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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순교로 믿음을 지킨 사람들 | 2016-06-12 |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에 대하여 들어 봤을 것입니다. 루이14세는 “ 짐이 곧 국가다 (Ltat, cest moi) ”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왕입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신교와 구교로 나누어져 있던 프랑스 교회를 하나로 통합하려했습니다. 결국<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종교>라는 정책으로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의 치열한 위그노전쟁으로 얻어낸 화해의 낭뜨 칙령을 하루아침에 파괴합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은 순교의 자리로 끌려나와 처형을 당합니다. 당시 세느강에서, 시청 앞 광장에서, 파리 노틀담 성전 앞에서 위그노들은 순교를 합니다. 1주일에 7만 명을 처형하여 세느강에 버리니 세느강이 핏빛으로 물들게 됩니다. 세느강의 백조의 섬은 대표적인 순교의 자리입니다. 결국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삶의 터전을 버리고 유럽의 각 지역으로 흩어지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본래 <위그노 Huguenot>라는 말은 <동맹 공동체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신앙 공동체의 프랑스 사람들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당시 제철,염료,화학의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유럽으로 망명을 시작하자 영국의 찰스 2세는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특별 이민법을 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그들의 산업기술을 발전시켜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모체가 됩니다. 또한 독일은 3만 명 위그노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술 대국을 이루게 됩니다. 영국과 독일뿐 아니라. 스위스에서는 시계산업의 기술력을 길러냅니다. 위그노는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유럽의 각 나라로 흩어진 유랑자이며 신대륙으로 건너간 개척자들입니다. 우리는 총 칼 앞에서 순교하며 믿음을 지킨 위그노들의 후예입니다. 또한 어떠한 상황과 고난에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 중에 환경을 개척해 가는 위그노 개척정신을 이어가는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순교자들의 믿음을 기억하며 소망 중에 인내하는 개혁자의 삶을 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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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인재 양육 | 2016-05-15 |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은 삼국 시대에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하여 세 번 찾아갔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하여 가을에 한 번 찾아갔으나, 그 때는 동자 한 명 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으며 제갈량은 여행을 떠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만 듣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후 겨울에 다시 찾아갔으나 역시 제갈량은 못 보고 집에 찾아온 손님들과 장인 황승언, 아우 제갈균만 보고 떠났으며 이듬해 봄에 찾아가자 마침 제갈량이 집에 돌아와서는 낮잠을 자고 있어 기다린 끝에 겨우 제갈량을 설득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예로부터 국가의 존망은 인재의 등용에 있다고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찾아내며 또 찾아낸 인재에게 능력껏 일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느냐에 따라서 기업의 성공여부가 달라집니다. 수레를 끌거나 소금을 짊어지는 데는 천리마보다 황소가 낫습니다. 장작을 패는 데는 보검보다는 도끼가 낫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인재일지라도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데 자신과 격렬하게 경선을 했던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국방장관은 공화당 대통령인 부시 때부터 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필요한 인물이라면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차별하지 않고 등용시켜 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연설문담당자를 27살 존 파브로를 임명했습니다. 너무나 파격적인 인사였습니다. 자신의 판단에 필요한 인재라면 나이와 소속정당을 생각하지 않고 인물을 등용시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인사정책입니다.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면 인사청문회에 번번이 낙마를 합니다.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재는 양육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를 통치할 인재 중 총리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는, 어찌됐든 인재 부재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자녀들을 인재로 키워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주안에서 인재로 잘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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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조용한 침묵, 조용한 환경 | 2016-05-08 |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는 1379년 독일의 쾰른 부근 켐펜에서 가난한 공장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토마스 하메르켄(Thomas Hemerken)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보내던 중 19세에 성직자가 되겠다고 서원하여 <공동생활 형제단>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수도원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경건 위하여 고전 읽기와 기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92살까지 세상에 살면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는 고독 속에 홀로앉아 침묵으로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했으며 알려지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라틴어로 쓴 <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라는 작품은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묵상되는 책입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책은 1부. 영적생활의 유익한 훈계, 2부. 물질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훈계, 3부. 그리스도 중심생활에서 오는 영적위로, 4부. 성만찬을 통한 신앙발전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5세기에 라틴어로 쓰여 진 책이 지금까지 읽혀지고 있다는 것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과 <침묵>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경건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세미하기 때문에 <조용한 침묵>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오직 주님만 위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번쯤 분주한 세상일을 멈추고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조용한 침묵으로 두 손 모아 주님께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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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포기하지 않는 자 | 2016-05-01 |
