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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별 헤는 밤 | 2021-08-29 |
우리에게 <서시(序詩)>, <별 헤는 밤>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은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윤영석 장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세운 북간도 용정의 명동(明洞)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명동소학교, 은진중학, 평양숭실 중학 과정에서 공부한 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마치고 일본의 동지사(同志社) 대학(기독교 사립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시절 1943년 7월 방학을 맞이하여 귀국하려다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28살의 1945년 2월 사망했습니다. 재판 판결문에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아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분명 조선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그가 지은 시 <별 헤는 밤>의 끝부분을 보면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 내 이름자를 써 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은 가을밤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와 어린 시절 추억들을 그리워하며 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보면서 자신의 이름까지 붙여봅니다. 그러나 이내 부끄러워 자신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이유는 잃어버린 조국의 현실 속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의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매일의 뉴스가 부끄럽습니다. 귀가 있어 듣고 눈이 있어 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듣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의 대선주자들이 서로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폭로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낯 뜨겁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끄럽다 하여 우리의 삶의 시간을 멈출 수 없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무덤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는 희망을 본 것처럼, 우리도 부끄러운 뉴스로 얼룩진 오늘이 지나면 희망의 파란 잔디가 피어날 내일의 봄날이 올 것을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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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허물을 덮어주는 삶 | 2021-08-22 |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장왕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이 어느 날 대신들을 불러서 잔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등불이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모두가 허둥대고 있을 때 한 궁녀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둠을 타서 한 신하가 궁녀의 몸에 손을 댄 것입니다. 궁녀는 자기 몸에 손을 댄 신하의 갓끈을 잡아당겨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궁녀는 왕에게 지금 자기 몸에 손을 댄 못된 신하가 있는데 갓끈을 잡아채어 끊어 놓았으니 빨리 불을 켜서 범인을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왕은 불을 켜지 못하게 하면서 신하들에게 모두 갓끈을 끊어내라고 엄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모든 신하들은 갓끈을 끊어냈습니다. 결국 누가 궁녀에게 손을 대었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왕의 이러한 배려에 신하들은 감동하여 더욱 왕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초나라와 진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전쟁 중에 왕이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왕을 보호해주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왕은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왕은 자기를 보호해 준 장군을 불러 후한 상을 주려하자 장군은 왕에게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옛날 잔치 중에 갓끈을 궁녀에게 잡힌 자가 자신이라고 하면서 왕은 자신의 명예를 지켜 주었고 또한 목숨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은 상 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왕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허물을 감싸준 왕의 배려로 신하는 왕에게 충성을 다했고 왕은 또한 전쟁 중에 목숨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사랑을 깨달아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보다는 덮어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 줄 때 우리의 공동체는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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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광복절 아침에 | 2021-08-15 |
오늘은 광복(光復) 제76주년 되는 날입니다. 1945.8.15.일 정오(낮12시)에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은 1910.8.29일 일본이 강압으로 한일병탄조약으로 주권을 빼앗긴 지 35년 만에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여 해방(解放)을 맞이하게 됩니다. 광복(光復)의 뜻은 “새롭게 빛이 비추다”는 뜻으로 어둠의 일제강점기를 지나 새로운 빛의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일제강점기 35년간 우리의 역사는 캄캄한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고통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우리 스스로 주권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주권이 없었기에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산업은 수탈당하고 국토는 빼앗기고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끌려갔고, 강제징용으로 징집되어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당하는 강제노역의 노동 착취를 당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인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 선조들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얼마나 해방을 원했는지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 얼마나 비장한 표현입니까? 광복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기쁨의 날이며 광명의 빛이 새롭게 비춘 날입니다. 무엇보다 일본이 신사참배로 교회를 탄압한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당시 많은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 감옥에 갔으며 선교사님들은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가르칠 수 없어 자진 폐교를 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강제추방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 신앙의 선조들은 3.1운동으로 대한독립의 뜻을 선언했고, 교회의 주일학교와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워 미래를 위하여 인재양성을 했습니다. 제76회 광복절 아침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나라를 사랑했으며 독립을 위하여 투쟁했는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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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1등보다 아름다운 꼴찌 | 2021-08-08 |
