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No제목 | 등록일 |
---|---|
148목숨을 바칠 만한 2018년의 꿈 | 2018-01-07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1902-1920/18년)의 유언입니다. 유관순은 1902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선교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었습니다. 아우네(병천)의 시골마을에게 선교사의 도움으로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1916년에 엘리스 샤프 선교사의 추천으로 공주 양명학교에서 서울의 이화학교 보통과에 입학하였습니다. 1919년 이화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아우네로 내려와 진천, 청주, 천안, 안성, 병천 등지의 유지들과 교인들과 연락하여 4월1일 아우네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동하였습니다. 1919년 5월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아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습니다. 1심에 불복하여 2심으로 서울 고등법원에 이송되어 6월30일 징역 3년 선고를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중 옥중에서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다 수차례 구타를 당하여 1920년 9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화학교 의 프라이(Lulu E. Frey)와 월터(Jeanette A. Walter) 선교사는 형무소에 찾아가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이화학교 선교사들이 유관순의 옥중사망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본 당국은 시체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1920년 10월 14일 정동감리교회에서 김종우 목사님이 장례식을 집례하여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후 1936년 일제의 이태원 택지 조성 때 묘지를 무연고 묘지로 처리하여 지금은 무덤을 찾을 수 없습니다.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항일투쟁인 독립만세운동을 외치다 감옥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나는 지금 목숨을 바칠 만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요? 또한 나의 꿈이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일인지요? 2018년 꿈을 이루기 위한 유관순 열사와 같은 열심히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
|
147인생의 목표 | 2017-12-31 |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분명히 있다고 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무엇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즉시 내 목표는 이것입니다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저 막연히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고, 혹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현 불가능한 목표는 어린 아이가 너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 라고 물으면 ‘대통령’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이렇게 이루겠다는 목표보다는 막연한 목표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1953년 예일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인생의 목표에 대하여 설문조사하여 타임캡슐에 넣고 30년이 지난 후 개봉해보았더니 87%가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막연한 목표였다는 것입니다. 예일대학교 학생들이라면 그래도 세계적인 엘리트 집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구체적 목표 없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구체적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폴레옹 힐의 성공원리>에 보면 인생의 목표를 세우라고 말하면서 5가지 원리를 말합니다. (1)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목표를 세우라 (2) 구체적으로 세우라 (3)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변화를 상상해보라 (4) 남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라 (5) 나와 주변의 사람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라. 바다에서 항해하는 모든 배는 먼저 항해하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항구를 출발합니다. 만약 목적지가 없다면 그 배는 표류하는 배입니다. 돌아갈 항구가 있는 배는 폭풍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항해합니다. 인생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처럼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새들백교회 이야기>로 한국교회에 유명해진 릭 워렌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두어야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라”고 강조합니다. 2018년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목표가 분명한가? 그 목표는 신앙적인가? 또한 실현가능한 목표인가? 만약 목표가 없으면 분명한 목표를 정하시길 바랍니다. |
|
146성공보다는 소명의 삶 | 2017-12-24 |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1365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성공요소 1순위>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41%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으로 1위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인맥과 대인관계 능력’ 13.8%, ‘개인의 역량’ 13.7%, ‘학벌 출신학교’ 8.5%, ‘성실성’ 5.1% 순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고 답했습니다. 10년 전 2007년에는 <직장 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한 요건>에 대한 응답자의 27.6%가 ‘일에 대한 열정’이 1순위였습니다. 이어 ‘일에 대한 적성’(23.8%), ‘상사와의 관계’(11.2%), ‘건강’(9.2%), ‘인맥’(7.8%), 등의 순이었습니다. 2011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개인들이 갖춰야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직장인들은 ‘학벌’(23.4%)을 꼽았다. 이어 ‘경제적 뒷받침’(21.6%), ‘외모’(20.3%), ‘인맥 및 대인관계 능력’(12.5%) ‘집안의 배경’(10.2%)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학벌주의, 인맥을 성공의 요소로 꼽았지만 이제는 점점 출신 집안과 부모의 역할이 성공요소의 1순위로 꼽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그래도 10년 전 ‘일에 대한 열정’이 성공요소의 1순위로 꼽을 때가 더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에 대한 깊은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성공에 있기에 성경을 읽으면서도 베드로의 고난과 순교보다 한 번 설교로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숫자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믿음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보다 믿음의 승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그가 쓴 <소명Calling>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성공보다는 소명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무엇이 인생의 목적인지 모르고 돈버는 일에만 전념하며 살다가 어느 날 돈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깨달을 때 마음에 후회하는 허탈감은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인생의 궁극적 존재 이유의 정답은 <소명-calling>에 있습니다. 소명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로부터 부름 받았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
|
145성경이 기준입니다 | 2017-12-17 |
