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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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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2014-02-02

미국의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토미 테니(Tommy Tenny)라는 목사님 쓰신 <하나님의 관점-God’s eye view>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다윗의 장막>과 더불어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은혜를 끼친 책입니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보면 사람이 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이가 답답해하면서 “아빠 안아줘요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 ”라고 외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만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른들의 신발뿐이기에 답답해하는 모습을 그린 장면입니다. 이때 아이를 안아서 높이 올려주면 그때서야 옆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고 아이는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는 사물의 관점은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른들의 신발만 보는 어린아이처럼 제한적이며 답답한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옛 말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밖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넓은 세상과 아름다움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본대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의 사물을 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고집스럽게 속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위에 계시기에 세상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시야를 낮은 시각으로 한정해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더 높은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2014년 새해가 1월이 지나 이제 2월이 되었습니다. 2014년은 세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지 말고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어 보다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욥35:5  

37클뤼니 수도원 (L'Abbaye de Cluny) 2014-01-26

클뤼니 수도원은 프랑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부르고뉴 주(州) 손에루아르 현(縣)에 있는 역사적인 수도원입니다. 910년 아퀴타니아의 빌헬름 공작(Guilaume de Aquitaine )이 자신의 별장을 교회에 기증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 건물의 크기만 하더라도 축구장 2개를 연결한 것만큼 큰 수도원입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설립 초기부터 영성에 관심을 두고 교회개혁을 단행한 수도원입니다.


당시 수도원들은 교회의 본질인 영성보다는 세속의 권력과 결탁하여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제후들과 귀족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직자들을 이용했고, 성직자는 그들의 권력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농지를 받았고,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세금면제, 교회의 치외법권 허용, 재판권부여, 화폐 제조권, 관세 권리 등 교회는 세속의 경제적 특권을 누렸고 수도원장은 지역 제후처럼 행사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이러한 교회의 타락을 개혁하고 신앙의 본질인 영성을 회복하려고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설립 때부터 클뤼니 수도원은 봉건적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경비는 신자들의 자유로운 헌금으로 하며, 수도원장의 선출은 직선제로 하고, 생활은 태만과 나태를 추방하고 필사와 노동과 공동예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명문화 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10-11세기 교회개혁의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오딜로 원장 시절(994~1048년)에는 클뤼니 수도원에 속한 수도원이 유럽에 2000개가 넘을 정도로 발전했고 영적 권위를 가지고 교회를 지도했습니다. 하지만 클뤼니 수도원도 세월이 지나면서 설립 당시 영성을 잃게 되니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프랑스 국립 종마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수도원 개혁의 대명사였던 클뤼니 수도원도 영성을 잃게 되니 앙상한 건물만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도 화려한 건물과 성도의 숫자를 자랑한다면 신앙의 본질인 영성을 잃어버린 클뤼니 수도원처럼 박물관의 박제된 유물로 남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교회의 생명인 영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8)

36무제(無題) 2014-01-19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81년 톰 슐만의 소설을 각색하여 1989년에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1959년을 배경으로 보수적인 남자사립학교인 웰튼 아카데미(Welton Academy)에 문학선생으로 새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키팅이라는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키팅 선생님은 너무나 틀에 박힌 사물을 보는 시각과 고정된 가치관에 삶을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너의 인생은 매우 중요하며 지금의 삶에 열정을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문학 시간에 교과서를 찢어내 버리라고 하는가하면 또한 학생들에게 교실의 책상에 올라가서 사물을 보라고 합니다. 책상 위의 학생들에게 “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책상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오늘은 칼럼을 쓰면서 목사로써 조금은 소리를 높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을 정죄하고 비하하며 내가 옳다고 하는 어리석은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털처럼 가벼운 지식을 가지고, 빈 깡통의 소리를 내고도 그것이 옳은 것인 양 큰소리치며 사는 어리석음,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그것이 원리라고 떠들면서 남을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모르는 소름끼치는 무식함을 드러내는 아픈 현실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책상위로 올라가기만 해도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상식이 전부인양 사람을 정죄하며 내 원리가 옳다고 떠들어 대며 나는 네가 하는 일에는 협조할 수 없다고 하는 아집과 편견으로 가득 찬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에서 사물을 이해하고 떠들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보 같은 수다이며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좀 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이해합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3-4)

