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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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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아름다운 동행 2014-04-20

1907년 제1회 평양신학교 졸업생 7명은 서경조,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 송린서, 한석진, 양전백입니다. 이들 7명은 졸업과 동시에 목사안수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됩니다. 이들 7명이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친 분들은 미국 북장로회, 남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호주 장로회에 속한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이들을 가르치면서 고민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목사안수를 받을 때 소속을 어느 나라 장로교에 두느냐였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선교 본부에서는 선교업적 때문에 무조건 자신들의 소속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사님들은 이 문제를 놓고 2년간 기도합니다. 기록에 보면 목사안수는 1907년인데 회의는 1905년부터 시작합니다. 선교사님들은 모두가 각자의 주장을 내려놓고 조선 장로교는 하나로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봅니다. 당시 선교사님들은 선교 업적을 놓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국의 선교 본부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하나의 장로교를 만들려고 노력을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일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의 한국장로교회는 오분 사열되어 서로 싸우는 꼴이 되었습니다. 초기 선교사님들의 열정과 하나의 장로교회를 만들려는 역사 인식은 사라지고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며 분열되는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최초 목사안수를 받은 7인중 양전백 목사님은 평안북도 선천읍 교회를 세워 목회를 하셨는데 얼마 후 후배인 김석창 목사(4회졸업)가 목사안수를 받자 선천읍 교회를 남교회와 북교회로 분리하여 선천읍에서 함께 목회를 하셨습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교회를 분리한 것입니다. 또한 양전백 목사님과 김석창 목사님은 함께 힘을 모아 신성학교와 보성여학교를 세워 한국에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두 분 목사님이 함께하여 세운 신성학교 출신들을 보면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 서울대 총장 장리욱 박사, 경북대 초대총장 고병간 박사, 의사인 장기려 박사, 차병원의 차경섭 박사,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 총신의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세문안교회의 차재명 목사, 영등포교회 원로 방지일 목사, 세브란스 병원장 문창모 박사, 보이스카웃 창설자 이태환 박사, 등 너무나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싸우는 것 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45청빈의 마음 2014-04-13

1481년 성종 12년에 처음 편찬된 조선시대의 지리책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동국(東國)은 중국 동쪽에 있는 나라 조선을 말하며 여지(輿地)는 지리(地理)를 뜻하며, 승람은 ‘모두 볼 수 있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을 통하여 1530년(중종 25)에 원본에 신증(新增)이라 표시를 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금덩이를 던진 나루터라는 뜻의 투금탄(投金灘)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지금의 행주대교 근처의 양천나루터입니다. 이 나루터에 이억년(李億年)과 이조년(李兆年)이라는 형제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형제는 강변에서 금덩이 두 개를 주어 서로 한 덩이씩 나누어 가지고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금덩이를 강물에 버렸습니다. 형이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금덩이를 가지게 되자 형을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고 형이 가진 금덩이에 욕심이 생겨 자신의 금덩이를 강물에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형제의 우애를 생각하고 자신의 금덩이를 강에 버립니다. 동국여지승람은 이곳의 이름을 투금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스타인벡(1902∼1968)이 쓴 소설중에 <진주>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키노와 그의 아내 조안나입니다. 키노와 조안나는 가난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크고 값진 진주를 발견합니다. 이들 가난한 부부가 진주를 소유하게 되자 주변사람들이 찾아와 친절을 베풉니다. 그런데 그 친절 속에는 진주를 탐내는 마음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는 밤중에 강도가 들어와 진주를 빼앗아 가려하자 그들과 격투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키노와 그의 아내 조안나는 둘이 앉아 이야기하는 중에 진주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으나 진주 때문에 우리의 행복은 멀리 사라지고 오히려 불행한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 부부는 배를 타고 깊은 바다에 나가 진주를 던져 버립니다.  


