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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259흔들리지 않는 가르침의 원리 2020-05-03
이솝 우화 중 <팔러 가는 당나귀>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시장으로 갈 때 일어난 일입니다. 당나귀를 팔러 처음 집에서 나갈 때는 당나귀를 그냥 끌고 출발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하는 말이, ‘왜? 당나귀를 타지 않고 끌고 가는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말합니다. ‘어찌 버릇없이 아들은 타고 아버지는 걸어가는가?’ 아버지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아들에게 당나귀 고삐를 잡게 하고 자기는 당나귀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말하길, ‘어린 아들은 걸어가고 어른은 타고 가는가?’ 이에 아버지는 아들과 둘이 함께 당나귀에 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당나귀가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메고 갑니다. 그러다 개울을 건너는 중에 당나귀가 버둥거려 개울에 빠트렸습니다. <팔러가는 당나귀>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어떤 일에 자기 주관 없이 남의 말만 듣다 보면 당나귀를 메고 가는 꼴이 되고 마지막에는 개울에 빠트리게 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어린이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라고 말합니다. 또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6:7)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바르게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자녀를 가르칠 때 가르치는 교육의 원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만약 가르침의 원리가 <팔려 가는 당나귀>처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흔들리면 우리의 아이들이 자기 주관이 없이 주변의 눈치만 보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칠 때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교육 원리가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바르게 성경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원리를 세워 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른 신앙의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258고난을 수용하는 천국의 소망 2020-04-26
미국의 심리학자 큐블러-로스(Kubler-Ross, 1926-2004)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으로 수용하기까지 5단계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1.부정(Denial): 죽음에 대한 의학적 판명을 받으면 사람들은 일단 부정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부정합니다. 2.분노(Anger):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소리치며 떠들며 주변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사람들에게 뿐아니라 하나님께 분노를 표출합니다. 3.타협(Bargaining): 분노 후 어쩔수 없이 죽음을 일부 받아들이며 혼자 타협안을 내놓게 됩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직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협상을 합니다. 4.우울(Depression): 결국 하나님과의 협상도 어떤 서원도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삶을 포기하며 우울해합니다. 이쯤 되면 말이 적어지고 사람들을 기피하며 웃음을 잃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단계가 우울의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5.수용(Acceptance)입니다. 모든 감정을 정리하면서 어떤 방법이든 마음에 받아들이며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과 그간의 삶을 말합니다. 수용의 단계가 빠르게 오는 사람들도 있고 분노와 우울한 시간이 길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큐블러-로스의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죽음에 대한 5단계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경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오면 분노하며 부정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게 됩니다. 죽음 뿐 아니라. 우리는 크고 작은 고난이 올 때에도 일단은 부정하고 분노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소리치며 치받는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고난 중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 큰 은혜는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 땅에 잠깐의 나그네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돌아 갈 것입니다. 돌아갈 영원한 고향인 천국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고난도, 죽음까지도 쉽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며 언제나 희망으로 삽시다.
257실천하는 삶 2020-04-19

일산에 있는 백병원은 서울의 백병원과 같은 재단의 병원입니다. 백병원은 전국에 서울, 부산, 상계, 일산, 해운대에 5개 병원이 있습니다. 본래 백병원의 설립자는 백인제 선생입니다. 그는 1898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는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습니다. 경성의전 재학시절 3.1운동에 참여한 죄로 옥고를 치렀습니다. 백인제 박사는 오산학교 재학시절과 경성의전 시절 언제나 수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3.1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졸업과 동시에 나오는 의사 면허를 2년이나 지나서 면허증을 받습니다. 모교인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를 하다가 1941년 외과의원을 개원했고, 1946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목적으로 한국 최초의 민간 공익법인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했습니다. 1950년 6.25 전쟁 중 납치되어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가진 장기려 박사가 있습니다. 백병원의 백인제 박사, 부산 복음병원의 장기려 박사 이 분들은 우리 사회에 인술(仁術)을 베푸신 분들입니다. 백인제 선생의 후손들이 인술제세(仁術濟世)정신으로 인제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인술제세는 의사가 질병에 대하여 의학적 지식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 어질고 덕스럽게 그리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 인술로 세상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죄인이 죄로부터 구원받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 구원 복음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은혜는 값없이 받는 것이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가 대가 없는 공짜라고 생각하며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은혜는 공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생명을 드린 큰 희생의 대가로 받은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Bonhoeffer, 1906-1945) 목사는 <나를 따르라>는 책에서 실천 없는 복음은 값싼 은혜라고 말합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가 스스로 취한 은혜에 불과하다. 싸구려 은혜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없는 은혜에 불과하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사로 인술을 베푼 백인제 박사, 장기려 박사처럼 세상에 나아가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실천적 삶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562020년 부활주일 아침에 2020-04-12