35베르디의 오페라, 나부꼬(Nabucco) 2013-12-07

이탈리아 사람 베르디(GiuseppeVerdi 1813~1901)가 작곡한  오페라 <나부코 Nabucco>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줄여서 부른 것입니다. 오페라 <나부꼬>는 구약 성경 열왕기하 25장에 나오는 유대 왕국의 멸망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패전국 유다왕의 조카 이스마엘과 침략자 나부꼬 왕의 딸 페나나 공주와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앞에 방해꾼인 아비가일 때문에 시련이 닥치지만 아버지 나부꼬 왕이 극적으로 나타나 페나나 공주를 구원해 주며, 악역을 맡은 아비가일이 마지막 죽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작품입니다.
베르디가 처음 이 작품의 작곡을 부탁 받았을 때 그는 작품을 작곡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습니다. 당시 베르디는 아내가 죽어 실의에 차 있었고 하는 작품마다 실패하여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카라 극장 지배인 바돌로메 메렐리의 끈질긴 설득 때문에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베르디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다 사람들의 상황이 자신의 상황과 비슷함을 느끼고 그는 용기를 내어 나부꼬 작곡하게 됩니다. 결국 1841년 전곡을 작곡했고 1842년 3월 처음 공연을 하게 됩니다. 시연 후 관객들은 열광했고 67회나 연속으로 공연을 하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나부꼬>는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입니다. 1986년 리카르토 무티의 라스칼라 음악감독 취임 공연에서는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이 끝나자 관객들이 30분 동안 박수를 치며 앵콜을 연호하므로 극중 상황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앵콜 곡을 공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 작곡을 시작할 때 베르디는 연이은 작품 실패와 아내의 죽음으로 절망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여 위대한 <나부꼬>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특히 바벨론 강가의 희망의 찬가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은 당시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기에 독립을 염원하는 그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국민의 노래가 된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여정 길에 한 두 번은 어려운 상황이 옵니다. 그러나 베르디처럼, 바벨론 강가의 포로들처럼 고난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할 때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34소래교회의 해서제일학교 2013-11-30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5월16일에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입니다. 소래교회의 시작은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상륜, 서경조 형제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교회가 부흥되어 1895년 7월3일 교회당을 증축하고 헌당식을 거행할 때에는 마을의 85가구 중 80세대가 예수를 믿을 정도로 크게 부흥한 교회입니다. 또한 소래교회는 복음전도 뿐 아니라 교육에도 크게 기여한 교회입니다. 
  소래교회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을 처음에는 야학으로 시작했지만 1895년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해서제일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재정이 어려웠으나 카나다 선교사 윌리암 존 맥켄지 선교사가 소래교회에서 순교한 후 그의 유산을 학교에 기부하므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소래교회가 운영한 해서제일학교는 철저한 기독교 신앙을 기초하여 학생들을 교육했습니다.
  <해서제일학교> 출신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브란스 의대 제1회 출신으로 최초의 의사이며 독립 운동가인 김필순 선생, 서상륜의 사위로 세브란스 제1회 출신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홍종은 선생, 서경조의 장남으로 세브란스 제2회 출신 서광호, 중국 남경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운동과 경신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서병호 선생,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박헌식 선생, 평생을 세브란스에서 의대생들을 가르쳤으며 연세대학교부총장 원자력병원장과 유한공전재단이사장을 역임한 의학박사 김명선 선생, 그 밖에도 의사인 조광현, 최창수, 박상근, 박승원, 홍순각, 고명우 선생이 있으며 군인으로 활동한 김경선 장군, 여성으로 동경유학생 2.8독립선언을 주도했고 귀국 후 독립운동을 한 김마리아 선생, 미국 콜롬비아대학 졸업후 수피아 여고와 서울 정신여고 교장을 지낸 김필례 선생, 남궁혁 박사의 부인으로 여성독립운동가인 김함라 선생, 김규식 선생의 부인으로 독립운동을 한 김순애 선생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소래교회는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해서제일학교>을 세워 한국의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 냈습니다. 특히 의사와 독립운동가 그리고 여성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교회입니다. 어려운 시대에 복음전도와 인재양성에 힘쓴 선조들의 신앙을 새기며 우리도 전도와 자녀양육에 열심을 냅시다.