<투금탄>의 두 형제와 <진주>를 바다에 버리는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없어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해하는 청빈의 마음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44하늘나라 비자(visa) 2014-03-16

한국의 어느 젊은이가 2007년 12월부터 2009년10월까지 690일간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하고 나서 여행 개요를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총 39개 나라 방문, 총 이동거리 6만4천Km, 교통비 515만원, 숙박비 354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39개 나라를 여행 할 때 2개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입국허가서인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무비자의 2개 나라를 제외하고 비자 발급 총비용이 200만원이나 들었습니다. 비자 발급비용이 가장 비싼 나라는 수단으로 145달러 한화 17만정도 들었고 가장 싼 나라는 말리로 3500원 정도였습니다. 교통비가 515만원 들었는데 비자발급 비용이 200만원 들었으니 여행 총 경비 중에 비자비용이 너무 많이 차지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여행하려면 먼저 방문하는 나라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받는 입국허가서를 비자(visa)라고 합니다. 비자(visa)는 라틴어의 ’vise’가 어원이며, 이는 ’배서하다, 보증하다, 증명하다, 사증(査證)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각 나라에서 스파이의 입국을 방지하기 위하여 출발된 제도입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자 없이 6개월은 자유롭게 여행하는 무비자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여행 목적이 아닌 공부, 사업, 취업등 장기간 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합니다. 비자를 받기위하여 서류를 제출할 때 비자신청 비용이 160달러(20만원)나 됩니다. 이 비용은 비자가 나오지 않아도 돌려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각 나라에 방문하려면 먼저 그 나라에서 방문해도 좋다는 입국허가서인 비자(visa)를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나라, 하늘 나라의 입국허가 비자를 받아야합니다. 미국 비자 비용 160달러, 아프리카 수단 145달러, 그렇다면 하늘나라 비자비용은 얼마나 할까? 그리고 어떻게 받아야할까? 하나님나라 비자 발급 비용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해주셨습니다. 다만 비자 발급 과정에 믿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밷후1:11) 

432014년 4월 희망의 복음축제 2014-03-09

< 바닥에 살아도 하늘을 본다 >라는 제목으로 목회 칼럼을 오래전에 썼습니다. 이 책은 남양만에서 두레 공동체를 이끄시는 김진홍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분이십니다. 목사님은 대구 계명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본교에서 철학개론을 강의하던 중 학생으로부터 " 교수님, 우리가 일생 생명을 바쳐 따를 진리란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질문에 충격을 받아 대학 강단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진리를 찾아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로부터 성경 에베소서 1장 7절의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구절을 소개받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고 오랜 세월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시간을 끝내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마쳐 목회자가 됩니다. 목사가 된 후 청계천 빈민들의 넝마주이들과 함께 활빈 교회를 개척하여 시무 하시다가 남양만에서 두레 공동체를 이루었고 구리에서 두레교회를 시무하시다 지금은 동두천두레교회를 시무하십니다. 


목사님이 활동하시는 정치적 상황을 다 긍정할 수는 없지만 목사님이 쓰신 책 중 <새벽을 깨우리로다>, <정금 같이 나오리라>, <비전 있는 교회>, < 바닥에 살아도 하늘을 본다 >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 새벽을 깨우리로라 >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바닥에 살아도 하늘을 본다>는  제목에서 말하듯이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은 항상 우리를 낙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내일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목사님 자신이 어려움을 극복한 비전의 사람이기에 이 책의 내용은 더욱 더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4월 한 달 우리교회에서는 <2014년 희망의 복음축제>를 계획하고 강사들을 초청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새로운 결단의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4월11일(금) 오후 8:00시에 김진홍 목사님을 초청했습니다. 그 외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소망의 메시지를 들으려합니다. 우리 모두 영적회복의 기회로 삼고 또한 주변에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423.1운동과 기독교 2014-03-02

1919년 3월 1일은 일제 강점기 때 우리민족이 일본에 항거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날입니다. 이 날의 만세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독립 국가임을 세계에 선언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했는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으며 대부분 목사님들이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은 1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서울에서만 만세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되어 거국적 만세운동이 되었습니다. 피해 규모는 조선총독부의 공식집계가 시위참가자 1919년 1년간 202만 명, 시위 횟수 1,542회,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피체포자 46,948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47개가 불에 탔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했습니다. 


