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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하나님이 하시는 일 | 2024-03-31 |
1885.4.5. 부활절 아침,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 항구에 들어온 날입니다. 이 날은 한국기독교의 역사적인 날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4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이듬해인 1885년 1월 25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갑신정변으로 불안했기에 바로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3개월을 머무르게 됩니다. 이때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수정 선생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올 때 마가복음을 가지고 옵니다. 성경 번역은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이미 이수정 선생이 마가복음을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한국선교를 꿈꾸는 언더우드 선교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일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을 일본에서 번역한 이수정 선생은 1842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농부로 위장하여 명성황후를 충주로 피신시킨 공로로 고종황제에게 신임을 받고 일본으로 떠나는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신사유람단) 일행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간 이수정은 일본의 농업학자 츠다센(津田仙)을 만나 성경을 선물로 받아 읽으면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1883년 4월 29일 로케츠쵸(露月町) 일본 교회에서 미국 장로교 선교사 낙스(G.W.Knox)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마가복음”을 번역합니다. 또한 미국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1883년 12월 13일 자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잡지에 이수정 선생의 편지가 실리었고 그 글을 읽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부활절 아침 한국에 들어올 때 이미 이수정 선생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수정 선생의 선교편지를 읽고 한국으로 오겠다고 결심한 선교사, 그리고 선교편지의 주인공이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오는 일, 이 드라마 같은 일을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오늘은 2024년 부활주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고난의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능력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기다릴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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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사순절(四旬節 Lent) | 2024-03-24 |
몇 년 전 교회 절기 칼럼을 쓰면서 사순절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전에 썼던 글을 다시 한번 글을 싣습니다. 사순절(四旬節 Lent)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나무가 타고 남은 검은 재를 이마에 발라 회개를 하는 날)부터 시작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까지 40일간 이어지는 금식과 고기를 먹지 않는 로마 가톨릭의 금욕 기간의 절기입니다. 특히 금식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 1주일간은 사육제(謝肉祭) 기간입니다. 사순절을 지키는 40일간은 고기를 먹지 못하니 고기를 많이 먹어 두자는 의미의 축제로 사육제를 지킵니다. 사순절의 기간은 재의 수요일부터 성금요일까지 총 46일간입니다. 사순절의 46일 중 6번의 주일날은 주님 부활의 기쁨을 지켜야 하기에 금욕이 중단됩니다. 정확하게 사순절은 40일이 아니라 46일입니다. 사순절을 영어로 렌트(Lent)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본래 <봄>을 가리키는 lencten 혹은 Lenchthen 말로 <느리다, 길다>란 말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의 절기와 예배 행위 중 형식적인 절기를 예배순서에서 폐지했습니다. 칼빈은 사순절이 미신적으로 시행되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며 금식과 구제가 하나님 영광보다는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워지는 것이라 하여 사순절을 반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식하며 회개하는 기도는 독일 루터파 교회와 영국의 성공회에서 조금씩 허용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장로교는 사순절을 교회 절기로 슬그머니 받아들여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의 장로교는 지키지 않았던 사순절 절기를 비판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절기를 지키면서 절기의 본래 뜻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잘못하여 형식과 외식에 치우치는 절기를 미신적으로 받아들여 지킨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최근 우리 교단은 사순절 절기는 인간의 업적을 내세우는 절기가 될 수 있다 하여 총회에서 지키지 않는 것으로 의결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의 40일 뿐 아니라 365일 1년 내내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경건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 되어야 합니다. 금주는 고난주간입니다. 형식이 아닌 진심으로 우리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신 주님을 기억합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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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윤동주의 <십자가> | 2024-03-17 |
