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 menu line

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309노매드랜드(Nomadland) 2021-05-02
주간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배우 윤여정 씨가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최고의 영광인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은 미국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가 받았습니다. 노매드랜드는 이미 77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전 세계에서 211개의 상을 받은 2021년의 최고의 영화입니다. 영화 제목 노매드랜드라는 말은 직역하면 노매드(nomad)-“유목민(遊牧民)”+랜드(land)-“땅”으로 유목민의 땅이라는 말입니다. 노매드랜드는 미국의 여성 언론인 제시카 브루더가 2017년에 쓴 원작,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때 주택담보의 빚을 갚지 못해 중산층들이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는 사회적 문제의 시대에 집에서 쫓겨나듯 나온 네바다 주의 한 여성이 자동차 밴을 타고 광활한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영화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전 세계가 동행한 가슴 벅찬 여정, 길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고,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존재입니다. 금융위기로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 몰린 사람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적응하면서 유목민처럼 자동차를 타고 떠도는 삶을 살면서 그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노매드랜드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잠깐의 나그네 인생길, 순례 길을 마치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모두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 절망하거나 괴로워하지 맙시다. 주어진 나그네 인생 길 노매드들처럼 순응하며 오늘도 순례자 길을 희망을 가지고 달려갑시다.
308유다 왕 여호사밧 2021-04-25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사밧은 남왕국 유다 나라의 4대 왕입니다. 그는 다윗 왕의 자손으로 그 계보는 다윗-솔로몬-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사밧은 35세에 왕이 되어 25년간 유다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의 일생을 3가지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업적 : 종교개혁으로 산당을 제거하다.
그는 재임 기간 다윗 왕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여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대하17:6절에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는 기록처럼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다윗 왕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3명의 왕을 언급할 때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를 꼽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산당은 바알 신을 섬기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러한 산당을 제거한 개혁의 왕입니다.
2. 실수 : 아합과 연합하여 전쟁에 임하다.
여호사밧의 정치적 실수는 북왕국 아합 왕과 화친을 맺어 전쟁에 임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우상숭배를 한 아합 왕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친 것이 여호사밧의 실수입니다. 당시 선지자가 전쟁이 나가지 말라고 예언하지만, 예언을 소홀히 여기고 전쟁에 나가 패전합니다. 이 전쟁에서 아합왕은 전사했고 여호사밧은 군사력이 약화되어 모압과 암몬의 침략을 받습니다.
3. 기도: 위기의 때 기도하다.
여호사밧의 군사력이 약화된 틈을 타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유다왕국을 침략합니다. 이때 이미 길르앗 라못에서 패전한 유다왕국은 모압을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국가적 위기에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역대하20:3-4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이처럼 여호사밧은 기도로 승리합니다. 전쟁을 승리한 여호사밧은 ‘브라가 골짜기’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북왕국 아합왕과 연합하여 전쟁에 나간 것이 여호사밧의 실수였다면 모압과 전쟁에서는 기도로 승리합니다. 위기의 때 기도로 승리한 여호사밧처럼 우리도 인생의 위기에 기도로 승리합시다.
307 경건 회복을 위한 기도 2021-04-18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1805년 프로이센(독일) 왕국의 크로펜스태트에서 태어나 1898년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죠지 뮬러는 청소년 시절에 도박, 도둑질,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1824년 19살 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할레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 때문에 신학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나이 20살 때 친구의 권유로 경건한 성경연구모임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한 경건한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죠지 뮬러는 그날 저녁 하나님을 만났고 회심을 경험합니다. 당시 그가 다시던 할레대학은 17세기 독일 경건운동을 일으킨 헤르만 프랑케(A. Hernmann Francke 1663-1727)가 활동한 대학입니다. 프랑케의 경건운동은 회심운동인데 프랑케의 회심운동을 3가지로 요약하면 1)루터가 강조한 죄로부터의 용서의 회심이 아니라 근원적 무신론자의 회심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유신론적 회심입니다. 2)회심은 논리적 표현이 아니라 정서적 체험을 말합니다. 3)하나님에 대한 회심의 체험은 삶으로 나타나며 이웃에 대한 봉사로 표현됩니다. 독일 경건주의의 주역인 프랑케는 회심의 삶을 살면서 빈민자 학교, 고아원, 양로원을 세워 이웃사랑의 봉사활동을 실천했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러한 전통의 할레대학 재학 중에 회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회심은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1828년 그는 할레대학을 졸업한 후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영국으로 갑니다. 그는 영국의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워 2천 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으며 평생 15만 명의 고아들에게 희망을 주었기에 <고아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평생 고아들을 돌보면서 영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부자들에게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하나님께서 응답주시는 대로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시작으로 부족하다. 계속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기도는 응답될 때까지 믿음으로 간청해야 된다.” 우리도 이 땅에 경건회복을 위하여 응답될 때까지 기도합시다.
