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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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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당신은 제자입니까? 2022-02-13
복음주의 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1921 –2011)목사님은 영국의 성공회 소속 성직자입니다. 21살에 성공회 사제가 되어 90세까지 활동을 하신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입니다. 생전에 존 스토트 목사님은 많은 활동과 저서를 남기셨는데 88세에 생애 마지막에 쓰신 제자도(The Radical Disciple)라는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입니다. 원어의 책 제목은 The Radical Disciple인데 번역할 때 <제자도>라고 했습니다. 레디컬( Radical)은“근원적, 근본적, 급진적”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도는 <제자의 근본> <제자의 뿌리>라는 표현이 더 본문에 가까운 표현일 것입니다. Radical Disciple이라는 말은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뜻합니다. <제자도> 서문에 당신은 “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질문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표현하는데 하나는 크리스챤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입니다. 크리스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세상 속에 들어가 예수님의 진리를 가지고 세상을 개혁하는 사람들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제자도(The Radical disciple)>에서 크리스챤이 아닌 제자의 삶에 대하여 8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즉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 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입니다. 그 가운데 제1장 불순응(Non- conformity)은 제자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을 떠나 살수 없고, 세상 속에 살아야 하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켜야하다고 강조하면서 “순응”해서도 안 되며 세상 밖으로 “도피”해서도 안 되는 제자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불순응(Non- conformity)의 삶입니다. <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과연 크리스챤인가? 제자인가?를 한 번은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가치대로 사는 크리스챤인지? 아니면 주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레디칼(Radical)한 제자인지? 영적부흥운동 기간에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348섬기는 삶 2022-02-06
영어의 표현 가운데 “섬기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2차 대전 중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아갈 때 기차역에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밤이 되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따뜻한 커피를 봉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커피를 따라 준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루즈벨트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따뜻한 커피를 얻어 마신 젊은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 커피 한잔은 바로 대통령의 따뜻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은 전쟁터로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커피 한 잔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받아든 젊은이들은 커피가 아닌 루즈벨트 대통령의 마음을 전달받은 것입니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붓을 빠는 물통에 물이 탁해지며 더러워지는 것을 본 어떤 학생이 그림을 그리다 말고 친구들의 물통에 물을 새 물로 채워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학생을 불러서 너는 왜 그림을 안 그리고 친구들 물통에 물을 갈아주느냐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대답은 친구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기뻐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너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서 심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왜 우리 아이가 그림 시간에 친구들 물통에 물을 갈아주는 일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께 아이의 훌륭한 남을 위한 섬기는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듣지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미술시간에 친구들 물통에 새 물을 공급해준 아이는 분명 섬기는 봉사의 삶을 실천한 아이입니다. 분명 남을 위한 삶을 사는 훌륭한 어린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섬기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는 말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면서 주를 위한 섬김의 삶을 삽시다.
347야생화 2022-01-30
야생화(野生花)란 야생에서 자란 식물이 꽃을 피웠을 때 그 꽃을 야생화라 합니다. 인간의 손에 배양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자라 핀 꽃입니다. 학자들 간에 차이는 있지만 대략 우리나라의 야생화의 종류는 4300가지입니다. 변종과 아종을 합하면 7000가지나 됩니다. 금낭화, 당아욱꽃, 인동초, 복수초, 노루귀꽃 등 꽃 이름이 참 아름답습니다. 야생화는 산과 들의 외진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꽃이 피었을 때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하지만 야생화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때가 되며 꽃이 피고 그 향기를 발합니다. 보아 주는 사람 없어도 외로운 곳에서 홀로 향기를 발합니다. 인터넷에서 야생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잡초처럼 모진 생명력을 가지고 환경이 열악해도 끝까지 버티어내며 꽃을 피워내는 것이 야생화입니다. 야생화가 외진 곳에서 향기를 발하는 것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어려운 환경과 극단의 조건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내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과정은 고통이지만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성공하는 인생을 비유합니다.
