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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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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가을 2022-10-16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단풍 소식이 들립니다. 전염병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는 모두가 고통스러워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문득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중용>의 문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성자(誠者)천도도야(天之道也), 성지자(誠之者)인지도야(人之道也)"입니다. 이 말은?진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성(誠)은 하늘의 도리이고, 진실함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는 뜻입니다. 즉 하늘은 언제나 성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그것 그 자체이지만 인간은 성실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여름 지나 가을이 오는 것은 변함없는 하늘의 이치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계절의 변화에 세월의 흐름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면 가을이 가고 이내 겨울이 올 것입니다. 이러한 세월의 흐름 속에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 낙엽이 떨어지듯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할 것입니다. 오늘, 가을의 단풍 소식을 들으며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시를 묵상합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중략---
383기리사독(基利斯督) 2022-10-09
사도행전 5:42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때 사도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교회에서 가르쳤고 밖으로 나가서 전도할 때 외쳤던 말씀입니다. 이렇게 외친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이후 700년간 기다리던 <메시야 ????????>가 드디어 오셨기에 감동으로 그분의 이름을 외치며 전도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분은 메시야입니다’라고 전도한 것입니다. 700년간 기다리던 구원자가 왔으니 얼마나 감동입니까? “메시야”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기름 부어 세운 자, 구원자”입니다. 구약시대에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했는데 즉, 메시야는 빼앗긴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할 왕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할 구원자가 올 것인데 왕으로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야의 구원 사상의 예언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국가적으로 고난 당할 때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 그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은 그들에게 큰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구원자이신 메시야가 왔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도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야입니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하신 예수가 700년간 기다린 메시야입니다’라고 가르쳤고 전도했습니다. 히브리어 <메시야 ???????? >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Χριστ??)입니다. 한마디로 메시야는 그리스도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Χριστ??)라는 말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지리스뚜”라고 발음하면서 기록은 기리사독(基利斯督)이라 썼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어 성경의 기록을 가져오면서 “그리스도”라고 발음하면서 중국처럼 기리사독(基利斯督)을 써야 하는데 글자가 길어 첫 자와 마지막 자로 줄이면서 “기독(基督)”이라고 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어찌보면 <기독>이라는 말은 조금은 이상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초기 조선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기독”이라고 했기에 별 뜻 없는 말 같고, 알고 나면 어색한 단어이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며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이며 그리스도이며 기리사독입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입니다.
382위기의 시대 어떻게 살까? 2022-10-02
우리가 살고 있는 2022년 현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위기의 시대(Time of crisis)입니다. 어떤 권위 있는 학자가 “위기”라고 말했다고 해서 위기가 아니라 실제적 사실(Substantively-꾸미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 실사)입니다. 하와이 대학의 미래학 교수 짐 데이토(Jim Dator)는 우리 시대의 위기를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 에너지 위기, 가공할 지구온난화의 기후 위기, 미국의 금융위기의 경제적 위기를 말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길한 3총사라고 표현합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위기 닥쳤습니다. 경제위기, 정치위기, 문화위기, 윤리위기, 교육위기, 가정위기, 등등 총체적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위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원인이 무엇일까? 전쟁, 기근, 전염병,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위기의 가장 근원적인 것은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분명 지구상의 1년 곡물 총생산량과 총소비량을 비교하면 수치상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함께 나누어 먹으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곡물을 가지고 나누지 않고 서로 많이 비축하려고 하는 소유 욕구가 강해 곡물을 무기화하여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곡물 사재기는 세계 곡물 가격의 폭등을 가져왔습니다. 분명 경제적 위기입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에너지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우리는 너무나 삶이 어려워졌습니다.
성경은 딤후 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합니다. 분명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예언입니다. 내용 하나 하나를 보면 지금 우리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살까? 이 시대를 바로 보고 영적으로 바로 서는 일입니다.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 모두 성경으로 돌아가는 바른 복음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381초과회복 2022-09-25
운동역학 용어 가운데 “초과회복(Supercompensation)”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운동선수가 체력강화를 위하여 고강도 트레이닝을 하면 근육이 피곤해지는데 이후 근육의 회복을 위하여 휴식을 취합니다. 이때 휴식 후 몸이 회복되는데,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보다 체력이 증가한 상태로 회복됩니다. 이러한 회복을 초과회복이라 말합니다. 즉 처음보다는 더 향상된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과회복이란 단어는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경제에도 초과회복을 말합니다. 지난 주간에 제23회 세계지식포럼(WKF 2022 - The World Knowledge Forum)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주제는 “초과회복 – 글로벌 번영과 자유의 재건”입니다. 세계지식포럼은 한국의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국제적 포럼입니다. 23회 동안 5000여 명의 유명 연사들이 강연을 했습니다. 빌게이츠, 부시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블레어 영국 총리, 샌더슨 교수, 등입니다. 금년 2022년 포럼의 주제인 <초과회복>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움츠렸던 세계 경제에 새로운 회복을 뜻합니다. 코로나로 마비된 세계 자유무역 경제에 더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상승에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당장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휘발유 가격상승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주유소에 가기가 짜증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혜를 모아 우리의 경제 회복에 힘을 써야 할 때입니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코로나 이전보다 더 발전한 “초과회복”을 원하는 것입니다.
