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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한국을 사랑한 마포삼열 선교사 | 2020-07-12 |
평양 지역에서 활동한 마포삼열(馬布三悅, Samuel Austin Moffet, 1864-1939)선교사는 인디애나주(州) 매디슨 출생하여 하노빌 대학,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 소속으로 26살의 나이로 1890년 1월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선교를 하시다 1893년부터 선교지를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선교사님은 1893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개척을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1901년 <평양신학교>을 세워 초대 교장에 취임했고, 1918년부터 1928년까지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은 한국을 사랑한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1912년 <105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애국지사들이 감옥에 투옥되자, 일본의 만행에 대하여 조선총독부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방문하여 항의했으며 반인륜적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미국 선교부에 알렸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한국장로교 총회장으로 있으면서 3.1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1919년 3월 17일 기사에 보면 마포삼열 선교사님에 대하여 “그들(선교사)은 복음전도를 위하여 한국에 와있는 듯이 가장하고 있으나 정치적인 혼란을 은밀히 충동하고 있다. 무리의 괴수는 마포(마포삼열)라는 미국 선교사이다.”라고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한 1920년 4월 동아일보에 실은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글을 보면 조선에서의 복음은 독립 정신과 민중의 복리와 정의를 튼튼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 후 선교사님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일본 헌병의 감시를 받아오다가 암살의 위협을 느껴 1936년 급히 한국을 뜨셨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1939년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어서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셨기에 유족과 협력하여 2006년 한국에 모셔 장로교신학대학 교정에 묻혔습니다. 196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과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130년 전 한국에 오신 마포삼열 선교사는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입니다. 마포삼열 선교사와 같은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순교와 헌신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선교사님들의 희생과 순교 그리고 복음의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사님들로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 우리도 세계선교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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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억지춘향」과 「억지춘양」 | 2020-07-05 |
<억지춘향>이라는 표현은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춘향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퇴기(退妓-은퇴한 기생)의 딸 춘향과 은밀히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을 하는 중에 아버지가 영전되어 한양으로 갑자기 올라가기에 춘향이와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 후 후임 사또가 부임하여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강요하자 이부종사(二夫從事)할 수 없다하여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정절(貞節)을 지킵니다. 결과는 춘향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사또의 생일에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나타나 춘향을 구해주는 소설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신임 사또가 춘향에게 억지로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한 말이 <억지춘향>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역시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1944년 일제가 영동선(영주-강릉) 철도를 놓을 때 지형적으로 춘양은 그냥 지나쳐야 하지만 억지로 우회하여 춘양역을 계획합니다. 이유는 춘양지역의 소나무 목재와 지하 광산물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억지로 철길을 돌려 춘양역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억지춘향>이나 <억지춘양>은 어떤 일을 순리대로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억지로 일을 이룰 때 쓰는 말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행동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라고 합니다. 특히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일과 헌금을 할 때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헌금에 대하여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라고 말합니다. 또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회막을 만들면서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출35:21)”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이처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그 행동에 힘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감사를 표현할 때 <억지춘향>이나 <억지춘양>으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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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일천일 영적부흥운동 1년을 보내고 | 2020-06-28 |