전 세계가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1만 명 이상 사망자가 나온 국가들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페인, 미국 등입니다. 미국은 사망자가 1만6천명으로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이탈리아는 사망률이 12.9%나 됩니다. 우리나라는 4월10일 기준으로 208명이 사망했고 사망률은 2%입니다. 누적 확진자는 1만450명이고 완치된 사람들이 7천117명입니다. 전 세계가 팬데믹 상태가 되었습니다. 각국이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금지 명령을 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필요한 외출과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가능하면 대인과의 거리를 2M이상으로 하고 외출 시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집단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집회를 하지 못하고 예배를 온라인 방송으로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처음 드리던 3.1주일에는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혼란했습니다. 그래도 몇 주만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7주째가 되었고 부활주일입니다. 이단과 분별없는 사람들은 말세의 대재앙이 시작되었다고 소리치며 듣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합니다. 특히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희망의 복음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또한 잠언 14:32에는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이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백창우 시인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라는 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2020년 부활주일 아침, 우리 모두가 절망하는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일지라도---또한 모두가 인생길 끝이라고 할 때 그곳이 끝이 아니고,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다시 시작된다는 희망으로 2020년 희망의 부활주일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55미래의 관심보다 오늘을 열심히 삽시다 2020-04-05
<옛날 어느 조그만 나라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작은 나라이기에 종종 침략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이웃 나라의 침략 받았습니다. 왕은 전쟁을 앞두고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미래를 볼 수 있다면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텐데...........' 불안한 왕은 전국을 샅샅이 뒤져 제일 유명한 예언자를 찾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며칠 만에 신하들이 한 예언자를 찾아 왕 앞에 세웠습니다. 왕은 예언자에게 이번 전쟁의 승패에 대하여 말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왕에게 미래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이시여! 만약 내가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면 왕은 방심할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서 진다고 하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싸우지도 않고 전쟁에서 질 것입니다. 왕이시여! 내가 알려드릴 수 있는 미래는 앞으로 분명 전쟁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나가면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왕은 전쟁에서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켰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렘1:5),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언자는 구약성경에서 “나비(????)”라고 하는데 그 뜻은“말하도록 부름 받은 자”입니다. 즉,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는 사람의 앞날의 길흉(吉凶)을 말해주고 복채를 받는 세속의 점쟁이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죄를 짓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여 회개를 촉구하며, 죄의 결과 미래사회는 멸망하니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왕이 예언자를 찾아와 앞날을 말해 달라는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앞날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앞날을 미리 안다면 운명론에 빠져 자신의 삶에 열심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이 있을 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의 관심보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254그 때가 오면 2020-03-29
경기도 유형 문화제 1호로 지정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후기 목조건물로 1624년(인조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수어장대는 1층 누각이었던 서장대(西將臺)를 영조 27년 1751년 2층으로 증축하고 이름을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바꾸어 부른 것입니다. 장대(將臺)란 조선시대 장군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하던 높은 곳을 말합니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는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마지막까지 싸운 곳입니다. 당시 인조는 청나라 13만 대군과 싸우다 45일 만에 잠실의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을 합니다. 청나라는 인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왕자들을 볼모로 잡아갑니다. 이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잡혀갔던 왕자 봉림대군은 8년 후 돌아와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됩니다. 1649년 왕위에 오른 효종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고 군사 강화 정책을 펼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남산산성에 있던 서장대(西將臺)를 증축하고 이름을 바꾸어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부르고 수어장대 안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었던 수모와 그의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벌 정책을 계획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조가 붙인 이름입니다. 영조의 무망(無忘)의 정신은 비극의 상황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3월1일부터 집단 감염의 위험이 있기에 예배 모임을 하지 못하고 방송으로 드립니다. 예배는 모임에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예배는 성도의 교제와 권면 그리고 성찬을 할 수 없는 예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19는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교회에 모여 예배할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예배를 간절히 사모했던 오늘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리 모두 모이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53잡초(雜草) 2020-03-22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온실의 환경에 익숙해 있기에 온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름철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운겨울 보온을 해주는 온실의 보호막이 있기에 화초는 살 수 있습니다. 화초는 온실의 보호막이 없어지면 시들해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하지만 잡초(雜草)는 자라가는 환경을 누가 마련해주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잡초입니다.
