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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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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토마스 아 켐피스의 <침묵> 2019-09-29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는 1379년 독일의 쾰른 부근 켐펜에서 가난한 공장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토마스 하메르켄(Thomas Hemerken)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보내던 중 19세에 성직자가 되겠다고 서원하여 <공동생활 형제단>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수도원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고전 읽기와 기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92살까지 살면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는 고독 속에 홀로 앉아 침묵으로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했으며 알려지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라틴어로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라는 작품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묵상되는 책입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강조한 책입니다. 이 책은 1부. 영적 생활의 유익한 훈계, 2부. 물질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훈계, 3부. 그리스도 중심생활에서 오는 영적 위로, 4부. 성만찬을 통한 신앙 발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5세기에 라틴어로 쓰여 진 책이 지금까지 읽혀지고 있다는 것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과 <침묵>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경건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세미하기 때문에 <조용한 침묵>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오직 주님만 위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오 주여,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시며,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을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이 보시기에 값진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게 하시고, 당신께 거슬리는 일을 미워하게 하소서”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번쯤 분주한 세상일을 멈추고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조용한 침묵으로 두 손 모아 주님께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14)
228희망 2019-09-22

<가을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승현 교수는 아버지가 평양에서 목회를 하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시절 믿음 안에서 자랐으며 늘 기도해 주시던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김현승 교수의 쓴 <희망>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는 <희망>을 '황금'으로, '별'로, '수평선의 기적'으로, '사랑'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희망>이 있으면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고,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김현승 교수의 <희망>을 소개합니다.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같은 손을 기다리고,
너의 희망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너의 희망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너의 희망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우리에게 한 번 주어 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神)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227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며 삽시다 2019-09-15

우리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하여 외면한 독일의 몰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몰트만은 1926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출생한 사람입니다. 그는 18세에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3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포도들 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견디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중간에 절망한 사람들은 결국 수용소에서 죽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고난을 참고 인내하여 견뎌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독일로 돌아온 몰트만은 신학공부를 하고 1964년에 <희망의 신학>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신학자가 됩니다. 영국의 윈스톤 처어칠(Winston Churclill 1874-1965)은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영국의 정치인입니다. 그는 중학교 때 세 번이나 진급을 하지 못한 낙제생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1940년에 영국의 보수당 당수가 되었고 영국의 수상이 되어 루즈벨트(Roosevelt) 스탈린(Stalin)등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1953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 연설 중 옥스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는 연설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낙제했을 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생의 여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볼 때 우리를 낙심하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말이 실현되는 사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미래사회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면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희망을 노래하며 새롭게 도전합시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37:1-2)
226바르게 삽시다 2019-09-08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제19대 문제인 대통령이 취임식 때한 말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후보를 지명한 후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대학입시 때 반영되는 사회봉사 점수를 특권층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재직하는 대학에 봉사하고 총장상을 받고, 대학교수들도 쓰기 어려운 논문의 제1저자가 되고, 방학 때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통하여 해외 봉사를 하며, 일반인은 방문조차 어려운 키스트(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봉사했다하고 그 활동 스팩으로 자기소개서를 써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사회를 어떻게 기회가 균등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학에 입학할 실력이 안 되면 재수하고 3수라도 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공정한 것이며 정의로운 것입니다.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서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자녀가 장학금 받은 것도 대학입시에 중요한 인턴십 한 것도 아버지인 후보자는 전혀 모르고 딸과 아내가 한 것이라고 답변하는 모습이 화를 넘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한편으로 참된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1달에 한 번씩 토요일에 ‘벧엘의 집’ 봉사를 다녀오기 때문입니다. 유명대학의 인턴, 코이카를 통한 국제 봉사는 못하지만 우리는 매월 작은 봉사를 다녀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꿈꿉니다. 바르게 삽시다. 그리고 멋지게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삽시다.
