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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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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동행(同行) 2023-09-03
지난 22일 세계적인 가수 셀린 디온(Celine Dion)의 남편 르네 앙젤릴(Rene Angelil)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캐나다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캐나다 국민장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습니다. 르네 앙젤릴(Rene Angelil)은 세계적인 가수 셀린 디온을 길러내 매니저이며 그녀의 남편입니다. 그가 처음 그녀를 만나 것은 셀린 디온이 12살 때입니다. 처음 그녀의 테이프를 듣고 앨범을 제작하는데 비용이 없어 자신의 집을 저당 잡혀 비용을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후 셀린 디온은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창력의 휘트니 휴스턴, 음색의 머라이어 캐리, 기교의 셀린 디온을 '3대 디바'로 부릅니다. 셀린 디온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내 심장은 계속 뛸 것이다”(My heart will go on)는 주인공들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콜로세움 공연장에서 5년 동안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기었고 라스베가스 공연 수입만 720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습니다. 2017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녀의 음반 판매량은 2억장이 넘고 여러 가지 수상경력은 170회가 넘습니다.
셀린 디온은 1994년 그녀를 길러준 매니저 르네 앙젤릴과 결혼을 합니다. 당시 르네 앙젤릴은 그녀보다 26살의 연상인 52살이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그녀의 남편인 르네 앙젤리이 후두암이 걸리게 됩니다. 그 후 투병생활을 하다가 금년에 죽게 되었습니다. 셀린 디온은 남편의 병상을 지키기 위하여 1914년 8월부터 공연을 중단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중단합니다. 전 세계 공연 일정을 취소합니다. 공연일정을 취소하면서 “ 나의 모든 힘을 남편의 치료에 바치고 싶다. 내게는 지금 이 시간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쏟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후두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입니다. 이제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제가 갚을 차례입니다." 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모든 인기와 돈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남편이 아플 때 곁에서 함께하는 아내의 모습은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133:1)
428침묵의 시간 2023-08-27
몇 년 전 실었던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 속의 글을 인용하여 <침묵>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오늘 다시 침묵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침묵(沈默)이라는 단어는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침(沈)은 ‘가라앉을 몰’의 뜻을 가진 한자어입니다. 묵(?)은 ‘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상태를 침묵이라 말합니다. 즉 침묵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마음에 가라앉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몰라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sil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은 조용히 말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것보다도 침묵하는 것이 더 좋다는 뜻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침묵은 말보다 웅변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 잠언에도 침묵하지 않고 떠들며 한담(閑談)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며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침묵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의 덕목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 는 ‘조용한 침묵’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일이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세미하기 때문에 조용한 침묵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오직 주님만 위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번쯤 분주한 세상일을 멈추고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조용한 침묵으로 두 손 모아 주님께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14)
427광복절(光復節)을 맞이하여 2023-08-20
지난 8월 15일은 제78주년 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지난해에 광복절 기념 주일 글을 수정하여 다시 한번 씁니다. 광복(光復)은 1910. 8. 29. 일본의 강압적 조약인 한일병탄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지 35년 만에 1945. 8. 15 나라의 주권을 회복한 날입니다. 일제강점기 35년 시간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분에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핍박과 순교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35년 강점기에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주체가 되어 나라의 독립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오점도 남겼습니다. 신사참배(神社參拜)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으로 강요한 것으로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Shintoism)의 사원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을 지어 기독교인을 참배시키므로 우리나라의 국민정신을 일본화하려는 잔인한 정책입니다. 신사참배 가결 당시 장로교 총회는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조선예수교장로교 27회 총회로 목사 86명, 선교사 22명, 장로 85명 총대 합이 193명 모여 개회를 했습니다. 일제의 감시 속에 첫날부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둘째 날, 총회장은 홍택기 목사는 신사참배 결의안을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당일 총대들은 평양에 있는 신사를 찾아 참배했습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역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사님이 다 신사참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등 많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경남노회>는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당시 노회장 <최상림 목사님>은 1938년부터 일제의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어지자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목사님은 49회의 반복되는 수감생활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시고 1945년 5월 순교하셨습니다. 78주년 광복 기념 주일에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어떻게 나라 사랑을 실천했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나라 사랑의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 갈등이 많은 시대입니다. 남북이 분열되었고 세대간 갈등, 지역, 이념,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통일된 마음으로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 사랑을 실천합시다.