초과회복이라는 말을 우리의 신앙에 적용시킨다면, 그동안 코로나로 어려워진 우리의 참된 예배가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회복은 단순한 옛날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발전된 모습의 초과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의 말처럼 욥이 고난 이후 그의 믿음이 정금 같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고난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여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예배의 회복에 더 발전된 초과회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모든 부분에 더 나은 회복, 초과회복이 있기를 우리 모두 바랍니다.
380세우는 교회공동체 2022-09-18
중국의 한자는 어휘를 풀어 뜻을 나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함께 한다”는 동(同)자의 뜻을 풀어보면,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국경의 성곽을 나타내는 “경”(?-멀 경)과 출입구를 나타내는 “구”(口-입 구)와 하나라는 “일”(一 하나 일)이 합쳐진 말입니다. 즉 마을에 입구가 하나뿐이라 그 문으로 같이 드나든다는 뜻으로 같을 동(同)을 씁니다. 여기에 큰 “대”(大)를 붙이면 대동(大同)이라는 말이 됩니다. 크게 뜻을 같이한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예기(禮記)>에 대동사회(뜻을 같이하여 크게 함께하는 사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개인이 사유화하지 않으며, 노인은 안락하게 오래 살며, 젊은이는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는 직업이 있으며, 어린아이는 안전하게 길러지며, 재물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버려지거나 사치스럽게 사용되지 않으며 함께 나누어 쓰며, 간사한 모의나 도둑이나 절도범이 없어 대문을 열어놓고 안심하고 사는 사회를 대동사회(大同社會)라고 합니다. 1917년 민족의 지도자인 이상설,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 14명이 상해에 모여 민족의 대동단결(大同團結)선언을 합니다. “대동단결하자는 의견은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소문만 요란하고 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합동하자고 하지만 그 실행에 이르러서는 힘이 미치지 못하니 그 죄를 서로 떠넘긴다” 이제는 싸우지 말고 모든 단체들이 합동하여 일치단결하여 재정을 모으고 인물을 모아 대의명분에 맞게 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하며 7강령과 함께 대동단결을 선언합니다. 그 후 1919년 독립선언서와 3.1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상해 임시정부를 조직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가 성도 간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이나 위로나 성령의 교제가 있으면 마음을 같이하고 한마음으로 하고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공동체는 마음을 같이하고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코로나 이후(Post-Corona) 교회에서 일어나는 탈교회화 현상은 예배에 모이지 않으며 혼자 방송으로 예배하며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함께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참된교회는 복음 안에서 대동(大同)의 마음으로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고 함께 세워갑시다.
379직분자 2022-09-11
10월 30일 주일예배 후 직분자를 선출하려 합니다. 매번 일꾼을 세울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직분자의 자격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누가 자격이 있느냐고 물으면 자격이 있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부족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이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직분에 대하여 딤전3:1-7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교단 헌법에서 말하는 장로에 대한 자격은‘만 35세 이상 된 남자 중 입교인으로 흠 없이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으며 딤전3:1-7절에 해당하는 자로 한다’입니다. 맡은 직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한다. 2)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한다.(성도들의 신앙을 살펴 이단이나 도덕적으로 죄악을 범하는 자를 권면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당회에 보고한다. 3) 교우를 심방하되 위로, 교훈, 간호한다.(병든 자. 상을 당한 자, 어린이를 가르치고 간호하는 일에 평신도보다 의무와 직무상 책임이 중하다) 4) 교인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한다. 5) 특별히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한다. 이러한 직무를 이행하기 위한 직분이 장로의 직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강조되는 점은 1) 말씀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자를 직분자로 세워야 합니다.(성경읽기) 2)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늘 기도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예배참석, 기도생활) 3) 교회 행사와 봉사에 적극적인 사람으로 세워야 합니다. (각 부서에서 봉사) 4) 물질과 생활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세워야 합니다. (감사, 십일조) 5) 교회 부흥을 꿈꾸는 사람으로 자원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긍정적 생각, 서로 사랑) 2022년의 직분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사람이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378헛된 일에 열심 내지 맙시다 2022-09-04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근심하는 문제가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8%정도 밖에 안된다는 통계수치를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그의 저서《모르고 사는 즐거움》중에서 다음과 같이 걱정에 대한 통계를 내어놓았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적정,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가 쓴 <인간관계론>‘걱정을 멈추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라’이라는 글에서 <톱밥을 켜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필라델피아의 어느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일하던 프레드리 셰드는 대학 졸업식에서 <톱밥을 켜지 말라>고 연설을 합니다. 톱은 나무를 자를 때 쓰는 도구이지 톱밥을 켜는 연장은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졸업생들이 지나 과거의 일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미래에 도전하지 못한다면 톱으로 톱밥을 켜는 것이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력할 가치가 없는데 열심히 하는 일을 관용적으로 <삽질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톱으로 톱밥을 켜는 일, 쓸데없이 삽질하는 일, 지나간 버스에 손수건 흔드는 일,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는 일은 결과가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헛수고 하는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멸망할 것을 예언하면서 정치적으로 애굽을 의지하지 말며, 바벨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52:2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을 막으려고 애굽 군대에 돈을 주고 외교정책을 펴는 일은 헛수고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헛수고하는 일이며, 삽질하는 것이며, 톱으로 톱밥을 켜는 일입니다. 2022년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 돌아오면 우리의 영이 살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일에 수고하지 말고 톱으로 톱밥을 켜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며 우리의 영이 살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도하는 가을철이 되기를 바랍니다.