2016년 8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습니다. 총 206개국의 1만1천여 명의 선수가 참석했으며 총 38개 분야의 경기 종목에 금메달 수가 306개였습니다. 올림픽에서 1등으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매우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올림픽에서 금메달보다 더 값진 메달이 있습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이름을 붙인 쿠베르탱 메달입니다. 1964년에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17개 메달만이 수여된 아주 영광스러운 메달입니다. 리우 올림픽에서 쿠베르탱 메달을 받은 2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메달의 주인공은 여자 5000m 달리기의 니키 햄블린(뉴질랜드)과 애비 다고스티노(미국) 선수입니다. 이들은 1등을 해서 메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꼴찌로 들어온 선수들입니다. 1등이 아닌 꼴찌에게 쿠베르탱 메달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여자 5000m 선수로 경기 도중 선두 그룹 3200m 지점에서 햄블린이 다리가 꼬여 넘어지면서 뒤따르던 다고스티노를 넘어뜨리었습니다. 이때 다고스티노는 일어나 다시 달리려 하다가 옆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햄블린을 보고는 자신의 경기를 포기하고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햄블린은 다고스티노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햄블린은 매달의 꿈이 날아가는 고통의 순간에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 다고스티노에게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았다고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고백합니다. 더구나 햄블린과 다고스티노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여자 5000m 경기는 1등보다 아름다운 꼴찌들의 달리기였습니다. 지금 도쿄에서 올림픽이 한참입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1년이 지난 2021년 7월 23일에 개막을 했습니다. 도쿄올림픽의 남자 800m 경기에서 미국의 주잇과 보츠와나의 아모스 선수가 발이 엉켜 넘어졌습니다. 이들은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함께 결승선에 꼴찌로 들어왔습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햄블린과 다고스티노와의 아름다운 꼴찌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보다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움 꼴찌들의 행진을 보고 싶습니다. 1등보다 아름다운 꼴찌들의 행진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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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잡초(雜草) | 2021-08-01 |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온실의 환경에 익숙해 있기에 온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름철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운 겨울 보온을 해주는 온실의 보호막이 있기에 화초는 살 수 있습니다. 화초는 온실의 보호막이 없어지면 시들해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하지만 잡초(雜草)는 자라가는 환경을 누가 마련해주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잡초입니다. 사전에서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설명합니다. 잡초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번식해갑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잡초는 뽑고 뽑아도 계속해서 자라기에 골치를 아파합니다. 최근에는 잡초를 제거하려고 아예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버립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용혜원 시인은 <잡초>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무도 반기지 않아도 / 서성거리기보다는 /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하기에 /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 생명의 줄을 이어갑니다. / 이름 모를 꽃이 피어도 / 누구든 사랑해 주면 / 한동안의 행복도 가져 보지만 / 떠가는 구름이 / 한줄기 비라도 / 쏟아 놓으면 / 그보다 더한 행복이 / 어디에 있겠습니까? / 버려진 땅에서도 / 진한 목숨만은 / 어찌할 수 없어 / 언제든 오신다면 / 쉬어갈 자리는 / 비워 놓겠습니다.> 잡초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꿋꿋함과,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걷어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환경을 탓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80평생 인생 여정길을 가는 동안 온실처럼 언제나 평안하고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비바람이 부는 사나운 날씨와 같은 시련과 역경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길은 어떠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잡초처럼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욥2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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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정약용, 정약전 선생의 삶 | 2021-07-25 |
조선 후기 실학자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선생은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에서 출생하여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전라도 화순, 경상도 예천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과거시험을 준비했습니다. 22살에 벼슬길에 오르면서 10년 동안 정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경기암행어사, 사간원사간, 동부승지,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정조의 수원 능행길에 한강에 배다리를 놓았으며 수원성을 설계하여 증축하는 일을 하면서 기중기 등 과학적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천주교 신자였던 이벽, 이승훈 등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성리학의 변화를 촉구하며 실천을 중요시하는 실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으로 정치적으로 실권하여 유배 길에 오르게 됩니다. 특히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 16년 동안 유배지에서 보냅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사의재, 다산초당, 보은산방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손병조, 황상, 황지초, 이청 등이 있습니다. 1818년 57세로 유배지에서 돌아와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1836년까지 정약용선생은 수많은 책을 저술합니다. 정약용 선생의 저술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1758-1816)은 천주교 신자로 1801년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 1816년 59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흑산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특히 해양생태학 서적으로 자산어보(玆山魚譜-흑산도 어류의 분포도)를 저술했습니다.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에 복성재(復性齋·사둔서당)를 세워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양반의 선비이든 천민의 어부이든 함께하며 서로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당시 흑산도 주민이 700여 명이었는데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약용, 정약전 형제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오랜 세월 유배지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보은산방, 복성재를 지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도 낙망하지 않고 부르심 소명의 삶에 충실합니다. 매일 매일을 충성스럽게 열정의 삶을 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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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자존감(self-esteem) | 2021-07-11 |
