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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287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2020-11-08
미국의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토미 테니(Tommy Tenny)라는 목사님 쓰신 <하나님의 관점-God's eye view>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다윗의 장막>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은혜를 끼친 책입니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보면 사람이 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이가 답답해하면서 “아빠 안아줘요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라고 외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만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른들의 신발뿐이기에 답답해하는 모습을 그린 장면입니다. 이때 아이를 안아서 높이 올려주면 그때서야 옆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고 아이는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는 사물의 관점은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른들의 신발만 보듯이 제한적이며 답답한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밖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넓은 세상과 아름다움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본대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의 사물을 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고집스럽게 속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위에 계시기에 세상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시야를 낮은 시각으로 한정해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더 높은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코로나19의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세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위기의 시대를 새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아름답고 새롭고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위기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절망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6복종하는 행복 2020-11-15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1945)는 독일 루터교단의 목사로 반 나치운동가로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1945년 4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모두 다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히틀러의 나치운동에 대하여 반대하며 항거하는 저항정신과 고난에 동참하는 실천적 신앙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독일에서 박해가 심할 때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 라인홀드 리버가 교수자리를 마련하고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국민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고 하면서 망명을 거절하고 독일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에 대하여 <값싼 은혜>라는 용어로 비판합니다.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을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 되었고,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이 되었음을 본회퍼 목사는 지적합니다. 그의 신앙을 요약한다면 “복종”과 “저항”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감옥에 <옥중서신>을 썼고 많은 기도문을 남기었습니다. 여러 기도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태연하게, 명랑하게, 확고하게, / 영주가 자기 성에서 나오는 것처럼, / 감방에서 내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하지만, /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자유롭게, 다정하게, 맑게, /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처럼, / 간수들과 대화한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한다. ---/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 내가 누구이건, / 아!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 명령에 복종했는가?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목숨을 버린 본 회퍼 만큼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지는 못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작은 복종이라도 하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3)
285교회설립 50주년 2020-11-22
오늘은 우리교회 설립 50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1970년 11월1일 이인구 장로님(백승현 권사님) 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해 11월 22일 “서대문제일교회”라는 교회명칭으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 164-32에 작은 건물을 얻어 공식적으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1대 김규식 목사(1년), 2대 이인구 목사(6년), 3대 이진우 목사(16년), 4대 장석락 목사(3년), 5대 조성윤 목사(4년), 6대 장석락 목사(19년)가 목회자로 헌신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서대문지역에서 1996년 6월까지 복음사역을 잘 감당하다가 지역이 재개발되어 26년간 정든 곳을 떠나 일산 중산동 1666-3 현 지역으로 이전해왔습니다. 2007년 지역의 특성을 살려 교회 명칭을 일산서대문제일교회에서 참된교회로 변경하였습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수고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한 바울의 고백처럼 50주년의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50년을 돌아보며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은 지난 세월이 은혜라면 앞날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 주(州)에 속해 있는 작은 도시 아우슈비츠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수용소가 있던 곳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0년 6월에 나치 친위대(ss)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믈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곳에서의 나치들의 만행은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시켰습니다. 폴란드는 아우슈비츠의 만행을 씻기 위해 지명을 오수비엥침으로 바꾸었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아우슈비츠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명을 오수비엥침으로 바뀐다고 해서 과거의 만행이 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 설립50주년을 맞이하여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의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내일의 미래를 소망으로 계획해야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은혜로 함께하셨으니 미래도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284성경대로 사는 삶 2020-11-01