야생화는 그 피는 시기가 각각 다릅니다. 봄에 피는 꽃으로 민들레, 은방울꽃, 봄맞이꽃 등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은 병아리난초, 노루발풀, 산수국, 솔나리, 삼백초 등이 있습니다. 가을에 피는 꽃은 달맞이꽃, 개망초, 상사화 등이 있고 겨울에 피는 꽃은 동백꽃, 인동초, 복수초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꽃이 피는 시기가 각기 다른 이유는 영양분을 저장했다가 일시에 꽃을 피워야 하는 겨울과 봄의 꽃들이 있고, 곤충들의 활동 시기에 맞춰 피는 꽃들은 꽃가루를 옮겨야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름에 핍니다. 가을에는 대부분 열매 없이 짧은 기간에 번식을 해야 하는 꽃들이 핍니다. 우리의 인생도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듯 성공의 시기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일찍 성공했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와 시기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람 앞에 나타내려는 허영의 삶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외진 곳에서 꽃의 향기를 발하는 야생화처럼 각각의 위치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각자의 위치에서 향기를 발하는 책임 있는 삶을 삽시다.
346위기의 시대, 인재양성에 힘을 다 합시다. 2022-01-23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 5월16일에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입니다. 소래교회의 시작은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상륜, 서경조 형제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입니다. 소래교회는 교회부흥 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주일학교를 시작했고 1895년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해서제일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해서제일학교>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브란스 의대 제1회 출신으로 최초의 의사이며 독립 운동가인 김필순 선생, 서상륜의 사위로 세브란스 제1회 출신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홍종은 선생, 서경조의 장남으로 세브란스 제2회 출신 서광호, 중국 남경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운동과 경신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서병호 선생,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박헌식 선생, 연세대학교부총장 원자력병원장과 유한공전재단이사장을 역임한 의학박사 김명선 선생, 그 밖에도 의사인 조광현, 최창수, 박상근, 박승원, 홍순각, 고명우 선생이 있으며 군인으로 활동한 김경선 장군, 여성으로 동경유학생 2.8독립선언을 주도했고 귀국 후 독립운동을 한 김마리아 선생, 미국 콜롬비아대학 졸업후 수피아 여고와 서울 정신여고 교장을 지낸 김필례 선생, 김규식 선생의 부인이며 독립운동을 한 김순애 선생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황해도 소래교회의 <해서제일학교>가 인재양성을 한 것처럼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선천의 <신성학교> 역시 기독교 인재들을 양성한 학교입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서울의 연희, 세브란스, 이화, 배재, 정신, 경신학교와 또한 전국의 수많은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에 힘을 다했습니다. 오산학교 출신으로 주기철 목사, 한경직 목사, 시인 김소월, 화가 이중섭, 인제대학의 백인제 박사, 함석헌 선생 등 선천읍의 <신성학교> 출신들을 보면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 서울대 총장 장리욱 박사, 의사 장기려 박사, 차병원 차경섭 박사,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 신학의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방지일 목사 등이 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 선교사들이 인재양성에 총력을 기울인 것처럼 우리도 오늘의 위기의 시대에 인재양성에 총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인재(人才)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교육되는 것입니다.
345유혹 2022-01-16
어느 곳에 꿀을 좋아하는 파리가 있었습니다. 이 파리는 꿀을 너무 좋아하여 꿀이 있는 곳이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날아갔습니다. 어느 날 배가 몹시 고픈 상황에 꿀단지를 발견합니다. 너무 배가 고픈 상황이라 조심하지 못하고 꿀단지 한복판으로 날아들고 말았습니다. 꿀단지 한복판으로 날아든 파리는 날개가 끈끈한 꿀에 붙어버렸습니다. 한 번 날개가 꿀에 빠지자 날지를 못하고 날개에 힘을 주면 줄수록 더 깊이 꿀단지로 빠져들었습니다. 마침내 파리는 꿀단지에 빠져 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곳을 날던 불나비 한 마리가 파리를 향해 돼지처럼 음식을 탐내더니 결국 꿀에 빠져 죽는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었습니다. 주변이 환한 촛불이 켰습니다. 나방들이 촛불을 향하여 날아들었습니다. 낮에 꿀에 빠진 파리를 비난하던 불나비도 화려한 불빛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촛불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하더니 결국 촛불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순식간에 불나비는 촛불에 날개를 잃고 그곳에 떨어졌습니다. 꿀을 좋아하던 파리에게 돼지 같다고 비난하던 불나비 역시 불꽃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날개를 잃게 되었습니다.
