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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예배하는 성탄절 | 2018-12-23 |
12월25일은 예수님 세상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은 로마시대에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태양신을 섬기던 날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시대부터 12월25일에 대한 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계속 반대를 하니 결국 431년 에베소회의 때 12월25일을 성탄절로 1월6일을 현현일로 선포합니다. 최초의 기록은 로마의 필로칼루스가 만든 달력 <354년 코데스 달력>에 12월25일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나신 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성탄절 날짜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카톨릭은 12월25일,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6일, 이집트 콥트교회, 러시아 정교회, 세르비아 교회는 1월7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성탄절을 지키는 행사 역시 처음에는 그날만 지키던 것을 중세에 들어오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마음에 준비하는 4주간의 대림절(강림절(Advent-11월 마지막 주일부터)로 발전하게 되었고 기쁨의 성탄축하를 한다는 명분아래 점점 세속의 상업성이 들어와 화려해진 성탄절 행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크리스마스이브의 성탄 전야는 크리스마스 이브닝(Evening/저녁)의 준말로 다른 날보다 더 조용히 거룩하게 가족끼리 성탄을 기다리는 날이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이교에서 온 절기이며, 세속적으로 화려해진 성탄절을 지키지 말자하여 1647년 영국 의회에서 성탄절을 완전히 금지시켰던 때도 있었습니다. 초기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 역시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초기 선교사들이 성탄절을 지켰습니다. 독립신문 1896년 12월 24일 기사에 “내일은 그리스도 탄생일”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1900년 와서 성탄절에 교회에서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여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성탄절 선물을 받으려고 1년에 한차례 교회를 나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상인들의 상업적 전술이 교회에 들어와 성탄절 선물과 카드를 서로 주고받는 행사들이 많아지고 성탄 트리와 점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성탄절은 크리스마스로 Christ(크라이스트/그리스도)+mass(미사/예배)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2018년 성탄절은 아기예수로 오신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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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나무를 가꾸는 사람들 | 2018-12-16 |
오래 전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란 칼럼에서 장 지오노의 이야기, 천리포 수목원, 남이섬 이야기, 전남 축령산 편백나무 숲을 소개했습니다. 내용을 다시 한 번 소개하면,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아주 짧은 단편소설입니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1913년부터 해발 1,200M -1,300M 프랑스 프로방스 고산지대 황무지에 매일 도토리 100개를 심습니다. 아무 말 없이 홀로 3년 동안 10만개를 심었습니다. 주인공은 52세부터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지 37년 만인 89세에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심은 나무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의 큰 숲이 되었습니다. 충남 태안반도 끝자락 천리포에 우리나라 최초 사립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이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은 1946년 연합군 중위로 한국에 처음 오게 된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 1921- 2002 /민병갈(閔丙渴-한국귀화)가 1962년 17만평의 땅을 매입하고 1970년부터 40년 동안 나무와 식물을 가꾸어 13,200여 종이 서식하는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천리포 수목원을 이룬 민병갈 선생과 형제처럼 지낸 민병도 선생 역시 남이섬에 나무를 심어 오늘의 아름다운 남이섬을 만들었습니다. 전남 장성군 축령산 편백나무 숲을 조성한 춘원 임종국 선생은 1956년부터 76년까지 20여 년간을 헐벗은 산 570㏊에 28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오늘의 편백나무 숲을 만들었습니다. 제주도 한림농원은 1971년 송봉규 선생이 황무지의 모래땅을 매입하여 오늘의 한림농원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수목원의 숲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작은 일이었지만 20년,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숲을 이루고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는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복음운동의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는 어느 교회든 작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큰 결실을 맺게 됩니다. 우리 참된 교회도 시작은 작았지만 이제 부흥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문제는 이제 부터입니다. 나무를 가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한 결 같이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나무를 가꾸어 갑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나무를 가꾸는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교회공동체를 세워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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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일편단심 소명(一片丹心 召命) | 2018-12-09 |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개인 재산이 660억 달러(약 74조 원)로 세계에서 제일부자입니다. 빌 게이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 또한 성공한 사람으로 말합니다. 