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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예배의 회복 | 2020-09-13 |
한국교회는 오늘날 전 세계 교회 중에 한 주일에 예배를 가장 많이 드리는 교회입니다. 주일오전예배, 주일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목장예배 등 예배의 홍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횟수는 많지만 예배의 소중함과 능력을 상실한 형식적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7세기 청교도 목회자로 알려진 리차드 스틸(R. Steele 1629-1692) 목사가 쓴 <예배를 깨트리는 유혹-흐트러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틸 목사님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는 예배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에 평화를 얻고 또한 세상을 이기는 영적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사탄의 유혹으로 마음이 산만하고 흐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스틸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를 12가지로 표현합니다. 그중의 첫째 강조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인 마음의 자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의 자세가 있기에 예배시간에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흐트러지게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간의 우선순위에서 예배시간보다 세속의 일을 먼저 계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의 흐트러짐을 치료할까? 첫째는 원인을 제거하라!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전의 실패를 슬퍼하라! 셋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라! 넷째는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방송으로 예배합니다. 이러한 예배의 위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우리는 마음의 결단과 강한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직한 예배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은혜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우리 모두 정직한 예배, 바른 예배, 온전한 예배, 영적인 예배가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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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고난의 때 자신을 돌아보라 | 2020-09-06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늘 형통의 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곤고한 날도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형통의 삶을 원하지만 시대가 전쟁, 자연재해, 정치적으로 고통의 시대라면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적 고통, 6.25 전쟁의 시간들, I.M.F 시대의 경제적 위기, 코로나19의 전염병의 시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시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고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여부가 결정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찾아오면 고난의 순간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므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난의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여 인생을 방탕하게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고난을 통하여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강영우 박사(1944-2012)는 앞을 볼 수 없는 시력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연세대학교 교육학, 피츠버그 대학교 특수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리노이대학교 교수, 백악관 자문위원과 정책차관보 등 멋진 삶을 살다간 그리스도인입니다. 강영우 박사는 14살 중학교 시절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절망을 했지만 시력을 잃은 것이 인생을 포기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끝까지 노력하여 연세대학에 입학하고 미국 유학을 가게 됩니다. 결국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고난이 그를 더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코로나19의 전염병으로 우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고난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깨달아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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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나그네, 순례자의 길 | 2020-08-23 |
몇 년전 칼럼에 썼던 코메니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글을 올립니다. 잔 아모스 코메니우스( Jan Amos Komensky 1592년-1670년)는 17세기 체코 출신의 교육학자로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2살 때 부모를 잃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1616년 그의 나이 24세에 헤르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고향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1618년 30년 전쟁으로 고향을 등지고 망명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오랜 망명 생활을 한 후 1628년 모라비안 형제들과 함께 폴란드에 정착하여 목사로, 교사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활발한 생활을 합니다. 그 후 영국, 스웨덴, 화란 등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교육학자로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저서 중 <대교수학>, <열려진 언어의 문>, <빛의 길>, <세계도회> 등이 유명합니다. 코메니우스는 30년 전쟁으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1622년 비극의 상황이 그의 가정에 이르게 됩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그는 은둔처에서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 1623>, <슬픔에 슬픔을, 위로에 위로를 1624>, <안전의 중심 1625>를 집필하게 됩니다. 이 세 권의 책은 코메니우스의 영성을 말해주는 3대 위로의 책으로 꼽힙니다. 그 가운데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은 제목이 말하듯이 온갖 혼돈과 거짓과 불의와 무질서로 가득 찬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통하여 천국의 위로를 받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1부는 <세상의 미로>로 시작하여 제1장에서 “세상으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이유”부터 제35장으로 되어 있고, 제2부는 <마음의 천국>으로 시작하여 제53장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접된 순례자, 제54장 결론으로 마칩니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은 코메니우스 자신을 순례자로 표현하면서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크게 절망할 때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천국의 안식을 누림을 강조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로 앞이 보이지 않는 미로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를 받아 마음에 천국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코로나19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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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젊은이여 도전하라! | 2020-08-16 |