426우상(偶像 idol) 2023-08-13
많은 신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옵니다.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그모스, 몰렉, 밀곰, 다곤, 벨, 마르둑, 쓰스, 허메, 아데미 등 등입니다. 이들 신들은 각각의 능력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전쟁의 신, 폭풍우 신, 태양의 신, 다산과 풍요, 홍수와 강의 신입니다. 그 가운데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알을 보면, 히브리어로 ?????? (바알)로 표기하며 영어로 바알 Baal 이라고 씁니다. 바알의 뜻은 ‘주인’입니다. 남성이며, 가나안 부족의 대표 신(神)입니다. 바알은 풍요와 다산의 신이며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또한 아세라(Asherah), 아스다롯은 바알의 아내이며 여성 신입니다. 아세라는 나무로 만들었기에 아세라 목상(木像)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외에 여러 신들은 한마디로 우상(偶像 idol)이라고 부릅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든 신(神)이기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열왕기 18장에 이스라엘의 아합왕 당시 갈멜산에서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신과 대결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 제사장 400이 함께 제단을 쌓고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왜야하면 바알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115편에 우상은 금, 은을 가지고 인간이 손으로 만들었기에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내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구약 십계명에 하나님의 백성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우상은 바알, 아세라, 몰렉, 다곤, 금송아지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골로새서 5장에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이나, 내적으로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 모두가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길 때 축복이 있습니다. 오직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258월에 기억할 일 2023-08-06
오늘은 8월 첫째 주일입니다. 8월에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한일병탄이 일어난 달이며, 해방을 맞이한 광복절이 있는 달입니다. 1910년 8월 22일에 한일병탄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이완용 내각이 순종을 형식상 배석시켜 놓고 어전회의에서 한일병탄을 의결했습니다. 이후 1주일간 국민적 저항이 두려워 공포하지 않다가 8월 29일에 공포하게 되었고 한일병탄의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주권을 빼앗간 일본은 조선을 일본화하는 작업을 교묘히 진행했습니다. 교육언어를 일본어로 관공서에서 일본어를 쓰게 했고, 창씨개명, 국가 경제 수탈, 그리고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폐간했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기독교를 강하게 핍박했습니다. 내적으로는 이렇게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일본화하면서 겉으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했습니다. 내선일체는 일본을 내지(內地)라 부르고 한국을 외지(外地)하면서 조선(朝鮮)의 선(鮮)를 붙여 내선일체라고 외쳤다. 어찌 들으면 좋은 말인 것 같다. 일본과 조선이 차등 없이 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내선일체라는 말은 강제로 국가의 주권을 빼앗아 간 일본이 조선의 정신과 문화와 민족 말살 정책을 펴는 말이다.
언제나 지배계급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강조하면서 일치(一致), 연합(聯合)이라는 말을 할 때, 피지배계급의 약한 대중은 그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고 권력 앞에 아부하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언어마저 버리게 된다. 필리핀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일, 인도가 영국 지배를 받아 영어를 쓰는 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프랑스어를 쓰는 일은 권력자들이 힘없는 국민에게 강압적으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선일체를 강조하면서 일본어 공용어, 교육언어로 사용할 때 교회는 한글로 된 성경을 보급하며 가르쳤다. 어려운 가운데도 교회는 설교를 한국어로 했으며 한글로 된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8월 한일병탄을 기억하고, 해방의 광복절을 기억하면서 고난의 일제강점기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3.1만세, 신사참배 반대, 교회에서 한글로 된 성경을 보급하고 가르친 일을 기억합시다. 또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잊지 말고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24천국을 바라보는 삶 2023-07-30
몇 년 전 주보 칼럼에 소개했던 미국 심리학자 큐블러-로스(Kubler-Ross, 1926-2004)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에 수용하기까지를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사람이 의사로부터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선고를 받으면 다음의 5단계로 수용하게 됩니다. 1. 부정(Denial) : 죽음에 대한 의학적 판명을 받으면 사람들은 일단 부정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부정합니다. 2. 분노(Anger) :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소리치며 떠들며 주변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께 분노를 표출합니다. 3. 타협(Bargaining): 분노 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일부 받아들이며 혼자 타협안을 내놓게 됩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직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협상합니다. 4. 우울(Depression) 결국 하나님과의 협상도 어떤 서원도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삶을 포기하며 우울해합니다. 