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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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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성도의 그리움 2023-01-29
대략 200년 전 1812년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1762-1836)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지 12년째 되던 해 그의 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유배지에서 시집가는 딸에 대한 그리움은 컸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매조도(梅鳥圖)를 그려 보냅니다. 매조도에 쓴 한시는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가볍게 펄펄 새가 날아와/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쉬네/매화꽃 향내 짙게 풍기니/꽃향기 사모하여 날아왔네 /이제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꽃도 이미 활짝 피었으니/그 열매도 주렁주렁 많으리.” 매조도는 치마폭에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매조도의 치마폭은 정약용 선생의 부인 홍 씨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시집올 때 입었던 빛바랜 다홍치마(하피霞?-붉은 노을빛)를 유배지 강진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는 먼저 다홍치마를 서첩으로 만들어 아들에게 보내고(하피첩) 남은 치마폭에 매조도를 그려 딸에게 보낸 것입니다. 유배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시집올 때 입었던 빛바랜 다홍치마를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그리움, 그 다홍치마를 펼쳐 서첩으로 만들어 어머니 잘 모시라고 당부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그리움, 무엇보다도 시집가는 딸에게 그림을 그려 보내면서 유배지에서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아버지의 그리움, 이 모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족 사랑의 그리움입니다.
김소월 시인이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라고 표현하듯 시인들은 그리움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나태주 시인은 <그리움>을 “가지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 만나지 말라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라고 시를 썼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그리움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빌1:8)라고 말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보고 싶다는 표현을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성도의 관계는 이처럼 서로 사모하고 보고 싶어 하는 그리움의 관계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관계는 그리움이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로 자유로운 만남이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만남이 어려워졌을 때 서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리움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 서로 만남을 그리워하는 진정한 사랑의 관계로 한 주간을 보내고, 주일에 만남의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398책 읽는 아이들 2023-01-22
몇 년 전 칼럼을 다시 올립니다. 방학 때 학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권면이기에 반복하여 글을 올립니다. 제가 참된교회에 부임한 초기에 청년부와 정기적으로 대화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청년이 질문하기를 추천해 줄 만한 책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2권을 소개한 것 같습니다. <천로역정>,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입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후 청년부에서 <청년부 필독도서 20권>을 선정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대화 시간에 필독도서 선정도 중요하지만 읽고 독서토론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로 실천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하고 장년부 화요성경공부 시간에 <천로역정>을 읽고 독서토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 풍요롭고 지혜롭고 행복합니다.
비전북출판사에서 출간한 <좋은 독서 가족 길라잡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송광택 교수가 기독교인의 독서 운동을 전개하면서 책 읽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제1장을 보면 <독서는 변화의 힘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석 달 만에 질문이 많은 문제아로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문제아로 보았지만 어머니는 희망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홈스쿨을 했습니다. 천천히 그러면서 자유롭게 책을 읽게 했습니다. 독서는 에디슨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의 어머니가 읽힌 책은 기번이 쓴 <로마제국의 쇠망사> 흄이 쓴 <영국사> 시저가 쓴 <세계사>등의 역사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디킨스 등의 고전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연철학자들>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독서는 에디슨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교회에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작은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도서관을 만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함입니다. 책 읽는 습관은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책 읽는 아이들이 훗날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겨울 방학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자보다도 소중한 것이 독서 하는 습관이다” (빌 게이츠)
397희망을 심는 1월 2023-01-15
설교 중 예화로 언급했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작가 <장 지오노>는 프랑스의 고산지대 남부 프로방스를 여행하다 폐허가 된 산에서 묵묵히 나무를 심는 실존 인물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납니다. 절망의 땅에서 날마다 나무를 심는 그를 보고 감동 받아 작품을 쓰게 된 것입니다. 작가 장 지오노는 주인공 부피에를 1913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주인공의 나이는 55세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 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은 황폐하여 사람들이 떠났고 골짜기는 물이 흐르지 않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도토리와 자작나무, 떡갈나무, 너도밤나무의 묘목을 심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나무를 심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줄 알았습니다. 10년이 지나 20년이 되니 그가 심은 나무가 숲이 되었습니다. 골짜기에는 물이 다시 흐르고 황폐한 땅은 생기가 넘쳤습니다. 떠났던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만 심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심은 것은 절망의 땅에 희망을 심은 것입니다.
