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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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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자기희생(自己犧牲)의 실천 2022-08-07
주보 칼럼에서 소개했던 가시고기, 염낭거미가 있습니다. <가시고기>는 몸의 길이가 5-6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민물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가 되면 암컷은 수컷이 만든 둥지에 산란만 하고 떠납니다. 암컷이 떠난 알 주변에서 수컷은 알이 부화 될 때까지 둥지를 지킵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알을 잡아먹지 못하게 작은 몸짓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결국 수컷 가시고기는 알을 지키다가 기력이 다하여 새끼들이 부화 될 때 즈음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가시고기의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적 행동입니다. <염낭거미>는 우리나라 논이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노란색 거미입니다. 여러 염낭거미 중 애어리염낭거미는 억새풀을 말아서 그 속에서 사는데 다른 거미보다 모성애가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애어리염낭거미는 산란기가 되면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스스로 거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산란합니다. 어미는 스스로 갇힌 거미집 안에서 새끼들의 먹이가 됩니다. 염낭거미는 어린 새끼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거미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먹이가 되는 어미 염낭거미의 희생은 미물의 곤충이지만 위대한 희생입니다.
오늘은 어미의 희생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소개합니다. <펠리칸> 새입니다. 펠리칸은 부리 밑에 큰 주머니가 있는 새입니다. 펠리칸은 먹이를 사냥하여 부리 밑 주머니에 넣었다가 새끼에게 날아와 잡은 먹이를 토해내 새끼에게 줍니다. 펠리칸의 전설은 중세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이유는 새끼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앞 가슴살을 쪼아서 먹이고 자기 목에 상처를 내서 자신의 피를 먹여 어린 새끼를 살린다는 새입니다. 이만큼 새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새이기에 킹제임스 영어 성경 표지 중앙 하단에 펠리칸 새를 그려 넣고 있습니다. 가시고기, 염낭거미, 펠리칸 이 모두는 새끼를 위하여 어미가 희생하는 곤충이며, 물고기 그리고 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린 보혈의 공로로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 살아있는 동안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웃을 위한 작은 희생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373휴가(休暇) 2022-07-31
울산지역 어느 향토사학자의 <육십인생길>이라는 한 시가 경남일보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은 60년 인생길을 앞만 보고 걸어왔더니 발바닥에 통증이 일어났는데, 이는 인생길을 쉬어가라는 뜻임을 알고 걸어오던 길 멈추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내용입니다.
耳順生涯唯進向(이순생애유진향)
육십년을 오로지 / 앞만 보고서 뛰었는데
一瞬足掌來疼痛(일순족장래동통)
한순간 발바닥에 / 아픔이 아려 오네
幾微發病知休息(기미발병지휴식)
병이 날 기미는 / 몸이 쉬어라 하는 일
行路止揚省寸衷(행로지양성촌충)
가던 길 그쳐 살피며 / 뒤돌아서 본다네
인생을 <길>로 비유하며 어느날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면서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는 의미입니다. 7-8월 여름 휴가철입니다. 휴가(休暇)는 일을 쉰다는 휴(休)와 틈의 낸다는 가(暇)의 한자어입니다. 휴가는 잠시 틈을 내어 쉰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리프레쉬(refresh- 활기있게하다, 새롭게하다, 신선하게하다)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자신의 인생길을 뒤돌아보며 새롭게 점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삶을 짧은 인생길이라고 비유로 표현합니다. 나그네 (벧전2:11), 안개와 같은 인생(약4:14), 풀과 꽃과 같은 인생 (시103:15), 바람(욥7:7), 낙엽(욥13:25), 그림자(욥14:2)로 비유합니다.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의 인생의 시간들이 신속히 지나가며 순식간에 끝난다고 고백합니다. 2022년 여름 휴가철에 짧은 인생길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앞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새롭게 앞으로 나갈 길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자기 점검과 미래를 위한 자기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3723대 악처(惡妻) 욥의 아내 2022-07-24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머 이야기 중에 눈에 멍이 들어 병원에 치료받으러 온 남편들에게 간호사가 묻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호사가 '와이프'에게 왜 맞았는지 물었더니 50대 아저씨, 통장 보여 달랬더니 '와이프'가 그건 봐서 뭐 할거냐며 퍽!, 60대 아저씨는 아침에 '밥 줘'! 했더니 '와이프'가 손은 뒀다 뭐 하느냐며 한방 퍽!, 70대 아저씨는 어디 가냐구 물었더니 '와이프'가 그건 알아서 뭐 하냐며 한방 퍽!, 80대 아저씨는 내가 제일 억울해~, 아침에 눈 떴다고 '와이프'가 한 방 퍽!, 그냥 웃자고 만들어 낸 유머이지만 현대 사회는 여성의 발언권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전에는 남편 중심의 가정이었지만 이제는 아내의 주도권이 그만큼 커진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새벽에 욥기를 묵상합니다. 욥은 우스 땅에 사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신앙이었습니다. 자녀 10남매를 두었고 동방에서 제일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재산은 약탈당하고 자녀들은 죽었고 몸은 병들었습니다. 이때 그의 아내가 욥에게 하는 말이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욥기에서 욥의 아내는 그리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욥의 아내를 일반적으로 세계 3대 악처(惡妻)로 평가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그리고 욥의 아내가 3대 악처입니다. 톨스토이의 아내와 소크라테스의 아내의 이야기는 우리가 악처로 판단될 만한 일화가 남아 있지만 욥의 아내는 욥기에 딱 한 마디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말입니다. 그런데 세계 3대 악처 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이 고난당했을 때 가족은 유일하게 아내뿐인데 위로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비난한 것이 악처의 조건이 된 것입니다. 가족은 기쁠 때도 가족이며 어려울 때도 가족입니다. 세상 일에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아내들이여 용기를 줍시다. 남편들이여 고난의 현실이지만 새 힘을 냅시다.
