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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168강릉을 다녀오면서 2018-05-27
제2여전도회와 함께 강릉 은평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강릉을 다녀오면서 강릉이 고향인 역사속의 두 여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분은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이며 다른 한 분은 천재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입니다. 신사임당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허난설헌은 조금은 생소한 여성입니다. 강릉 초당동에 그녀의 생가가 있습니다. 본명은 허초희(許楚姬)입니다. 강릉 초당두부의 <초당(草堂)>은 그녀의 아버지 허엽(許曄)의 호이며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許筠)은 그녀의 남동생입니다. 허난설헌은 1563년에 태어나 1989년27살에 요절한 조선 중기 여류시인입니다. 허난설헌은 15살에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세력가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면서부터 고난이 시작됩니다. 고부의 갈등, 남편의 무관심. 두 아들의 죽음 등 견디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틈틈이 시를 쓰면서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그녀의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은 남동생 허균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허균은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이었던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누나의 시를 주어 중국에서 출판하여 극찬을 받게 됩니다.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에 의해 일본에서도 그녀의 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허난설헌은 그녀가 죽은 후 조선보다 명나라와 일본에서 작품이 출간되어 애송되는 국제적 여류 시인이었습니다.
연약사담양양비(燕掠斜?兩兩飛) : 제비는 치자나무 비스듬히 스치듯 쌍쌍이 날고 / 낙화요란박라의(落花?亂撲羅衣) : 떨어지는 꽃은 어지러움을 안고 비단 옷을 스치는구나./ 동방극목상심처(洞房極目傷心處) : 내 눈은 동방을 향하니 마음엔 상처뿐인데 / 초록강남인미귀(草綠江南人未歸) : 풀이 파래져도 강남의 님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
내용을 보면,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왔고, 봄꽃은 이미 졌고, 풀잎은 이미 자라서 파래졌다. 이처럼 긴 시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지만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니 내 마음에는 상처뿐이다.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못난 남편을 하늘같이 바라는 여인의 그리움을 표현한 시입니다. 현재의 삶이 우리에게 고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강릉을 다녀오면서 고난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글을 쓰며 고난을 온 몸으로 견디어낸 허난설헌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167자녀 양육 2018-05-20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정했을까? 아마도 계절 중 가장 활동하기 좋고 푸르른 자연을 볼 수 있는 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5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1일 입양의 날, 15일 스승의 날, 세계 가정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가정에 관련된 많은 행사들이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한번 쯤 돌아보길 바랍니다. 부부의 대화, 자녀 양육, 부모께 효도 등입니다. 특히 자녀양육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맥아더 장군은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서 <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와,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을 세우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아들은 이런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자신의 소원이 담긴 기도문입니다.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나오는 미국의 존경받는 사람 중에 하나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생의 노년에 아들에게 교훈하고 싶어 자서전을 씁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매일 점검하며 살았던 13가지 덕목을 말합니다. < 1. 절제 2. 침묵 3. 질서 4. 결단 5. 절약 6. 근면 7. 성실 8. 정의 9. 중용 10.청결 11.평정 12.순결 13.겸손 >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13가지 덕목을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실천한 덕목을 공개하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너도 이렇게 생활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맥아더 장군처럼,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가르치고 싶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자녀를 가르칠 때 신명기 6장 4절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말합니다. 가정의 달이며 스승의 주일에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까? 생각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166아버지, 어머니 2018-05-13
매년 어버이 주일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일까? 고민을 해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입니다. 2018년 어버이 주일에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자 고영민 시인의 <산등성이>를 소개합니다.