306그 무엇도 포기하지 맙시다 2021-04-11
바울사도가 1년 6개월 머물면서 복음을 전한 고린도(Corinth)지역은 그 뜻이 ‘뿔’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테네 서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며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가야 주(州)의 수도입니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고, 동시에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각 나라와 민족의 우상들이 많았던 도시입니다. 고대국가의 축제의 올림픽이 열렸던 도시이며 바울 당시 60만 명이 살았던 큰 도시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신전이 있었으며 1천 명이 넘는 무녀(거룩한 창녀-성창聖娼)들이 신에게 돈을 바치기 위하여 몸을 파는 매춘을 일삼았습니다
헬라어 코린티아조마이(Κορινθι?ζομαι)는 “고린도인처럼 행동한다”는 말인데 그 뜻을 의역하여 “음란한 행동을 한다” “매춘을 한다”는 뜻으로,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낱말입니다. 고대로부터 연극에 등장하는 고린도 사람들은 매춘과 술주정뱅이로 묘사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 고린도입니다.
이러한 타락의 도시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너무 어려워 전도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바울은 그의 옷에서 먼지를 털고 "여러분이 멸망을 받으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겠습니다."(행 18:6)까지 말을 합니다. 이렇게 어려웠던 고린도 지역에서 바울 사도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한 것은 주께서 바울 사도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침묵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행18:10)라고 하셨습니다.
2000년 전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고난을 당해도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며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답답하게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끈기를 가지고 도전합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가는 길을 포기 하지 맙시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305부활절 아침 2021-04-04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절 아침에 부활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21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스러운 현실에 부활의 희망을 주신 주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또한 승리와 희망을 마음에 새기며 부활복음을 믿었던 박목월, 김현승 교수의 부활의 시를 묵상해 봅니다.

김현승 교수의 <부활절에>
당신의 핏자국에선 / 꽃이 피어 - 사랑 꽃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 온 천하에 계십니다 - 두루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물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태인의 옛 수의를 벗고 모든 4월의 관(棺)에서 나오십니다. /
모든 나라가 지금 이것을 믿습니다 / 증거로는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모든 나라의 합창은 우렁차게 울려 납니다.
해마다 삼월과 사월 사이의 /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서 다시 사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박목월 교수의 < 부활절 아침의 기도>
주여 / 저에게 / 이름을 주옵소서.
당신의 / 부르심을 입어 /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 주여 / 주여 / 태어나기 전의 / 이 혼돈과 어둠의 세계에서
새로운 탄생의 / 빛을 보게 하시고
진실로 혼매한 심령에 / 눈동자를 베풀어주십시오.
'나'라는 /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 불길이 되어 / 저를 태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 바람과 동굴의 / 저의 입에 / 신앙의 신선한 / 열매를 물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 간절한 / 새벽의 기도를 들으시고 / 저에게 / 이름을 주옵소서.
304승리하는 방법 2021-03-28
몇 차례 소개했던 목계(木鷄)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중국의 장자(莊子)의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목계(木鷄)이야기입니다. 중국의 주나라 어느 임금이 닭싸움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쓸만한 싸움닭이 얻어 자신의 신하 기성자에게 닭이 싸움을 잘하도록 훈련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훈련을 명한 지 10일 후 임금은 닭을 잘 훈련 시키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신하는 닭이 강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교만하여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금은 10일 후 다시 찾아와 닭이 잘 훈련되었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신하는 닭을 평가하기를 닭이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금은 10일 후 다시 찾아옵니다. 하지만 기성자 신하는 말하기를 닭이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공격적이기에 아직 안 되겠다고 말합니다. 드디어 10일 후 왕이 다시 찾아오니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닭이 완전히 평정심을 찾아 목계(木鷄)가 되어 덕을 갖추어 있으니 어느 닭이라도 싸우려고 달려들어 왔다가 그 모습만 보아도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목계(木鷄)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상대방 닭이 싸우려고 왔지만 나무처럼 느껴지니 나무와 같은 적과 무슨 싸움을 하겠느냐고 스스로 포기하고 도망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목계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우리 자신이 실력을 갖추고 당당하게 조용히 목계처럼 초연하게 있으면 우리와 싸우려고 달려들던 적들이 우리의 모습에 먼저 도망을 치게 됩니다. 언제나 실력이 있고 당당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치 손자병법에 나오는 부동여산(不動如山)처럼 적이 쳐들어와도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여유로움 모습을 보이면 적군이 오히려 겁을 먹고 도망가는 것처럼 당당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살 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언제나 담대하게 그리고 주변의 어떠한 상황에도 조급하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으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유혹하며 영적 싸움을 걸어옵니다. 사탄과 싸워 승리하려면 목계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초연하게 오늘도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03실패한 과거를 잊고 새롭게 도전하라 2021-03-21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카네기 행복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일 카네기 D. B. Carnegie, 1888 ~ 1955) 미국 미주리 주의 매리빌에서 태어났으며 워런스버그 주립 사범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와 세일즈맨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1912년 성인들의 상대로 말하는 기술을 강의하면서부터 큰 인기를 얻어 인간관계의 강사로 크게 성공합니다.