사거리 교통 신호등의 고장으로 차량이 뒤엉킨 경우를 운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신호등이 고장 나면 눈치껏 먼저 가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양보 없이 먼저 가려면 점점 더 차량이 뒤엉키게 됩니다. 차라리 신호등이 없던 곳은 경험에 의하여 서로 양보하며 교통이 원활하게 잘 소통이 됩니다. 오래 전 필리핀에 가보니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 차들이 자유롭게 교행을 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데 자기가 지나가야할 차례를 잘 알고 충돌 없이 복잡한 사거리를 잘 지나갑니다. 필리핀의 선교사에게 물었더니 살다보면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신호등이 없던 곳은 없는 대로 서로 양보하며 질서를 잘 지킵니다. 하지만 신호동이 있던 곳에 신호등이 고장이 나면 교통사고가 날 위험이 큽니다. 왜냐하면 교통 신호등은 차량운행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신호등이 없던 곳은 서로 양보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지만 신호등이 있던 곳은 신호등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신호등이 고장이 나면 그만큼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신호등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은 사거리 교통신호등을 보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삶을 살던 사람이 신앙이 나태해지고 믿음이 식어져 성경을 묵상하지 않으면 신호등이 고장이 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장 난 신호등을 빨리 수리하지 않으면 사거리 교통이 뒤엉키듯이 성경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뒤엉켜져 혼탁해질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을 생활화합시다. 성경을 읽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대로 삽시다. 성경대로 삶을 사는 사람은 차가 교통 신호등을 보고 사거리를 지나가면 완전하듯이 완전한 삶이 보장되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283종교개혁주일 2020-10-25
불나방은 나비목의 불나방과의 곤충입니다. 모양은 3~4cm 정도로 날개의 색과 무늬가 매우 화려합니다. 쐐기풀, 질경이 그리고 잡풀을 먹고 자라며 산이나 들판에서 주로 서식합니다. 불나방은 불을 보면 날아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는 불빛을 향하여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나는 속성 때문에 나선을 그리면서 불빛 주변을 빙빙 돌다가 결국은 불 속으로 끌려 들어가 타 죽게 됩니다. 이렇게 불나방이 불빛을 향하여 날아드는 행동을 주광성(走光性, phototaxis)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주광성 행동은 곤충과 바다의 고기들이 빛의 자극에 대하여 광원 쪽으로 이동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바다에서 어부들은 이러한 주광성을 이용하여 꽁치, 멸치, 오징어 등을 잡습니다. 오징어잡이 배들은 밤바다를 대낮처럼 밝힙니다. 불빛을 밝히면 오징어들은 주광성 행동으로 불빛을 향해 모여듭니다. 오징어를 부르는 불빛은 죽음의 불빛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의 95개항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대학교회 정문에 내걸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성경 중심의 신앙을 가르치지 못하고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는 재정을 마련하고자 교회들에게 면죄부를 강요했습니다. 면죄부 판매는 화려한 성당을 짓기 위한 재정 마련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루터는 헌금으로 인간의 죄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강조하며 교회에 저항(Protestant 프로테스탄트)합니다. 당시 교회는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불나방이 화려한 불빛으로 달려들 듯 교회가 화려한 겉모습의 성당 짓는 일에 집중하고 세속의 물질을 강조하다보니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화려한 불빛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마지막은 파멸로 가게 됩니다. 오늘 종교개혁기념 주일에 우리는 세상의 화려한 불빛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날마다 개혁되는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합니다. 불나방처럼 세속으로 달려들지 말고 말씀중심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5:15-16)
282맥아더 장군의 기도 2020-10-18
미국 버지니아 해안에 더글라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맥아더 장군이 평생 받은 훈장과 상장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평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받은 훈장 중에 가장 위대한 훈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아들을 주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맥아더는 자기 아들이 태어나는 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선물을 주셨다"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표현한 아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에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와,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을 세우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에게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자녀에게 유머를 알게 하옵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어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81전화위복(轉禍爲福) 2020-10-11
미국 메이저리그의 추신수 선수는 부산고등학교 시절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입니다. 당시 추신수 선수는 투수로 좋은 성적을 내어 대회 MVP 선수가 됩니다. 그 후 2001년 메이저리그 시애틀 구단에 투수로 입단합니다. 투수로 입단했지만 시애틀 구단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시킵니다. 투수가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한다는 것은 너무나 야구선수로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추신수 선수는 메이저리그의 특급선수가 되었습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것입니다. 국민타자로 불리며 활동하던 이승엽 선수 역시 투수였지만 부상 때문에 타자로 전향하여 성공한 선수입니다. 운동선수 중에 부상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 유명한 아키바라는 랍비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책을 읽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등잔불이 꺼졌습니다. 책을 읽다 불이 커지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던 개가 간밤에 늑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아키바는 책을 읽다 불이 커지고, 사랑하던 개의 죽음에 대하여 불평하며 아침산책을 했습니다. 산책 중 마을 사람들에게 간밤에 마을에 도적떼가 쳐들어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게 됩니다. 아키바는 간밤의 등잔불이 꺼진 것과 개가 늑대에 죽은 것을 불평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만약 불빛이 밖으로 나갔다면, 만약 개가 짖어댔다면 자신도 도적 떼에게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평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난이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승엽선수의 팔꿈치 부상이 오늘날 홈런타자로 만든 것처럼, 랍비 아키바의 개가 죽은 것이 복이 된 것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은 훗날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뜻 않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고난이지만 고난이 전화위복이 되어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감사해야합니다. (시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280네비게이션(navigation) 2020-10-04