18세기 조선시대의 실학자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 선생은(1762-1836)학문과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당쟁에 휘말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됩니다. 정약용 선생은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실학(實學)의 큰 뜻을 품었지만 당시 정치적 권력을 장악했던 노론 벽파의 반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오랜 세월 유배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고향인 경기도 양수리로 돌아와 집필 활동을 하시다 75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22살(1783)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어느 날 성균관 유생들이 모여 이발기발(理發氣發)대하여 토론하는 과정 중 정조에게 발탁되어 정조의 측근이 되어 일을 합니다. 31살 때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하여 수원성을 건립할 때 정조는 정약용에게 중책을 맡깁니다. 이때 다산은 설계도를 만들었고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을 창안하여 기중기를 만들어 공사에 사용하여 수원성 건립을 잘 감당합니다. 33살에 경기도 암행어사에 임명 되었으며 38살에 형조참의로 임명되어 그 직임을 성실히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39살 되던 해 정조가 죽자 그를 시기하는 노론 벽파사람들에 의하여 탄핵을 받아 40세에 그는 귀양을 가게 됩니다. 중앙과 지방의 행정경험을 많이 쌓았던 그는 장차 명재상이 되어 나라를 새롭게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지만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갑니다. 다산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양성했고 책을 집필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18년간 긴 세월 유배지에서 보냈다면 뜻을 굽히고 절망을 하는데 다산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뜻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목민심서>를 완성했고 또한 <황상>과 같은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주변의 환경 때문에 자신의 큰 뜻을 펼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귀양지에서 포기하지 않고 목민심서를 저술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다산 선생의 삶처럼 우리도 뜻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는 삶을 삽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12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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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 2016-04-24 |
정신여고를 졸업하고 한성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했지만 세계문학상 대상, 2006 세계문인협회 공로상, 제3회 조지훈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여 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시인 이채의 시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라를 소개합니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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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기도하는 대통령 | 2016-04-17 |
<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남서울 교회 교육목사였던 전광 목사님이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의 일대기를 전기 형태로 쓴 책입니다. 링컨에 대한 많은 책이 있지만 이 책은 제목이 말하듯이 기도하는 대통령을 강조한 책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일생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는 학력이 남들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학을 했으며 책을 많이 읽은 대통령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31세 때 사업 실패, 32세 때 주 의회 의원 선거에 낙선, 34세 때 사업 실패, 35세 때 신경 질환 발병, 43-47세까지 하원 의원 선거에 세 번 낙선, 55세 상원 의원 선거에 낙선, 56세 때 부통령이 되려 했으나 실패, 58세 때 상원 의원 선거에 또 낙선됩니다. 60세가 되어서 통령에 당선 됩니다. 링컨 대통령의 일생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거듭되는 낙선을 실패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패를 더 큰 성공으로 가기 위한 계단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위대한 점은 항상 실패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인정해준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는 남북 전쟁이 한참인 1863년 4월30일 목요일을 <금식하는 날>로 선포하고 온 국민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국민들에게 금식을 선포할 정도로 기도의 위대한 힘을 알고 있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링컨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종종 전쟁터를 찾았는데 그때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시간이면 사령부 막사 입구에 ??하얀 손수건??이 내걸리곤 했습니다. 링컨은 전쟁이 끝난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 같은 용맹스러운 장군이 없었음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남북 전쟁의 승리를 용감한 장군의 힘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의 승리로 생각한 것입니다. 링컨은 항상 기도로 어려운 고난을 극복했고 기도로 모든 일에 승리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도 “아직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유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5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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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기다림 | 2016-04-10 |
지구상에 서식하는 나비의 종류는 1만6천 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나비는 260여 종류가 있습니다. 나비는 알-애벌레-번데기-성충(나비)의 4단계의 생활사를 삽니다. 성충인 나비가 나무줄기나 풀잎에 알을 낳으면 그 알에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애벌레가 나옵니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나뭇잎을 먹고 자라납니다. 이때 애벌레는 곤충들과 새들의 먹이 감이 되는데 곤충과 새들의 먹기에서 살아남는 애벌레는 전체의 2%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비의 애벌레의 생존 확률이 2%밖에 되지 않지만 자연의 질서는 오묘하여 나비의 종을 이어갑니다. 만약 나비 애벌레의 생존 확률이 2%이상이 된다면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심각한 산림피해 현상이 나타납니다. 나비의 생존확률이 2%밖에 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질서입니다. 애벌레의 기간을 지나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 안에서 나비가 나옵니다. 나비의 생활사의 4단계의 과정 중에 번데기 안에서 성충인 나비가 되어 나오는 것을 정밀하게 관찰해보니 몹시 고통스러운 날개 짓을 하면서 나옵니다. 번데기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는 나비의 날개 짓은 여러 번 반복해서 움직입니다. 만약이때 누군가 나비를 도와주려고 번데기 껍질을 찢어 준다면 그것은 나비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비를 날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스스로 번데기의 껍데기를 찢고 나와야 아름다운 나비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교육할 때, 나비가 알에서 부화하여 성충이 되기까지의 고통의 상황을 이겨내는 것처럼 우리 자녀들도 훌륭한 인재가 되기까지의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해 낼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나비가 번데기 껍질을 스스로 벗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처럼 우리 자녀들이 스스로 상황을 이겨 낼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과잉보호는 오히려 자녀를 날지 못하는 나비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녀들을 믿고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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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천국항해(天國航海) | 2016-04-03 |