미국의 심리학자 머슬러(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주장합니다. 제1단계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제2단계 안전 욕구(Safety Needs), 제3단계 소속감과 애정 욕구(Belongingness and Love Needs), 제4단계 존경 욕구(Esteem Needs), 제5단계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입니다. 머슬러처럼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려고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인정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헐뜯는 일까지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존감(self-esteem)이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 가치 있고, 훌륭하고,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자존감은 타인으로부터 평가받기보다 먼저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존감(self-esteem)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의성도 높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편하게 해 주기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열등감이 있어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감정이 우울하며 불안하여 무의식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학대 받거나 너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부모로부터 듣고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존감이 낮은 상태가 되어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자존감이 낮은 경우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나는 귀한 존재이며 하나님 나라의 자녀이며,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이며,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감정으로 당당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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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조지 워싱턴 카버 – 역경을 이겨낸 사람 | 2021-07-04 |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는 1861년에 태어나 1943년까지 살다 간 미국의 흑인 식물학자이며 농업학자입니다. 그가 살던 당시에는 1863년 1월 1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 해방을 발표했지만 사회적으로 이를 수용하지는 못하고 여전히 흑인들을 차별하고 노예로 대하던 시대였습니다. 카버는 흑인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노예로 삶을 살았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분들을 만나 미네아 폴리스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 후 계속 공부할 기회를 얻어 하이랜드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노력 끝에 작은 농업실험실에서 꽃과 식물들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경험을 쌓았고 어렵게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카버는 당시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습니다. 카버는 재학시절 백인 학생들로부터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구내식당에서 쫓겨나는 인종차별을 받았지만 지도교수 조셉버드의 도움으로 1894년 졸업을 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학교 연구실에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카버는 일하며 공부하는 일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교회에서 흑인 농민들에게 양배추, 고구마 땅콩 등 식물 재배법을 지도했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목화산업이 어려울 때 대체 작물로 땅콩을 재배하도록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땅콩의 풍년으로 재배한 땅콩을 전량 소비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100가지가 넘는 제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땅콩버터, 땅콩음료수, 땅콩화장품 등 많은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조지 워싱턴 카버는 인종차별의 고통과 모멸감을 참고 결국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로렌스 엘리엇이 쓴 <땅콩박사-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그의 전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카버의 일생 전기의 제목이 말하듯이 <George Washington Carver-The Man Who Overcame> “극복해 낸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는 역경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카버의 전기는 인생의 꿈을 가져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주변 환경에 불평만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환경에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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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라인홀드 니버 | 2021-06-27 |
라인홀드 니버(K. P Reinhold Niebuhr, 1892-1971)목사님은 1,2차 세계대전, 그리고 미국의 산업화 시대의 현장을 살아간 목사님입니다. 니버 목사님은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불의한 사회에 대하여 침묵해서는 안 되며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현실문제,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해서 깊이 참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학공부는 세인트루이스의 이든 신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 수학을 했으며, 23살에 목사 안수를 받고, 1915년부터 13년간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당시 디트로이트 지역은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목사님은 그곳에서 목회하면서 산업화의 고도성장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그늘진 사회를 목격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강제 퇴직당하는 실업자문제, 노동문제, 또한 산업화 현장에서 인간이 비인간화되어 가는 모습들, 니버 목사님은 1928년까지 디트로이트에서 목회하면서 개인이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집단 이기주의 앞에서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문제 앞에 깊은 고뇌를 하게 됩니다. 그 후 유니온 신학교에서 윤리학을 강의하면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라는 책을 1932년에 쓰게 됩니다. 니버 목사님의 기도문 중에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한 번에 하루를 살게 하시고 /한 번에 한순간을 누리게 하시며----”라는 구절은 우리가 한 번 깊이 생각할 기도문입니다. 물론 니버 목사님의 신학 사상 중 초월적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대하여 소홀히 여긴 점과 말년의 종교다원주의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버 목사님이 관심을 가졌던 부정직하고 불의한 현실 문제에 뛰어들어 바르게 바꾸라는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문제, 정의와 공정, 그리고 평등에 대하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쯤 니버 목사님의 삶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만 합니다. 우리 모두 현실 참여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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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이윤영 목사의 기도문 | 2021-06-20 |
1948년 5월 31일 해방 후 제1회 대한민국 국회가 소집되었습니다. 당시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하자고 제안하여 이윤영 위원(목사)이 기도를 드립니다. 국회 속기록에 있는 당시 기도문을 한 번 기억해봅시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誠心)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 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 만방에 정시(呈示)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 塗炭)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福樂)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 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 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