한국에도 황폐한 곳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축령산에 3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임종국 씨가 있습니다. 그는 1956년부터 나무 심기를 시작하여 300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어 오늘의 축령산 힐링 숲을 조성한 것입니다. 또한 충청남도 태안에 한국 최초 사립수목원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민병갈 씨도 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민병갈 씨는 미국인입니다. 그의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였지만 한국이 좋아 한국인으로 귀화한 제1호의 미국인입니다. 그는 6.25 전쟁 중에 한국에 와서 한국이 좋아 한국에 귀화하고 나무를 심어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리고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의 남이섬을 가꾼 민병도 씨도 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남이섬의 민병도 씨와 천리포 수목원의 민병갈(C. F. Miller) 씨는 친구입니다. 나무를 심으며 서로 교제하며 정보를 교환하면서 황폐한 땅에 희망을 심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나무를 심는 일은 내일의 희망을 심는 일입니다. 새로운 결단을 하고 희망으로 출발하는 2023년 1월입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처럼 미래를 보고 코로나로 황폐한 현실에 희망을 심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396단지동맹(斷指同盟 -손가락을 자르는 결심 2023-01-08
요즈음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웅>이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안중근 의사(義士)의 마지막 1년의 삶을 그린 뮤지컬 영화입니다. <국제시장><해운대>로 잘 알려진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 안중근 역에 뮤지컬 배우 정성화 씨가 맡았고, 어머니 조마리아 역으로 배우 나문희 선생이 맡았습니다. 뮤지컬 영화의 어려운 점은 배우들이 노래하는 라이브 장면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영웅>은 이러한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70% 이상을 라이브로 촬영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정이 가톨릭 신앙의 집안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상하이로 건너가 나라의 주권회복운동을 하려고 현지 가톨릭 신부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합니다. 그 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돈의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을 하다가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 활동을 합니다. 의병 활동중 체포한 일본군을 국제법에 따르겠다고 풀어주었지만 풀어준 일본군이 도리어 안중근 부대를 습격합니다. 이때부터 항일을 더욱 다짐합니다. 항일을 위하여 동지 12명이 넷째 손가락을 잘라 혈서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 쓰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합니다.
때를 기다리다가 1909년 10월 26일 일본의 1.5.7.10 대의 내각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합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중국의 뤼순 형무소에 수감 되어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사형집행이 됩니다.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편지하기를 “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고 합니다. 영화<영웅>에서 조마리아 역을 맡은 배우 나문희 선생은 아들의 수의를 지으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을 노래합니다. 인터뷰에서 정말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온 힘을 다해 연기했다고 합니다. 어찌 어머니가 아들에게 죽으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는 의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의 주권을 잃은 당시 모든 어머니의 아픔이며 슬픔입니다. 2023년 새해입니다. 일편단심(一片丹心) 나라 독립을 위하여 손가락을 자르며 다짐하던 단지동맹의 안중근 의사의 결심처럼, 우리도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새로운 뜻을 다짐하면서 새 출발 하는 1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395새해 아침의 도전 2023-01-01
해마다 12월이 되면 대학의 교수들에게 묻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습니다. 2022년 사자성어로 선정된 단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입니다. ‘잘못을 알고 고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과정을 보면 12명의 추천위원단이 22개의 사자성어를 추천하여 예비 심사를 거처 전국 교수들에게 설문조사 방식으로 선정합니다. 2022년 과이불개는 설문에 참여한 교수들의 50.9%를 지지를 받았습니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교수의 추천 이유를 보면 “오늘의 우리 사회에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는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과이불개 시위과의 (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는 뜻입니다. 2022년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한 해 동안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과오(過誤)가 있다면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새롭게 도전하는 희망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자성어로 풀어 본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조사’이라는 설문조사에서 2023년 사자성어로 <금석위개(金石爲開)>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말의 ‘강한 의지가 쇠와 금을 뚫는다는 뜻으로 강한 의지로 정성을 다하면 어떤 일이든지 다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경제 사정과 고물가, 고금리의 사업환경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때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며 중소기업인들이 2023년에는 쇠와 금을 뚫어내는 강한 의지로 버티어 내려는 마음의 다짐입니다.