50명 이상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한 지역이 전국에서 311개 지역인데 그중 기독교 단독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지역이 78개 지역, 기독교와 천도교 합작한 지역이 42개 지역이었습니다. 6월30일까지 투옥된 사람이 9,458명중 기독교인이 2,087명으로 22%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인구 비례로 보면 기독교인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국 인구가 1600만이었는데 기독교 인구는 20만 명으로 전인구의 1.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세 운동지역의 38%가 기독교인이 주도했습니다. 또한 투옥된 사람의 22%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인이 1.3%밖에 되지 않았지만 3.1운동의 주체적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3.1운동의 시위가 한창일 때 전국교회에 통고문을 보내면서, (1)매일 3번 기도하고, (2)주일은 나라를 위한 금식, (3) 1주일간 주제를 정하여 성경읽기를 했습니다. 월요일-이사야10장(앗시리아에 대한 심판), 화요일-렘12장(유다 멸망의 원인), 수요일-신28장(이스라엘 백성의 축복), 목요일-약5장(고난중 인내),금요일-사59장(회개와 구원),토요일-롬8장(고난후 장차 영광)을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나라를 위하여 기도했고 핍박 중에도 만세운동을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3.1만세운동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한 선조들의 믿음을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41제중원(濟衆院) 2014-02-23

광혜원(廣惠院)은 1885년 4월 10일 서울의 재동(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입니다. 당시 궁중 시의관으로 있던 알렌 선교사의 건의에 의하여 고종황제가 설립을 허락하여 세워졌습니다. 광혜(廣惠)란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으로 궁중을 중심으로 한 병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광혜원을 개원한지 16일 만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계(啓)에 따라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통리교섭통상아문은 제중원을 외교부 관할에 둔다는 것입니다.  그 후 제중원을 담당했던 알렌과 헤론, 에비슨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운영상 어려움이 발생하여 1904년 미국의 사업가 세브란스(L.H. Severance)의 도움으로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재 서울역 맞은 편 세브란스 빌딩 자리)에 병원건물을 세워 오늘날의 세브란스 병원이 됩니다. 6.25전쟁 후 어려운 과정을 거쳐 1957년 연희대학과 합병하여 오늘날의 연세대학교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중원의 제중(濟衆)이라는 말은 논어의 옹야(雍也)에 “만약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민중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라고 나오는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은  “널리 백성에게 베풀며 구제 한다”는 뜻합니다. 제중원은 개원한 첫해 환자의 수가 1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제중원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환자들 치료했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주 출신 김재원은 1903년쯤 폐질환으로 찾아와 오른쪽 늑골 전부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고 치료하는 중 예수를 믿게 되어 고향 제주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오늘의 금성교회가 된 것입니다. 1907년 이기풍목사가 제주에 파송되기 전 제주에는 이미 김재원에 의하여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  또한 제중원에서 배운 백정출신의 박서양은 신분의 벽을 넘어 우리나라 최초의 외과의사가 됩니다.     


이처럼 제중원은 병들어 낙심하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쁨을 주었고, 백정 출신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희망의 장소였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제중원의 뜻을 기리어 < 병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고치며 구제>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인 박시제중(博施濟衆)의 뜻을 이 땅에 실천해야합니다. 

40불평없는 세상만들기 2014-02-16

미국의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목회를 하던 윌 보웬 목사님이 2006년부터 <여름독서클럽>을 진행하던 중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윌 보웬 목사님은 바로 <불평 없는 세상 만들기>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세상에 만연해 있는 불평을 근절하자는 의식 개선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목사님은 사람의 생각이 부정적일 때 그 생각이 불평으로 표현됨을 알고 불평하는 삶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사보다는 불평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은 안타까워 불평을 그치고 감사하는 삶을 살자고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행복한 인생의 삶을 살려면 불평을 그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처음에는 200여 명의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불평없는 세상만들기 (Complaint Free World)]캠페인은 입소문을 타고 미국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 80여 국가의 1,000만 명 이상이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 불평없는 세상만들기 한국본부가 (CFW KOREA)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천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보라색 팔찌를 만들어 지급하고 착용하는 것입니다. 먼저 오른 쪽에 착용한 손목 보라색 팔찌를 불평을 할 때 마다 왼쪽으로 옮겼다가 다시 불평을 하면 오른 쪽으로 옮겨 착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자신의 불평의 회수를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21일까지 한쪽에 손목에 보라색 팔찌가 머물러 있으면 21일간 불평을 하지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며 간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평하는 곳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변의 상황에 불평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며 행복을 느끼고 사는 자들입니다. 고전10:10 <표준새번역> 여러분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불평한 것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빌2:14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39노블레스 오블리제 2014-02-09