371성경읽기 2022-07-17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리에 남평 문씨의 문중 도서관으로 유명한 “인수문고 (仁壽文庫)”가 있습니다. 인수문고는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일본이 강탈해 갈 무렵 남평 문씨의 가문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세워진 도서관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등장하기 전 우리나라의 전통적 도서관은 (1) 정조 때 세워진 규장각과 같은 왕립도서관이 가장 큰 형태의 도서관입니다. 그리고 (2)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서 교육을 위한 학교 도서관이 있습니다. 또한 (3) 문중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문중 문고와 (4) 개인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개인 서재 형식의 도서관이 있습니다. 인수문고는 그 규모나 소장하고 있는 책의 가치와 내용으로 보면 국내 최고 고서(古書)를 소장하고 있는 문중 도서관입니다. 소장하고 있는 인수문고의 분량은 영남학파의 본산지로 알려진 안동의 도산서원에 소장하고 있는 책의 분량이 4400책 1만권 정도인데 인수문고는 8500책 2만권 이상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인수문고”의 특징은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에 분개하여 가문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남평 문씨 문영박 선생이 세운 것입니다. 문영박 선생은 인재양성을 위하여 책을 구입하는데 먼저 책을 선별할 학자가 필요했습니다. 문영박 선생은 일본의 핍박을 감수하면서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자 창강 김택영 선생을 만나 중국에서 책을 구입하여 배편으로 목포, 남원, 함양을 거처 지리산을 넘어 대구로 운반을 하는 대역사를 실행했습니다. 어린 시절 도서관에 꽂혀 있는 장서들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훗날 책을 읽고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고 꿈을 가지고 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앞두고 교사들과 온 교회가 오늘 오후 1시30분에 헌신를 다짐하는 교육부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 방법중에 책을 읽는 독서를 통한 교육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교육 방법중에 성경책을 부지런히 읽히고, 가르치고, 실천하게 하는 방법은 매우 중요한 교육 방법입니다. 자녀들에게 성경책을 읽는 습관을 가르칩시다. 또한 경건 서적을 읽고 하나님의 소명을 꿈꾸는 어린이로 양육합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370예배하는 교회 2022-07-10
오래전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하라>는 책을 집필하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소강석 목사는 시골의 불신가정에서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쫓겨나 혼자 고학을 하면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맨발, 맨손, 맨몸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1만5천의 성도로 부흥시켰고 교회당을 1만2천평의 초대형으로 지었습니다. 세속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로 투박하지만 소신 있는 목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외형적 목회자로 성공한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보낸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하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교회가 집중할 때 교회는 생명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교회부흥이 온다는 것을 말하려 합니다. 신정주의 교회라는 말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교회를 잘못 오해해서 우리가 모여서 우리의 의견을 모아 우리의 뜻대로 우리가 끌고 나가면 되는 식의 표현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큰 오류는 교회를 잘못 인식해서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가 헌금하여 우리끼리 운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속주의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배를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면 교회의 모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드리고 싶으면 참석하고 드리고 싶지 않으면 불참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정주의 교회는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예배를 최우선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교. 교육 지역봉사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을 신정주의 교회라 말합니다. 교회는 모인 사람들이 단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잘못된 교회들의 상황을 보면 친목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처럼 운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 스스로 노력한다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되는 것이며 모든 부분들이 풍요롭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최우선 하는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됩시다.