- 산등성이 -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 집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듯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는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 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165어린이날 2018-05-06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된 것은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날을 제정했습니다. 기록에 보면 어린이날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꿈을 가지고 자라나게 하자는 취지로 소파 방정환 선생과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동이 되어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가진 것이 첫 어린이날의 기념 행사였습니다. 그 후 1927년에 5월 첫 주일날을 어린이 날로 정했다가 1939년 일제의 압력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1946년에 5월5일에 어린이날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그리고 1957년에 어린이 작가협회가 주관이 되어 어린이 헌장을 선포했고 1970년 대통령령으로 5월5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하였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어른들은 어린이를 바르고 씩씩하게 키워야함을 강조하고, 어린이에게 많은 선물 안겨 주고 재미있는 놀이로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날만 어린이를 기쁘게 해줄 것이 아니라. 항상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어린이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988년에 수정 공포된 어린이 헌장(憲章) 전문을 보면 “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로 되어있습니다. 어린이 헌장의 정신은 (1) 평등정신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어린이는 누구나 어떠한 환경이든지 차별 없이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꿈을 이루어 가는 성장과 성숙의 정신입니다. 어린이는 지금의 모습으로 정지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씩씩하게 성장하며 성숙해 가는 존재입니다. 꿈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날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며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아끼지 맙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22:6)
164 무제(無題) 2018-04-29
이어령 교수를 말할 때, 문학 평론가, 언론인, 베스트셀러 작가, 장관, 한국의 지성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릅니다. 반 기독교인으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딸의 암투병과 실명위기, 손녀의 ADHD 증후군의 연속된 고난 속에서 예수를 믿어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시 가운데 자신의 고백과 같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4월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을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이어령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 기척도 없이 다가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 하소서 /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163잔인한 4월 2018-04-22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Eliot)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 ,1922년 작품)의 첫머리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4월’(April is the cruelest month)로 표현되면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 T.S 엘리엇(Eliot)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逆說)적인 표현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1922년)를 쓸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이 없는 황무지 같은데 눈치 없는 봄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대지에 비를 뿌리어 꽃을 피우고 희망을 속삭이니 잔인한 4월이라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봄의 계절 4월은 대지에 꽃을 피우고 새들은 봄을 노래하며 지저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 없는 황무지이기에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움트는 봄, 파릇파릇 새싹이 무거운 흙덩이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희망의 봄. 진달래, 개나라 꽃소식을 들으며 나물 캐러 동구 밖 들로 나가는 아름다운 봄. 종달새 울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얼었던 마음까지 녹이는 따스한 봄. 하지만 2018년 우리의 봄은 매일 반복되는 재난문자로 잔인한 4월이 되었습니다. “(긴급재난문자) 16시 미세먼지 경보발령, 어린이. 노약자 실외활동 금지, 마스크 사용하세요.” 2018년 4월은 미세먼지로 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1922년의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은 희망이 없는 사회에 대한 표현이라면 2018년 4월은 미세먼지로 꽃을 보지 못하는 잔인한 4월입니다. 하지만 죽은 땅에 라일락을 키워내고, 엄동설한(嚴冬雪寒) 꽁꽁 얼었던 대지를 실낱같은 생명력 하나로 뚫고 나오는 새싹의 생명력을 보면서 우리는 미세먼지로 잔인한 4월에도 희망을 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욥14:7)
162열정(passion) 2018-04-15
분당에 있는 새에덴교회는 성도수가 2만5천명이나 되는 초대형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는 맨손, 맨몸, 맨땅의 ‘3M’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쓴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하라>는 책 2장에 ‘개고기와 소주 사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척초기 남전도회가 야유회를 가서 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남전도회 회원들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다 병에 몰래 소주를 담아 와서 사이다인척하면서 목사님 앞에서 소주를 먹었습니다. 이때 어느 집사님이 실수로 목사님께 사이다를 따라 준다는 것이 소주를 따라주게 된 것입니다. 사이다인줄 알고 마시던 목사님이 소주를 마시게 되자 갑자기 밥상을 발로 차면서 ‘어떤 X같은 놈’이 목사에게 소주를 먹이냐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너희들 이 자리에서 집사 다 잘라버린다’고 소리치고는 야유회 중간에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 집사가 술에 취하여 교회로 찾아와 ‘술 한 잔 먹었다고 집사를 자르는 목사가 어디 있느냐’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참다못한 목사님은 그를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죽기 직전(?)까지 때렸습니다. 분이 나서 ‘너 같은 놈이 집사이기에 한국교회가 요 모양이지’하면서 ‘그래 내가 나 복 받으려고 너희에게 술 먹지 말라고 했느냐? 네 놈들 복 받으라고 하는 것이지’ 그런데 목사에게 죽도록 맞은 집사가 목사의 폭력을 문제 삼을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난 후 오히려 집사가 목사에게 무릎을 꿇고 ‘목사님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 제일주의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소강석 목사의 목회에 대한 열정을 단편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누구나 인생길은 한 번 주어진 여정입니다. 어떻게 살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희망의 4월, 우리 모두 후회 없는 불꽃같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내 가슴에 뜨겁게 흐르는 피의 열정으로
오늘을 살겠다. 한바탕 춤사위로
솟구쳤다 몰아쳐오는 바람처럼
거센 폭풍우처럼 한 동안만이라도
뜨거운 열정으로 살고 싶다.