그가 성공한 사람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그의 생활 법칙을 분석한 중국의 성공분석가들은 <빌 게이츠의 성공인생 11가지 생활법칙>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출판사인 나침판출판사에서 이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습니다.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에서 왜? 빌게이츠의 인생철학을 분석한 책을 출판했을까? 모범적 신앙인들이 많이 있는데 왜 하필 빌 게이츠일까? 아마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빌 게이츠를 소개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빌 게이츠가 돈을 많이 번 부자이기에 우리도 부자인생을 살기 위하여 그의 인생철학을 닮아가자고 이 책을 소개했다면 신앙인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자의 삶보다 하나님의 소명(召命)의 삶을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가 쓴 <소명>이란 책을 보면 맨 처음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라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내 평생에 못다 쓸 만큼의 돈을 벌었습니다. ------- 제가 돈을 번 목적은 제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제 대신 다른 사람이 결코 해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해서 그것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저는 어떤 대가든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인생의 목적인지 모르고 돈 버는 일에만 전념한 인생은 어느 날 돈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깨달을 때 오는 허탈감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맡긴 사명을 일생 이루며 사는 소명자의 삶을 삽니다. 오스 기니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부자의 삶보다 소명의 삶을 사는지요? 누구로부터 소명을 받았는지요? 일편단심 소명을 위한 순종을 각오하고 계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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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경건을 위한 기도 | 2018-12-02 |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년- 430년)는 4세기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교부 신학자입니다. 영어식으로 어거스틴(Augustine)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늘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셔서 /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 그리하여 모든 죄악된 생각을 버리고 / 유일한 선의 근원이신 주님만 모시고 살게 하옵소서. / 오! 하나님, 나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 하나님이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하옵시고, / 나는 너의 구원이라고 내 영혼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의 심령을 맡기오니 그 귀를 여셔서 /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고 / 그 음성만 따라서 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를 본 받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80-1471)는 경건을 위한 기도를 이렇게 드렸습니다 .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하지 마시고, / 무지한 인간의 귀에 들리는 대로 말하지 말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서 참된 판단을 분별 있게 내리도록 하시며,/ 무엇보다도 항상 당신의 뜻에 무엇이 정말로 즐거운 것인가를 묻게 하소서” 예수를 믿고 난 후 이 땅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늘 유혹이 있습니다. 세속 정신의 허영과 쾌락이 유혹하고, 사탄이 찾아와 달콤한 속삭임으로, 내면의 타락한 죄성(罪性)이 언제나 나를 죄악으로 끌고 갈려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영적 싸움을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려는 치열한 영적 투쟁의 현장에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승리하십시오. “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편 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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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2018-11-25 |
이어령 교수를 말할 때, 문학 평론가, 언론인, 베스트셀러 작가, 장관, 한국의 지성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릅니다. 반 기독교인으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딸의 암투병과 실명위기, 손녀의 희귀병 등 연속되는 고난 속에서 예수를 믿어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쓴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 / 나는 당신의 제단에 /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별사탕이나 혹은 풍선 같은 것을 만들지만 / 어둠 속에서는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 발톱처럼 무디어진 가슴을 찢어야 하고 코피처럼 진한 후회와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데 / 아! 하나님은 어떻게 그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 이렇게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 그것을 만들지도. 다 셀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용서하세요 하나님. --------------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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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윤동주의 <병원> | 2018-11-18 |