대학의 교수들도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말하고 중소기업인들도 금석위개(金石爲開)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합니다. 하물며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과오를 고치며 새롭게 도전하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2023년 새해 아침입니다. 1년 동안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있더라고 금석위개의 마음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뜻을 이루겠다는 희망의 마음으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394예배하는 성탄절 2022-12-25
오늘은 성탄절이며 202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성탄절 인사로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말합니다. 그 뜻은 메리(Merry/기쁨)+크라이스트(Christ/그리스도)+미사(mass/예배)로 “기쁨으로 그리스도께 예배” 한다는 뜻입니다. 즉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예배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배 보다는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하는 욕망의 축제를 먼저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성탄의 본질에서 떠난 즐기는 성탄절이 되다 보니 교회에도 예배 보다는 즐기려는 세속의 욕구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다 문득 언제가 묵상했던 프랑스의 클뤼니 수도원이 생각이 났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부르고뉴 주(州) 손에루아르 현(縣)에 있는 역사적인 수도원입니다. 910년 아퀴타니아의 빌헬름 공작(Guilaume de Aquitaine )이 자신의 별장을 교회에 기증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 건물의 크기만 하더라도 축구장 2개를 연결한 것만큼 큰 수도원입니다. 클뤼니 수도원은 설립 초기부터 영성에 관심을 두고 교회개혁을 단행한 수도원입니다. 설립 때부터 클뤼니 수도원은 봉건적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경비는 신자들의 자유로운 헌금으로 하며, 수도원장의 선출은 직선제로 하고, 생활은 태만과 나태를 추방하고 필사와 노동과 공동예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분명히 하고 출발한 수도원입니다. 하지만 10-11세기 교회개혁의 중심이던 클뤼니 수도원이 유럽에 2000 개가 넘을 정도로 부흥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속정신이 수도원 안에 들어오고 처음 주장하던 영성이 타락하게 되니 수도원은 타락하고 점점 약해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 욕망의 세속정신이 들어오면 경건한 영성이 깨지고 예배가 소홀이 됩니다. 성탄절 역시 주님께 예배하는 일보다 즐기려는 세속의 축제가 먼저 되면 교회는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 세속정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배와 영성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2022년 마지막 주일이며 성탄절에 우리는 메리크리스마스(예배하는 기쁨의 성탄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성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예배 중심의 삶을 되어야 합니다. 2023년에는 예배의 회복으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93파루시아(재림)를 기다리는 사람들 2022-12-18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諸葛孔明)과 사마의(司馬懿)의 오장원(五丈原) 싸움은 매우 유명한 싸움입니다. 234년에 촉나라 승상 제갈공명은 3년간 전쟁 준비기간을 거쳐 다섯 번째의 북벌에 나섭니다. 지금까지 싸우던 우회적인 길을 버리고 험난한 산길을 택하여 장안성을 단숨에 정복하려고 가까운 오장원을 택하여 위나라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위나라 사마의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위나라 사마의는 좁은 협곡에 위치한 오장원에서 나오지 않고 100일간 수비만 하고 있었습니다. 정복을 하려고 단숨에 먼 길을 달려온 촉나라 군사를 지치게 하며 군량미가 떨어지게 하는 작전입니다. 이때 제갈공명은 수비만 하는 사마의에게 겁쟁이라는 표시로 여자 옷을 보냅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어 나와서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자 옷을 받은 사마의는 오히려 태연히 웃으며 여자 옷을 입고 춤을 춥니다. 이때 옆에 있던 장수들은 모욕적인 일이라 하여 나가서 싸우자고 하지만 사마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때를 기다립니다. 결국 먼 길을 과로하게 달려온 제갈공명은 병으로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촉나라 제갈공명에게 여자 옷을 선물 받는 치욕적인 모멸감을 받았으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인내한 사마의가 최후 승리합니다. 기다리는 자는 반드시 기회를 잡게 됩니다.