사전에서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설명합니다. 잡초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번식해갑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잡초는 뽑고 뽑아도 계속해서 자라기에 골치를 아파합니다. 최근에는 잡초를 제거하려고 아예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버립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용혜원 시인은 <잡초>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아무도 반기지 않아도 / 서성거리기 보다는 /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하기에 /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 생명의 줄을 이어갑니다. / 이름 모를 꽃이 피어도 / 누구든 사랑해 주면/ 한동안의 행복도 가져보지만 / 떠가는 구름이 / 한줄기 비라도 / 쏟아 놓으면 / 그보다 더한 행복이 / 어디에 있겠습니까? / 버려진 땅에서도 / 진한 목숨만은 / 어찌할 수 없어 / 언제든 오신다면 / 쉬어갈 자리는 /비워 놓겠습니다. >

잡초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꿋꿋함과,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걷어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환경을 탓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80평생 인생 여정 길을 가는 동안 온실처럼 언제나 평안하고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비바람이 부는 사나운 날씨와 같은 시련과 역경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길은 어떠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잡초처럼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욥24:16)
252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2020-03-15
경기도 광명시에 가면 기형도 시인의 문학관이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광명시 소하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광명시에 그이 문학관이 세워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일찍 쓰러지면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려고 애쓰는 어머니의 모습과 공장에서 일을 하던 누나의 죽음이 그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난과 누나의 죽음이 시인으로서 깊이 생각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연세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기자로 활동을 하면서 현대문학지 등에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1989년 28살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작품 중에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입니다. 시의 전체 흐름보다 첫 구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 구름은 나부낀다. /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 담아선 안 된다. /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삶을 사는 나에게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고 늘 마음에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그냥 내 몸에서 머물다 가라고 그렇게 허용하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살겠다고 하는 시인의 노래입니다. 그 불안의 짐짝들에게 외는 마지막 말은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입니다.
251유비무환(有備無患) 2020-03-08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민속마을입니다.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하회마을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다녀간 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하회마을은 류씨의 집성촌으로 하천이 회돌아 가는 곳이라 하여 하회마을이라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곳에 조선 중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선생의 생가 있습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1591년 우의정으로 이조판서를 겸하고 이어 좌의정에 올랐으며, 왜란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을 의주 목사로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습니다. 1592년 4월 일본이 침입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며 임진왜란 중에 왜군과 맞싸웠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전쟁에 대하여 너무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 전역은 전쟁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가까스로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 조정에서는 전쟁의 책임론이 대두되었습니다. 결국 서애 류성룡 선생은 반대파의 탄핵으로 고향으로 낙향하였습니다. 고향 하회마을에 돌아 온 류성룡 선생은 자신이 겪은 임진왜란에 대하여 <징비록>이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징비 懲毖>라는 말은 《시경》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대일 외교 관계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긴 책입니다.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는 국보 제132호의 책입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평양까지 피난 간 것은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을 미리 대비하여 힘을 기르지 못한 까닭입니다. 미리 준비하여 대비했다면 전쟁이 일어나도 어려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나라 전체가 위급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지역사회 감염이 되어 어떻게 방역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의 교훈인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50주일예배 2020-03-01
우리가 지키는 규칙의 <예배 모범>의 “제1장에 주일을 거룩히 지킬 것”이라는 구체적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6개 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니 이날을 거룩히 지키라 (2) 종일 지키며 육체적 쾌락과 세상의 염려에서 벗어나 온 종일 거룩히 지키라 (3) 먹을 것까지 준비하여 온 가족이 예배하라 (4) 서로 기도하며 공동예배를 준비하라 (5) 함께 모여 예배하라 (6) 공식 예배후 남은 시간을 경건하게 보내라 ---- 이처럼 주일예배는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으로 국가가 재난을 선포하고 보건 당국이 대중 집회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에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영상예배로 드리는 엄중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더구나 반사회적 집단인 <신천지>는 지난 16일 대구 집회에 감염자들이 대거 참석하므로 대구, 경북은 감염지역이 되었고 국가는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신천지 이단의 특징인 거짓말과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는 폐쇄적 상황이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합니다. 특히 신분을 속이고 지역 교회에 침투하여 활동하는 <추수꾼>들이 있기에 교회의 주일예배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참된교회 담임목사로 “교회당 출입을 잠정 폐쇄 합니다. 모든 예배는 방송으로 드립니다”라는 결정을 하기까지 너무나 어렵고 괴로웠습니다. 한국 교회는 1885년 공식 선교 이후 일제 강점기의 모진 고문과 핍박, 6.25 전쟁의 위기에도 공식적으로 주일예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결정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의 건강과 지역주민의 건강을 담보하며 집회를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중단이 아닙니다. 1부 9:00 예배는 교역자 중심으로 드립니다. 꼭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결정된 일입니다.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어두운 터널이 지나면 밝고 희망찬 길이 나올 것입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어야 매화꽃이 핍니다. 특히 이번 기회에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 예배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