네비게이션은 최근 자동차 운전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지도를 보고 가다가 차에서 내려서 주변사람들에게 길을 묻곤 했습니다. 그러다 혹시라도 좌회전해야할 곳에서 우회전을 하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면 거의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래 네비게이션(navigat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나비게레(navigere)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나비스(navis) “배”라는 단어와 아게레(agere) “움직이다, 인도하다, 끌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즉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법을 말하는 “항법” 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바다에서 배가 항해할 때 길을 인도하는 장치를 네비게이션이라고 했는데 요즈음은 육상에서 움직이는 자동차의 길안내 장치를 네비게이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길을 잘 안내해주던 네비게이션이 가끔은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낯선 지방의 초행길에 네비게션이 길 안내를 잘못하면 난감한 일이 일어납니다. 초창기 네비게이션은 오류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대로 갔더니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성항법장치(GPS-Global Positioning System)로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 받기 때문에 정보의 오류보다는 기계적 오류로 목적지를 잘못 찾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갑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데 날마다 옳은 길로 인도하는 정확한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매일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여정 길의 네비게이션은 성경입니다. GPS의 실시간 정보를 전달 받는 것 같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언제나 실시간 인생길의 안내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정확무오한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입니다. 성경을 읽고 생활화해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까지 행복한 여행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279당당한 그리스도인 2020-09-27
어느 곳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되던 식당이 어느 날 갑자기 손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옆 건물에 새로운 식당이 개업을 했는데 깨끗하고 맛있고 값이 저렴했습니다. 손님들은 당연히 새 식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자기 식당에 손님들이 줄어든 것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경제가 어려워졌고 그러므로 우리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손님이 줄어든 것은 분명 옆 건물의 새로운 식당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 주인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손님이 줄었다고 핑계를 대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식당 주인에게 머리를 숙이며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정치를 잘못해서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깊이 사과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집을 나와 깨끗하고 맛있는 옆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준다며 . ----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넌 핑계를 대고 있어. -------” 사랑이 식어서 떠난다, 나는 너에게 실망하여 너를 떠난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떠나면 좋겠는데 구차하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혼자 있는 것을 가르쳐 준다며 핑계를 대면서 떠나는 사람에게 <핑계 대지마>라고 외치는 노랫말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자신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고 핑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존감(self-esteem)이 약할 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핑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당당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사과하며 긍정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대하여 불평, 불만하지 않고 원망과 핑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삽니다. 코람데오는 라틴어 코람(coram-앞에서)과 데우스(Deus-하나님)가 합쳐진 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 때 쓰는 말입니다. 손님이 떨어진 식당 주인처럼 핑계하지 말고 언제나 감사하며 당당하게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78새로운 각오 2020-09-20
지난 9월14일 조선일보 김윤덕 문화부장이 <누가 한국교회에 돌을 던지나>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3·1 만세운동 다음 날인 1919년 3월 2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제대로 드린 교회는 없었다. 거사를 위한 비밀 집회가 주로 교회에서 이뤄져, 수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감옥에 끌려가고 예배당은 폐쇄됐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일제의 보복이 시작되자 신자들은 집이나 은신처, 차디찬 감옥에 엎드려 예배를 드렸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곳이 교회였다. 이어지는 글은 “한국 개신교 100년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3·1 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민족 계몽 운동, 민주화 운동, 여성 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화의 수레바퀴였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일부 교회들의 안일한 대응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독교가 비난받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예배모임을 하는 반지성적 행위가 한국교회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맹신주의, 기복신앙, 목회자세습, 편나누기, 교회 오래 다닌 연륜을 강조하는 권위주의, 성경을 떠난 반지성주의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우리를 더 위협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첫째는 하나님의 시대적 메시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이며 생명인 예배가 위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는 형식적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8세기 활동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은 너희의 무수한 재물에 싫증이 났고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너희는 나에게 보이려고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3)라고 당시 형식적 예배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으로 경배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나의 왕으로 명령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바른 예배에 충실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신앙의 덕을 위하여 바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공평하게 그리고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눅10:25)처럼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이제부터, 나부터 실천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실천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