성경에는 기다림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기까지 기다렸고, 이삭은 흉년에 100배의 축복을 받기까지 기다렸고,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기까지 14년을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10년을 넘게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믿고 700년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2가지 신앙의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다리기에 인내합니다. 미래의 소망이 있으면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둘째는 자신에게 반드시 옳은 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믿는 자들은 기다립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재림의 신앙 즉 <파루시아>의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37:7)
392어느 수도사의 기도 2022-12-11
문득 언젠가 읽었던 무명 수도사의 기도문이 생각나 찾아보았더니 2018년 2월에 주보 칼럼에 소개했던 기도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백발이 되어 세상을 떠날 것인데 너무 조급하게 남을 교훈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대화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으며, 또한 기억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너무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려 하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희망의 기도입니다.

주님,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과 언젠가는 백발 노인이 되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문제와 상황에 대해서 일일이 다 충고해 주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습관을 멀리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일을 내가 다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고 애쓰지 않게 하소서
생각을 깊게 하되 침울하지 않게 하시고 남을 도와주되 나서지 말게 하소서 나에게 저장된 지혜의 보물을 사용하는 것보다 나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삶을 나눌 몇몇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의 삶이 성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심술 맞고 고집 센 노인네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둘 다 내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은 당신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고 나타낼 수 있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마지막 한 가지 부탁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내 인생의 촛불이 꺼져가는 그 순간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2022년 금년도 벌써 12월 둘째 주일입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광음여류(光陰如流)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 어떻게 살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에베소서 5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수도사의 고백처럼 “생각을 깊게 하되 침울하지 않게 하시고 남을 도와주되 나서지 말게 하소서”라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391함께 이루는 공동체 2022-12-04
사회학에서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集團知性)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과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된 지적 능력의 결과를 집단 속에서 발휘하는 능력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보통은 IQ 90의 사람들이 100명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IQ 120의 지능적인 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IQ 90의 사람 100명이 모여서 서로 대화하며 생각하는 것이 IQ 120의 한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특정 조건에서 집단은 집단 내부의 가장 우수한 개체보다 지능적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1910년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는 개미들의 생활을 연구하여 발표했습니다. 연구 결과 개미들은 홀로 생활하지 않고 모여 군집을 이루고 사는데 집단에서 각 개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개미들의 각 개체를 보면 여왕개미, 숫개미, 일개미로 분류됩니다. 여왕개미는 집단을 보존하며 번식을 위하여 알을 낳고 숫개미는 평소에는 빈둥대고 놀다가 여왕개미가 알을 낳도록 수컷 역할을 합니다. 일개미는 병정개미로 집단을 보호하고, 청소와 어린 개미를 보호하는 시종개미, 그리고 밖에 나가서 먹이를 구해 오는 수렵개미로 나누어집니다. 이들 개미는 하나의 개체로는 미미하지만 집단 공동체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지능체계의 집단입니다. 개미가 개체 하나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집단으로 살아가는 모습의 협업은 큰 힘을 발휘하듯 우리 사회는 서로 함께한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명(Calling)의 사람들이 이루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혼자 옳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일에 각부서 총회를 했습니다. 교회는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체임을 알고 임원에게만 일을 떠넘기듯 하지 말고 회원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집단지성의 부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천국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어 가는 사명자입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함께 소속된 부서에서 충성을 다하며 천국으로 가는 순례길에 열심을 냅시다.
390다시 희망으로! 2022-11-27
<희망>의 제목으로 여러 차례 글을 썼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망>은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할 단어입니다. 희망의 신학을 주장한 독일의 몰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우리 개혁주의 신앙과는 조금 다른 입장의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말은 주의 깊게 생각할 단어입니다. 몰트만은 18세에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3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수용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끝까지 생존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한 사람들은 일찍 죽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 몰트만은 독일로 돌아와 괴팅겐 대학의 신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1964년에 <희망의 신학>을 발표합니다. 그자 주장한 신학의 본질을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말에 함께하고 싶은 것입니다. 언제가 소개한 백창우 시인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시를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 끝이라고 생각될 때 / 그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2022년 마지막 12월 한 달이 남았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고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현실의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번 결단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결단! 희망의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