우리에게 <서시(序詩)>, <별 헤는 밤>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은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윤영석 장로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세운 북간도 용정의 명동(明洞) 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동지사(同志社) 대학(기독교 사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1943년 7월 방학을 맞이하여 귀국하려다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복역 중 28살의 1945년 2월 죽음을 맞이합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시집을 내려고 자신의 시들을 정리하여 후배 정병욱에게 19편의 원고를 맡깁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시집을 출판하지 못합니다. 당시 시집을 출판하지 못한 이유는 재정적 이유도 있지만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같은 시가 일제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하고 또한 일제에 저항하는 윤동주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 것 같아 때를 기다리다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쓴 “십자가”의 내용입니다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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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다시 보는 방자전 | 2024-03-10 |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 <방자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춘향전은 남원 고을 사또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그네를 타는 퇴역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을 만나 첫눈에 반하여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갑자기 이몽룡의 아버지가 서울로 임지를 옮기자,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이때 남원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 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강요하지만, 이몽룡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사또의 수청을 거부합니다. 결국 춘향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춘향이 죽을 지경에 이를 때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와 사또의 생일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춘향을 구해주고 사또를 파직시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춘향전의 주제는 신분이 낮은 성춘향이 일편단심 이몽룡을 사랑하는 여인의 정절을 높이며, 탐관오리들의 부정을 고발하며 저항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춘향전 하면 한 여인이 일편단심 한 남자를 사랑하는 지조와 정절을 높이는 것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2010년에 춘향전을 완전히 현대적 흥미 중심으로 재해석한 <방자전>이라는 영화는 춘향과 방자와의 부적절한 관계의 성적 스캔들을 이야기한 에로스 영화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춘향을 좋아하던 입장으로 보면 너무나 파격적인 이야기 이야기입니다. 방자전 상영 당시 춘향문화선양회는 방자전을 상영 중지 요청을 합니다. 정절의 여인 춘향을 방자와 놀아난 성적으로 문란한 음녀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방자전에 열광하는 시대인 오늘의 우리 사회는 모두가 다양한 생각을 표출하는 다원화된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뒤집어보려 하고 다시 생각하며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솝우화도 달리기 재능있는 토끼를 찬양하며,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일만 잘하는 개미보다 놀기도 하는 베짱이 편을 드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절대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사용 가치를 존중하는 시대일지라도 본질에 대한 절대성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본질적 요소는 방자전처럼 뒤집어 생각할 수 있어도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이며 절대적 가치는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은 절대적 우리의 가치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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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오스 기니스 가문 | 2024-03-03 |
1955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으로 신비하고 재미있는 최고의 기록들을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맥주>회사에서 1년에 한 차례 “기네스 세계기록”를 모아 책으로 만든 <기네스 북>( The Guinness Book of Records)이 출판됩니다. 기네스 북의 기네스(Guinness)는 가문의 이름입니다. <기네스 가문>은 1700년대 초 아셔 기네스 (Arthur Guinness 1725-1803)가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이민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759년 아일랜드에서 <기네스 맥주> 회사를 설립했고, 은행 투자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 후 가문의 후손들은 백작 칭호, 공주와 결혼하여 왕족이 되었고 정치인, 법조인, 사업가, 그리고 성직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성직자 중에는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소명”의 저자로 잘 알려진 오스 기니스(Ian Oswald Guinness 1941- )도 <기네스 가문>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책을 번역할 때 저자명을 “오스 기니스”로 번역하면서 <기네스 가문>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되었습니다. 오스 기니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기네스 가문>의 목사님으로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오스 기니스는 1941년 아버지의 선교지 중국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기를 영국에서 보내면서 런던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 라브리 공동체에서 사역했고, BBC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대학에서, 정치인의 모임, 그리고 전문 경영인들의 모임에서 강연하면서 3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가 쓴 <소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입니다. 아일랜드의 250년 <기네스 가문>의 사람인 오스 기니스의 삶을 볼 때, 어린 시절 가문의 신앙적 전통과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 가문들의 자녀 양육법을 보면 대부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아이가 성장하여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의 명문 가문으로 세우려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꿈이 하나님의 소명임을 확신한다면 기다리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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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다윗과 골리앗 | 2024-02-25 |