불나비가 불빛을 향하여 날아드는 행동을 주광성(走光性, phototaxis)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주광성 행동은 곤충과 바다의 고기들이 빛의 자극에 대하여 불빛 쪽으로 이동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바다에서 어부들은 이러한 주광성을 이용하여 꽁치, 정어리, 멸치, 고등어, 오징어 등을 잡습니다. 오징어잡이 배들은 밤바다를 대낮처럼 밝힙니다. 불빛을 밝히면 오징어들은 주광성 행동으로 불빛을 향해 모여듭니다. 오징어를 부르는 불빛은 죽음의 불빛입니다. 하지만 그 불빛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은 불을 향하여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주광성 행동 때문입니다. 꿀을 좋아하는 파리, 불빛을 향하여 돌진하는 불나비와 오징어 떼들, 이 모두는 본능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연의 본능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달콤한 꿀, 화려한 불빛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5-16)
344작심삼일하지 말고 마부작침합시다 2022-01-09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갈 마(磨), 도끼 부(斧), 만들 작(作), 바늘 침(針)으로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태백(李太白)이 어린 시절 상의산(象宜山)에 있는 훌륭한 스승을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싫증이 나서 산을 내려와 집으로 가던 중 계곡에서 도끼를 열심히 갈고 있는 노파를 만나게 됩니다. 호기심에 이태백은 노파에게‘무엇을 하려고 도끼를 바위에 갈고 있습니까’물었습니다. 노파는 대답하기를‘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고 있다’했습니다. 이태백이‘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노파는 말하길‘포기하지 않고 갈면 바늘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태백은 큰 깨달음을 얻어 스승에게로 되돌아가 공부를 계속하여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는 부작침(磨斧作針)의 고사입니다. 이 말은 중국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무리 어려워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뜻을 이루고 성공한다는 교훈입니다. 도끼를 바위에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마지막에 바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22년 새해 아침, 우리는 한 해 동안 많은 것들을 이루고자 마음에 작심하고 출발합니다. 마부작침의 심정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살다보면 마음의 결심은 나태해지고 게을러져 삼일을 가지 못합니다. 이때 쓰는 말이 작심삼일(作心三日)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은 마음에 결심한 것들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의 말입니다. 2022년은 신년 아침 처음 시작할 때 마음에 뜻을 정한 것을 작심삼일(作心三日)하지 말고 마부작침(磨斧作針)하는 심정으로 끝까지 노력하여 뜻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예배의 회복으로 새롭게 도전하자”는 표어 같이 예배와 성경읽기 그리고 기도생활 등 경건을 위하여 마음에 결심한 것들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남’이라는 말처럼 실패를 거듭하여도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여 꿈을 이루는 2022년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
3432022 새로운 출발! 희망의 도전! 2022-01-02
2022년 새해 아침이 되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는 새해 첫 주일 아침, 힘 있게 출발합니다. 누구나 이때쯤 되면 한 번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결단! 희망의 도전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단의 마음보다 결심한 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입니다. 아무리 결심을 크게 하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1947년 미국의 석유와 은행의 재벌인 멜런(역대 미국의 부자 5위) 집안의 막내아들인 래리머 멜런(1910-1989)은 어느 날 <라이프> 지에 실린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나도 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의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남미 아이티(Haiti)의 산속 마을 아티보니티(Artibenitc)로 갑니다. 멜런은 슈바이처 박사의 기사를 읽고 용기 있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라는 책을 쓴 고든 맥도널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중간 점검>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을 방향으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라고 합니다. “떠나라, 따르라, 뻗어 나가라”는 말로 인생의 궤도 수정을 강조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계획을 세워 희망의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2022년 새해 아침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기도해오던 <일천일 부흥운동>을 마무리 지으면서 4월 17일 부활절까지 약 100일간 경건운동을 하려 합니다. 영적부흥운동은 첫째 개인경건(Q.T)에 힘쓰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매일 10분 결단하기, 특별기도회 참석하는 일입니다. 둘째 공동체 교제입니다. 부흥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함께 기도하는 기도 모임 참석과 작은 실천으로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셋째는 지역 전도와 세계선교 (기도, 물질, 관심)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부흥 운동은 (1)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성령충만). (2) 말씀의 부흥입니다(읽기,듣기,실천). (3) 회개와 우리의 작은 실천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의 부흥을 꿈꾸며 열심을 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이루십니다. 2022년 신년 초부터 시작되는 부흥운동에 함께 합시다. 반드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필요한 부분을 채우실 것입니다. 새로운 결단! 희망의 도전! 2022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342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의 마지막 다짐 2021-12-26
