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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249고난이 주는 유익 2020-02-23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바로크 시대의 네델란드의 기독교 화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하여 부모님이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 밑에서 3년간 그림 공부를 시킵니다. 그 후에도 큰 도시 암스테르담에 가서 그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632년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인〈튈프 박사의 해부〉를 그려 주므로 초상화가로서 유명해집니다. 그러나 야경꾼들이 부탁한 초상화를 <야경>이라 작품으로 그려 주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당시 화가들은 귀족들이 요구하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를 그려 주므로 돈을 벌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에게는 <야경>이후 사람들이 초상화를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렘브란트는 가난하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성경속의 사건을 그리는 신앙의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돌아온 탕자>, <갈릴리 풍랑의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이삭을 드림>, <십자가의 예수>, <야곱의 축복기도>, <삼손>등 명작을 남기데 됩니다. 렘브란트는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평범한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렘브란트는 어쩌면 그렇게 가난하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기에 신앙적인 명작을 남겼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인생의 여정 길에 고난을 당합니다. 아무리 평범한 삶을 살다간 사람일지라도 한 두 번은 고난의 순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 고난은 반드시 나쁜 것만 아닙니다. 어느 때는 고난이 우리에게 큰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가난과 외로움이 명작을 남기듯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우리의 삶의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이 가져다주는 은혜를 깨달아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248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2020-02-16
1952년 6.25 전쟁이 한참이던 겨울 어느 새벽에 서울 거리를 거닐던 미국인 선교사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은 길거리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치우는 인부들의 모습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전쟁의 고아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서울 거리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가운데 그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미국에 돌아간 스완슨 목사님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한국의 어린이들을 돕자고 호소합니다. 그 후 40년 동안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컴패션(Compassion)운동을 전개하여 미국 크리스찬의 후원으로 10만명의 한국의 전쟁고아와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끼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스완슨 목사님의 컴패션 운동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어린이에게 <꿈을 잃은 어린이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희망을> 전하는 구호단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후원국이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프랑스, 뉴질랜드, 이탈리아, 스위스, 한국등 10개국이며 수혜국은 세계 26개 나라의 어린이 110만 명에게 5100개의 지역교회를 통하여 먹을 것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국은 지난 2003년에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되었습니다. 컴패션의 비전은 빈곤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세계의 어린이들을 영적, 정서적, 사회적, 육체적, 그리고 감성적 빈곤으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긍극적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함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운영철학이 분명합니다. 예수님 중심(Christ-centered), 어린이 대상( Child-focused), 지역교회중심(Church-based) 재정의 투명성(Committed to Integrity)을 단체의 원칙으로 합니다.
스완슨 선교사 한 사람의 시작이 이제는 세계 110만명의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컴패션 운동을 보면서 스완슨 선교사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큰 역사를 이루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컴패션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계속적인 기도와 물질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1명 식사+교육비는 월 4만5천원입니다.
247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2020-02-09
몇 번 소개했던 이채 시인의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라는 시를 주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채 시인은 정신여고, 한성대를 졸업하고 시를 써서 2006년 세계문인협회 공로상, 제3회 조지훈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시인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를 감상하며 우리의 좁은 마음을 좀 더 넉넉하게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밉게 보면 /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요즈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우리 모두가 우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고하는 의료진들을 위한 기도와 갑작스러운 감염으로 생활에 불편과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하는 분들을 위한 기도뿐입니다.