구약 사무엘상 17장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절대 강자 골리앗을 약자인 다윗이 도전하여 승리한 싸움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거대한 강자와 약자가 맞붙을 때 비유적으로 쓰는 관용구로 표현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절대 강자인 골리앗을 무너트린 다윗에게도 승리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깊이 이해하려면 고대국가의 전투병 구분을 알아야 합니다. 제일 빠르게 적진으로 돌격하는 말을 타고 창을 든 기마부대, 손에 칼과 방패를 든 보병부대, 배후에서 투석과 활을 쏘는 투석부대가 있습니다. 골리앗은 전쟁의 맨 앞에서 싸우는 선봉 장수로 보병부대의 장수입니다. 골리앗은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이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는 놋 50 세겔로 오늘날 무게로 환산하면 57kg입니다. 여기에 창과 방패의 무게를 더하면 아무리 거인이며 힘이 있다고 해도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칼도 없고 투구와 갑옷도 입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달릴 수 있는 날렵한 다윗입니다. 다윗의 무기는 멀리서도 적을 무찌를 수 있는 투석부대가 쓰는 돌팔매입니다. 현대 학자들의 실험 결과 다윗의 물맷돌은 100m이상 떨어진 거리에 날아가는 새를 명중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비둔한 골리앗과 날렵한 투석부대원처럼 싸울 수 있는 다윗의 싸움은 다윗에게 이길 수 있는 강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분명한 자신감과 결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은 교만하여 방심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고”라고 말합니다. 전투에 임하는 장수는 적을 신중히 생각하고 언제나 경계해야 합니다. 골리앗은 신중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간다--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고 신앙고백을 하며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성전(聖戰)으로 생각하고 나아갔습니다. 이미 정신적으로 다윗이 이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세상에서 전투적 인생을 살 때, 내가 아무리 절대강자와 싸우는 약자일지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충분한 강점들을 살리면 패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다윗처럼 용기 있게 나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도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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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후회 없는 열정 | 2024-02-18 |
< 일주일이 남았다면 :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 >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25년 동안 미국에서 저소득층 시한부 환자를 위하여 호스피스 의사로 삶을 살아온 카렌 와이어트(Karen M. Wyatt)가 쓴 책입니다. 카렌 와이어트는 죽어가는 많은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보고 그가 얻은 교훈을 “죽기 전 후회하는 7가지”로 요약했습니다. 7가지 후회의 목차를 보면 (1) 죽을 만큼 사랑해 볼 걸 (2) 조금만 더 일찍 용서를 할 걸 (3) 걱정은 내려놓고 행복을 만끽할 걸 (4) 마음을 열고 포용할 걸 (5)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 걸 (6) 아등바등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 걸 (7) 있는 그대로 감사할 걸입니다. 사랑, 용서, 행복, 포용, 여유, 열정, 감사 등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짐작할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그 가운데 다섯 번째 주제로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 걸”이라는 내용을 보면 <열정>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하면서 인생의 여정길은 짧지만 긴 여행길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언제 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죽음을 생각하기에 살아있는 동안 후회 없는 열정의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길의 종착역이며 끝이다. 그러므로 종착역에 이르러 아무것도 못 했다고 후회하며 인생 열차에서 내리지 말고 살아있을 동안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죽을 만큼 열정으로 삶을 살아가라는 조언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의 내용을 보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누구도 영원히 이 땅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죽기 전, 이 세상 끝나기 전, 후회 없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카렌 와이어트의 책 제목처럼 삶의 시간이 <일주일이 남았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각자의 하고 싶은 일들은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허술하게 하지 말고 죽을 만큼 열심을 내는 열정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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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부부(夫婦) | 2024-02-11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보컬 겸 기타리스트인 김목경 씨입니다. 가수 김목경 씨는 영국 유학 시절 창밖의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이 노랫말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가수 김광석 씨가 리메이크하여 더 유명해진 노래입니다. 