 하나님 나라의 자녀이며,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이며,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감정으로 당당하게 살겠다고 생각는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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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말세지말(末世之末) | 2016-08-21 |
2016년 우리나라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운 여름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노약자들은 외부활동을 삼가라는 재난문자가 매일 날아옵니다. 실재로 경북 하양에서는 8월12일 온도계가 40.3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최고 기온은 1942년 8월 1일 대구에서 관측된 40.0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열대야 기록을 보면 1973년부터 1993년까지 연간 전국 평균 열대야 발생일수는 7.0일에 머물렀지만 1994년부터 2015년까지는 13.8일로 약 2배 늘었습니다. 금년의 열대야 기록일은 23일입니다. 기상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오는 결과입니다. 몇 년 전 AP통신은 <지구의 대반격>이라는 표제의 소식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재해의 현상으로 지진, 홍수, 화산폭발, 산사태, 폭설, 가뭄, 그리고 폭염을 집중 보도하면서 1년 동안 2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구상의 자연재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상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화석연료를 계속 쓴다면 지구 온난화 현상은 더욱 가중 될 것이며 그 결과 자연재해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상황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홍수, 가뭄, 폭설, 기근, 폭염 등이 일어남으로 인류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지구는 우리에게 지구를 살려달라고 많은 메시지를 보냈는데 인간은 지구를 돌보지 않고 화석연료를 계속 태웠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이기적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지구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인류를 향한 대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인류에게 일어나는 폭염과 대지진의 끔찍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경은 이런 현상들이 말세에 일어난다고 예언 했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24: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재해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벧전4:7-8)라고 권면합니다. 말세의 상황에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자져야할까? 베드로 사도의 권면처럼 기도하는 마음과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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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명령에 순종하는 삶 | 2016-08-14 |
임진왜란은 1592년 음력 4월 13일에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는 왜군의 침략에 대비를 하지 못했으므로 전쟁이 시작 된지 20여일 만에 선조는 한양 성을 버리고 개성을 거처 평양과 의주로 피난을 갑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20만 명의 훈련된 군사와 조총을 앞세워 침략을 했기에 승승장구 할 수 있었습니다. 왜군은 이미 자신들의 국내 사정으로 많은 전쟁의 경험이 있었지만 조선은 오랜 기간 평화의 시대였기에 군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실전 경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 남해를 지키는 이순신 장군은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23전 23승의 승리를 하게 됩니다. 지상에서는 연일 왜군이 승리하여 파죽지세로 한양 성으로 진격했지만 남해의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에게 연패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이순신 장군이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함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처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많은 병사들이 탈영하는 사태도 빈번하였습니다. 일례로 왜군이 침략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의 부하 포졸인 황옥현은 탈영을 감행하다가 이순신에게 적발되어 참수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군령을 중요시한 한 것은 전쟁에 임한 함대는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 하게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함대가 전투에 임할 때 깃발로 신호와 북소리 신호에 따라 진격도하고 후퇴도 하며 또한 신호에 따라 포를 쏘아야 아군의 배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순신 장군은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 것은 전투에 임한 군대는 장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전진도 후퇴도 포를 쏘는 것도 깃발의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진왜간 중에 이순신 장군이 펼친 학익진도 장군의 명령인 깃발에 따라 하나 같이 움직였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함대가 23전 23승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