모두가 우울해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매일 매일을 희망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염병으로 불안해하는 이웃에게 밝은 내일의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46무제(無題) 2020-02-02
2020년 4.15일은 우리나라 국회위원을 뽑는 총선일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인재를 영입하느라 분주합니다. 어느 정당에서 20대 젊은이를 영입했다가 과거 행적이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자 즉각 사과하고 탈당을 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은 다른 정당에서도 그를 영입을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 안 계실까요” “두 당에서 내년 총선에 공천과 비례로 각각 제의가 들어왔는데요 -- 제가 어린(?) 나이어서 정치 쪽을 잘 모르는데요. 기회로만 보면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알아보려고 하거든요. 혹시 이쪽 부분 잘 아시는 분 계실까요?” 너무나 황당한 글입니다. 정치를 모르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정치를 모르는 사람을 인재라고 영입하려는 기존 정치인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렇게 인재가 없는 나라입니까?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라와 이웃을 위한 멋진 정치인이 되겠다고 꿈을 가지고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전공을 하고 국제무대에 나가기 위하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4.15 총선은 국회위원을 뽑는 것입니다. 국회는 법을 만들고 정부의 예산을 승인하며 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도 모르고 정치도 모르는 사람을 대중의 인기도에 따라 인재라고 영입하는 현실입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청년 정치 지망생들에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젊은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하려는 각 정당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야합니다. 각 정당은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하려고만 하지 말고 정당의 청년당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인재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교육으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 제갈공명을 얻은 유비처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제갈공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각 분야의 인재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 중에 정치 지망생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국의 노예무역 폐지운동을 했던 믿음의 정치인 윌리암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와 같은 정치인이 많이 나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45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 줍시다. 2020-01-26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 은 1638년 교회 옆 마당 통나무집에서 교사 1명이 몇 명의 학생을 가르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새로운 대학"("New College")으로 불렸으나, 존 하버드 목사의 400권의 책을 기부 받은 후 1639년 3월 13일에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 목사님은 영국에서 캠브리치 대학을 졸업한 청교도 신앙의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영국서 목사안수를 받고 큰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을 하던 중 폐결핵으로 31살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의 책 400권을 대학에 기부합니다. 하버드 목사는 그의 책을 기증하면서 “나는 미국에 큰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기에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나의 후배들이 이루기를 바랍니다. 내가 학교에 기증하는 이 책을 통하여 훌륭한 신학자, 법학자, 과학자들이 나와서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를 기대합니다.” 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게 됩니다. 그 후 그의 꿈처럼 세계적인 성직자들이 나왔고 아담스, 루즈벨트, 케네디, 죠지 부시, 오바마 대통령 등 7명의 미국 대통령이 나왔고 4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며 자산은 약2백58억 달러(약 32조원)이라고 합니다. 하버드 목사님의 뜻 깊은 책 400권이 오늘날 하버드 대학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교회 1층에 북카페 형식으로 작은 도서관<글빛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아주 작은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책을 읽은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자라나 훗날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대하며 독서 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2020년 겨울 방학 중입니다. 부모님들이 카페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244작심삼일 넘어 칠전팔기로 도전하는 삶 2020-01-19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먹은 마음이 삼일 밖에 가지 않는다는 약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겠다, 금연, 금주를 하겠다, 자기계발을 위하여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 독서를 하겠다, 자격증을 따겠다, 또한 영적 성숙을 위하여 새벽기도를 하겠다, 전도를 하겠다, 성경을 읽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2020년도 벌써 셋째 주간입니다 작심삼일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다시 한 번 결심을 하고 새롭게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 정신으로 매일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몇 번 소개했던 박목월 선생의 <아침마다 눈을 뜨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작심삼일을 넘어서 칠전팔기로 목표를 향한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 환한 얼굴로 착한 일을 해야지 /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하나님은 날마다 / 금빛 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 놓으시고 /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젖혀 /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 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밝은 하루를 제게 베푸신 / 하나님께 감사하고 / 착한 일을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빛같이 신선하고 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내가 있음으로 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 살며시 친구 손을 꼭 쥐어주는, // 세상에 어려움이 한 두 가지랴. /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서로서로가 돕고 산다면 /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 바라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 아침마다 눈을 뜨면 / 환한 얼굴로 /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243세계 평화 2020-01-1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샬롬>이라는 말로 인사를 합니다. 샬롬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 언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샬롬(shalom)은 대부분 <평화>라고 번역하는데 간혹 <형통>이라는 말로 번역을 한 곳도 있습니다(시73:3). 구약성경의 샬롬은 동사 샬람(shalam), <평화를 주다>에서 온 말입니다. 샬람은 아카디어 샬라무(shalamu)인데 “건강하다, 완전하다, 평화롭다”는 말로 정치적으로 평안한 상태, 즉 전쟁이 그치고 이웃 국가와 화친의 상태를 <샬라무>라고 표현합니다. 샬람무의 평화는 원시사회에서 이웃과 원한 관계가 없이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샬롬은 전쟁이 없는 평안한 상태를 표현하는 히브리 언어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샬롬(평화, 안식)의 땅을 들어간다고 표현합니다. 레위기 26장 6절에 보면 “내가 그 땅에 평화(샬롬)를 줄 것인즉 -- ” 대적의 칼과 사나운 짐승이 해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보호하신다고 기록합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샬롬을 누리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샬롬의 땅으로 들어가 샬롬을 누리지 못합니다. 구약의 사사시대를 말할 때 우리는 “샬롬(평화, 안식)의 땅에서 엔샬롬(평화 없음)을 경험하는 슬프고 암울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샬롬(평화. 안식)의 땅에서 엔살롬(평화. 안식없음)을 경험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가나안 종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나안의 부족들과 전쟁을 하는 400년의 사사시대가 온 것입니다.