끝으로 윤동주 선생의 <서시>를 한 번 더 생각해봅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25그리스도인의 열정의 삶 2019-09-01
분당에 있는 새에덴 교회는 성도수가 2만 명이나 되는 초대형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는 맨손, 맨몸, 맨땅의 3M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쓴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하라>는 책 2장에 “개고기와 소주 사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척 초기 남전도회가 야유회를 가서 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남전도회 회원들이 개고기를 먹으면서 사이다 병에 몰래 소주를 담아 와서 사이다인 척하면서 목사님 앞에서 소주를 먹었습니다. 이때 어느 집사의 실수로 목사님께 사이다를 따라 준다는 것이 소주를 따라주게 된 것입니다. 사이다인줄 알고 마시던 목사님이 소주를 마시게 되자 갑자기 밥상을 발로 차면서 ‘어떤 XX 같은 놈’이 목사에게 소주를 먹이냐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너희들 이 자리에서 집사 다 잘라버린다’고 소리치고는 야유회 중간에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 집사가 술에 취하여 교회로 찾아와 ‘술 한 잔 먹었다고 집사를 자르는 목사가 어디 있느냐’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참다못한 목사님은 그를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죽기 직전(?)까지 때렸습니다. 분이 나서 ‘너 같은 놈이 집사이기에 한국교회가 요 모양이지’하면서 ‘그래 내가 나 복 받으려고 너희에게 술 먹지 말라고 했느냐? 네 놈들 복 받으라고 하는 것이지’ 그런데 목사에게 죽도록 맞은 집사가 목사의 폭력을 문제 삼을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난 후 오히려 집사가 목사에게 무릎을 꿇고 ‘목사님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소강석 목사의 목회에 대한 열정을 단편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누구나 인생길은 한 번 주어진 여정입니다. 어떻게 살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9월, 가을이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후회 없는 불꽃같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용혜원 시인의 <거센 파도로 살고 싶다> 중에서---------
내 가슴에 뜨겁게 흐르는 피의 열정으로 오늘을 살겠다.
한바탕 춤사위로 솟구쳤다 몰아쳐오는 바람처럼
거센 폭풍우처럼, 한동안만이라도 뜨거운 열정으로 살고 싶다.
224당당하게 삽시다 2019-08-25

우리는 삶을 살 때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남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이기에 내 행동에 대하여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도 문제, 남의 시선을 전혀 무시해도 문제가 됩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도를 <자기의식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즉 남들의 시선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외출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반드시 여러 번 내 옷차림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라는 질문에 < 5. 대단히 맞다. 4. 약간 맞다. 3. 그저 그렇다. 2. 약간 맞지 않는다. 1. 전혀 맞지 않는다. >라고 대답할 때 점수가 높으면 자기의식이 약하고 점수가 낮으면 자기의식이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식이 너무 약하여 외출할 때 늘 자기 옷차림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하여 출발 시간이 늦어지고 또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의 괜한 시선에 마음이 불안해진다면 자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솝우화 중 <팔러가는 당나귀>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시장에 팔러 갈 때 처음 집에서 나설 때는 당나귀를 그냥 끌고 출발합니다. 이때 사람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지 왜 그냥 끌고 가는가?”라고 말하니 아버지가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조금 가다 사람들이 말하길 아들이 버릇없이 자기는 타고 아버지를 걷게 한다고 수근 거립니다. 이에 아들은 걷고 아버지는 당나귀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말하길 어찌 어린 아들은 걸어가고 아버지는 타고 가는가? 아들이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마지막에는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메고 갑니다. 그러다 개울을 건너는 중 당나귀가 버둥거려 개울에 빠트렸습니다. <팔러가는 당나귀> 이야기는 자기의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의식이 낮으면 남의 말만 듣다가 개울에 당나귀를 빠트리는 꼴이 됩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 때 당당한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 수군거리며 떠드는 사람들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 아닙니다. 조금은 개성 있는 삶이 멋진 인생입니다. 오늘도 당당하게 삽시다.
223사랑의 공동체를 꿈꾸며 2019-08-18
아주 오래전 지금은 내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어느 날, 내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대학에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만나 저녁 늦게까지 목회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친구는 적극 반대를 했습니다. 이유는 대학에서 그냥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대학 현장에 보내신 것으로 믿고 현실에 충실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대학을 사임하고 목회를 하겠다는 결심이 설령 잘못된 결정이라고 훗날 후회할망정 지금 이 순간만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그럼 할 수 없지 하면서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의 문제점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나는 친구에게 이런 목회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랑공동체>를 이루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대학을 사임하며 목회현장으로 가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던 <예수사랑공동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일천일 부흥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예수사랑공동체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일을 이루고자 전심전력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공동체는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는 곳입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지친 몸으로 교회에 오면 새 힘을 얻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은 시기, 질투, 분쟁으로 얼룩져 서로 경쟁하지만 우리들만은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용납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1.영적예배. 2.인재양성. 3.세계선교. 4.지역사회봉사. 5.행복한 가정. 이렇게 5대 비전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5대 비전을 강조했지만 예배는 비전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4대 비전으로 바꾸었습니다. 참된 교회에서 목회를 한 시간은 서대문에서 3년 일산에서 18년이 지났습니다. 성도 수는 부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공동체는 아직 어설프기만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사랑공동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서로 사랑 >입니다. 일천일 부흥운동으로 다시 한 번 우리의 사랑을 회복합시다. 하나부터, 이제부터, 나부터 실천합시다.