노랫말을 보면 이렇습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맹자가 인간의 네 가지 본성을 말할 때 표현한 말입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불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그리고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측은지심은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함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부부가 신혼 때는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며 의견 차이를 보이며 싸울 때도 있고, 그리고 아이들 낳고 살다 보면 권태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50, 60대가 되면서 어느 날 측은지심이 생겨 아내가 불쌍해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안타깝고 감싸주고 싶고, 무조건 편들어 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측은지심이라 말합니다. ‘어느 60대 부부 이야기’의 노랫말은 측은지심의 표현이며 사별(死別)의 아픔을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신혼 시절 넥타이를 매어주던 아내,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새던 밤, 큰딸 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 세월은 그렇게 흘러 이제는 아내의 죽음 맞이하게 됩니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설 연휴 기간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더욱 확인하며 함께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측은지심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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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전당포(典當鋪) | 2024-02-04 |
오래전부터 골목길에서 작은 물건을 담보로 잡고 손쉽게 돈을 꾸어주는 대부 사업을 하는 곳을 전당포(典當鋪)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 업무를 하는 기관이 따로 없어 부잣집에 신용으로 돈을 빌리는 형태의 금융거래가 있었으나 조선 말기 청나라 사람들과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와 담보물을 잡고 담보물 가치만큼 자금을 빌려주는 형식의 소액 대부업을 하는 골목길 대부업의 전당포가 유행했습니다. 큰돈을 빌려주는 은행의 대출업무보다 손쉽게 작은 물건을 담보하고 전당포에서 돈을 빌려 썼습니다. 돈이 필요한 서민들이 금가락지, 보석, 명품 백, 옷, 도자기 등 일상에서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맡기고 소액을 빌려 썼습니다. 그리고 돈을 마련하면 언제든지 맡긴 물건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전당포에는 손님들이 맡겨둔 귀중품들이 많았습니다. 손님들은 전당포에 맡긴 물건을 찾으려면 언제든지 빌린 돈을 갚으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아무리 귀중품이라도 맡긴 고객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지 않는다고 고객들은 믿었습니다. 내 물건은 어제든지 전당포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뒷골목 전당포라도 물건을 맡기면 일방적으로 처분하지 않는다는 신용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고객들은 값진 물건을 맡기는 것입니다. 서민들의 전당포에 대한 신용은 절대적입니다. 사람들이 골목길 전당포를 이용하는 것은 철저한 신용에서 출발합니다. 서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길 때 신용이 없으면 값비싼 물건을 맡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 신용이 없으면 ‘맡긴다’는 말은 별로 크게 우리에게 은혜로운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또한 신뢰할 만한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삶을 맡겨도 됩니다. 혹시 전당포에 물건 맡기는 신용만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으신지요?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당신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맡길 때 하나님의 능력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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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현재(現在) | 2024-01-28 |
동기 중에 송광택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크리스찬 북뉴스 편집 고문,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 바울의 교회 글향기 도서관 담당 목사님으로 총신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독서운동에 평생을 바친 존경스러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이 가끔 카톡으로 신간 서적을 소개하며 서평을 보내줍니다. 평소 책 읽는 일을 게을리하다가도 카톡으로 보내주는 신간 소식을 접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목사님께서 지난 주간에 카톡으로 프랑스 철학자이며 작가인 장 그르니에(1898-1971) ‘산다는 것은?’이라는 시와 함께 작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 산다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밖에서의 삶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그늘, 땅과 나무 냄새, 그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끌어 안아라. 지금 이 순간을 꽉 끌어안지 않는다면 어떤 삶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끌어 안아라 장 그르니에의 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것은 언제나 현재의 시간에 중심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 나에게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또한 미래가 아무리 희망적일지라도 미래는 미래입니다. 결국 과거나, 미래가 나의 삶의 중심이 아니라 오늘의 현재가 나의 삶의 중심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누리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멋진 삶이며 행복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라틴어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에 충실하라, 즐기라>의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오늘 이 순간에 충실하며 현재의 삶을 누리며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