2019년 7월 1일부터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을 시작하면서 영적 기대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을 보내면서 시작할 때의 열정이 식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사태로 외부적 환경이 부흥운동의 실천을 어렵게 합니다. 본래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은 크고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신앙의 실천을 생활화하는 실천 운동입니다. 첫째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Q.T의 시간을 가지며 그리고 새벽기도에 참석하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한 말씀대로 매일 작은 것이라도 믿음을 실천하는 실천운동입니다. 또한 교회공동체의 공동의 문제를 함께 모여 주일 오후, 수요집회, 금요기도회에 함께 기도하는 기도운동입니다. 부흥운동의 부흥(復興)이란 말의 한자어 ‘다시 부’(復), ‘회복할 복’(復)으로 사용하는 말로 우리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며 흥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2000년 교회 역사 속에 수많은 부흥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오순절 성령강림의 부흥운동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바울의 세계 전도 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부흥운동의 공통점은 (1)성령의 강한 역사 (2)개인들의 영성회복과 회개운동 (3)공동체의 개혁 (4)복음전파로 믿는 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이 1년이 지났습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어려워진 때이지만 시작한 영적부흥운동이기에 계속하여 실천하려합니다. 우리의 영적부흥운동은 (1)기도와 말씀묵상(Q.T) (2)작은 것이라도 즉각 순종하는 실천하는 삶(나부터, 하나부터, 이제부터) (3)가정,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코로나19로 예배가 어려워진 때이지만 첫째 <새벽기도회>에 열심을 냅시다. 매일 어려우면 월1회, 주1회라도 새벽에 나오셔서 잠깐이라도 기도합시다. 둘째 <개인경건 말씀묵상 Q.T> 성경읽기표에 따라서 1년 1독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셋째 <작은 신앙의 실천> 매일 하나라도 실천하는 삶을 삽시다. 넷째<가정, 교회, 직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천국으로 만들어 갑시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의 1년을 보내고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부흥운동에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함께 시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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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월에 기억해야 할 사람들 | 2020-06-21 |
문재인 대통령의 첫 미국방문은 2017년 6월에 있었습니다. 첫 공식 일정으로 6월28일 미국 워싱턴D.C의 해병대국립박물관 앞 공원,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헌화 후 이렇게 연설을 했습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그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란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한 장진호 전투는 1950.11.26부터 12.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주변에서 영하 30도가 넘는 추운 겨울 날씨에 해병부대 3만 명이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당시 미 해병부대 제10사단은 겨우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부터 미군과 국군병력 10만5000명, 차량 1만7500대, 군수품 35만 톤을 철수하는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원된 수송선만 193척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이 탔다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7600톤급의 화물선으로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마지막 흥남부두를 떠난 배였습니다. 당시 흥남철수 작전의 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의 통역관 현봉학 선생은 28살의 청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간곡하게 피난민을 배에 실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현봉학 선생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 주립의과대학에 2년 유학을 마치고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와 통역관이 되었습니다. 장로교 목사님의 아들로 독실한 신앙을 가진 현봉학 선생은 피난민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국군 김백일 장군과 현봉학 선생의 간청으로 흥남 철수 때 기적같이 10만의 피난민이 부산과 거제도로 올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중 자유를 위하여 이름 없이 전사한 병사들,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 작전, 빅토리호, 알몬드 장군, 김백일 장군, 현봉학 선생 등 6.25 전쟁의 슬픈 역사 속에 우리는 기억해야 할 사건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기도하며 피난민을 배에 승선시키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노력한 현봉학 선생은 6월에 우리 모두 한 번은 기억해야 할 사람입니다. | |
265포기하지 마세요. 힘내세요. | 2020-06-14 |
주보에 칼럼을 쓰면서 한 주간의 생각을 정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간 일정이 바쁘고 마음이 분주할 때에는 억지로 글을 쓸 때도 있습니다. 억지로 글을 마무리 지어 원고를 보내고 나면 일단은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쓴 후 주보에 실린 글을 보면 조잡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날은 글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글을 실은 주간은 괜찮은 편입니다. 아예 글을 쓰지 못하고 옛날에 실었던 글을 다시 올리는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몹시 부끄러운 날입니다. 금주에도 마지막까지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때에 ‘힘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동안 칼럼에서 강조했던 희망의 말을 요약해봅니다.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김현승 시인의 <희망>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고난 중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뜻을 강조하면서 재기에 대하여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재기(再起)라는 말은 한자어입니다. 재(再)는 “거듭, 다시 한 번”라는 뜻이며 기(起)는 “일어서다”는 뜻입니다.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이 절망을 딛고 일어서 사업에 다시 성공한 사람을 말할 때 “재기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수십 차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됩니다. / 고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학문과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당쟁에 휘말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냅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면서 살아 돌아와 수많은 글을 남깁니다.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입니다. /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후 1803년 오라토리오 <감람산상의 그리스도>, 1804년<제3교향곡 영웅>, 1808년 <제5교향곡 운명> <제6교향곡 전원>, 그리고 청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1824년 <제9교향곡 합창>을 작곡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워진 때 <힘내세요>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시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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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6월을 맞이하며 | 2020-06-07 |