우리에게 <1만 시간의 법칙><다윗과 골리앗-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로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유명한 전자회사의 헤드폰의 상태를 실험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학생들을 선발하여 3그룹으로 나누어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1) 한 그룹은 노래를 들을 때 고개를 상하로 흔들 라고 했습니다. (2) 그리고 다른 그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라고 했습니다. (3) 남은 한 그룹은 노래를 들으면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들은 후 대학 등록금을 750달러 인상해야 한다는 어느 강사의 논설문을 들려주었습니다. 실험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짤막한 설문지가 주었습니다. 노래와 고개를 흔드는 효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등록금 인상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실험 결과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1) 고개를 상하로 흔든 사람들은 긍정의 효과로 대학 등록금을 인상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2) 고개를 좌우로 흔든 학생들은 부정의 효과로 등록금 인상에 반대를 했습니다. (3) 몸을 흔들지 않은 사람들은 논설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표면상 전혀 다른 이유에서 고개를 상하로 흔들면서 긍정하는 뜻의 몸짓을 한 학생들이 노래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하여 긍정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 사람이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할 때 판단자의 환경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자신의 지식과 신념, 성격과 기질, 자신의 이익과 손해, 그리고 주변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또한 자신의 입장에서 주관적 판단을 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은 객관적이며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의 주장을 꺾고 싶은 이기심과 자존심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판단보다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가 항상 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상황 판단의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논쟁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
|
144거듭난 사람 | 2017-12-10 |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그런데 거듭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거듭남을 영어로 표현하면 Regenerated (다시 생성되다), Born again(다시 태어나다)입니다.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천국-天國)를 함께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인의 관원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율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천국)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10년 20년 30년을 교회에 출석해도 하나님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5-16)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요한 서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 범죄하지 않는다, (2) 서로 사랑한다, (3)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합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3:9)” “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5:1)”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일5:4)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으로 세상을 승리하며 천국을 누리기 바랍니다. |
|
143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 2017-11-12 |
바다에서 싸우는 해전(海戰)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해전이 있습니다. 살라미스 해전, 칼레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입니다. 이들 3대 해전은 치열한 전투이면서 한편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해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 3대 해전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4대 해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 추가된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싸운 명량 해전입니다. 명량해전 당시 출정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이순신 장군이 “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으며,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난중일기 정유년 9. 15)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싸움에 임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강조한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하여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를 외치며 죽기를 각오하고 도전하여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복음 안에서 은혜를 받았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리디머 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팀 켈러 목사님은 우리의 삶의 변화를 2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는 <도덕주의적 행동변화>입니다. 이는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심판다고 믿기에 심판을 두려워하여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동기가 악행을 하면 다음에 나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 두려워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적 행동 변화>입니다. 이는 은혜로 구원 얻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감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동기가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은혜 받은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변화는 첫 번째의 도덕주의의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복음적 행동의 변화>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 교훈주의로 삶을 산다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일시적이며 즉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 받았기에 우리는 지속적이며 영원한 기쁨의 삶이며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31) |
|
142무제(無題) | 2017-11-05 |
거리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렸더니 멋진 동네 산다고 댓글이 붙었습니다. 몇 장 더 찍어서 올리려다 참았습니다. 자랑 질하는 것 같고,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 같고, 한가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 같아 참았습니다. 하지만 일산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거리의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설악산, 내장산 단풍을 보고 돌아와 일산의 거리를 보는 것은 마치 부잣집 도련님이 화려한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 잊었던 순박한 옆집 순이가 반기듯이 일산의 가을은 옆집 순이처럼 그렇게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단풍잎, 낙엽, 옆집 순이의 단어가 생각나 언젠가 읽었던 머릿속의 기억을 더듬어 <서시><별헤는 밤>으로 유명한 윤동주의 시를 찾았습니다. 찾고 보니 제목이 <소년>이었습니다. < 소 년 > - 윤동주 -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순이의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