이쯤 되면 말이 적어지고 사람을 기피하고 웃음을 잃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단계가 우울의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5. 수용(Acceptance)입니다. 모든 감정을 정리하면서 어떤 방법이든 마음에 받아들이며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과 그간의 삶을 말합니다. 수용의 단계가 빠르게 오는 사람들도 있고 분노와 우울한 시간이 길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죽음에 대한 5단계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면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게 됩니다. 죽음뿐 아니라 우리는 크고 작은 고난에 직면해도 일단은 부정하고 분노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소리치며 치받는 기도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죽음 앞에 초연해야 합니다. 왜야하면 이 세상은 잠깐의 나그네 인생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돌아갈 영원한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만약 의사로부터 죽음을 통보받으면 빠르게 수용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영원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423이름(Name) 2023-07-23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Seoul)입니다.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신라의 서울(수도)은 서라벌, 고려의 서울은 개성, 조선의 서울은 한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울을 시대적으로 볼 때 백제 시대는 위례성이라 했고 고려 시대는 남경, 조선은 한양이라 불렀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성(城)을 쌓고 이름을 붙일 때는 기억하고자 하는 고유한 뜻이 있습니다. 백제의 위례성(慰禮城)은 예(禮)를 다하는 성, 울타리, 혹은 큰 성이라는 뜻입니다. 고려의 개성(開城)을 동비홀, 두비구루라 했는데 <열린 성>이라는 뜻입니다. 한양은 크다, 많다는 뜻이며 한양에 성을 쌓았다는 뜻으로 한성(漢城)이라 불렀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건설하고 성(城)을 만들고 이름을 붙일 때는 기념하고 오래 기억 하고자 하는 고유한 뜻이 있습니다.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주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기념하여 ‘처녀 여왕’을 상징하는 버진(Virgin)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샌디에고(San Diego)는 스페인어의 성자(San 聖) 야고보를 기억하고 붙인 이름입니다. 로마(Rumon)는 테베레강의 옛 이름으로 '흐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동사에서 왔습니다.
성경에도 고유한 뜻을 가진 이름과 뜻을 기리는 성(城)의 명칭이 나옵니다. 창세기 4장에 타락한 아담의 아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쪽에 <놋> 땅에 거주했다고 나옵니다. 놋이라는 말은 <방랑자, 방황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며 방랑자의 삶을 사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아들의 이름을 높입니다. 그는 성을 쌓고 아들 이름으로 <에녹>이라 했습니다. 에녹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봉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가인은 도시를 건설하고 아들에게 봉헌하는 불신앙의 대표가 됩니다. 그러나 가인의 동생 <셋>은 아들 이름을 <에노스>라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4:26). 가인처럼 여호와를 떠난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 주께 영광 돌리는 이름 붙이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을 삽시다.
422노매드랜드(Nomadland) 2023-07-16
노매드랜드(Nomadland)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21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영화 제목 노매드랜드라는 말은 직역하면 노매드(nomad)-“유목민(遊牧民)”+랜드(land)-“땅”이라는 말입니다. 노매드랜드는 원작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미국의 제시카 브루더가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쓴 작품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때 주택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한 대출금을 갚지 못한 미국의 중산층들이 주택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주인공 ‘펀’도 은행에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 몰려, 자동차에서 숙식을 하면서 미국 서부를 유랑하며 살아갑니다.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길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 자동차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라고 소개합니다. 노마드랜드 영화 속 사람들은 금융위기로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자동차를 타고 유목민처럼 떠도는 삶을 살면서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맛보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요즈음 우리는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을 씁니다. 거대담론(巨大談論)으로 인생의 성공, 큰 꿈을 이루는 거대한 인생의 행복이 아닌 작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말합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은 남편과 산책을 했다’‘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아이에게 맛있는 쿠키를 만들어 주었다’는 아주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합니다. 왜야하면 소소한 행복이라는 일상의 작은 일이 작은 일이 아니라 그것이 인생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소한 행복,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기에 소소한 행복이라 말하지 말고 그것이 인생이라 말하자는 것입니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여주인공 ‘펀’은 벤을 타고 유목민처럼 떠도는 삶을 살지만 그 안에 소소한 행복이 있음을 봅니다.
