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 menu line

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469친구(親舊) 2024-06-23
우리에게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목월(1916-1978) 선생은 고향이 경주입니다. 그의 집안은 할머니 때부터 예수를 믿는 기독교 가정입니다. 모태 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박목월 선생은 그의 시 속에 기독교 신앙을 많이 표현합니다. 일제 말기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에서 교수를 하셨고 문리대 학장을 지냈습니다. 국민 동요로 알려진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는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하고 찬양한 동시입니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과 더불어 <청록집>을 출간하므로 청록파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지조(志操)론으로 잘려진 조지훈 선생과는 아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조지훈 선생이 경주를 방문한 후 돌아가 〈완화삼(玩花衫>(꽃무늬 옷(적삼), 즉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이란 시를 써서 조지훈 선생에게 보냅니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리(七百里)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 다정하고 한(恨) 많음도 병인 양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박목월 선생은 여기에 〈나그네〉로 화답합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이는 박목월 선생이 4살 위이지만 두 분은 친구가 되어 이처럼 멋진 시를 써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친구의 교제입니까? 또한 품격이 있는 멋진 교제입니다. 설날이 다가옵니다. 조지훈 선생의 “완화삼”과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와 같은 서로의 뜻을 전하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3)
468파스칼의 팡세(Pensees/생각) 2024-06-16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프랑스 출신의 물리학자, 수학자, 철학자, 신학자입니다. 파스칼은 39세로 짧은 삶을 살았으나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던 신학자였습니다. 그가 쓴 <팡세(Pensees-생각)>는 파스칼이 죽은 뒤 1670년 유족들이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한 책으로 본래의 제목은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 씨의 팡세(생각)”라는 긴 제목이었지만 <팡세>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팡세는 프랑스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 짐 속에 들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좋아한 책입니다. 팡세의 제1부는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자의 비참을 논하고, 제2부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표현하기를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 같지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신을 발견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둘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신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 종류의 사람뿐 아니라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인(義人)이 있고, 또 하나는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罪人)이 있다.”
파스칼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표현하면서 인간이 가지는 신앙은 “하나님을 직감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심정이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에 직감되는 신, 이것이 곧 신앙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강조한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 매개자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만다.” 요약하면 인간은 연약한 갈대 같지만 생각하는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파스칼의 <팡세>를 통하여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더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봅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467그리스도를 본받아 2024-06-02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는 독일의 경건주의 수도사입니다. 92년의 인생을 살면서 많은 시간을 아그네텐베르크 수도원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신비사상가 헤르트 호르테 및 제자 플로렌티우스 라데빈스가 창설한 <공동생활의 형제회(Brethren of the Common Life)>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 수도회에 함께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청빈, 정결, 복종의 삶을 살며 매일의 노동을 중요시했습니다. 그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 (영) The Imitation of Christ)>는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경건 서적이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것은 <순종>입니다. “1) 우리가 자신의 재판장이 되지 않고 상급자 밑에서 순종하여 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지배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며 살되, 사랑보다는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한다. 그러한 순종에는 만족함이 없고 쉽게 괴로움을 받는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꺼이 진심으로 자신을 순종시키지 않으면 결코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없다. 그대가 원하는 곳으로만 가면 아무 쉼을 얻지 못한다. 오직 상급자의 다스림 아래 겸손히 복종할 때 쉼을 얻는다. 장소에 대한 상상과 변화가 지금껏 많은 사람을 기만해 왔다. 2) 진실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일을 기꺼이 행하려 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지극히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우리는 때때로 화평을 위해 자신의 견해에 대한 고집을 삼가야 한다. 만물을 완전히 다 알 만큼 현명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므로 자신의 견해를 너무 확신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판단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당신의 생각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그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면, 이는 그대에게 더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종종 교만하여 왕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자신을 주장할 때가 있습니다. 즉 순종하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남에게 잘못되었다고 지적은 하면서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 교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2024년 5월을 보내면서 왕이신 주님께 순종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보시기 바랍니다.