스타벅스(Starbucks Corporation)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커피 전문점입니다. 처음 시작은 1971년 영어 교사였던 제리 볼드윈이 교직을 사임하고 고든 보커, 지브 시글와 함께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작은 소매점으로 출발했습니다. 스타벅스의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 이름입니다. 아주 작은 커피 전문점을 1987년 하워드 슐츠가 인수하면서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스타벅스 로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Siren)이라는 바다의 인어입니다. 17세기 판화를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발전되어 지금의 녹색 로그가 탄생되었습니다. 로그의 여인은 아름답고 달콤한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그러하듯 스타벅스도 초창기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80개국 3만개 매장으로 1년에 30조라는 천문학적인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1991년 이대 1호점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에 매장이 1천3백 개 매장과 년 매출액이 2조원에 가깝고 하루 30만 명이 찾아오는 커피전문점이 되었습니다. 기업정신은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소비자들과 공감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찾아오는 고객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스타벅스는 고객보다 근무하는 직원의 행복을 우선하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 진동 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커피를 주문하면 직원들이 소리를 칩니다. ‘A –11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 나왔습니다’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직원을 최우선하며 인간존중의 경영을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직원들에게 하루 종일 소리치게 하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점입니다. 오늘 칼럼에 스타벅스 이야기하는 것은 ‘작은 시작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어서 입니다. 참된교회 청년이여 도전하세요. 환경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뜻을 세우고 큰 비전으로 출발하십시오. 주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 출발하십시오. 도전하는 그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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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독소(獨笑) - 혼자 웃는다 | 2020-08-09 |
다산(茶山) 정약용( 1762-1836) 선생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습니다. 7세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라는 시를 쓸 정도였습니다. 23살 이벽 선생을 만나 서양학문을 소개받고 실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한다)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31살에 수원성을 축조하는 업적을 남기며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아 경기도 암행어사를 거쳐 형조참의(검찰총장)가 됩니다. 그러나 정조 대왕이 죽자 그는 반대파에 의하여 유배를 갑니다. 40살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생활 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을 쓰기 시작하여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는 74세에 죽기까지 500여권 책을 집필하는 방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독소( 獨笑 -혼자 웃는다)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고.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지도상릉지)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고.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인간은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혼자 웃는 다산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시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세속의 행복 조건을 초월하여 혼자 웃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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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희망으로 삽시다 | 2020-08-02 |
에밀리 디킨슨 (Emily E. Dickinson 1830-1886)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애머스트(Amherst)에서 1830년에 태어나 활동한 천재 여류시인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애머스트 대학(Amherst College)을 설립했고 아버지는 변호사이며 국회위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청교도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활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평상시 외부출입을 즐기지 않았고 집에서 홀로 시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작품이 출판되지 않았으나 죽은 후 동생이 작품을 발견하고 1890년 그녀의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 희망은 날개 달린 것 >를 소개합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우리 마음으로 날아와 가사 없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 희망은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노래합니다. 2019년 마지막 주간에 쓴 글입니다. 2020년을 희망으로 시작하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19로 우리 모두를 답답하게 합니다. 특히 금년은 교회 설립50주년으로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희망의 새로운 결단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말씀처럼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50주년 행사는 금년에 못하면 내년에, 내년에 못하면 후년에 하면 됩니다. 코로나19의 답답한 시간, 역대 가장 긴 장마철, 부동산 문제로 불안한 경제, 정치의 실망, 그래도 우리는 희망 노래를 들으며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현실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희망으로 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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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아버지 마음 | 2020-07-26 |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중략) <가을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김창국 목사님입니다. 시인은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목회지에 따라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남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일제 강점기 때 항일의 표시로 글을 쓰지 않은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해방 후 조선대학교, 숭실대학교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소개한 <아버지의 마음>은 목회를 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그가 느낀 아버지는 밖에서 어떤 일을 하시든 집에 오면 자상한 아버지로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집에 오면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작은 그네에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는 표현은 아버지에 대한 감동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식들에게 자상한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홀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표현이 아닐지라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가장(家長)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기에 외롭고 고독합니다. 영어로 가장은 bread-winner로 표현됩니다. 이 말은 한 집안의 생계비를 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렵고 답답한 이때 가장(家長)인 아버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아버지들이여 힘내세요. 코로나19의 어둡고 답답한 시간...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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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외롭고 우울할 때 | 2020-07-19 |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1950년에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미국 시민의식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외부지향형으로 분류합니다. 그 가운데 외부지향적 인간은 친구와 직장동료들과 기타 주변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사귀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리스먼은 아무리 많은 사람과 사귀며 사는 외부지향적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홀로 외로워하며 고독해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대중 속에 고독>이라고 표현합니다. 