141종교개혁(the Reformation) | 2017-10-29 |
오늘은 500주년 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영어로 the Reformation 라고 씁니다. 종교개혁의 Reformation는 항상 대문자로 씁니다.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유럽 역사에서 워낙 큰 사건이기에 때문에 정관사(the)를 붙인 대문자(Reformation)로 표기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타 종교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기독교만의 전용 용어가 아니라 불교도, 이슬람도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하여 기독교의 종교개혁(the Reformation) 과 구분하기 위하여 소문자로 종교개혁(reformation)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기독교만의 용어가 아니라는 비판이 일어나자 중립적 용어로 <기독교개혁 Protestant Reformation> 또는 <교회개혁 church reformation>이라고도 쓰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단어 Reformation는 다시(Re)+ 형태(form)의 뜻으로 본래의 형태를 부수고 바르게 형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의 <개혁 改革>이라는 말은 “기구나 제도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침”로 해석됩니다. 이 말은 고친다는 “개”(改)와 가죽이라는 “혁”(革)이라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가죽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하는 작업은 가죽을 만드는 과정처럼 어려운 과정입니다. 어떤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개혁한다는 것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죽을 만들려면 동물을 잡아 얻은 생가죽에 기름을 빼는 무두질이 필요합니다. 생가죽을 물과 화공약품에 담그고 때리는 무두질이 없으면 가죽은 뻣뻣하여 쓸 수 없게 됩니다. 무두질은 끈질긴 작업이며 기다리는 작업입니다. 이처럼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가죽에 무두질을 하듯 종교개혁은 생명을 건 투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은 유럽의 역사 속에 위대한 사건이며 타락한 교회를 바르게 고치는 거대한 작업이기에 용어가 고유명사화 되었습니다. 또한 가죽을 만드는 작업처럼 어려운 작업이기에 순교를 각오한 끈질긴 작업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종교개혁을 500년 전의 단회적 사건으로 보지 말고 날마다 계속되는 개혁의 작업으로 우리마음을 가죽 만드는 어려운 작업처럼 날마다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
|
140위그노(Huguenot) | 2017-10-22 |
종교개혁 500주년 되는 해의 10월입니다. 몇 차례 소개했던 위그노를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에 대하여 들어 봤을 것입니다. 루이14세는 “짐이 곧 국가다 (Ltat, cest moi)”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왕입니다. 그는 자신을 지상에서 신의 대행자라 하여 왕권신수설을 믿던 왕입니다. 그는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종교>라는 정책을 실천하므로 프랑스에서 개신교들을 핍박한 왕입니다. 루이14세는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의 치열한 위그노전쟁으로 얻어낸 화해의 <낭뜨 칙령>을 하루아침에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인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유럽의 각 지역으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당시 영국으로 6만 명, 아일랜드 1만 명, 네덜란드 6만5천명, 독일 3만 명, 스위스 2만2천 명, 노르웨이 덴마크등 북유럽 수천명, 신대륙 미국으로 1만 명이 이민을 갔습니다. 본래 <위그노 Huguenot>라는 말은 <동맹 공동체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신앙 공동체의 프랑스 사람들 부르는 말입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당시 제철, 염료, 화학의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국의 찰스 2세는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특별 이민법을 제정하기까지 합니다. 영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독일로 들어간 사람들은 독일의 기계 기술력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스위스로 들어간 사람들은 시계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시계의 명품의 상징인 롤렉스, 오메가, 론진, 삐아제 시계는 이들이 발전시킨 것들입니다. 영국, 독일, 스위스 뿐 아니라 18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위그노들은 화약과 총포의 기술을 보급시킵니다. 우리는 미국을 1620년 청교도들이 건너가 개척한 땅으로 흔히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580년대에 이미 미국에 정착한 산업기술의 위그노들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오늘의 우리는 위그노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개혁주의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위그노처럼 바른 신앙과 모든 일에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는 위그노가 됩시다. |
|
139위기의 시대, 인재양성에서 길을 찾다. | 2017-10-15 |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5월16일에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입니다. 소래교회의 시작은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상륜, 서경조 형제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입니다. 소래교회는 교회부흥 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주일학교를 시작했고 1895년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해서제일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해서제일학교>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브란스 의대 제1회 출신으로 최초의 의사이며 독립 운동가인 김필순 선생, 서상륜의 사위로 세브란스 제1회 출신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홍종은 선생, 서경조의 장남으로 세브란스 제2회 출신 서광호, 중국 남경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운동과 경신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서병호 선생,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박헌식 선생, 평생을 세브란스에서 의대생들을 가르쳤으며 연세대학교부총장 원자력병원장과 유한공전재단이사장을 역임한 의학박사 김명선 선생, 그 밖에도 의사인 조광현, 최창수, 박상근, 박승원, 홍순각, 고명우 선생이 있으며 군인으로 활동한 김경선 장군, 여성으로 동경유학생 2.8독립선언을 주도했고 귀국 후 독립운동을 한 김마리아 선생, 미국 콜롬비아대학 졸업후 수피아 여고와 서울 정신여고 교장을 지낸 김필례 선생, 남궁혁 박사의 부인으로 여성독립운동가인 김함라 선생, 김규식 선생의 부인으로 독립운동을 한 김순애 선생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황해도 소래교회의 <해서제일학교>가 인재양성을 한 것처럼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선천의 <신성학교> 역시 기독교 인재들을 양성한 학교입니다. 오산학교 출신으로 주기철 목사, 한경직 목사, 시인 김소월, 화가 이중섭, 인제대학의 백인제 박사, 함석헌 선생 등이 있습니다. 선천의 <신성학교> 출신들을 보면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 서울대 총장 장리욱 박사, 의사 장기려 박사, 차병원 차경섭 박사,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 신학의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방지일 목사 등이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 인재양성으로 미래를 열어간 <해서제일학교><오산 학교><신성학교>처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오늘의 영적위기에서 우리의 선조들처럼 인재양성에서 길을 찾고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어 인재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