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한다하여 미군을 베트남에 파견합니다. 그 후 1965년에 미군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베트남전쟁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의료지원단을 보냈지만 1965년 10월에 청룡부대와 맹호부대를 파병하면서 베트남 전에 깊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전쟁으로 어려워진 미국이 결국 휴전을 제의하여 1973년 1월에 파리에서 휴전협정을 하고 미군의 전투주력부대를 철수시킵니다. 그러나 북쪽의 공산군이 미군의 전투주력부대가 철수하자 협정을 위반하고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여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어 베트남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전쟁이 끝나자 승리자가 된 공산군은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합니다. 사이공 함락 36시간 만에 26만 명을 처형하는 끔찍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처형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사람들은 베트남을 탈출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 경향신문은 배로 탈출하는 보트피플(boat people)이 1975년- 1980년까지 100만 명에 이르렀고 바다에서 구조되지 못해 죽은 숫자가 14만 명이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위해 베트남에서 탈출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이웃 나라들이 이들을 구조해주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외교문제와 이들이 가난하기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베트남난민수용소가 있었으나 1993년 마지막으로 난민160명을 뉴질랜드로 보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보트피플 선상난민(船上難民)은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살기위해 탈출은 했으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보트피플을 인생여정으로 비유한다면 나그네 인생길에 최종목적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트피플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돌아갈 항구가 있으면 희망찬 항해를 합니다. 그러나 보트피플처럼 돌아갈 곳이 없으면 절망의 표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갈 고향인 최종 목적지 천국이 있습니다. 2016년 새봄에 우리의 최종 목적지 천국을 바라보면서 희망찬 항해를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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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장애물 경기 | 2016-03-27 |
금년 8월에 브라질의 리오에서 하계 올림픽 대회가 열립니다. 정식으로 채택된 종목은 38개 분야의 28개 종목입니다. 그 가운데 3000M 장애물 경기가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장애물경기는 남자만 있던 종목이었는데 2008년 북경 올림픽부터 여자 장애물 경기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3000M 장애물 경기는 3000M를 달리는 가운데 28개의 장애물과 7개의 물웅덩이를 뛰어넘는 경기입니다. 본래 장애물 경기의 기원은 옛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생이 경마에 나가려고 말을 농장 주인에게 빌리었는데, 나이 어린 학생이라 하여 항상 형편없는 말을 값비싼 가격에 빌려주었습니다. 본래 경마는 좋은 말을 가지고 나가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데 농장 주인이 항상 부실한 말만 빌려 주므로 학생은 경마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화가 난 학생은 그렇다면 우리끼리 부실한 말을 가지고 경기를 하자고 제안하여 장애물을 넘는 경기가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장애물 경기의 기원입니다. 장애물 경기는 항상 좋은 조건에서만 달리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경기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에게 항상 좋은 조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곳곳에 뛰어 넘어야할 난관의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3000M 장애물 경기 중에 28개의 장애물을 넘어야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오체 불만족>의 주인공인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불구인데도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갑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주인공인 스웨덴의 레나 마리아 역시 두 팔과 한쪽다리 절반이 없는 채 태어났지만 신체적 장애를 뛰어 넘은 사람입니다.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인 이지선 씨는 이화여대 재학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화상을 입었지만 수차례의 수술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장애물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여정에 아무리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극복하며 뛰어 넘어야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잠언2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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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 2016-03-20 |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1827)은 일생동안 가난과 질병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술주정뱅이 테너 가수인 아버지와 하녀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과도한 음악공부를 강요받았습니다. 4세부터 골방에 가두어져 하루 종일 악기를 연주해야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천재성을 사람들에게 들어내어 돈벌이를 하려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베토벤은 17세 때 어머니를 잃었고 28세에 음악가로 죽음과 다름없는 청각을 잃는 절망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32세에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서 요양을 하던 중 자살을 생각하고 유서를 쓸 정도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청각을 잃은후 더 많은 작곡을 합니다. 1803년 오라토리오 <감람산상의 그리스도>, 1804년<제3교향곡영웅>, 1808년 <제5교향곡 운명><제6교향곡 전원>, 그리고 청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1824년 <제9교향곡 합창>을 작곡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난을 겪게 됩니다. 아무리 평범한 삶을 살다간 사람일지라도 한 두 번의 고난의 시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찾아오면 즉시 낙망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고난이 큰 자극이 되어 더 큰 소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재적인 작곡가 베토벤은 28살에 청각을 잃는 고난의 상황이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작곡에 몰두하여 우리에게 희망의 음악을 선물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에도 절망하거나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의 상황에도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 새봄이 됩니다. 우리 모두 소망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