2019년 7월 1일부터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을 시작한지 2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마지막 날이 2022년 3월26일입니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교회가 영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영적부흥운동이 어려웠습니다. 대면모임으로 찬양과 기도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고난의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경건을 위하여 새벽기도와 Q.T에 집중했습니다. 본래 일천일 부흥운동은 아주 작은 신앙의 실천 운동입니다. 몇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로 개인 경건을 위하여 매일새벽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Q.T 시간을 가지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자기반성:하나부터,이제부터,나부터). 또한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으로 하루를 승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공동체 부흥을 위하여 사랑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 고난당한 사람을 찾아가 격려하며 기도하고 위로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매일, 또는 주1회라도 직장 또는 지역의 주민에게 다가가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 부흥운동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둘째와 셋째의 실천운동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개인경건을 위한 새벽기도와 Q.T를 중심하여 부흥운동을 실천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기도에 동참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일천일 부흥운동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회 참석하시는 분들, 그리고 방송으로 깨어 기도하시는 분들은 묵묵히 2년6개월을 함께 했습니다. 담임목사로 그 동안의 기도하시는 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기도의 위대한 능력을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기도하는 분들에게 위대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 2022년 1월1일부터 부활주일 4월17일까지(일천일 마치는 날 3월26일) 100여 일 동안 새로운 결단으로 일천일 부흥운동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참된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부흥을 위하여 또한 여러분의 영적 축복을 위하여 1월1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100일 동안의 영적운동에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함께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마지막 부흥운동에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실 것입니다.“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341친밀감(親密感) 2021-12-19
전 세계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글을 써 많은 감동을 준 세계적인 신앙작가 고든 맥도날드( Gordon MacDonald 1939- ) 목사님은 콜로라도 주립대와 덴버 신학교를 졸업하고 메사추세츠 주 렉싱턴의 그레이스 채플에서 40여년간 목회를 했고 미국 기독학생회(IVF)의 대표로 청년사역을 한 목사님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1994년에 한국에 소개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한 IVF 출판사에서 책을 소개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속마음까지도 주저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오해에 가로막혀 마음을 닫아 버리기 일쑤이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으로 유명한 저자와 아내가 대화식으로 집필한 이 책은 친구, 부부, 가족의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따뜻하게 들려주고 있다.”라고 소개합니다. 한마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함을 강조한 책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친밀함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 희생, 헌신이라는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족과 이웃에게 다가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싶지만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친밀함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친밀함의 열매를 맺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이지만 친밀함을 줄 수 있는 능력은 학습이 필요하다> 무한경쟁(無限競爭)의 시대, 생존을 위한 피 터지는 싸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현대사회, 이러한 싸움에는 승자(勝者)가 있고 패자(敗者)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건 없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 가는 친밀함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우울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노력해야합니다.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 또한 교회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대화와 친밀감을 위하여 사랑과 헌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금 양보합시다. 화나는 마음을 참고 친밀함으로 먼저 가까이 갑시다.“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340성도의 경건한 삶 2021-12-12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년- 430년)는 4세기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교부 신학자입니다. 영어식으로 어거스틴(Augustine)이라고 부릅니다. 어거스틴은 늘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셔서 /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 그리하여 모든 죄악된 생각을 버리고 / 유일한 선의 근원이신 주님만 모시고 살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나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 하나님이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하옵시고, / 나는 너의 구원이라고 내 영혼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 주여, 나의 심령을 맡기오니 그 귀를 여셔서 /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고 / 그 음성만 따라서 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를 본 받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는 경건을 위한 기도를 이렇게 드렸습니다.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하지 마시고, / 무지한 인간의 귀에 들리는 대로 말하지 말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서 참된 판단을 분별 있게 내리도록 하시며,/ 무엇보다도 항상 당신의 뜻에 무엇이 정말로 즐거운 것인가를 묻게 하소서”
예수를 믿고 난 후 이 땅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늘 유혹이 있습니다. 세속 정신의 허영과 쾌락이 유혹하고, 사탄이 찾아와 달콤한 속삭임으로, 내면의 타락한 죄성(罪性)이 언제나 나를 죄악으로 끌고 갈려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영적 싸움을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려는 치열한 영적 투쟁의 현장에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승리하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편 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