466약할 때 강함 2024-05-26
음악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일생 가난과 질병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술주정뱅이 테너 가수인 아버지와 하녀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과도한 음악 공부를 강요받았습니다. 4세 때부터 하루 종일 골방에 갇혀 악기를 연습해야 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베토벤의 천재성을 사람들에게 알려 돈벌이를 하려고 하는 일 때문에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베토벤은 17세 때 어머니를 잃었고, 28세에 음악가로 죽음과 다름없는 듣는 청각을 잃게 됩니다. 그는 32세에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서 요양하던 중 자살을 생각하고 유서를 쓸 정도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청각을 잃은 후 더 많은 작곡을 합니다. 1803년 오라토리오 <감람산 상의 그리스도>, 1804년<제3번 교향곡 영웅>, 1808년 <제5번 교향곡 운명>, <제6번 교향곡 전원> 그리고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1824년 <제9번 교향곡 합창>을 작곡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찾아오면 즉시 낙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난이 큰 자극이 되어 더 큰 소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재 작곡가 베토벤은 28살에 청각을 잃는 고난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작곡에 몰두하여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했습니다. 고난을 극복한 베토벤처럼 우리도 고난이 닥쳤을 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의 상황에도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요즈음 새벽기도회에 욥기를 봅니다. 욥은 갑작스러운 고난이 닥쳤을 때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고백을 합니다. 성경 시편 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고 말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65유배생활(流配生活) 2024-05-19
조선시대의 죄를 지은 사람에게 형벌을 가할 때 5가지 형벌이 있습니다. 태형(笞刑), 장형(杖刑), 유형(流刑), 도형(徒刑), 사형(死刑)입니다. 태형, 장형은 물리적으로 신체에 가하는 매질이고, 도형은 강제노역을 시키는 것이며, 사형은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형은 귀양을 보내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유형의 귀양살이 중 가장 가지 않으려는 곳이 산수갑산입니다. 이곳은 함경도 개마고원의 산수군, 갑산군인데 두 군을 합하여 산수갑산(山水甲山)이라고 부릅니다. 훗날 사람들이 격언처럼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하겠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자기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나는 행동하겠다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오지마을로 유배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유배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유배는 위리안치(圍籬安置)입니다. 유배지에 탱자나무를 심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가택 연금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충신들은 위리안치의 유배를 당해도 그곳에서 명작의 글을 쓰고, 지방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들을 꼽는다면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의 대정읍에 위리안치되어 ‘추사체’를 창안했고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전라도 강진군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썼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은 복성재(復性齋·사둔 서당)를 세워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쳤고 바다 생물을 다룬 해양생태계 서적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집필했습니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서(漁父四時詞)를 지었고 정철의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 많은 작품들이 유배지에서 지은 작품입니다. 김굉필은 유배지 평안도 회천에서 조선의 정치인이요 대학자인 조광조를 가르쳤습니다.
조선시대 유배를 간 사람들 중에 억울하게 유배를 간 충신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유배를 갔다가 풀려나 다시 중앙의 높은 관직으로 복직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충신들은 유배지에서 낙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았습니다. 그들은 유배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였고 결국은 위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우리도 처한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부터 실천하면 큰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464그리스도인의 성공 2024-05-12
'꿈, 끈, 꾀, 꼴, 꾼, 끼, 깡이라는 단어는 성공하는 인생에게 필요한 7가지 쌍 기억(ㄲ) 이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1) 꿈(희망의 좌표)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성공의 좌표이며 (2) 끈(인간관계의 인맥)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하며 (3) 꾀(지혜로운 창의력) 번뜩이는 영감의 창의력, (4) 꼴(자기관리의 모습)은 외형적 용모뿐 아니라 내면의 모습을 말하며, (5) 꾼(전문성)은 자기 일에 충실하며 전문적 지식이고 (6) 끼(타고난 재능)는 재능으로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을 말하며, (7) 깡(도전정신-끈기)은 어려워도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꿈(희망좌표) 끈(대인관계) 꾀(창의력) 꼴(자기관리) 꾼(전문성) 끼(재능) 깡(도전정신)의 7가지 ㄲ을 말합니다. 오래전 어느 기관에서 CEO(최고경영자) 104명에게 꿈, 끈, 꾀, 꼴, 꾼, 끼, 깡,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설문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결과는 '꿈'32%, 끈18%, 꾀14%, 꼴 13%, 꾼1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얼마나 빨리 달리며, 얼마나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며, 얼마나 안전하게 항해하느냐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어느 항구로 항해하느냐가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합니다. 꿈은 항해하는 배들의 목표지점의 항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꿈”은 해석이 필요한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꿈은 내가 정한 내 인생 성공의 좌표요 목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꿈은 언제나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출발한 소명(calling)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 사도가 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소명자의 삶을 사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즉 소명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좌표는 개인이 정한 꿈이 아니라 주께서 부르셔서 맡기신 사명 즉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성공보다 소명을 이루는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소명 즉 부르심의 꿈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63다산 정약용의 삶 2024-05-05
18세기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에 대하여 여러 번 글을 썼습니다. 어린이 주일에 다시 한번 다산 정약용 선생을 소개합니다. 다산은 학문과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당쟁에 휘말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실학(實學)의 큰 뜻을 품었지만, 당시 정치적 권력을 장악했던 노론 벽파의 반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유배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고향인 경기도 양수리로 돌아와 수많은 저서의 글을 쓰면서 살다가 75세에 죽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22살(1783)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어느 날 정조에게 발탁되어 조정에 나와 정치를 하게 됩니다. 정조대왕은 다산이 31살 때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하여 수원성을 건립할 때 중직을 맡겼습니다. 다산은 수원성을 건립할 때 설계도를 만들었고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을 창안하여 무거운 돌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기중기를 만들어 공사에 활용하였습니다. 33살에 경기도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으며 38살에 형조참의로 임명되어 그 직임을 성실히 잘 수행했으나 39살 되던 해 정조가 죽자 그를 시기하는 노론벽파 사람들에 의하여 탄핵을 받아 40세에 귀양을 갔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행정 경험을 많이 쌓았던 그는 장차 명재상이 되어 나라를 새롭게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지만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양성했고 책을 집필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18년간 긴 세월의 유배 생활을 했다면 자신의 뜻을 굽히고 평범하게 삶을 살지만 다산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뜻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글을 쓰며 자신의 뜻을 펼치는 끈기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결국 <목민심서>를 완성했고 <황상>과 같은 제자를 양육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주변의 환경 때문에 자신의 큰 뜻을 펼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도 주님이 맡기신 뜻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며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는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유명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어 갈 때 언제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62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2024-04-28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년)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백치> <백야> <죽음의 집의 기록> 등 너무나 많은 작품을 쓴 작가입니다. 그는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작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아 군인학교에 들어가 1841년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육군 소위로 임관합니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844년에 제대하고 1846년에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합니다. 그 후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급진적 젊은 지식인들의 정치적 모임에 가담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따르는 급진적 사조는 공상적 사회주의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모임을 주도하다가 1849년에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게 됩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서유럽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사상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젊은 지식인들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언하고 마지막 사형집행 직전에 사면해 주는 정치적 연극을 꾸미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 총살 직전에 사면이 된 그는 훗날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을 <백치>라는 작품에서 “사형수들에게 5분을 준다면 2분은 동지들과 이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 데 쓰고 싶다”고 표현합니다.