우리에게 <서시(序詩)>, <별 헤는 밤>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은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윤영석 장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세운 북간도 용정의 명동(明洞)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하고 일본의 동지사(同志社) 대학(기독교 사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1943년 7월 방학을 맞이하여 귀국하려다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28살의 1945년 2월 죽음을 맞이합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시집을 내려고 자신의 시들을 정리하여 후배 정병욱에게 19편의 원고를 맡깁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상 시집을 출판하지 못합니다. 1941년 후배 정병욱에게 원고를 맡길 때 시집의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병원>은 윤동주가 살고 있던 시대를 치료 하고픈 마음의 표현입니다. 당시 시집을 출판하지 못한 이유는 재정적 이유도 있지만 작품 중 <십자가> <슬픈 족속><또 다른 고향> 같은 시가 일제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하고 또한 일제에 저항하는 윤동주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 것 같아 때를 기다리다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쓴<병원>의 내용입니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세상에는 아픈 환자들이 많습니다. 환자들이 병원을 통하여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윤동주의 마음처럼 우리 모두 절망의 질병으로부터 회복되어 희망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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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열심히 사는 사람들 | 2018-11-11 |
옛날 어느 조그만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너무나 작아 주위에 있는 나라로 부터 종종 침략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이웃나라에서 침략을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해 왔습니다. 왕은 전쟁을 앞에 두고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면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왕은 전국을 샅샅이 뒤져 제일 유명한 예언자를 찾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며칠 만에 신하들이 한 예언자를 찾아 왕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왕은 예언자에게 전쟁의 승패에 대하여 말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왕에게 미래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이시여! 만약 내가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면 당신은 방심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또 전쟁에서 진다고 하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싸우지도 않고 전쟁에서 질 것입니다. 왕이시여! 내가 알려드릴 수 있는 미래는 앞으로 분명 전쟁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의연하고 성실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당신이 알고 싶은 미래는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왕은 전쟁에서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켰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렘1:5),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언자는 구약성경에서 "나비"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말하도록 부름 받은 자"입니다. 즉,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는 사람의 앞날의 길,흉을 말해주고 복채를 받는 세속의 점쟁이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죄를 짓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여 회개를 촉구하며, 죄의 결과 미래사회는 멸망하니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왕이 예언자를 찾아와 앞날을 말해 달라는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앞날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앞날을 미리 안다면 운명론에 빠져 자신의 삶에 열심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앞날에 대하여 미리 알려고 하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우리며 매일의 삶을 열심히 살 뿐입니다. 또한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알려는 것보다 현실의 삶에 열심을 다 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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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추수감사절 | 2018-11-04 |
구약 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는 유월절(逾越節), 오순절(五旬節), 초막절(草幕節-수장절 收藏節)입니다. 그 가운데 초막절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프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다음 해 1621년 농사를 짓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함께 감사하며 잔치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미국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경일로 제정하여 추수감사절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영국은 8월 1일 라마스 날(Lammas Day)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독일은 성 미카엘 축일(9월 29일)이 지난 후 주일을 감사절로, 스위스 개혁파 교회는 9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우리나라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全國 敎會에셔 一年에 一次式 感謝하난 日을 作定하난 問題에 對하야 徐景祚 長老가 演說하기를 我國敎會가 比前 旺盛한 것이 天父의 恩惠인즉 一 感謝日을 定하고 一年에 一次式 悅樂하며 感謝하난 거시 甚合하다 하고 其後에 梁甸伯·金興京·邦基昌·韓錫晋 諸氏가 繼續 說明하다." (죠선 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제4회 회의록) 1904년 9월 13일 서울 동현예배당에서 회집된 제4회 합동 공의회에서 서경조(1907년 목사 안수 받음)장로가 감사주일 제정에 대한 발언의 기록입니다. 서경조 장로의 이러한 발언으로 한국교회는 1904년 11월 11일 첫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이후 선교사들이 날짜를 1905년 첫째 주 목요일, 1906년 11월 19일(목요일), 1908년에는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여 미국의 추수감사절 절기와 맞추어 11월 셋째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감사절의 유래는 1년 농사의 추수를 감사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 된 것에 대한 감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부흥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절 날짜 역시 11월 초에 지켰습니다. 우리 교회는 몇 년 전부터 11월 첫째주일로 감사주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2018년 추수감사는 1년 동안 하나님이 지켜주심과 교회의 부흥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감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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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내가 만든 신(Counterfeit gods) | 2018-10-28 |