369감사(感謝) 2022-07-03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은 구약성경에 초실절(맥추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절기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구약의 절기에 나타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을 하는 것뿐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절기 중 감사 절기는 초실절(맥추절), 장막절(수장절)이 있습니다. 초실절은 보리, 밀의 추수를 한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실절은 처음 익은 열매로 감사하는 절기로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장막절, 수장절은 포도, 무화과, 올리브(감람나무 열매) 열매를 추수하여 곡간에 수장(收藏-창고에 쌓아놓다)하여 넣은 후 출애굽의 광야 길을 생각하며 광야로 나가 장막을 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처럼 구약시대는 봄의 맥추절, 가을의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약의 절기에 교훈을 얻어 1년에 두 번 감사절을 지키는데 맥추감사주일과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처음 농사 후 감사했던 11월 셋째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현대의 도시민들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1년 중 상반기 6개월을 보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나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서울예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호승 시인의 <감사하다>라는 시를 보면 모든 것이 은혜이며 감사입니다.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왕벗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둥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귀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코로나로 어려운 때 하나님이 지켜주심에 감사합시다. 모든 것이 은혜이며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368고정관념(固定觀念) 2022-06-26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가 쓴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이 말하듯 이탈리아의 해상 도시 베네치아(Venezia)에 대한 영어 표현인 베니스(Venice)에 일어난 일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베니스에서 무역업을 하는 주인공 안토니오가 친한 친구 바사니오에게 청혼자금을 빌려주기 위하여 자신의 가슴에서 1파운드의 살을 떼어 내는 담보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 거금을 차용합니다. 바사니오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포샤에게 청혼하기 위하여 친구 안토니오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결국 바사니오는 포샤에게 청혼을 성공합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바다에서 자신의 배가 침몰했다는 헛소문 때문에 사업이 어려워져 작정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하게 됩니다. 돈을 빌려준 유대인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미워하여 차용증서대로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내겠다고 고집합니다. 이때 법원의 판사로 가장한 포샤가 마지막 판결을 하는데 차용증서에 나오는 조건대로 살만 도려내고 피는 흘리지 말라는 판결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희곡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등장하는 유대인 상인 샤일록은 복수심에 피도 눈물도 없는 오직 돈만 추구하는 고리대금업자로 묘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고정관념>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사물을 보는 틀이 바뀌지 않고 고정된 관점으로 평가하며 그렇게 행동합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누가 보아도 틀린 것인데도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자신이 옳다고 말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샤일록은 고리대금업자로 오직 돈만 추구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흔히 우리는 유대인을 탐욕스럽게 이익만 추구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피부색으로 인종차별을 할 때가 있는데 편견이며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지난주 설교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환자를 예수님이 고치셨는데 이날이 안식일이라고 유대인들은 트집을 잡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들은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복음으로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누구든지 무엇에든지 동일하며 평등합니다.