경기도 유형 문화제 1호로 지정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건물로 1624년(인조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장대(將臺)란 조선시대 장군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하던 높은 곳을 말합니다. 수어장대가 있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청나라 마지막까지 싸우다 항복한 비극의 장소입니다. 항복 이후 청나라는 조선인을 60만 명이나 잡아갔습니다. 청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은 사람이 아닌 개, 소, 말 같은 동물로 취급받으며 노예시장에 팔렸습니다. 이들과 함께 끌려간 왕자 봉림대군은 8년 후 돌아와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이 됩니다. 효종은 1649년 왕이 되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고 군사 강화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왕이 된지 10년에 40세의 나이로 일찍 죽습니다. 그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조선 21대 왕 영조는 남산산성에 있던 서장대(西將臺)를 증축하고 이름을 바꾸어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부르고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겪었던 나라의 수모를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영조의 무망(無忘)의 정신은 비극의 상황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말자는 것입니다. 어제가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현충일(顯忠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전몰(戰歿)한 장병들의 충렬을 기리는 날입니다. 6월은 6.25 전쟁이 일어난 달입니다. 6.25 전쟁은 북한이 남쪽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처내려옴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의 역사입니다. 6.25 전쟁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고통을 당했습니까? 교회와 성도들이 순교했고 북에서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6월을 맞이하며 우리는 전쟁의 비극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북한은 아직도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영조대왕의 무망정신(無望精神)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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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받은 것만큼 봉사하라 | 2020-05-31 |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를 축척한 부자들과 권력를 가진 정치인들과 명성을 지닌 귀족들은 가진 것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에게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던 말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습니다. 이 말처럼 로마제국 귀족들은 솔선하여 포에니 전쟁에 참여하였고, 18년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13명의 집정관(Consul)이 전사하였습니다. 집정관은 로마의 관리 중에 최고위 관직으로 오늘날의 장관과 비슷한 직위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한 귀족에 대해서 귀족의 이름을 붙여서 도로이름과 건물을 명명했는데 당시 귀족들은 이를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1592년 4월 30일 새벽 선조는 어두운 시간에 경복궁을 떠나 평양으로 향합니다. 임금이 한양의 백성과 궁을 버리고 피난 길을 떠납니다. 피난 길을 떠날 때 임금을 호위하던 호위무사들이 도망을 갔고 신하들도 도망을 갔습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기록한 <징비록>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가가 대궐문 밖으로 나오는데 임금을 지키는 삼청의 금군들은 달아나고 숨어버리느라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치고 부딪쳤다. 떠나는 임금을 일행을 보고 거리의 백성들은 임금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니 우리는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느냐며 통곡했다”. 임금이 지나는 길에 임금과 일행이 묵을 숙소와 식사를 준비하라고 특별 임무를 파주 목사와 담당 부사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을 쳤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일부 권력자들의 행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지도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해야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처럼 신앙에도 먼저 은혜를 입은 자들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가지고 헌신 봉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아름답게 세워 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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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변화와 적응 | 2020-05-24 |
빌 게이츠가 쓴 <미래로 가는 길><생각의 속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시기는 1997년, 1999년입니다. 당시 인터넷 정보화 시대의 빠른 변화에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할까? 고민 하던 때였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의 부서 보고서를 종이로 작성하여 보고하던 때에 빌게이츠는 사무실에서 종이가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던 대로 전자보고서 형식으로 모든 것이 이메일로 소통하는 시대로 변화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는 더 빠르게 변화되어 4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가운데 코로나19로 우리는 모든 것이 강제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모든 가치 중심을 개인 생명의 안전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경제, 정치, 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코로나19의 확산 방지가 최우선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도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면 모두가 긍정합니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제주도에서 도지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하면서 ‘연휴에 제주도에 오지 마세요’라고까지 말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정보화 사회와 4차 산업의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려웠던 우리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해야합니다. 