노매드랜드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의 시(詩)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하늘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나그네 인생길, 노매드랜드의 도시 유목민처럼 떠도는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희망을 가지고 사는 순례자 길,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도 천국 가는 인생길에서 너무 많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우리의 길을 걸어갑시다.
421무제(無題) 2023-07-09
<루터의 재발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중앙루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주훈 목사가 쓴 책입니다. 최주훈 박사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의 종교개혁을 이야기할 때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면 신학, 철학, 교육, 복지, 문학, 언어학, 역사, 음악, 미술, 정치, 법학 분야에서 루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끼친 인물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장로교 칼뱅(John Calvin, 1509-1564년)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부차적으로 감리교 웨슬리(John Wesley,1703-1791년) 신학이 지배하고 있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의 깊은 이야기는 뒤로 떠밀리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한국 루터교회는 2017년 기준 전국에 49개 교회, 성도 수 5천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루터 신학과 루터교회는 장로교 칼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밀려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은 위대한 개혁이며 개혁신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논할 때 교리적 측면으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론’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리의 ‘칭의론’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태어나 다음날 11월 11일 추운 날씨임에도 교회에 가서 유아세례를 받으며 마리에 찬물을 부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전통은 아이가 태어난 바로 다음 날 교회에 가서 유아세례를 받으며 머리에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하면서 유아세례 시간을 늦추어 다음날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가톨릭 지역보다 개신교 지역의 유아 생존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유아세례 시기를 늦추면서 유아 생존율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문학, 음악, 미술 분야에는 더욱 큰 영향을 끼치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의 개혁이든, 칼뱅의 개혁이든 ‘말씀 중심’(sola scriptura)으로 개혁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자의 후예답게 날마다 성경 말씀 중심으로 자신을 개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공동체는 항상 개혁되어야 합니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420장기실 전도사의 대둔교 전도 2023-07-02
우리에게 유명한 섬으로 알려진 한반도 서남단 깊고 검은 섬 흑산도가 있습니다. 행정구역은 전남 신안군 흑산면입니다. 흑산도는 대흑산도를 중심으로 홍도, 다물도, 대둔도, 영산도와 함께 흑산 군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거리상으로 육지에서 100Km 이상 멀리 떨어져 있기에 조선 시대에 유배지로 사용된 섬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동생 정약전이 천주교 박해 때 이곳으로 유배 가서 바다 어류들을 탐구하여 자산어보(玆山魚譜)를 기록한 곳이기도 합니다. 흑산도에 복음 증거가 시작된 것은 1915년 박도삼 전도사가 예리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20개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둔도에 교회를 개척한 장기실 전도사의 전도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장기실 전도사는 1904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장죽섭 목사이며 부산에서 인술을 베푼 장기려 박사의 4촌 누이입니다. 그녀는 1955년 총회 신학을 졸업하고 여자이기에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고 전도사로 사역을 하면서 1959년 대둔도 도목리에 천막을 치고 섬마을에 복음 전파를 시작했습니다. 장기실 전도사는 복음 전도자뿐 아니라 주민들의 일손을 돕고, 아이를 낳는 여성에서 산파 역할을 했으며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희망 전도사였습니다. 처음 도목리에 교회를 개척했고 수리교회, 오리교회, 영산도교회 등 많은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섬마을의 사람들의 미신과 우상숭배에 대하여 정면으로 부딪치며 복음을 전해 기독교로 돌아오기까지는 장기실 전도사의 기도와 노력의 결과입니다. 대둔리 오목리에 세워진 승천교회는 마을의 90%가 기독교 신자이며 풍어제, 당산제가 없는 믿음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섬마을에 가두리 양식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풍요롭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장기실 전도사로부터 배운 십일조 신앙을 실천하여 육지의 가난한 교회를 돕고 해외 선교사를 돕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작은 섬마을 교회에서 1년에 1억 이상 선교비를 보내는 교회가 됩니다.
6월 선교의 달을 보내면서 주간에 안면도의 만나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계속해서 복음이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돕는 섬마을 교회들, 죽도교회, 송이도교회, 마도교회가 대둔도 승천교회처럼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선교에 계속적 관심과 기도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