367죽기 살기로 도전하라 2022-06-19
몇 년전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이 다니엘의 삶을 설교하면서 <죽기 살기로 도전하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누가 들어도 은혜로운 설교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안 그래도 세상에 지친 청장년에게 죽기 살기로 또 도전하라니--” 참 부정적 댓글입니다. 긴 댓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에서 뭘 죽기 살기로 노력하라는 것인가? 먼저 교회가 세상을 개혁하여 노력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댓글을 보면서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희망고문이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말입니다. 남녀간의 사랑 교제에 있어서 교제하기 싫으면 ‘미안해’라고 빨리 표현해주는 것이 옳은 일인데 사랑할 것도 아니면서 상대방에게 사랑의 희망을 주는 듯한 행동을 계속하는 것을 <희망고문>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라!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는 말을 하면 왜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못할 꿈을 꾸라고 하는가? 왜 도전하라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포기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5포(3포+주택,인간관계 포기), 7포(5포+꿈,희망 포기)라고 말하고 이제는 완포(완전히 포기)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마세요, 이미 포기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보면, 2030세대 대상으로 ‘7포세대’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5.9%가 “일곱 가지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포기할 생각이 없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4.1%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청년이 꿈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기 살기로 도전하라>는 말씀은 세상에서 쓰는 <희망고문>과는 다른 차원의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들입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나에게 맡긴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할 때 죽기 살기로 살라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었다, 못 이루었다는 결과로 평가하는 것은 세상의 평가이며 표현입니다. 우리는 매일 게으르지 말고 소명에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죽기 살기로 소명에 충성을 다 합시다.
366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아담슨 선교사) 2022-06-12
초기 한국에 와서 선교한 선교사님들 가운데 결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들이 계십니다. 그 가운데 호주 선교사로 경남지역에 와서 활동한 손안로(孫安路)라는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본명은 아담슨 (Andrew Adamson 1860 –1915)입니다. 아담슨 선교사님은 1894년 호주의 빅토리아 장로교 청년연합회에서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님은 영국 성서공회 선교사로 중국에서 5년간 활동하다가 건강의 이유로 런던에 돌아와 휴양하고 있을 때, 한국 소식을 듣고 런던에서 1894년 부산으로 옵니다. 호주의 빅토리아 장로교회 청년연합회는 한국 처음 온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Davies, 1856-1890) 선교사님에 6개월 만에 부산에서 폐렴으로 죽자 그 후임으로 멕카이(Mackay, 1857-1917) 선교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3명의 미혼 여자 선교사 벨레 멘지스, 진 페리, 포셋을 파송합니다. 멘지스 선교사는 부산에 일신여자학교를 설립했고 1919년 3.1운동 당시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 만세운동을 부산에서 처음으로 일으킨 독립유공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멕카이 선교사는 아내 사라가 3개월 만에 죽고 자신도 건강 악화로 2년 만에 한국선교를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데이비스 죽음, 멕카이 아내의 죽음, 멕카이 선교사의 귀국, 이러한 한국선교의 어려움 때문에 후임 선교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런던에서 아담슨 선교사가 자원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슨 선교사는 1894년 5월 부산에 도착하여 1914년까지 20년간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선교하였습니다. 호주 장로교 선교사님들은 1941년 일제의 강압으로 선교사님들이 추방될 때까지 78명의 선교사가 한국에 왔습니다. 호주 선교부는 부산, 경남지역을 선교하면서 5개의 선교지부를 조직했는데 부산, 마산, 진주, 통영, 거창입니다. 아담슨 선교사는 주로 부산과 마산에서 활동했는데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했던 마산 문창교회의 초대 목사님으로 시무하시면서 창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아담슨 선교사는 평생 열정으로 복음 전파를 했으며 경남지역에 20개 교회를 개척 설립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은 아담슨 선교사의 아내 엘리사가 한국에 온 지 1년 6개월 만에 풍토병으로 순교합니다. 우리는 한국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된 선교사님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복음 전도에 열심을 내며, 선교에 게으르지 말고 우리를 요구하는 곳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365성령강림 주일 2022-06-05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 12월 25일은 성자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로 오신 날이며 성령강림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유월절(逾越節-Passover) 절기 후 50일째 되는 날은 유대인 절기 오순절(五巡節 Pentecost)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은 바로 오순절 절기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성령 하나님께 보혜사(保惠師)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사도행전 2:1-4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라고 성령강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목적을 2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제자들에게 담대함을 주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핍박에 두려워했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받는 핍박은 제자들에게 큰 고통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일상이 위협받았고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고난이었습니다. 이러한 핍박 중에 성령의 오심은 제자들에게 큰 위로이며, 평안이며, 힘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8절에 보면 유대인들은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제자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행2: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성령강림은 겁쟁이 제자들에게 용기와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성령강림의 목적, 둘째는 겁쟁이 제자들을 <복음 증거자>로 세우는 일입니다. 숨어 있던 제자들이 예루살렘 거리로 나와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8의 기록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오시면 능력을 받아 전도자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제자들은 권능을 받았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성령강림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아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