사형집행 직전 사면이 된 그는 그 후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가 4년 만에 돌아와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형집행 직전 사형대에서 살아난 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평생 그의 마음 한편을 지배했습니다. 죽음의 사형대에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후 그의 삶은 적극적인 삶이 되었고 작품 활동에 몰입하여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와 같은 명작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대에서 살아난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삶은 은혜에 감동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인생길을 걷다 보면 가끔 광야 같은 고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홀로 가는 인생길의 광야를 맞이하게 됩니다. 춥고 무덥고 배고프고 목마른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고난의 광야 길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함께하십니다. 끝까지 우리 손을 잡고 동행해 주십니다.
461광야(廣野) 2024-04-21
이스라엘 남쪽 지역의 광야 길이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이곳을 시나이반도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 지난 광야 지역입니다. 지금은 이집트 땅입니다. 오래전 성지 순례를 다녀올 때 먼지와 바람이 불던 광야 길을 긴 시간 버스로 달려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광야’입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 광야 길로 들어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라고 표현합니다. 미드바르는 <다바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드비르>라는 지성소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즉 광야의 깊은 뜻은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말씀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광야는 출애굽 때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 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가르친 곳입니다.
사막의 광야는 일교차가 심하여 밤에는 춥고 낮에는 무더운 곳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출애굽 때 추운 밤에는 불기둥으로 무더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출애굽의 광야 길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광야 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 유대인들의 경전인 <미쉬나>에 출애굽의 광야 40년을 “하나님과의 허니문 기간”으로 표현합니다. 신혼부부의 행복한 시간처럼 광야 40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보호하며 말씀하시며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신 곳입니다. 목이 마를 때 모세를 통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주시고, 먹을 음식이 없을 때 하늘에게 만나를 주시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를 주신 곳이 광야입니다. 이러한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 주셨고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인생길을 걷다 보면 가끔 광야 같은 고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홀로 가는 인생길의 광야를 맞이하게 됩니다. 춥고 무덥고 배고프고 목마른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고난의 광야 길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함께하십니다. 끝까지 우리 손을 잡고 동행해 주십니다.
460겨자씨 만한 믿음 2024-04-14
조지훈, 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목월(1916-1978) 선생은 고향이 경주입니다. 박목월 선생의 집안은 할머니 때부터 예수를 믿는 기독교 집안입니다. 모태 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박목월 선생은 그의 시 속에 기독교 신앙을 많이 표현합니다. 대표작으로 ‘나그네’,‘윤사월’, ‘청노루’등이 있습니다. 목회 칼럼에서 소개했던 ‘아침에 눈을 뜨면’이라는 시도 박목월 선생의 작품입니다. 주간에 박목월 시인의 서정적 시들을 읽으면서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었습니다. ‘이만한 믿음’이라는 작품입니다.
주여 / 뜨겁게 믿는 /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불길이 / 타오르게 하소서
귀가 멀고 / 석고처럼 굳어진 사지에 / 새로운 생명의 피가 돌게 하고
맑은 음성을 들을 수 있는 / 귀가 열리고
새로운 하늘의 광명을 볼 수 있는 / 눈이 열리고
신선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 코로써 스스로의 믿음을 증명하게 하옵소서
------중략 ---------
주여 / 뜨겁게 믿는 / 믿음을 주옵소서
활활 타오르는 /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불길로써 / 전날의 모든 것을 태우고
새로운 생명의 피가 돌게 하고 / 거듭나게 하소서
마태복음 17:20에 “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말씀을 묵상합니다. 겨자씨는 이스라엘 지역의 가장 작은 식물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싹이 나고 자라면 2-3미터가 되는 나무입니다. 이처럼 작은 믿음이 이라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나타나는 기적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비록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것 같은 믿음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기적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 같은 작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기적을 가져 옮을 믿고 소망 중에 인내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