377기도 (pray) 2022-08-2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98문항은 ‘기도란 무엇입니까?’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하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간구하고,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그의 자비하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요약하여 설명한다면 (1)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삶을 살 때 언제나 형통하며 풍요롭지만 않습니다. 고난, 환란, 핍박으로 궁핍한 삶을 살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간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또한 더 많은 주의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간청의 기도를 드립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마7:7) (2) 기도 중 간청의 범위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간청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약4:3). (3) 언제나 기도자는 자신의 죄를 먼저 자복해야 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청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죄가 가득하면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4) 기도자는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의 마지막 단계는 감사입니다. 주신바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하지 않을지라도 감사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죠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는 독일의 할레 대학에서 경건운동을 배우고 영국의 브리스톨의 빈민가에 들어가 고아들을 돌보며 경건한 삶을 산 <기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목사님입니다. 일생 5만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열정의 기도자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열심 있게 합니다”코로나로 어려운 때 우리 모두 하나님께 열심 있는 기도자들이 됩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응답이 있을 때까지 지치지 말고 기도합시다.
376원수를 사랑하라 2022-08-21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안이숙 사모(해방 후 미국에서 김동명 목사님과 결혼)가 쓴 수기형식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 내용 중에 <일본 여자 포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이숙 여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국회의사당에 기독교 탄압과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인쇄물을 뿌리다 체포되어 국내 평양 감옥으로 이송되어 6년간 옥중생활을 했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수감 생활 중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 오신 주기철 목사님과 이기선, 주남선, 한상동 목사님, 오윤선, 방계성 장로님 등을 만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둑놈, 사형수, 사기꾼, 술집 여자, 기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감옥에서 만났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감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진한 여성들을 술집에 팔아넘긴 악질 일본 여자 포주가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술집에 팔아넘긴 일본인 포주를 죽이려 했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이 여자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이런 여자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답은 일본인 악질 포주까지 사랑하라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의 위대한 능력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이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산에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데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미운 감정을 억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원수 사랑을 실천하려면 (1)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 원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천국에 들어가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에 비교하면 원수 사랑의 실천은 작은 것입니다. (2)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공의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현상 중 하나인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참 제자 삶을 실천합시다.
375광복절(光復節) 2022-08-14
오늘은 광복(光復) 제77주년 되는 광복절 기념주일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1910. 8. 29. 일본의 강압적 조약인 한일병탄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지 35년 만에 1945. 8. 15. 나라의 주권을 회복한 날입니다. 일제강점기 35년간의 시간들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분에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핍박과 순교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35년 강점기에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주체가 되어 나라의 독립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오점도 남겼습니다. 신사참배(神社參拜)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으로 강요한 것으로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Shintoism)의 사원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을 지어 기독교인을 참배시키므로 우리나라의 국민정신을 일본화하려는 잔인한 정책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38년 9월 9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소집되었습니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신사참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결합니다. “아등(我等)은 신사(神社)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려행(勵行)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있어서 총후(銃後)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한다.” 총회 총대들은 오전에 가결하고 총회장과 노회장들이 함께 평양에 있는 신사를 합동으로 참배했습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역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주기철 목사님 같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학교들이 신사참배 반대 입장을 내었고 그 결과 학교가 폐교되고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했습니다. 전국 노회들이 신사참배를 가결했지만 <경남노회>만은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당시 노회장 <최상림 목사님>은 1938년부터 일제의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어지자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목사님은 49회의 반복되는 수감생활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시고 1945년 5월 순교하셨습니다. 77주년 광복 기념주일에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의 나라를 사랑의 믿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나라 사랑과 올바른 믿음을 지키기로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