데일 카네기가 말하는 행복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심과 걱정과 고민,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행복론 제1부에서 인간의 걱정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말하는데 걱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라>입니다.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사는 사람은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려면 먼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크나큰 짐이 되면 오늘을 충실히 살수 없습니다.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성형외과 의사로서 암스테르담 대학, 파리 대학, 로마 대학 등에 재직했던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그는 수많은 상담과 수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은 외모의 성형보다는 ‘실패’와 ‘부정적 신념’의 마음을 바꾸는 ‘마음의 성형 수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형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성공법칙들>를 말합니다. 그 가운데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단1초라도 지난 것은 과거이니 과거를 잊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조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수한 것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후회하는 삶을 산다면 행복은 멀어집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고 말씀하십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버리고 오늘을 성실히 살면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옵니다. 지나치게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오늘을 성실히 살면 우리에게 행복은 찾아옵니다.
302기독교인의 물질관 2021-03-14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미국 사회는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본인이 바라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이므로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갈 때 많이 쓰는 말입니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족이 혼합되어 살아갑니다. 모두가 이민자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사람 가운데 스코틀랜드 출신의 카네기(Carnegie, Andrew 1835.-1919)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848년 가족과 함께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州) 앨러게니(지금의 피츠버그)로 이민을 왔습니다. 카네기는 어려서부터 방적공,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의 여러 직업에 종사하다가, 1853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였고 1865년까지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침대차 회사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그후 그는 철도기재 제조회사, 운송회사, 석유회사 등에도 투자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또한 1870년대부터 미국 산업계에 일기 시작한 기업합동의 붐을 타고, 피츠버그의 제강소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철강 트러스트를 형성하였습니다. 1892년에는 카네기 철강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로서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였습니다. 1901년 카네기는 이 회사를 4억 4000만 파운드에 모건계(系)의 제강회사와 합병하여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스틸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합병을 계기로 카네기는 경영에서 은퇴하고, 교육과 문화사업에 몰두하였다. 카네기공과대학(현 카네기멜론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 3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는 일생을 2기로 나누어, 전기에서는 부(富)를 축적하고, 후기에서는 축적된 부를 사회복지를 위하여 봉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이처럼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물건을 사 준 사람들 덕분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들을 위해 내 재산을 되돌려 주어야 할 것 아닌가?”라는 소신으로 여러 곳에 도서관과 학교를 세웠고 장학재단과 문화회관을 설립하여 부를 사회에 환원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또한 돈을 많이 벌더라도 바르게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입니다.
3013월의 희망 2021-03-07
3월의 희망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풀꽃> 이라는 짧은 시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충남 서천 출신으로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교사로 재직하며 평생 시인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종교는 교회 은퇴집사로 기독교 신앙을 가졌습니다. 시인의 시상를 보면 언제나 사물을 깊이보고 사람을 사랑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중에 <사랑에 답함>을 보면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 싫은 것도 다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읽는 독자에게 마음에 감동을 주며 개인의 삶에 행복과 희망을 주며, 고난과 슬픔이 있는 것이 인생임을 말해주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시인들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표현은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을 줍니다. 오늘 나태주 시인의 <3월>을 소개합니다.
어차피 어차피 /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번 새 옷을 갈아입고 /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시인은 2월이 지나면 3월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간인데, 3월이 오면 꽃잎, 풀잎, 새소리, 시냇물 소리, 아이들의 새학기 등교 소리 모두가 희망의 소리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외로운 사람은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한 삶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3월 첫째주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꽃잎, 새소리, 시냇물 소리, 아이들의 학교 가는 소리를 들으며 3월의 희망을 노래합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운 2021년 3월,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합시다.
300 현순(玄楯)목사님을 기억하며 2021-03-28
현순(玄楯)목사님은 1880년 서울에서 출생했습니다. 목사님의 아버지 현제창 선생은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발간 사업에 참여하셨던 개화기의 지도자였습니다. 청소년 시절 현순 목사님은 영어관립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899년 일본에서 유학 중 피쉬(Fish)선교사님에게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기독교인 되어 1902년 귀국했지만 목사님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학비가 없어 공부를 중단하게 됩니다. 결국 학비를 벌기 위하여 1903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납니다. 당시 교포들의 하와이 이민 생활은 너무나 고달픈 생활이었습니다.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했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채찍질과 폭력과 냉대를 받았습니다. 이를 본 현순 선생은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을 극복하기 위하여 <교포자치회(Self-Rule Association)>를 조직하여 교포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교포들을 단결시켰습니다. 또한 야간학교를 개교하여 자녀들에게 영어와 복음과 희망을 가르쳤습니다. 현순 선생은 5년 후 1907년 서울로 돌아와 배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1909년 목사 안수를 받아 주일학교운동과 정동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