노블레스 오블리제 는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를 축척한 부자들과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명성을 지닌 귀족들은 가진 것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과거 로마제국의 귀족들에게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던 말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습니다. 초기 로마 귀족들은 솔선하여 명장 한니발이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하였고,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13명의 집정관(Consul)이 전사하였습니다. 집정관은 로마의 관리 중에 최고위 관직으로 오늘날의 장관과 비슷한 직위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한 귀족에 대해서 귀족의 이름을 붙여서 도로이름과 건물을 명명했는데 당시 귀족들은 이를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통은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멜론 대학교, 은행가 존스 홉킨스가 세운 존스 홉킨스 대학과 병원으로 설립자의 이름을 붙일 뿐 아니라 사회의 큰 공헌을 하는 공공기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많이 퇴색된 듯합니다. 사회의 지도층들의 자녀들이 병역기피와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이 종종 사회의 문제로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실현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귀족계급이 사회를 책임져야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은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하나님나라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다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귀족계급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책임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귀족인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38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2014-02-02

미국의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토미 테니(Tommy Tenny)라는 목사님 쓰신 <하나님의 관점-God’s eye view>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다윗의 장막>과 더불어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은혜를 끼친 책입니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보면 사람이 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이가 답답해하면서 “아빠 안아줘요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 ”라고 외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만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른들의 신발뿐이기에 답답해하는 모습을 그린 장면입니다. 이때 아이를 안아서 높이 올려주면 그때서야 옆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고 아이는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는 사물의 관점은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른들의 신발만 보는 어린아이처럼 제한적이며 답답한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옛 말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밖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넓은 세상과 아름다움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본대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의 사물을 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고집스럽게 속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위에 계시기에 세상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시야를 낮은 시각으로 한정해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더 높은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2014년 새해가 1월이 지나 이제 2월이 되었습니다. 2014년은 세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지 말고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어 보다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욥35:5  

37클뤼니 수도원 (L'Abbaye de Cluny) 2014-01-26

클뤼니 수도원은 프랑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부르고뉴 주(州) 손에루아르 현(縣)에 있는 역사적인 수도원입니다. 910년 아퀴타니아의 빌헬름 공작(Guilaume de Aquitaine )이 자신의 별장을 교회에 기증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 건물의 크기만 하더라도 축구장 2개를 연결한 것만큼 큰 수도원입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설립 초기부터 영성에 관심을 두고 교회개혁을 단행한 수도원입니다.


당시 수도원들은 교회의 본질인 영성보다는 세속의 권력과 결탁하여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제후들과 귀족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직자들을 이용했고, 성직자는 그들의 권력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농지를 받았고,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세금면제, 교회의 치외법권 허용, 재판권부여, 화폐 제조권, 관세 권리 등 교회는 세속의 경제적 특권을 누렸고 수도원장은 지역 제후처럼 행사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이러한 교회의 타락을 개혁하고 신앙의 본질인 영성을 회복하려고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설립 때부터 클뤼니 수도원은 봉건적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경비는 신자들의 자유로운 헌금으로 하며, 수도원장의 선출은 직선제로 하고, 생활은 태만과 나태를 추방하고 필사와 노동과 공동예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명문화 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10-11세기 교회개혁의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오딜로 원장 시절(994~1048년)에는 클뤼니 수도원에 속한 수도원이 유럽에 2000개가 넘을 정도로 발전했고 영적 권위를 가지고 교회를 지도했습니다. 하지만 클뤼니 수도원도 세월이 지나면서 설립 당시 영성을 잃게 되니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프랑스 국립 종마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수도원 개혁의 대명사였던 클뤼니 수도원도 영성을 잃게 되니 앙상한 건물만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도 화려한 건물과 성도의 숫자를 자랑한다면 신앙의 본질인 영성을 잃어버린 클뤼니 수도원처럼 박물관의 박제된 유물로 남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교회의 생명인 영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