라르쉬 공동체의 헨리 나우웬 역시 <영적 발돋움>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인데 외로움을 서로 격려해주고 함께 나누어 주려고 해도 극단의 외로움 속에서 탈출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가슴을 후비는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없으므로 더욱 외로워합니다. 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왁자지껄 놀더라도 돌아갈 때는 외롭게 혼자 걸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외로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고독을 느끼는 존재인 인간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운 사람과 만남이 제한되고, 대화가 단절된 포스트 코로나19의 현실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러한 외로움과 우울 감정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고 하면서 스트레스, 우울증, 기억력저하, 치매증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외롭고 우울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까? 외로움을 극복하는 길은 외로움을 긍정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삶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혼자라는 것을 느끼며 고독해 하는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이며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다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사귀며 사는 존재일 뿐입니다. 죽을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을 주변 사람과 관계에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과 만남은 다만 외로움을 조금 나눌 뿐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외로움을 수용하십시오. 고요한 고독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고요한 고독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외로운 순간, 조용히 그 외로움을 받아들이며 고요한 시간으로 바뀌어 본다면 그 순간 우리 앞에 영혼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외로울 때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대화하십시오. 그리고 외로움을 긍정하십시오. 큰 은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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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한국을 사랑한 마포삼열 선교사 | 2020-07-12 |
평양 지역에서 활동한 마포삼열(馬布三悅, Samuel Austin Moffet, 1864-1939)선교사는 인디애나주(州) 매디슨 출생하여 하노빌 대학,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 소속으로 26살의 나이로 1890년 1월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선교를 하시다 1893년부터 선교지를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선교사님은 1893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개척을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1901년 <평양신학교>을 세워 초대 교장에 취임했고, 1918년부터 1928년까지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은 한국을 사랑한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1912년 <105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애국지사들이 감옥에 투옥되자, 일본의 만행에 대하여 조선총독부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방문하여 항의했으며 반인륜적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미국 선교부에 알렸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한국장로교 총회장으로 있으면서 3.1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1919년 3월 17일 기사에 보면 마포삼열 선교사님에 대하여 “그들(선교사)은 복음전도를 위하여 한국에 와있는 듯이 가장하고 있으나 정치적인 혼란을 은밀히 충동하고 있다. 무리의 괴수는 마포(마포삼열)라는 미국 선교사이다.”라고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한 1920년 4월 동아일보에 실은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글을 보면 조선에서의 복음은 독립 정신과 민중의 복리와 정의를 튼튼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 후 선교사님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일본 헌병의 감시를 받아오다가 암살의 위협을 느껴 1936년 급히 한국을 뜨셨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1939년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어서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셨기에 유족과 협력하여 2006년 한국에 모셔 장로교신학대학 교정에 묻혔습니다. 196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과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130년 전 한국에 오신 마포삼열 선교사는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입니다. 마포삼열 선교사와 같은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순교와 헌신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선교사님들의 희생과 순교 그리고 복음의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사님들로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 우리도 세계선교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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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억지춘향」과 「억지춘양」 | 2020-07-05 |
<억지춘향>이라는 표현은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춘향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퇴기(退妓-은퇴한 기생)의 딸 춘향과 은밀히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을 하는 중에 아버지가 영전되어 한양으로 갑자기 올라가기에 춘향이와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 후 후임 사또가 부임하여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강요하자 이부종사(二夫從事)할 수 없다하여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정절(貞節)을 지킵니다. 결과는 춘향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사또의 생일에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나타나 춘향을 구해주는 소설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신임 사또가 춘향에게 억지로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한 말이 <억지춘향>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역시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1944년 일제가 영동선(영주-강릉) 철도를 놓을 때 지형적으로 춘양은 그냥 지나쳐야 하지만 억지로 우회하여 춘양역을 계획합니다. 이유는 춘양지역의 소나무 목재와 지하 광산물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억지로 철길을 돌려 춘양역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억지춘향>이나 <억지춘양>은 어떤 일을 순리대로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억지로 일을 이룰 때 쓰는 말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행동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라고 합니다. 특히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일과 헌금을 할 때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헌금에 대하여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라고 말합니다. 또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회막을 만들면서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출35:21)”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이처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그 행동에 힘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감사를 표현할 때 <억지춘향>이나 <억지춘양>으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