사회에 적응하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 문제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기던 예배모임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모여 예배하면서 성도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의 교제를 하는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이러한 사랑의 교제를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정상적인 예배모임이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코로나19 사태이전으로 돌아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분간 온라인 예배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원칙을 지키는 예배모임이 병행 될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 우리는 예배에 더욱 열심을 내야합니다. 특히 온라인 예배는 누가 알아주는 예배가 아닙니다. 드리건 드리지 않건 누구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자신에게 정직하고 솔직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에 집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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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책 읽는 아이들 | 2020-05-17 |
아주 오래 전 참된교회에 부임한 초기에 그때 우리교회 이름은 서대문제일교회였습니다. 당시에는 청년부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질문하기를 추천해 줄 만한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2권을 소개한 것 같습니다. <천로역정>,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입니다. 얼마 후 청년부에서 <청년부 필독도서 20권>을 선정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대화 시간에 필독도서 선정도 중요하지만 독서토론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로 실천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하고 장년부 화요성경공부 시간에 <천로역정> 독서토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 풍요롭고 지혜롭고 행복합니다. 비전북출판사에서 출간한 <좋은 독서 가족 길라잡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송광택 교수가 기독교인의 독서운동을 전개하면서 책 읽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제1장을 보면 <독서는 변화의 힘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석 달 만에 질문이 많은 문제아로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열등아로 부르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러한 에디슨을 집에서 가르칩니다. 천천히 그러면서 자유롭게 책을 읽게 했습니다. 독서는 에디슨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의 어머니가 읽힌 책은 기번이 쓴 <로마제국의 쇠망사> 흄이 쓴 <영국사> 시저가 쓴 <세계사>등의 역사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디킨스 등의 고전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연철학자들>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독서는 에디슨을 변화 시켰습니다. 우리교회에는 작은 도서관<글빛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작은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도서관을 만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합니다. 아이들 생활 습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때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책 있는 습관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책 읽는 습관은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책 읽는 아이들이 훗날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주간에 아이들과 함께 교회 도서관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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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가시고기와 염낭거미 | 2020-05-10 |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소개했던 <가시고기>와 <염낭거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가시고기>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맑은 물에 사는 고기입니다. 각 지방마다 독특한 사투리로 까시고기, 까치고기, 메기리, 치경이, 송곳치, 육침어, 침고기, 침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몸이 길고 옆으로 납작하며 길이는 50-60mm 정도로 아주 작은 고기입니다. 몸의 바탕은 회록색이고 등 쪽은 암녹색이며, 배 쪽은 은백색입니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은 몸 전체가 흑청색으로 변하고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에 암회색 반점이 있지만 암컷은 없습니다. 가시는 배지느러미에 한개 있고 등지느러미에 6-10개 정도 나 있습니다. 산란기는 4-7월입니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은 웅덩이의 수초부근에 둥지를 만듭니다. 둥지를 다 만들면 암컷을 유인하여 산란을 시킵니다. 산란 후 알이 부화 될 때까지 수컷은 둥지를 지킵니다. 이때 다른 물고가 접근 못하도록 싸우기도 합니다.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알이 부화 될 때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알이 부화되어 새끼들이 떠날 때쯤에는 수컷은 기력이 쇠하여 몸을 지탱하지 못합니다. 결국 근처 수초에 들어가 수컷은 마지막 죽게 됩니다. 이것이 가시고기의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적 행동입니다. <염낭거미>는 우리나라 논이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거미로 노란색의 거미입니다. 염낭거미는 대부분 나뭇잎이나 풀잎을 말아서 자기들의 집을 만들고 그 속에서 생활합니다. 염낭거미 중에서 애어리 염낭거미는 억새풀을 말아서 그 속에서 사는데 다른 거미보다 독성을 많이 가지고 있고 모성애가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애어리 염낭거미는 산란시기가 되면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스스로를 가두는 거미집을 만듭니다. 몇 겹이고 단단하게 거미줄을 치고 이제는 되었다고 싶으면 그 안에서 산란을 합니다. 어미가 쳐놓은 거미집에서 갓 태어난 어린 거미들은 주변에 먹을 것이 없으므로 어미의 몸을 뜯어 먹으면서 자랍니다. 어린 거미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먹이가 되는 어미 염낭거미의 희생은 미물의 곤충이지만 위대한 희생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가시고기처럼, 염낭거미처럼 자녀인 우리를 향한 위대한 희생의 사랑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