용혜원 시인의 <거센 파도로 살고 싶다> 중에서
161 복종과 저항 2018-04-08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1945)는 독일 루터교단의 목사로 반 나치운동가로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1945년 4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모두 다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히틀러의 나치운동에 대하여 반대하며 항거하는 저항정신과 고난에 동참하는 실천적 신앙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독일에서 박해가 심할 때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 라인홀드 리버가 교수자리를 마련하고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 독일국민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고 하면서 망명을 거절하고 독일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에 대하여 <값싼 은혜>라는 용어로 비판합니다.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을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 되었고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이 되었음을 본회퍼 목사는 지적합니다. 그의 신앙을 2단어로 요약한다면 “복종”과 “저항”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감옥에 <옥중서신>을 썼고 많은 기도문을 남기었습니다. 여러 기도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태연하게, 명랑하게, 확고하게,
영주가 자기 성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방에서 내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하지만,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유롭게, 다정하게, 맑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처럼,
간수들과 대화한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한다. -중략-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누구이건,
아!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잔인한 4월, 우리도 불의에 저항하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삶을 삽시다.
160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2018-04-01
주간에 어느 목사님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회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저에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으로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 마음 너무나 잘 알기에 긴 통화를 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함께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주일을 앞에 두고 있으니 소망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언제가 읽었던 시 구절이 생각나 소개했습니다. 백창우 시인의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라는 시입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부활절 아침에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다시 한 번 소망을 가지고 도전해봅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 우리의 소망입니다. 2018년 새봄에 새로운 소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159 새 봄, 새로운 도전 2018-03-25
조선시대 문인이며 실학사상의 선비인 연암 박지원( 朴趾源, 1737년-1805년)선생은 당파가 심했던 조선 후기의 학자입니다. 그는 당색으로는 노론이었으나, 노론의 한 분파인 북학파(北學派)를 세워 그 영수가 되었습니다. 연암선생은 양반집 자녀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면서 가정이 가난하여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16살이 되어서 집안에서 소개한 신부와 결혼을 하는데 그의 아내가 글공부를 많이 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연암 선생은 이때까지 글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가 학문적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그는 이때부터 글공부를 시작 합니다. 다행히 주변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어 깊은 학문을 하게 되었으며 그는 학문적으로 실학자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홍대용 등과 만나 교제했으며 이들과 함께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배워야 한다며 상공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상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웃나라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어서 1780년 5월 영조의 사위인 박명원 대감이 이끄는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 황제의 70회생일(만수절) 축하 사절단원으로 자원하여 44세의 나이로 관직 없이 무명의 군사로 청나라를 방문합니다. 오직 배우고자는 일념으로 사절단원에 동행한 것입니다. 축하사절단으로 북경을 방문한 연암선생은 출발부터 돌아올 때까지 모든 상황을 글로 남깁니다. 무려 26권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씁니다. 그가 쓴 <열하일기>는 문체가 해학적이며 기행문 형식의 일기입니다. 연암선생은 청나라의 앞선 기술을 배우고 선진 제도를 본받으려 하였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우리의 가난의 원인은 도로망이 없고 바퀴달린 수레를 사용하지 못하므로 교역이 활발하지 못다는 지적을 할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연안 선생은<열하일기>뿐 아니라 <과농소초>와 <허생전><양반전><호질><우상전>등 많은 소설을 남깁니다.
16세까지 글을 몰랐고 학문에 무식했던 연암선생이 16세에 처음 글을 배웠고, 44세에 배우고자 청나라를 자원하여 방문한 것처럼 배우는 것은 늦었다고 깨닫는 순간 늦은 것이 아닙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2018년 새봄에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