33한국교회의 추수감사주일 유래 2013-11-16

 추수감사주일은 전통적으로 매년 11월 셋째 주일로 지킵니다. 한국교회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게 된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입니다. 미국은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을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전 국민이 국경일로 지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유래는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0여 일간의 항해 끝에 11월에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여, 어려운  악 조건에도 살아남아 1년 농사를 짓고 인디언들과 함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축제의 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절의 행사를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주일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주장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장로교 총회 기록을 보면 한국교회는 1904년부터 감사주일을 지켰습니다. 당시 1904년 9월13일 서울의 동현교회에서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모였습니다. 이때 한국 최초 교회인 황해도 솔내 교회를 세운 서상륜의 동생인 서경조 목사(발언 당시 장로 1907년 목사안수)가 발언권을 얻어 감사주일을 제정하여 1년에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이에 모두가 찬성을 하여 위원회가 조직되고 위원회는 1904년 11월11일을 감사일로 정하고 최초로 한국교회가 감사절을 지키게 됩니다. 그 후 1905년 11월 9일, 1906년 11월 19일, 1908년 11월 29일로 날짜를 정하여 지켰습니다. 그 후 11월 셋째주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1904년 추수감사주일을 제안한 서경조 목사는 감사의 이유를 1년 농사를 짓고 결실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교회가 설립되고, 동포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흉년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해 1904년 총회는 구제헌금을 하여 어려운 지역 교회를 돕자고 가결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의 추수감사는 1년 동안 농사를 지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먹을 것은 없어도 감사, 가난해도 예수 믿고 구원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구원에 감동하는 선조들의 추수감사절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봅시다.

32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 2013-11-09

지난 주일 오후 예배 때 말씀을 증거해 주신 이재환 선교사님의 설교 제목이 <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이었습니다. 이 제목은 영국에서 목회를 하셨던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잘 알려진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1921 -2011) 목사님께서 88세에 그의 생애 마지막에 쓰신 책, 제자도(The Radical Disciple )의 서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책 제목을 <The Radical Disciple>로 붙여서 영국에서 출판했는데 번역하시는 분이 우리말로 <제자도>라고 했습니다. 조금은 의역된 제목입니다. “레디칼(Radical)”하다는 말은 급진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근본적”, “근원적이라고 표현되어야 할 단어입니다. <제자도><급진적 제자>라는 표현이 더 본문에 가까운 번역일 것입니다. Radical Disciple이라는 말은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뜻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표현하는데 하나는 크리스챤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입니다. 크리스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세상 속에 들어가 예수님의 진리를 가지고 세상을 개혁하는 사람들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제자도(The Radical disciple)>에서 크리스챤이 아닌 제자의 삶에 대하여 8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 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입니다. 그 가운데 제1장 불순응(Non- conformity)은 제자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을 떠나 살수 없고, 세상 속에 살아야 하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켜야하다고 강조하면서 순응해서도 안되며 세상밖으로 도피해서도 안되는 제자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불순응(Non- conformity)의 삶입니다.

<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 말을 들을 때 나는 과연 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를 한 번은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가치대로 사는 크리스챤인지? 아니면 주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레디칼(Radical)한 제자인지? 이 가을철 한번쯤은 깊은 자기 성찰이 있기를 바랍니다.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9:62)

 

31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2013-11-02

 

 주간에 총신대학73학번 동기 목사님들의 모임이 수유리 북한산 기슭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있었습니다. 40년 전 복음을 위하여 인생의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다짐하며 신학대학에 입학했던 청년들이 이제는 세월의 무게에 눌린 자국이 역역한 주름살 많은 아저씨가 되어 만났습니다. 누가 세월의 흐름을 거스릴 수 있겠는가?
동기 목사님들의 근황을 이야기 하던 중 고 조현신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함께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이재환 선교사님이 조 선교사님을 다시 거론 하니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1987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던 중 가슴에 통증이 있어 병원에 수차례 갔지만 치료하지 못해 결국 나미비아 오지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별로 큰 질병도 아닌데, 외롭게 아프리카에서 홀로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대학동기 중 유일한 분입니다. 
이런 저런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던 중 문득 복음으로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쓴 < 민족개조론 >이라는 책을 읽으며 복음만이 이 민족의 유일한 개혁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던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때에 용기 있게 거리로 나서지 못하고 어찌보면 자기합리화, 어찌보면 비겁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복음으로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다짐하며 기도하던 때의 아련한 기억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당시 마음에 다짐했던 복음으로 개혁하겠다던 열정은 아직도 마음에 뜨거움으로 남았건만 왠지 지난 세월의 발자욱이 작아 보입니다. 당시 읽었던 <민족 개조론>은 춘원 선생이 친일파 글을 많이 썼다하여 <민족 개조>의 의미가 한국인의 긍지를 살리지 못하고 의식의 일본화이라고 주장하며 비판받기도 하지만, 이 책의 개혁의 무실역행(務實力行)은 “거짓을 버리고 참됨을 열심히 실천하자”는 뜻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이광수 선생이 옮겨 쓴 것입니다.
무실역행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 들고 세상을 향해 달려가리라 다짐했던 젊은 시절의 소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40주년 모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북한산 단풍도 마음을 여유롭게 했습니다.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