요즈음 한국교회에 많이 소개되는 팀 켈러( Timothy J. Keller 1950- )목사님은 미국 펜실베니아 알렌타운에서 태어나 버크넬 대학, 고든 콘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한 목사님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을 때 지도교수는 하비 콘(Harvie M. Conn) 교수로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총신에서 강의를 했던 교수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1989년 뉴욕의 맨해튼에서 리디머 장로교회를 개척합니다. 세속적 도시, 가장 인본적 도시, 돈과 부가 가치의 전부처럼 여기는 뉴욕의 금융가의 한복판에서 가장 복음적인 장로교 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강조한 리디머 장로교회는 6000명이 모인 대형교회로 성장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감동하는 예배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최근 기독교 서점에 팀 켈러 목사님의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 되었습니다. <센터 처치>, <탕부의 하나님>, <정의란 무엇인가?>, <고통에 답하다>, <복음과 삶>, <결혼을 말하다>, <예수, 예수> 등 20여 권의 책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 내가 만든 신- Counterfeit gods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상숭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국가의 우상숭배는 도시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에서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하는 것이지만, 현대사회의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권력, 돈, 성공을 위한 성취욕, 특히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짜 복음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들은 반드시 나를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꼭 성취하려는 것들(돈, 명예, 권력, 사업성공, 자녀성공, 내 세우는 미모,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과 지식, 남을 비난하면서까지 자신을 높이려는 욕구, 등등)에 집착하다보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이루려는 꿈을 이루었더라도 행복이 없고 공허감과 계속되는 마음의 갈증만 증폭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교회생활 하면서도 우상은 대상만 다르게 계속하여 우리 마음을 지배할 것입니다. 생명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가짜 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내가 만든 신, 즉 우상을 버리고 복음 안에서 자유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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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해(和解)와 일치(一致) | 2018-10-21 |
초기 한국장로교 역사를 보면 1885년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의 언더우드 선교사, 1889년 호주장로교회의 데 이비드 선교사, 1892년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7인의 선발대, 1893년 캐나다 장로교회 맥켄지 선교사 등 4개 장로교회 교단이 들이어와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네비우스 정책에 의하여 지역을 나누어 선교를 했습니다. (1) 서울, 평양, 황해도, 충청도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2) 호남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3) 영남은 호주 장로교 선교사, (4) 함경도, 만주는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담당했습니다. 이들 선교사님들의 선교활동은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선교의 결실들이 있게 됩니다. 또한 이들 선교사님들은 각각 파송한 나라가 다르지만 1901년 9월 한국 장로교는 하나로 한다는 큰 목적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를 결성합니다. 처음 장로회 공의회를 결성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각각 파송 받은 교파와 나라와 다르더라도 선교사님들은 서로 양보하면서 한국에서 하나의 장로교단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1907년 7명의 최초 한국인 목사안수를 할 때 소속을 어느 나라 교단의 목사로 하느냐 고민이 많았습니다. 각각 자신들이 속한 선교 본부에서는 선교업적 때문에 무조건 자신들의 소속으로 안수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들은 이 문제를 놓고 2년간 기도합니다. 기록에 보면 목사안수는 1907년인데 회의는 1905년부터 시작합니다. 선교사님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주장을 양보하면서 한국 장로교는 하나로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봅니다. 당시 선교사님들은 선교 업적을 놓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국의 선교 본부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하나의 장로교단을 만들려고 노력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일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의 한국장로교회는 오분 사열(180개 교단)되어 서로 싸우는 꼴이 되었습니다. 초기 선교사님들의 한국장로교단은 하나로 한다는 대 명제의 큰 뜻은 사라지고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며 분열되는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남장로교, 북장로교, 호주장로교, 캐나다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이 보여준 서로 양보하면서 일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 양보하며 화해하고 일치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