222봉오동 전투 2019-08-11
오늘은 광복7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장로교 교리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한다는 것이 큰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초기 한국교회는 어려운 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깊숙이 참여하고 주역을 담당했습니다. 헤이그 밀사 파견, 105인 사건, 독립협회, 을미사변(1895)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고종황제보호, 3.1운동, 상해임시정부,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활동 등 큰 사건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간도국민회는 요즘 극장에서 상영 중인 <봉오동 전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간도국민회>는 구한말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만주로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고 학교와 교회를 세웠던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시작한 독립운동단체입니다. 1914년 이동휘 선생이 북간도 장재촌 명동(明東)에 도착하여 먼저 정착한 김약연, 김영학, 구춘선, 마진 등의 유지들과 협의하여 국민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 후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제각기 활동을 할 때 단체들을 연합하여 힘을 모아야했습니다. 이때 간도국민회가 중심되어 각 기관들을 연합했습니다. 1920년에 5개 총회와 80여개의 지회를 결성하여 서로 긴밀히 연락을 하여 항일운동에 조직적이며 단결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때 각 교회 목사님들이 시찰회를 중심으로 연락사무 일에 적극 활동을 했습니다. 간도국민회는 각각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무장 독립군을 연합시켰습니다. 북로군정서(서일, 김좌진), 대한독립단(지청천), 대한독립군(홍범도), 광복단(이범윤), 혈성단(김국초) 등을 연합시켜 하나의 독립군으로 조직을 갖추게 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안무와 최진동장군의 부대를 국민회 직할 대한독립군으로 편성하여 홍범도장군이 지휘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군 정규부대와 싸워 승리한 최초의 전투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을 하는 길은 (1)봉오동 전투처럼 무력투쟁을 하는 것. (2)상해임시정부처럼 국제 정치무대의 활동. (3) 국내에서 남아서 훗날을 기약하며 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는 교육과 국민의식을 계몽하는 계몽운동이었습니다. 무력투쟁, 상해임시정부활동, 학교를 세워 가르치는 일, 국민계몽운동 이 모든 항일 운동에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앞장서서 활동을 했습니다. 74주년 광복기념 주일에 선조들의 신앙과 활동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결단과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221핑계하지 말고 순종합시다 2019-08-03
주간에 말씀 준비를 하면서 몇 년 전 <핑계>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준다며 농담처럼 진담인 듯 건넨 그 한마디 안개꽃 한 다발 속에 숨겨둔 편지엔 안녕이란 두 글자만 깊게 새겨 있어 이렇게 쉽게 니가 날 떠날 줄은 몰랐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 준다며 -----” 사랑하던 남여가 헤어지면서 떳떳하게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혼자 남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변명하고 떠나는 사람에게 핑계 대지 말라고 외치는 노랫말입니다. <핑계>는 사전에서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솔직하지 못하고 핑계를 대며 구차한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하나님의 명령에 핑계를 댄 대표적인 사람은 모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미디안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을 잘못하니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라고 핑계합니다. 이렇게 핑계를 대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라고 하면서 모세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애굽에 도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합니다. 반대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 순종을 한 사람입니다. “주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외치며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우리는 핑계하지 말고 순종해야합니다. 눅 9:62절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핑계하지 말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20요나단 에드워즈의 결심문 2019-07-21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년-1758년)는 미국의 프린스턴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었으며 영적 부흥운동을 전개한 목회자며 신학자입니다. 목회자 자녀로 태어나 13살에 예일대학교를 입학하였고 17살에 졸업하고 21살에 예일 대학에서 교수를 했습니다. 18세기 미국 사회의 영적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 Movement)을 일으킨 목사님입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70가지 결심문을 묵상했습니다. 에드워즈의 70가지 결심문을 소개합니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에 동참하여 경건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전 생애 동안 최우선적으로 힘쓸 일
나의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지금 당장이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든지 간에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말자.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인류 전체의 행복과 유익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내가 부딪히게 될 어려움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한 그 어려움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자.
2. 위에서 언급한 사항을 잘 지키기 위해 도움을 주는 어떤 새로운 수단이나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하자.
3. 혹시라도 내가 넘어져 점점 무감각해져서 이 결심문 중 어떤 내용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회개하자.
4.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니면 영혼에 관계된 것이든지 육체에 관계된 것이든지 또는 적든지 많든지 간에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말자. 만일 내가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
5. 한 순간의 시간도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로 유익하게 사용하자. 6.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힘껏 살자. 7. 만일 내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면 절대로 하지 말자. 8. 모든 면에서, 즉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아무도 나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는 것처럼,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죄를 범하고,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범한 것처럼 행동하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나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계기로 삼고, 나의 죄와 비참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회로만 삼자. 9. 매사에 나의 죽음과 죽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자. 10. 고통스러울 때는 순교의 고통과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