30시작은 미약 , 나중은 창대 2013-10-26

  주보 칼럼을 쓰면서 몇 번 소개했던 하바드 대학(Harvard University)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합니다. 하버드 대학교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입니다. 2013년 US News & World Report가 미국대학 순위를 발표했는데 1위가 하버드 대학입니다. 2위가 프린스턴 대학, 3위가 예일대학입니다. 미국은 정규대학 수가 3800개나 되기 때문에 어느 대학이 어떻게 좋은지를 알 수 없어 공신력 있는 여러 기관들이 여러 가지 평가 원리에 의하여 수시로 대학을 평가하여 순위를 결정합니다. 2013년 Forbes가 정한 순위에서도 하버드가 1위입니다.
물론 하버드 대학이 설립초기부터 명문대학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은 1638년 교회 옆 마당 통나무 집에서 교사 1명이 몇 명의 학생을 가르침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름은 "새로운 대학"("New College")으로 불렸으나, 존 하버드 목사의 400권의 책을 기부 받은 후 1639년 3월 13일에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 목사님은 영국에서 캠브리치 대학을 졸업한 청교도 신앙의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영국서 목사안수를 받고 큰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을 하던 중 폐결핵으로 31살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버드 목사님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책 400권과 재산을 대학에 기부합니다. 하버드 목사는 그의 책과 재산을 드리면서 “ 나는 미국에 큰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기에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나의 후배들이 이루기를 바랍니다. 내가 학교에 기증하는 이 책을 통하여 훌륭한 신학자, 법학자, 과학자들이 나와서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를 기대합니다” 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게 됩니다. 그 후 그의 꿈처럼 세계적인 성직자들이 나왔고 아담스, 루즈벨트, 케네디, 죠지 부시, 오바마 대통령등 7명의 미국 대통령이 나왔고 4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며 자산은 약2백58억 달러(약 32조 원)이라고 합니다. 하버드 목사의 400권의 책과 재산의 기부는 오늘날 엄청난 인재양성의 기반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작은 도서관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작은 헌신이 훗날 큰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참여를 바랍니다.

29남 탓, 내 탓 2013-10-19

어느 곳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되던 식당이 어느 날 갑자기 손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길 건너 건물에 새로운 식당이 개업을 했는데 깨끗하고 맛이고 값이 저렴했습니다. 당연히 손님들은 새로운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손님들이 줄어든 것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경제가 어려워졌고 그 결과 손님이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손님이 줄어든 것은 새로운 식당 때문인데 주인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손님이 줄었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결국 소문을 들은 대통령이 그 식당을 찾아왔습니다. 작은 식당에 대통령이 왔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뭐라고 말하나 모두가 조용히 대통령을 바라봅니다. 대통령은 식당 주인에게 머리를 숙여 말하기를 죄송합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식당이 어려워짐을 정중하게 사과합니다.’이제 사람들은 식당 주인을 바라봅니다. 식당주인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말하기를 여러분 보셨지요. 대통령이 나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 식당에 손님이 줄어든 것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그런데 사과를 마친 대통령은 그 식당에서 나와 길 건너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대통령은 불평하는 식당에는 사과를 했지만 음식은 맛있는 집에 가서 먹었습니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 노영찬 교수는 일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잘 되어가지 않을 때 흔히 두 가지 종류의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일이 안 되어 가는가? 둘째는 누가 일을 이렇게 안 되게 만들어 놓았는가? 첫째 질문은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 묻는 질문으로 어떻게 해야 다시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지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질문이요, 둘째 질문은 자기의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이나 외적인 이유에서 찾는 태도입니다.

손님이 떨어진 식당 주인처럼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코람데오) 삶을 살기에 잘못된 일의 원인을 남 탓하지 않고 내 탓으로 생각하며 새롭게 반성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