평화가 깨진 “엔샬롬의 시대”를 말할 때 멀리 구약의 사사시대로 올라가지 않아도 2020년 1월 미국이 이란의 이인자 솔레이마니를 드론으로 암살시키고 이란이 미군기지 미사일 공격은 평화를 깨트리는 엔샬롬의 행동입니다. 이러한 샬롬이 깨진 엔샬롬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까?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4-16)
242여호와는 나의 깃발 2020-01-04
깃발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은 그 나라의 국기(國旗)입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깃발은 태극기이며 미국은 성조기, 일본은 일장기라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군에서는 지휘관이나 특정 부대를 상징하고 전투 중에 부대의 위치를 알리고 부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기수를 세워 깃발을 높이 듭니다. 깃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를 이야기합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할 때 막센티우스군과 밀비우스 다리 전투 중 “이 깃발로 나가 싸우라”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깃발이 X, P입니다. 헬라어 <크리스토스 'Χριστοs 그리스도)의 첫 글자(키 X)와 둘째 글자(로 P)가 겹쳐진 문향의 깃발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깃발을 내세워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리고 그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은 바닷가 깃대에 아우성치듯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출애굽 17장에 보면 아말렉과 전쟁을 하는 모세는 전투 현장에 여호수아를 보내고 자신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손을 높이 듭니다. 손을 높이 들 때 손이 올라가면 승리하고 내려오면 패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쳐줍니다.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한 모세는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릅니다. 이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 승리라는 뜻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마치 다윗의 골리앗 앞에서 외침 말처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여호와 닛시> 그 깃발로 세상에 나가 모든 일에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41희망은 날개가 있다 2019-12-29
에밀리 디킨슨 (Emily E. Dickinson 1830-1886)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애머스트(Amherst)에서 1830년에 태어나 활동한 천재 여류시인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애머스트 대학(Amherst College)을 설립했고 아버지는 변호사이며 국회위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청교도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활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평상시 외부출입을 즐기지 않았고 집에서 홀로 시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작품이 출판되지 않았으나 죽은 후 동생이 작품을 발견하고 1890년 그녀의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오늘 그의 작품 중에 < 희망은 날개 달린 것 >를 소개합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시의 제목이 없기에 첫 줄의 문장이 제목이 되었습니다. 제목은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으로 직역하면 희망은 날개가 있다는 말입니다.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우리 마음으로 날아와 가사 없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 희망은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노래합니다. 오늘 2019년 마지막 주간에 혹시라도 희망을 잃었다면 에밀리 디킨슨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노래를 듣고 2020년에는 다시 한 번 <희망을 노래합시다>.
240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2019-12-22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살던 15살 소녀 로저 파크스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앨라배마주에서 운행하는 버스는 흑인과 백인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었고 흑인이 백인 자리에 앉으면 벌금을 내는 인종차별의 현장이었습니다. 로저 파크스 사건은 버스 안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인 버스보이콧 운동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몽고메리시에서 목회를 하던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1929- 1968) 목사는 버스 보이콧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미국 대법원으로부터 <대중교통의 흑백 분리 금지 명령>을 받아냈습니다. 이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 인권 운동가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63년의 <워싱턴 평화의 대행진>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 I Have a Dream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 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괴한에게 피살되기 전까지 인종차별에 항거하며 흑인인권운동의 꿈을 실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은 2019년 12월 마지막 주간입니다. 우리의 삶을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꿈이 있는가? 생명을 드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가?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꿈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